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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공지영)

Julia |2010.01.08 13:31
조회 300 |추천 0
 

지은이  공지영

1판   1쇄 인쇄 2001. 7. 20

1판 80쇄 발행 2008. 11. 11

출판사 김영사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가슴을 후벼 파며 아팠던 내 추억이 떠오른다. 때론 그 추억 때문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때론 또 다른 추억에 행복에 젖기도 한다. 누구나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고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다른진대 하나의 마음이 느껴지는 건 모습만 다를 뿐 감정의 여운은 같기 때문일까.

18년만에 다시 하느님을 찾게 된 작가는 우연히도 잡지사에서 제안을 받는다. 한달간 유럽으로 수도원 기행을 떠나보지 않겠냐고.. 그렇게 작가의 수도원 기행은 시작되었다.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혼자만의 여정을 떠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났다.. 수도원 기행이지만, 그녀에겐 사람들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지나가 버린 시간 속에 서 있는 엄마이기 이전의.. 아내이기 이전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세상이 수도원이고 만난 소중한 이들이 모두 수도자일지 모른다는 깨달음과 함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또한 깨달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여행 속에서 사람보다는 다른 것에 더 시선과 관심이 가는 내 모습을 떠올려본다. 언제쯤이면 나도 사람이 더 그리워지는 여행길을 떠나게 될까. 좀 더 마음이 열려야 하겠지. 아직은 내 자신 속에 갇혀 사는 나일 뿐.. 그치만 작가의 말처럼 서두르지 않으리라. 모든 깨달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천국이 있다면 혹 이런 느낌은 아닐까, 짧은 인연, 상대방이 잘된들 내게는 아뭔 대가가 없는 인연에도 지극히 마음을 쏟아주는, 그래도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보탬도 뺄 것도 없어서 결국은 보탬이 되고야 마는 그런.        p.70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고….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p.83

   

20대의 나는 아는 게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대가 되자 20대에 알던 모든 것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처음부터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알기는 안 것이 모르는 것으로 변해버리는 상황은 참을 수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고 이대로 모르는 채로 흘러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무엇이든, 그게 무엇이든 붙잡아야 했다. 그렇게 가없이 손을 내밀고 마음을 내밀고, 하지만 알 것 같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알 것 같았던 그것은 환영처럼 사라졌다. 그래도 나는 다시 일어서서 길을 떠났다. 그 악착스러움은 지금 내가 생각해도 자신에게 신물이 날 만큼 집요한 것이었다. 대체 인생에서 뭘 바라는 거니? 누군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마음 한켠에서 웅웅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엎어져 있을 순 없다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고, 내가 왜 태어나 이렇게 밖에는 살 수 없는지 그걸 밝히고 싶다고…. 그렇게 다시 일어나 때마다 상처자국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면서, 가면 위에 가면이 덧씌워지고, 그 위에 다시 가면을 씌우고, 그리하여 나조차도 내가 누구이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떠돌다가 나는 엎어져 버린 것이었다.                                   p.119 


서양이나 동양이나 기독교를 믿거나 불교를 믿거나 생은 고달파서 골목길 모퉁이마다 돌을 올려가며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p.138


후두둑 휘장을 드리운 것처럼 펼쳐진 검은 하늘, 누군가의 눈빛인 양 맑은 별이 몇 개 떠 있다. 시간 속에 묻혀 기억도 사라져갈지 모른다. 꽃은 곧 시들어 버릴 것이라 언제나 마음속에서 아름답고 사람은 짧게 스쳐갈수록 오래도록 기억이 나는 것인지….                                      p.144


이상했다. 사람들 모이라고 만든 광장에 와서 왜 나는 사람이 없는 풍경을 보고 싶어 할까. 아무도 없는 텅 빈 길…. 사람 다니고 차 다니라고 만든 길에 차도 사람도 없으면 아름다운 것, 대체 이 무슨 심술궂은 역설인지. p.156


