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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제로 결혼을 포기했습니다.

.. |2010.01.09 16:27
조회 1,143 |추천 3

 

이젠 연륜을 쌓아야 하는,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사람입니다.

서른이 훌쩍 넘었다고 스스로 쓰기엔 조금 창피한 '아가씨' 이기도 하구요.

나이 먹어 뒷말이나 하자니 속이 상하고 체면 없지만 슬퍼서 어디든 풀어야겠어요.

 

 

 

오랜 시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연애라는 것에 많이 비중을 두지 않고 살고 있던 저로서는 정말로 최선을 다 해서 사랑했던 사람이었어요. 비슷한 나이, 비슷한 성격, 비슷한 가치관. 이 사람이라면 남은 60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겠구나, 세상 누가 비난해도 이 사람이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겠구나. 이 사람이 지금처럼만 내 옆에 있어주면 무서울 게 없겠구나, 라고 그의 목소리만 듣고 있어도 행복했었습니다.

 

미리부터 양가 문턱을 넘나들며 만나는 것은 괜히 섣부른 것 같아,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히 연애만 하고 있었어요. 너무나 그 사람다운 프로포즈에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상견례 전, 얼굴부터 보자는 그의 집에 갔죠. 얼마나 대단한 아가씨기에 만나는 내내 얼굴도 한 번 보여주지 않냐며, 첫 만남부터 굉장히 절 탐탁치 않아 하셨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여동생이 있는 자리. 처음 뵙는 자리라 어색한 것도 누그릴 겸 선물도 준비해서 가고 전 설렘과 기대로 웃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가족들이 아무도 절 반기는 것 같지 않았어요. 조금 얘기를 나눈 뒤,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들으면서 부터는 웃을 수 없었습니다.

 

 

 

남편 될 사람보다 월급 많이 받는다고 나중에 기 죽이는 거 아니야?

전 그가 저보다 사회적 지위가 조금 낮아도 상관 없었습니다. 늘 능력이 없는 본인을 탓하라며 낮추는 그 모습이 싫어서 직장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습니다. 지인들에게 소개하면서도 전 단 한 번도 제 사람을 부끄러워했던 적이 었었습니다.

 

종교가 없다고 들었는데, 이제껏 하느님 은혜로 살았으면서 왜 교회를 안 가?

가족 모두가 절 비난하시더군요. 저희 집은 식구들 모두가 무교입니다. 신앙 생활을 부담스러워 하시는 현실적인 부모님 아래서 크다 보니, 종교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역시 지켜보고 계시며,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어떤 것으로든 벌을 받아 대가를 치룬다고 하셨어요. 그와 만난 인연 역시 하느님의 도움이 크셨다고.

 

연애를 3년 정도 하면서도, 전 이렇게 신실한 크리스챤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알았다고 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을 거예요. 저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게 아니니까. 그런데 그 분들은 제가 틀렸다고 다그치셨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제 직업을 갖고 제 이름 앞으로 재산을 가지고 있는 일이 어째서 모두가 저의 노력이 아닌 단순히 하느님의 은혜인지 납득 할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다고 자부하고, 저와 제 가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라서요.

 

제 옆에 앉아있던 그 사람은 절 위해 그 어떤 변호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저희 집이 종교가 없어 아직 신앙생활을 할 지에 대한 여부는 생각해 보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고, 하느님의 은혜를 의심하는 사람을 어떻게 집안 식구로 받아들이냐며 진노하셨고, 아들을 잘못 키우셨다 하셨습니다. 저희 집 어른들을 나쁘게 말하셨고, 아무튼.. 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었어요. 여기다 다시 옮기려니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집에서 나오는 길, 자존심도 상하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 잠시 걷자고 했습니다. 꽤 괜찮아 보이는 그 사람. 화를 낼 수도 타이를 수도 없는 상황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절 많이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 말고는 없더라구요. 그 사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럼 이 사람 마음만 믿고 뭐든 해보자. 그러나 그 뒤를 따라오는 말. 말한 적은 없지만 내심 제가 종교를 갖길 원했다고요, 어머니가 말씀하시는데 왜 그러겠다 대답하지 않았냐고, 당신이야 말로 날 사랑하냐고.

 

갑자기 악에 받쳤습니다.

어떻게 믿음을 강요하느냐고. 불편한 자리에서 당신은 도와주지도 않았다고. 믿지도 않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실 만큼 관대한 하느님이 어째서 가난과 불안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간절한 믿음은 외면하냐며.

 

 

언성 자체를 높여보지 않았던 저만 보던 그 사람, 당황했겠죠.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서였습니다. 일터에서는 무서운 상사여도, 내 남자 앞에선 여자로 살아야지. 그 사람 높이 세워주고 위해주고 존경하며 살아야지. 그런데 제 절절한 외침도 소용 없었고, 그의 집과 내가 타협할 수 있는 길은 없었습니다. 뭔가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하지만, 어쨌든 제 결론은 저 사람에게 평생을 맡길 수 없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눈물까지 보이며 사정하는 그에게서 뒤돌아섰습니다. 최대한 단호하게 헤어졌어요.

 

살 수 없다고, 이해 해달라고, 한 번만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달라고 했지만. 아니요. 제가 느낀 배신감과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쌓을지 막막했습니다. 극복하기엔 제가 받은 상처도 너무 컸구요. 사랑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는 걸 현실에서 알고 난 뒤. 그렇게 간절히 절 원하는 사람을 내친 뒤. 그냥 그 사람 상처 준 것도 미안하고, 이 늦은 나이에 다시 사랑을 찾고, 기다리기도 그렇고. 이대로 곱게 늙기만 바라야겠네요. ^^

 

 

언젠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 분이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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