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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의 법칙

윤인태 |2009.12.19 20:59
조회 2,151 |추천 0
카르마의 법칙은요.
카르마(業)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크게 보아 두 종류가 있다.

첫째,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 평범한 존재의 행위.
여섯 세계(六道)윤회의 원인이 된다.

둘째, 행복을 부른는 카르마; 성자의 행위, 지옥, 굶주린 귀신, 동물의 세계에 결코 태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윤회의 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다.

1)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有漏業)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는 어떻게 해서 생길까?
가령 우리가 어떤 사람과 실랑이를 벌일 때 '나' - '무엇보다도 내가 옳다'던지 하는 식의 - 에 대한 강한 고집이 일어나면, 일하고 먹고 공부하고 죽고하는 상대적인 "나"가 마치 절대적인 자체의 성질을 가진 것처럼 독단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밤 길을 걷던 사람이 길 위에 떨어져 있는 새끼줄을 뱀인줄로 잘못 알고 놀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결국 모든 갈등은 덧없고 상대적일 따름인 "나"에 독립자존(獨立自存)의 절대성을 부여하는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이 상대적인 "나"가 "나"의 완전한 부정이라는 뜻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먹고 일하고 잠자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 상대적인 "나"와 무지로 인하여 독단한 절대적인 듯이 보이는 "나"를 정확히 구별하지 못하면 수냐타(空)의 대한 체험은 불가능하다.

모든 번뇌의 뿌리에는 어리석음이 있다. 그 어리석음("나"에 대한 착각)에 의하여 증오, 집착, 그 외의 모든 갈등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번뇌가 남을 해롭게 하려는 욕망을 일으킨다. 그 러한 욕망이 일어나면, 곧 정신적인 타르마(意業)가 발동한다.
정신적인 카르마는 의식의 흐름에 어떤 인상을 남기게 되고 적합한 경우를 만나면 구체적인 행위로 표출된다. 정신적인 카르마는 몸이나 말의 카르마(身業. 語業)보다 작용 속도가 훨씬 빠 르다. 단 일분 동안에도 많은 종류의 정신적인 행위가 행해질 수 있다. 남을 해롭게 하려는 욕망도 이와같이 몸과 말의 행위를 통해 구체화 될 정도로 깊어지면, 의식의 흐름에 새겨지는 인상은 더욱 뚜렷해진다.
밤이 가고 새벽이 와도 상처 받은 의식은 흐름을 멈추지 않는다. 무수한 종류의 선하고 악한 카르마가 우리의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물론 이미 결실을 거두었거나 바른 수행을 통해 카르마의 상흔을 제거한 경우는 예외지만 말이다.

2) 행복을 부르는 카르마(無漏業)

다음의 예(例)는 행복을 부르는 카르마의 생성 과정이다. 어떤 사람이 한 마리의 새를 죽이려는 광경을 보게 될 때, 측은한 느낌이 우러난다. 그 순간 '저 가련한 목숨을 구해야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때 행복을 부르는 정신적인 카르마가 움직인 것이다. 그것은 의식의 흐름에 바람직한 인상을 새긴다. 그리고 그 의식이 몸이나 말의 행위로 구체화 될 경우, 새는 목숨을 건지고 그의 자비로운 카르마는 넓고 깊어진다. 그것이 바로 자신과 남의 행복인 것이다.

