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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ah Who Will Be 25 In 2000, 1976 / Alain Tanner

이정엽 |2009.11.05 10:11
조회 151 |추천 0

 

<2000년에 25살이 되는 조나(Jonas qui aura 25 ans en L'an 2000)>

 

Director : Alain Tanner

 

1. 이 영화는 뇌를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기특한 영화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하다. 그런 건강함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고 현실에 의한 좌절도 있지만 어떤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타의 염세적인 68혁명에 대한 후일담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면서도 매우 지적이다.

 

2. 주요 등장인물 8명의 이름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아주 재미있다. Max, Mathilde, Marco, Marcel, Marguerite, Madeleine, Marie, Mathieu. 이들의 이름은 모두 Ma로 시작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무엇보다 Marx와 Mao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정치적인 노선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3. 감독의 마오주의적인 시선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일종의 코뮨(Commune)처럼 그려지는 마르셀의 농장, 그리고 농작물의 장점을 찬양하고 인간보다는 동물들의 사진을 즐겨 찍으며, 고래 남획을 반대하는 마르셀의 발언들은 여과되지 않은 감독의 말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4. 영화를 보면서 잘 산다는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았다. 감독은 여러 이상적인 모델을 설정해 놓고 있는 듯 했다.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장, 건강한 육체 노동, 농작물을 스스로 수확해 요리해 여러 명이 같이 즐기는 정찬, 우연성에 근거한 남녀 관계의 시작, 1대 다의 성관계, 좋아하지만 소유하지 않는 사랑, 규율적이지 않고 자율적인 학교, 파격적이지만 솔직한 담론으로 학생들을 이끄는 교사, 그리고 언제나 희망의 원천인 아이들.

 

5. 위에 늘어놓은 것들은 개인의 모럴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부지런함과 성실함, 솔직함, 재기발랄함으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하고 반성하면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코뮨은 언제 떠올려도 즐거운 것임에 틀림없다.

 

6. 그러나 감독의 시선에는 낙관적인 휴머니즘이 짙게 배어 있어서 현실의 가혹한 처사는 언제든지 이들의 코뮨을 깨어버릴 수 있다. 그도 이런 현실의 냉혹함을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의 한계치를 미리 설정해 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래는 포획하면 안되지만 닭털을 무자비하게 뽑고 있는 마르셀, 일보다는 아이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노동자 마티유, 내연남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회사의 비밀을 발설하는 은행직원 마들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마티유를 냉혹하게 쫓아내는 마그리트, 애인이 감옥에 갔다온 뒤 걱정해 주기는 커녕 2:1의 성관계를 요구하는 마르코, 노인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슈퍼의 물건을 싸게 불법으로 공급하는 마리, 남편 몰래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유고 등 다국적 남성들과 관계를 가지는 마그리트.

 

이들의 욕망을 다 용인하다가는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여자가 한 수 위인 것이, 막스가 모럴을 따르지만 마들렌은 모럴을 거부하고 종교를 섭취한다는 그들의 이론에 한 방 먹었다.

 

7. 영화는 컬러로 나가다가 가끔 세피아 톤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여러 장치로 활용된다. 과거의 회상이 되기도 하고, 꿈, 미래에 대한 상상, 소망 등 비현실적인 결론이 나올 경우에는 항상 세피아 톤을 선택한다. 이 영화가 대책없는 낙관적인 휴머니즘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런 장치들 때문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현실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현실과 비현실의 엄격한 구분을 형식적으로 정해놓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서사극적이고 브레히트적이다.

 

8. 다른 걸 다 제쳐놓고서라도 이 영화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많다. 마르코, 마르셀, 마티유 세 남자가 모여서 양파를 찬양하면서 요리를 만드는 장면. 이 장면은 직접 농장에서 기른 농작물로 저녁을 준비하는 건강함이 깃들어 있으며, 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가치를 온전히 섭취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이상적인 생산과 소비의 조화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요리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마르셀의 아이들이 어른들을 벽에다 세워놓고 몸의 윤곽을 따라 그린 뒤 벽화를 완성하는데, 그 벽화야말로 이 작품의 소박함을 잘 보여준다. 순수한 얼굴의 조나가 흰 분필로 그 위에 덧칠을 하는 장면이야말로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희망일 것이다.

 

그 외에도 순대 한 발을 가져와 자른 뒤 이 순대를 가지고 불연속적이면서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시간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마르코의 강의 장면, 8명의 마오들이 진흙탕에서 뒹구는 장면, 꼬뮨의 학교에서 마티유가 고래의 소리를 녹음하여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장면 등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9. 이 영화가 2006년에도 여전히 힘을 가지는 것은 이 8명이 가졌던 문제 의식이 현재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조나가 바로 나와 같은 세대라는 점은 이 영화의 미래적인 측면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감독은 이 영화를 SF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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