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밀교에 대한 이해

윤인태 |2009.12.19 21:04
조회 640 |추천 0
밀교에 대한 이해

 

1) 밀교(密敎)란 무엇인가?
소승불교(小乘佛敎)에서 중생(衆生)이 깨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위치가 아라한(阿羅漢arhan)이라면, 대승불교에서는 바로 부처(佛 buddha)가 되는 것이다. 밀교에서는 이런 대승(大乘)의 정신을 토대로하여 '즉신성불(卽身性佛)'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러한 즉신성불을 이루기 위한 수행의 방법으로써 삼밀(三密)의 청정을 이야기하고, 여기서 삼밀이란 신(身)·구(口)·의(意)의 삼업(三業)을 말한다. 인간(人間)의 언어(言語)와 생각과 행동은 절대적(絶對的) 진리(眞理)가 자신을 드러내는 그릇이고 진리와 합일(咸一)을 이룩하는 비밀(秘密)의 통로(通路)로 인식(認識)되어진다. 그러므로 입으로는 진리의 음성으로서 진언(眞言 mantra)을 염송하고, 명상해야 할 형상으로서 만다라(曼茶羅 mandala)나 얀트라(圖象 yantra)를 마음에 새기며, 신체의 움직임으로서 좌법(座法), 호흡, 인계(印棨 mudra)등을 종교의례(宗敎儀禮)로 삼아 수행하는 것이다.

2) 밀교(密敎)의 특질(特質)
밀교는 복잡한 요소가 혼합되어 성립한 것으로 간단히 정의(正義)하기는 어렵지만 그 특징으로서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주술적(呪術的)인 의례를 조직화(組織化)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비주의(神秘主義)이다.
주술은 신이나 운명 혹은 자연현상 등 우리들의 행(幸)·불행(不幸)에 대하여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신비적인 수단에 의해 작용시켜 원하고 바라던 것을 이루게 하려는 의도나 수단이다. 또 신비주의는 우주(宇宙)의 중심(中心), 절대자(絶對者)인 신(神) 등으로 불리우는 존재와 자기와의 내면적(內面的) 결합(結合)을 감지(感知)하여 얻는 심리상태(心理狀態)이다. 그러므로 주술과 신비주의는 전혀 같은 것이 아니면서도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로, 어떠한 종교라도 이러한 주술적,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갖지 않은 것이 없다.
불교에 있어서도 이들 두 가지 요소는 이미 초기경전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시대가 지남에 따라 점차 그 존재가 표면화(表面化)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 경전(經典) 가운데서 밀교는 대승의 근본교의(根本敎義)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점점 본질화(本質化)하게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대승불교가 여러가지 종교적 입장에 대하여 두드러지게 관대했다고 볼 수 있다.

3) 밀교(密敎)의 발생과 인도(印度)에서의 전개과정
인도에서의 약 1700년에 달하는 불교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어 보자면 먼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직접 제자들을 지도하셨던 45년 동안의 시기인 초기불교(初期佛敎=근본불교)가 있었고, 불멸(佛滅) 후 비교적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존(生存)해 계실 때와 불교의 모습이 비교적 잘 지켜져 그 원초성(原初性)과 원시성(原始性)이 보존되었던 100년 동안의 원시불교(原始佛敎)의 시기, 그 다음 약 600년간 많은 부파(部派)와 분파(分派)가 각자 독특한 교리체계(敎理體系)를 세우며 실천하고 정착화(定着化) 했던 시기인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가 있었다.
이러한 부파불교가 출가수행자(出家修行者)의 개인 수행과 아비달마 연구에 빠져 대중과 유리되어 가자 의식있는 재가불자(在家佛子)들과 진보적 승려들이 이를 소승(小乘)이라 비판하면서 '근본불교(根本佛敎)'로의 회기를 내세우며 보살이 주체가 되어 일반 대중이 함께할수 있는 대승불교(大乘佛敎)운동이 아주 강력하게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시대가 300여년이 계속되었다. 이때부터 불교의 자비정신이 최고로 고취되었고 대승불교가 성숙할 무렵에 밀교의 모습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대승불교가 중관(中觀)과 유식(唯識)과 같은 고도의 관념체계를 가지고 현학적으로 흘러가면서 다시 대중과 유리 되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에 굽타왕조(320∼500년경)가 등장하면서 바라문교를 국교(國敎)로 정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굽타왕조의 치하에서도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불교였지만 브라만교의 영향을 피할수는 없었다. 일찌기 불교에 의해서 크게 타격을 받았던 바라문교는 민간신앙(民間信仰)과 혼합하고 또 인도의 사회조직(社會組織)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힌두이즘으로 부흥(復興)하였는데, 재가신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승불교의 교단(敎壇) 안에 민중의 일상생활 규범이 부지불식간에 스며든 것도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당시 대중들에 퍼져있던 주술과 신비주의적 의식을 수용하여 밀교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밀교 700년의 시기가 지속되었다. 예배(禮拜)의 의례(儀禮), 공양(供養)의 방법, 브라만의 종교의례, 주술(呪術) 등도 불교에 흡수되었다. 인도의 모든 토속 신들이 불교의 세계로 흡수되어 불교의 불·보살·명왕(明王)·제석천·범천(梵天)·팔부신중(八部神衆 등으로 환생(還生)되었다. 이러한 흰두이즘의 종교적 특징으로 7세기 중엽부터 대승불교는 급격히 밀교화되었다.
인도에 있어서 불교의 쇠퇴는 외적인 요인으로는 이슬람교도의 인도 침입으로 온 여파(餘波)이다. 이슬람교도의 인도 원정은 이민족(異民族)의 이슬람교로의 개종(改宗), 노예와 물자의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으므로 점령지(占領地)를 오랫동안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사원(寺院)과 성지(聖地)를 파괴하고 보물을 약탈했으며 승니(僧尼)를 학살했다. 13세기 초 비크라마시라 사원이 파괴되면서 불교는 인도 본토로 부터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요인 보다도 더 근본적인 원인은 불교의 세력이 가장 왕성하였을 때 조차도 불교는 바라문교를 완전히 압도하지 못했으며 바라문교가 힌두이즘으로 부흥함에 따라 불교는 점차 힌두화되어 마침내는 본질적(本質的)으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에 있다.
 출처 www.songchol.net/academic/budd-data/6논문/개론/밀교의이해.hwp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