카르마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카르마로써 한 사람에 의해 창조되고 그 결과도 그 자신이 겪는 것이고,
둘째는 사회적인 카르마(共業)로 비슷한 환경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공동으로 심어지고, 그 결실도 다같이 거두는 것을 말한다. 바로 숙명적으로 묶이어 함께 울고 웃는 공동운명체를 구성하는 요인이다.
붓다가 세상에 계실 때, 한 무리의 덕 높은 비구니들이 음식 시중드는 여인네 한 사람을 데리고 암자에 모여 살았다. 어느날 암자의 오두막 전체에 불이 붙었다. 비구니들은 이 뜻밖의 재난 을 피하고자 저마다 신통력을 써서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그러나 카르마의 위력은 비구니들의 신통력보다 더 강력하여, 비구 니들을 모조리 불더미 속으로 끌어 당겼다. 그때 그 가운데에서 가장 덕 높은 비구니는 자신들이 지난 세상에 저질렀던 한가지 일을 기억해내었다. 자신들이 지난 세상에서 어린아이였을 때 벽지불이 사는 오두막을 불질러 그를 타죽게 한 일이 있었다.
한사코 그러기를 반대한 사람은 지금 음식 시중을 드는 여인네 혼자 뿐이었다. 결국 비구니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바람직하지 못한 카르마를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청산한 것이다. 다만, 음식 시중드는 여인네는 하수구를 통해 달아나 혼자 목숨을 구했다. 더불어 문제되는 것은 행위의 동기와 성취에 따라서 결과가 복잡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행위의 동기와 성취가 명백히 올바르다면 그 결과 역시 바람직하고 올바르지 않다면 그 결과는 바람직 하지 않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러나 행위의 동기와 성취가 단순하지 않고 다분히 복합적이라면 그 결과 또한 뒤섞여 나타난다. 예컨데 어떤 사람이 거지에게 돈이나 음식물을 베풀면서 속으로는 깔보는 마음을 품었다고 하자. 보시한 덕분에 장차 재물은 얻겠지만, 상속받을 재산에 법률적인 문제가 생기는 따위의 어려움을 아울러 만나기 십상이다.

다음과 같은 카르마는 보답의 무게가 특별하다.
a. 부모님, 스승, 보디삿트바(보살), 병자나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행한 행위의 보답은 보통보다 정도가 크다.
b. 존경심을 갖고 행한 카르마의 보답이 무겁다.
c. 강한 증오나 탐욕은 카르마의 영향력을 진폭시킨다.
d. 행위할 때의 태도 여하에 따라 그 보답이 영향을 받는다.

카르마는 세 가지 독(三毒: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일어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재물에 집착하여 남의 것을 훔쳤다면 그것은 탐욕의 번뇌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하고 살생을 했다면, 그것은 성냄의 번뇌로 말미암은 행위다. 그때 그는 죽이는 편이 이롭겠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므로 이는 동시에 어리석음의 번뇌로 말미암은 셈이다. 어리석음 중 에서도 가장 큰 어리석음은 "나"가 본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어리석음이다. 그것은 실제로 모든 번뇌의 뿌리이다.

다시 카르마는 다음의 둘로 구분한다.
a. 뭇생명을 여섯 세계 가운데 한 곳으로 "집어 던지는" 카르마.
a. 같은 세계에서 뭇생명의 생긴 모습과 생활환경을 "차별지우는" 카르마.

둘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어울린다.

첫째, 집어던지는 카르마와 차별지우는 카르마가 둘다 행복을 초래하는 종류일 때, 그 결실은 바람직한 세계에의 탄생과 훌륭한 생활환경이다. 특히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요한 조건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 계율(戒律)을 준수하는 것이다. 도둑질, 살생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즐겨 남에게 베풀기까지 한다면, 그의 삶은 온갖 훌륭함으로 장식된다. 남을 업수이 여기지 않고 겸손과 예의를 갖추면 다음 세상에 권력과 자유로 보답받는다. 거기에다가 건강한 신체는 "참음"의 결실이다.

둘째, 집어던지는 카르마와 차별지우는 카르마가 번뇌를 초래하는 종류일 때, 그 결실은 고통스런 세계에 태어나,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숱한 고초를 두루 겪는다.

세째, 집어던지는 카르마는 번뇌를 초래하는 종류이고, 차별지우는 카르마는 행복을 초래하는 종류일 때에는 그가 비록 나쁜 세계에 태어날지라도 꽤 괜찮은 생활환경을 만난다. 가령, 애완용 개로 태어났다면 일단 그는 나쁜 세계에 던져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예쁘게 생긴 덕분에 좋은 주인을 만나 잘 먹고 귀염받는 처지가 될 경우, 그는 제대로 결실을 본 셈이다.

넷째, 반면에 사람 몸을 받기는 했으나 내내 궁핍과 고통을 못 벗어나는 경우는, 행복을 부르는 집어던지는 카르마와 괴로움을 초래하는 차별지우는 카르마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이다.

