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지키기 200만인 서명운동 달성 체험기 연재 9회
3.8선 휴게소 단상
인천시 동부 교육청을 방문해서 학무과장님을 만났다.
독도를 지키려는 우리의 방문이 그에게 행상인으로 보였던지 차 한 잔 대접 없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결국 서명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북부교육청 학무과장님도 위에서 지시하기 전에는 못하겠다고 결국 우리를 돌려보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인천광역시 교육청으로 가는 도중에 서둘다가 발까지 삐어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치료를 받고도 걸음을 걸을 수 없는 나를 보다 못해 한의원 원장님이 붕대를 감아주셔서 겨우 인천시 교육청에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인천광역시 교육청 교육감님 비서실장님을 만난 자리에서 서명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비서실장님은
“독도지키기에는 전 국민이 참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역 교육청에서 거절한 것은 서명운동이 남발될까봐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인천시 광역시 교육청에서 연락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해보겠습니다.”
하는 약속을 받고 우리는 그 옆에 있는 인천시청까지 방문했다.
인천시청에서는 동사무소까지 서명지를 보내어 동민들도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해서 우리는 그 길로 철원 교육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도중 3.8선 휴게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여장을 풀었다.
휴게소 앞에 있는 3.8선이란 비를 보는 순간 감회가 새로웠다.
역사의 한 벼랑 끝에서 힘없이 곤두박질치는 우리 민족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일본이 우리를 36년 동안 지배해서 우리를 약탈하지 않았더라면 남북 분단이 안 되었을 것이고 남북 분단이 안 되었더라면 6.25의 아픔이 없었을 것이고, 대한민국이 6.25가 없었더라면 일본이 전후에 저렇게 빨리 일어서진 못했을 텐데……
우리의 하나 되지 못한 6.25는 일본의 전쟁무기 판매장을 만들어 주었고, 이 것이 2차 대전 후 폐허가 된 일본을 중흥시키는 지름길 역할을 했다.
일본이 이토록 빨리 일어서지 못했더라면 우리 독도 내어놓으라고 저렇게 큰소리치지는 못 했을 것이고, 일본이 독도 내어놓으라고 큰소리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생업을 제쳐놓고 이 3.8선 휴게소 한 모퉁이에 차를 주차해 놓고 차에서 새우잠을 자는 일은 없었을 텐데……
6.25의 원인 제공을 한 일본이나 강대국 들은 버젓이 잘 살고 있는데 당하기만 한 우리들은 이산가족이 되어 50년이 지나도록 자유롭게 만나지도 못하는 이 안타까움!
우리 민족은 분리하기 좋아하는 습관이 있어 큰일은 결코 할 수 없는 민족이라고 일본사람이 얘기 하더라는 어느 교육장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이 났다.
삼국시대부터 일본은 울릉도를 거점 삼아 우리를 침범했고 당파싸움이 치열할 때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동서, 여야, 노사, 빈부귀천,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우리가 하나만 될 수 있다면 남북통일은 시간문제 아닌가?
우리가 통일해서 힘이 있다면 일본이 우리를 얕잡아보고 감히 독도 내놓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내 가정부터 불화의 벽을 헐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결코 일어설 수 없음을 우리 역사는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독도의병대(www.o-dokd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