인생에서 제가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깨닫기 전에 우리는 35세를 넘어버린다는 겁니다. 처음에 나는 빠른 차가 있으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포르셰를 샀죠. 그 다음엔 집이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샀죠. 그런데 그 다음에 비행기가 한 대 있으면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한 대 샀지요. 그러고 난 다음에 나는 깨달은 것입니다. 행복은 결코 돈을 주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을….  p.165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에,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 놀랍게도 행복에도 자격이란 게 있어서 내가 그 자격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할 서튼처럼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었고 돌이키기 힘든 아픈 우두자국을 내 삶에 스스로 찍어버린 뒤였다. 그 쉬운 깨달음 하나 얻기 위해 청춘과 상처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던 것이다.            p.166


고통을 거치지 않고 방황을 거치지 않고 보다 큰 것에 복종하는 겸허함 없이 얻어지는 자유는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 보다 큰 자유, 보다 큰 진리에 순종하는 자만이 가짜 자유와 가짜 진리에 진정으로 불복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p.167


결혼 안 한 거 후회해 보신 적 없어요? 내가 물으니 주버 여사는 마리아는 결혼한 거 후회해 본 적 없어요? 묻는다. 하는 수없이 내가 웃으니, 마찬가지예요 한다. 깨끗하게 정돈된 서재 겸 거실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저무는 뮌헨 거리를 내다보는데 세상에는 사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로 많게구나. 하는 당연한 생각이 당연하지 않게도 가슴을 치며 지나갔다.            p.181


내 생이 결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 인생은 나의 것이어야 한다는 이 딜레마. 우리 삶에 상처를 입힌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또한 남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있다는 딜레마…. 아까 길거리에서 M형에게 뛰려거든 늦지나 말고 늦으려거든 뛰지나 말라고 했던 것은 그러므로 사실은 내 자신에게 해주어야 할 말이었다. 그렇게 살았거든 후회하지 말고 후회하려거든 그렇게 살지 말아야 했다고…. 까뮈가 그렇게 말했다. 내가 만일 내 인생의 전환기를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얻은 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잃은 그 무엇 때문이라고…. 지난 세월 동안 나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잃었고, 누군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를 잃었다. 그러니 이제 또 무엇을 더 잃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지, 새벽이 올 때까지 그렇게 혼자 뒤척이며 나는 깨어 있었다.                                      p.195


대체 눈물이란 무엇인지, 아마도 영혼과 육체가 통하는 통로가 있다는 증거가 눈물이 아닐까, 마음이 슬플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육체의 한 현상이 그것일까. 한때 지난날을 돌아보며, 내가 잘못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보며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슬퍼서 운 게 아니고 어리석은 내 꼬락서니가 한심해서 울었다는 게 정확하리라. 오죽하면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라는 소설 제목을 다 생각해 낼 정도였다. 하지만 울면 울수록 내 영혼의 아픈 부분이 씻겨져 내리는 카타르시스 또한 있었다.                             p.220

무지개도 사라지고, 꿈도 사라지고, 한 사람에게 퍼부었던 내 사랑도 환영처럼 사라지고… 그것은 또한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또 얼마나 사라지는지, 상대방에게 나의 사랑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 엄마를 찾는 아이의 절절함을 알면서…, 또한 내 자신으로부터도 얼마나 스스로 몸을 숨겨 사라져 남의 얼굴이 되어버리는지, 어떤 사람의 말대로 10년 전의 나는 오늘의 나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면서 어쩌면 그렇게도 날마다 사라져 버리고 말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p.224


장 수슬로의 시

   ♌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시렁 가운데서

      제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p.248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생은 길고 나누어야 할 것은 아주 많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아니까. 밀알이 쪼개져 백 배 천 배의 밀알이 되듯이, 쪼개면 쪼갤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이 지상의 유일한 것, 그것이 무엇인지 이제 나는 알 것 같으니까.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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