카르마의 또 다른 특성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a. 일부러 짓지 않은 몸과 말의 행위.
b. 그저 마음으로만 지은 행위.
c. 마음으로 짓고 행동에 옮긴 것.
d. 결실이 현재의 생(生)에 맺히는 강력한 카르마.
e. 다음 생에 보답받는 카르마.
f. 다음 다음 생, 혹은 그 다음 생에 보답 받는 카르마.
g. 카르마 법칙의 필연성: 행위의 결과는 어김없이 닥친다.
h. 작은 행위로 큰 보답을 받을 수 있다.
한 젊은 여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붓다는 사람들에게, 그 여인이 이 행위의 결과로 아무 때 아무 곳에서 벽지불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여인의 남편은 그러나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 정도의 작은 행위로 그토록 큰 보답을 받는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던 까닭이다.붓다께서 미소지으며 설명했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서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카르마의 보답 역시 헤아릴 수 없다."
i. 뿌린 카르마의 씨앗이 없으면 거둘 열매도 없다.
앞에서 얘기에서 덕 높은 비구니들의 음식 시중들던 여인네처럼.
j. 카르마의 씨앗은 결코 부패하지 않는다.
죽는 듯이 잠자고 있다가도, 적합한 때를 만나면 언제고 싹을 틔운다. 다르마의 수행에 의해서 카르마의 잠재력을 완전히 제거 할 경우를 제외하고.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붓다는 당신의 무한한 자비심으로써 뭇생명의 고통스런 카르마를 제거해 주실 수는 없을까? 실제로 뭇생명들이 괴로움을 초래하는 카르마의 인상을 저장해 두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잠재의식이며, 인과응보의 카르마 법칙은 바로 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 자비심에 찬 붓다의 가르침은 결국 인간 자신이 자신의 카르마를 정화하는 방법을 제시할 뿐, 성과가 있고 없고는 단연히 개개인의 자외적인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커다란 사랑을 갖고 최선의 처방을 내리는 것으로 훌륭한 의원(醫阮)의 임무는 끝난다. 처방대로 치료를 받고 안받고는 환자의 마음이다. 만일 붓다의 자비심 만으로도 뭇 생명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수 있다면, 윤회는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종식 되었을 것이다. 붓다의 사랑은 넓고 가이 없다. 태양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추듯이, 붓다의 사랑은 뭇생명의 마음자리를 평등하게 밝힌다. 그러나 뚜껑 덮인 단지 안에서 어떻게 햇빛을 쬘 수 있겠는가?

카르마의 인상이 뚜렷할 경우와, 붓다에 대한 믿음과 다르마의 깊은 수행으로 말미암은 큰 덕성(德性)과 결부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과보를 면하기가 어렵다. 설사 결부되어 있다고 해도 쉽사 리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비교적 인상이 약한 카르마는 붓다에 대한 믿음과 다르마의 수행력 등에 의하여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가령 인간의 수명은 지난 세상의 카르마에 의해 결정되지만, 이 생에서의 악행때문에 급작스런 죽음을 당할 수가 있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붓다의 자비심이 힘을 발휘한다.
붓다를 신앙하고 다르마를 깊이 수행하여 급살(急殺)의 원인을 미리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수명은 기름 등잔불과 같다. 기름이 고갈되던지, 거센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꺼져버리지 마련이다. 붓다는 결국 바람막이 역활을 하실 따름이다.
이처럼 카르마는 위험한 존재다. 카르마를 유발하는 번뇌의 뿌리를 뽑아 버리려면 명상을 해야 한다. 번뇌의 본성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인 의식(the primary consciousness)과 특히 이차적인 의식(the secondary consciousness)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차적인 의식은 51가지의 정신적 요인(caitta)으로 나뉘는데, 아상가(Asanga, 無着)의 아비달마집론(Abhidharma-samu ccaya)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것을 바르게 공부하면 모든 행위가 각각 선한지 악한지, 무슨 정신적 요인에 바탕을 두는지를 잘 이 해할 수 있다. 무릇 카르마는 매우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중요한 것은 다르마의 여러가지 측면을 두루 아는 일이다. 뭇생명들 의 다양한 생활상태와 경험이 단순히 한 가지 카르마의 결과만은 아님을 이해하는 일이다. 카르마의 법칙과 그 결실은, 콩심은 데 콩 나는 식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매우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현상(現象)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감각기관을 통한 직접지각(直 接知覺 : 現量), 수냐타를 탐구할 때 사용하는 논리적인 분석과 추리(推理,比量), 붓다의 지혜(智慧)를 신뢰하여 그 말씀을 받아 들임 등의 세 가지가 있는데 카르마는 세번째 방법에 의해서 이해한다. 공작새의 깃털처럼 현란한 현상 세계의 모든 원인은 오직 붓다만이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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