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맞을 짓'이란 게 어디 있나?
그러나 현실은 '맞을 짓'은 있고 그 이유로 공공연히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부모가 아이에 대해 그러하고 선생이 제자에 대해 그러하다.
힘 센 자가 힘 약한 이에게 그러하다.
누군가가 나의 잘못을 이유로 나에게 매질을 한다면?
용납할 수 있는가?
누가 나를 때릴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이 왜 키워지고, 교육받아져야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받는 폭력을 인정해야 하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누가 누굴 때릴 권리란 있을 수 없는 권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 권리를 의무로 살짝 바꿔치기하면 헷갈리게 된다.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의무.
잘못을 꾸짖고 올바로 잡아야 한다는 의무.
규칙과 질서를 익히게 해야 한다는 의무 등등.
남편이 아내를 구타할 때 이 의무를 들먹인다.
힘들게 돈벌어 가정의 질서를 잡고
이끌어야 된다는 의무.
남편과 아내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아이와 어른처럼 지도편달받아야 되는 관계다.
아내는 남편에게 속하고
아내는 남편의 통솔하에 복종해야 한다.
이게 현실의 결혼제도 속 부부 관계 본질이다.
우습지 아니한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통제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리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그게 가능하다고 착각한다.
그 착각은 폭력을 불러들인다.
관계에서 강자와 약자로 나뉘기에
그 폭력은 맞을 짓에 대한 처벌이라는 합리화를 띤다.
참으로 엄청나고 공포스러운 논리다.
육체적 폭력도 폭력이지만
언어 폭력, 힘으로 누르는 폭력 모두 마찬가지다.
폭력에 경중을 매기는 순간 우리는 폭력의 본질을 망각하게 된다.
살다보면 서로에게 파괴적인 관계임이 분명하지만
단지 헤어지기가 귀찮고 겁나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하는 인간관계들이 있다.
- 책을 펴내며 지은이의 말
폭력은 아주 쉽게 인간을 노예 상태로 몰고 가지만,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는 피해자의 수치심과 두려움이라는
강력한 억압 장치가 덧붙여져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수치심과 두려움이
강력하고 효과적인 이유는 그것이 “자발적”이라는 데 있다.
- 책을 펴내며 지은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