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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어낸 괴물. '루저'

이슈이슈 |2009.11.13 19:21
조회 359 |추천 2

최근 '미수다'의 '루저녀'사건이 떠들석 합니다. 이미 유머코드로 자리잡은 듯 인터넷 여러 매체에선 인용에 인용을 거듭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신이나서 소위 '까'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녀가 잘못했음을 여기서 다시 따질 필요는 없을겁니다. 그러나, 그 날의 미수다는 그저 키작은 남자들을 비하한 것 이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원죄를 따지자면, 이 나라의 문화적 특수성을 만들어 냈던 우리 모두에게 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 전반을 지배해 왔던 남성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 날 미수다를 전부 본 저로서는, 홍대녀의 키 이야기보다 인상깊은 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을 신경쓰는 정도의 차이' 였죠.

더치페이를 할 때도, 백팩을 메느냐 핸드백을 드느냐의 이야기를 할 때도, 학교와 도서관에 힐을 신고 화장을 하고 오는 이야기를 할 때도, 키작은 남자와는 연인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할 때도, 우리나라 여성들에겐 언제나 본인은 없었습니다. 그녀들이 신경쓰고 있던 것은 전부 주변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참 독특한 나라입니다. 유교적 뿌리가 깊고 공동체문화가 익숙해서인지는 몰라도, 혼자서 무엇을 한다는 것에 이만큼 사회적인 은근한 제제가 심한 나라는 없을겁니다.(은근하다는 것은 규율로 명시되어 제제되지 않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밥을 혼자 먹을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영화를 혼자 볼 수 없는 나라에 살며, 심지어 커피숍이나 쇼핑을 혼자 하기도 조금 찜찜한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학교나 학원, 회사 등 사회생활을 할 공간에 혼자 출 퇴근을 하는 것 조차 눈치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레 모든 행동을 타인의 시선이 바라본다는 것을 감안하고 삽니다. 그렇다 보니 '개성'은 '쪽팔림'이 되고, '다름'은 '틀림'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평가하는데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그것이 전혀 이득을 주지 않는 투자라 할 지라도) 스스로 또한 그렇게 평가받고 사는데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었을 때, 딱 한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외모'에 대한 '평가주체'라는 점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목숨을 거는 이 나라에서, '키'가 작은건 흉이 됩니다. '돈'이 없는 것도 흉이됩니다. '연인'이 없는 것도 흉이 됩니다. '친구' 가 적어도 흉이됩니다. 심지어 '머리스타일'이 조금 독특해도 흉이 됩니다. 그렇기에, '외모'라는 것은 이 나라 어디에서도 피할 수 없는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언제나 '여성' 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 또한 남성을 평가해 왔으나 그것은 전혀 공개될 수 없을 뿐더러 그 평가가 그녀들의 선택에는 어떠한 영향조차 끼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평가의 객체로서 존재했던 것입니다.

