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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부 트레킹> 4. 포터들의 일상을 체험해봐...

이홍엽 |2010.01.08 02:15
조회 583 |추천 1

 2008년 3월 2일/ 쿰부 4일차/ 남체 바자르- 탱보체

 

눈을 뜨니 손가락 끝이 살그머니 저리다. 고지대에서 흔히 경험하는 증상이라 나로선 그다지 신경은 쓰이지는 않았지만..

 전날 저녁, 다이닝 룸에선 서양친구들의 고소증 예방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이뇨제 ‘다이나목스(Dynamox)’의 효과와 적정 복용량에 대한 토론이 제법 진지했었다. 고소증세에 직효라며 너도나도 마늘수프를 주문하는 대목에선 혼자 피식 웃을 수밖에..

 같은 길이지만 전날과는 달리 40kg이 넘는 짐을(37Kg의 배낭, 가슴에 착용한 4.5Kg의 카메라 가방) 지고 오르는 오르막은 제법 힘들다. 마을 꼭대기서 만난 10여명의 뮌헨에서 온 독일 트레커들은 독일어로 말을 건네자 약간은 놀라는 눈치들, 수염과 풍채가 산타클로스를 빼닮은 한명은 기압차인지 지난 밤 치아의 보철재가 떨어져 나갔다며 고소증에 걱정을 내비쳤다. 이 팀의 젊은 가이드 한명과 앞장서 가며 무료로 수준 높은 안내도 받아본다.

쿰중과의 갈림길에 앞서 Three sister Lodge에서 셱빠(일명 셰르파 스튜)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영락없는 한국인 외모의 이집 주인장 나왕 셰르파는 에베레스트를 두번이나 등정했다는 산악인 출신, 본인도 사진가라며 탐세르쿠(Thamserku:6608m) 자락에서 야영하며 직접 찍었다는 사진들로 만든 엽서들을 내어 보인다.

남체의 쿰부 롯지에서 마주친 거구의 캐다나 친구가 내 배낭 무게에 계속 관심을 보이자 갑자기 내 싱거운 장난기가 발동했는데, 동화구연을 흉내내본 과장된 내 제스처 탓이었는지 썰렁한 농담에 너무나 처절하게 반응을 한다.

“자, 주목하세요, 네팔에서만, 그러나 여기서만, 오늘만 제공되는 새로운 문화 프로그램, 이제 누구나 포터들의 일상을 체험해 보실 수 있습니다!”(“attention. it's brand-new culture program, only in nepal, but only here, available only today... now everybody can experience Porter's life!") 배낭을 메어 보던 이 친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고, 구경하던 그의 여자 친구는 아예 바닥에 뒹군다.

새로 놓인 튼튼한 나무다리 위에서 바라다보는 강물에 잠긴 낡은 다리의 잔해가 대조적이다.

타르쵸들은 바람 대신 물살이 춤추게 하고 있었다. 개울물이 쉴새없이 돌리는 마니차가 재미있는 강변마을 푼키 텡카(Phunki Tenga:3250m)로 내려섰다가 다시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은 배낭을 벗지 않고도 앉아 쉴 수 있는 친절한 쉼터들도 많고 전망이 좋아 동행 없이도 남체의 오르막보단 수월하다는 느낌. 반쯤 올랐을까? 착시처럼 가깝게 보이던 탐세르쿠가 순식간에 먹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기다렸다는 듯 좁쌀만한 눈이 떨어진다. 걸음을 재촉할 수도, 재촉할 필요도 없지만 흔히들 할수 있는 조금 늦은 시간, 홀로 가는 길에 대한 걱정보다는 “내일은 좁키오들이 지나갈 때마다 일으키는 먼지걱정 없이 설경을 감상하며 가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앞서는 나그네는 나뿐일까?

 

탱보체(Tengboche;3860m)는 남체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기 힘든 방문자들이 에베레스트를 보기 위해 하루정도 묵어가기도 하는 곳. 히말라얀 뷰 (Himalayan view)롯지엔 남체에서도 마주쳤었던 일본인과 미국인 부부, 스웨덴 영감님이 투숙객의 전부였다. 루크라에서 70루피, 남체의 상점에선 50루피, 롯지에선 100루피를 하던 미네랄 워터 한병의 가격은 이미 150루피로 껑충 뛰어 올랐다. 저녁은 네팔리 식단의 대표격인 달밧(Dal baht). '달‘은 콩을 주재료인 수프, ’밧‘은 밥. ’달밧 떨커리’라고 하면 야채 절임이 주류인 반찬이 부수적으로 포함되는데 어디나 세트로 제공되므로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이집은 달도, 밧도, 떨커리도 맛이 괜찮았다. 달밧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무한리필. 아무리 대식가라도 양의 부족함은 없을 듯. 그러나 2인분 달밧을 접시위에 국물자국 하나 남김없이 먹어치운 일본 친구는 아침식사도 롯지에서 사먹으면 250, 그렇지 않으면 2인분 가격인 500루피를 받겠다는 협박같은 농담도도 듣게 된다. 모두들 일찌감치 잠자리를 찾아 들어간 저녁, 혼자 난롯가에서 주인아주머니의 속성 네팔어 강좌도 받아본다. 내내 궁금했던 남체, 포르체, 탱보체 등 마을 이름에 따라붙는 ‘체’(~che)의 의미를 묻자, ‘체’는 신이 내려왔던 흔적이라고 한다. ‘탕’이 발바닥이니 탱보체는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는 설명.

자신도 한때 등반 가이드였다는 주인장 밍마 아주머니는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의 친분을 특별히 강조하며 한국영화 출연경력도 자랑스레 꺼내 놓는다. 아마도 MBC드라마 ‘산’을 얘기하는 듯, 당시 주연배우 두 명이 고소증에 시달려 루크라로 내려가 일부분 촬영하기도 했단다. 즉석에서 배운 “수빠 라뜨리!”라는 저녁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돌아왔으나 쉽사리 잠은 오지 않는다. 어두운 창문 너머를 가득 채워야 할 에베레스트도, 로체도, 밤하늘의 별들도 짙은 안개탓에 보이지를 않는다. 새벽에 확인한 실내 온도는 영하 6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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