과거에 여성들은 억압된 존재였습니다. 당연히 남성을 위해 헌신하고, 순종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것은 오래 된 이야기도 아닌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 심지어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도 적용된 이야기였습니다. 사회에서 여성이란 명목만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녀들은 남성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을 평가하고 선택하는데 익숙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중에서 '외모'란 가장 잔인하고 치욕스러운 평가기준중 하나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생기는 부분이었기에 여성들은 대신 시를 읇고, 요리를 배우고, 내조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좀 더 중요한 평가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현대 사회로 넘어올 때 자유와 교환되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로 '예의범절규범'이라는 미덕이지요. 남성이 여성을 평가할 때, 과거에는 외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아주 의도적으로 말이죠. 그것은 바로 사회적 기준이었고 그래야만 했던 규범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평가와 '바꿀 수 없는 선천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에 대해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선천적인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와 한계를 내리긋길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우리를 이성적이고 품위있게 유지해 주었던 많은 도덕적 규범들은 사라졌습니다. '당연한 욕구와 시선을 억제하는 것은 부자유스럽다'라는 이유로 인해서 말이죠. 그 때부터 였습니다. 서서히 사람들은 빨라져 가는 세상속에서 사람대신 '명함'을 보고, 내면대신 '외모'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남성상위의 사회와 결합되어, 여성들은 평가받는 객체로서 한동안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인간답게 해왔던 도덕적 규범들을 지키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한 번쯤, 본인 또는 주변에서 이러한 '조롱'을 보내신 적이 있을겁니다. 지나가다가 못생긴 여자가 지나갑니다. 가슴도 작고, 통짜 몸매에, 키도 땅딸막합니다. 피부도 깨끗하지 않죠. 당신은 아마도 '진짜 못생겼다 크크크, 공부 열심히 해야되겠네. 아 쟤 인생 어쩌냐. 수술 안하고 살 수 있을까? 저런애를 누가 만나주나 아휴..' 따위의 조롱을 했을 겁니다. 그게 머리속으로든 아니든. 문제는, 이 사회의 다수의 남성들이 그것을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듯 입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에 전혀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수많은 시간동안 남성들에게 평가받아야 했습니다. 소수의 미인들은 그러한 평가속에서 훨씬 더 풍족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많은 편의가 주어졌으며, 다수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애써 쓰다듬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사회였으니까요. 그러나, 남여평등이 진행되면서 더 이상 여성들은 평가당하는 객체로서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터진 이슈가 바로 '키 작은 루저'이야기 입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여성들에게 '공개적'으로 평가당한다는 사실이 매우 어색합니다. 비록 여성들이 남성들을 '평가'한다는 사실 자체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저렇게 공개적으로 대놓고 평가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가의 주체였지 객체가 아니었으니까요. 많은 남성들이 '분노'한 이유에는 '키가 작아서'라는 1차적인 이유가 아닐겁니다. 그 안에 숨어있는, 자신들이 여성들의 외모를 보며 평가하고 조롱하며 희롱했던 모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남성들은 스스로의 외모가 타인에게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들 또한 길거리에서 못생긴 놈,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수술좀 해야겠어. 그거도 쬐깐한거 아냐? 푸훗 따위의 조롱에서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타인을 외모로 평가함이 나쁜 줄 알면서도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서슴치 않고 꺼낼 수 있었을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이미 일상속에서 충분히 이뤄져 온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공중파를 통해서 퍼졌을 뿐, 이미 이 나라에서 모든 사람들은 타인의 평가에 얽매여 사는데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쪽'팔리는게 무엇보다도 싫은 사람들에게 그녀는 공개적으로 '쪽'을 줘버린 셈이 되는거죠. 못생긴 사람에게 넌 그렇게 생겨서 어떻게 살래? 따위의 조롱을 공개적으로 해버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녀들이 살아오며 받았던 모든 평가와 조롱들이 보이지 않는 사고속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본인에게든, 다른 여자에게 향했던 화살이든 간에요.

'루저'를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는 '반성'부터 해야 앞 뒤가 맞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혼자 밥 먹기 어색하게 만든것도 우리고, 연인을 악세서리처럼 인식하게 된 것도 우리가 만든 사회적 코드들입니다. 그러한 관념들은 태어날 때 부터 생긴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리의 허영심과 이기심, 그리고 본능을 이성적으로 절제하지 않으려는 '자유 아닌 자유'와 '솔직함 아닌 솔직함'에 대한 찬양덕에 생긴 비극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과 눈과 생각이 이러한 '괴물'을 탄생시켰다는걸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그러한 괴물을 만들어내는 조소와 시선, 본능에서 자유롭기 위해 스스로의 생각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천천히 사회의 시선과 코드를 바꿔내지 않는이상 우리는 키 작은 남자도 루저고, 가슴이 작은 여자도 루저고, 못생긴 사람은 루저고, 배에 왕자가 없는 남자는 루저며, 차가 bmw가 아닌 사람도 루저고, 그 외 기타등등 수많은 루저들이 되야하는 사회속에서 아주 자유로운 것 같은 부자유 속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시선이 모여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사회의 코드에 있던 잔인한 시선을 피하기보다는 그 부조리에 맞서 반성하고 한명 한명이 시선을 바꾸지 않는이상, 홍대녀가 아무리 반성한다 한들 사회 어딘가에 '조롱의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들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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