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글을 읽으니 문득 치 받는 생각이 있다
시 엄니가 무슨 봉이라도 되나?
신랑이 이쁘고 좋을 적에 우리엄니가 이리 잘나게 나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공경하는 며느리 별로 없다 다 지가 선택 잘하고 지 잘나서 사랑 받는줄 안다
그러나 못되게 굴고 바람이라도 피운다면 이 화살은 새빠지게 키운
고생한 시엄니 한데 돌아간다 자식을 더럽게 키워 나느니 하면서
예전에야 자식이 출세하면 봉양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지만
아들이라고 키워 봤자 며느리 좋은 일 시키는 것으로 귀착 된지 오래고
부모는 그 져 너희들만 탈 없이 잘 살아다오,다,
자식 덕 안보는 것이 잘 살은 노후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참 이래저래 억울한것이 예비 시어른 되는 사십대의 우리들이다
우리는 마지막 봉양의 시대였고 또한 찬밥 신세되는 시어른들의 확실한 본보기가 될것이다
나는 땡초 보다 매운 시집살이 해본 구 시대여자다
시집살이가 매워서 눈물 콧물 짜고 이불 속에 얼굴을 묻고 울기도 했다
모든 어머니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아들은 하늘이었다 더구나 그이가 열 여섯 살에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그는 한 집안의 대들보 역할을 했어야 했기 때문이었고
고달픈 생활에 큰아들은 그 자체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기도 하였으니
내 세울 것 없고 나이도 한살 많은(나) 여자를
궁합이 안맞느니 하면서 많이도 못마땅해 했다
애초부터 미운 가시가 박힌 시집살이는 고달폇다
바로 숨소리 까지 들리는 옆방에 신혼부부의 잠자리를 마련하셔서
도란 도란 말소리 하나 맘대로 내지 못했다
아랫체 에 내려가자고 신랑한데 배겟공사를 해서
신랑이 아랫체를 서겠다고 한번 청한적이 있엇는데
이사 운이 없는데(같은 집에서 원 이사운?) 그곳에 내려가면 안된다며 펄쩍 뛰었다
착한 순둥이 신랑은 어머니 말이 라면 끔뻑 죽는시늉도 내어서
나는 속으로 터지는 화통을 삼켜야 했다
어찌 그것뿐이겠는가?
다 아 고생스러운 시절이었지만
겨울에 아궁이가 안방을 거쳐서 들어오게 되어있는데
우리 방은 건너 방이라 늘 한기가 돌았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젊은 사람들이 춥겠다고 이야기할라치면
시어머니는 '이만 하면 뜨뜻하지' 하면서 서늘한 구들 목을 뜨뜻하다고
우기고 계셨다
촌 일은 얼마나 많은지 몸은 파김치가 되고
가난한 살림살이에 애를 가져도 먹을 것은 없고
늘 뭐가 먹고 싶어서 설거질 끝낸 어둑한 정지문 을 열고
갈비먼지 아득한 흙바닥을 지나서
삐긋대는 이단찬장 문을 열어보고 시어빠진 김치 한 조각 오물거리고 돌아 나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첫아이는 눈이 작다^^)
딸아이를 낳고 몸살을 많이 앓았는데, 그때가 마침 농번기이긴 하지만
며칠을 굶고 있어도 밥을 한번 지대로 챙겨 주나
약을 사줄 생각을 하나 참 더럽게 서러웠다(나도 울 엄마 아버지한데 금자동아 옥자동아 어루면서 커온 귀한 첫딸이었다)
삼 칠이 지나지 않는 딸아이는 젓을 달라고 울고, 나는 그 앙앙대면 울어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아팠다
며칠을 그러고 있으니 시어머님께서는 겟구 잘 후친다는
동네 아지매를 데리고 오셔서
마루에 날 앉히시고는 물 담은 바가지에 밥과 김치 쪼가리를 넣고
칼로 내 머리와 몸뚱이를 주문과 함께 휘둘리시다가
'후세이~~~~이밥 먹고 동구 밖 귀신 밥 못먹고 죽은 귀신
목매달아 죽은 귀신 오만 귀신을 물러가라'후세!!하는
고함과 함께 바가지속의 내용물과 칼을 대문 쪽으로 냅다 던졌다
그러한 치성드린 밤에도 저절로 앓은 소리가 끙끙되면 나오고
이때쯤 었는데 이불이란 이불은 죄다 덮고 있어도 추워서 이빨이 달달 떨렸다
아슴한 어느 저녁 흙 담장 너머로 구수한 냄새가 힘없어 널 부러져 있는
내 코로 스며들었다
나는 흔들 되는 몸뚱이를 흙담장을 짚어면서 살살 걸어가서
그 냄새나는 앞집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지매 누워 있는데 좋은 냄새가 나서 왔어 며칠 안먹었더니 배고파' 했더니
그때 찌지던 고등어 찌개랑 뜨신 밥을 내놓았다 밥은 도저히 목에 넘어가지 않고
계란 후라이 세 개를 해달래서 먹고 왔다 참 맛나던 계란후라이,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내가 아픈 것이 죽을병에 걸린게 아니라 못 먹어서구나' 해서 저녁에 돌아온 신랑에게 친정에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친정엄마랑 병원 가서도 일하러 가야 한다고 주사나 한 대 놔달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열이 사십도가 가까운데 죽고 싶냐면서 나무랫다
기운이 없어 애는 엄마가 엎고 대문에 들어서데
바쁜 농번기에 꾀부리고 일 안한다고 대문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벼락치듯
나무래던 시엄니,두고 두고 친정엄마가 계신데서 나무래던 시엄니가 미웠다
그때는 왜 그리 모든 것이 먹고 싶던지..(지금도 마찬가지지만 ^^)
오늘은 혹시나 점방에 이백원 짜리 빵 하나 사 가지고 가는게 아닐까 하는 기대로
논 터로 따라가며 설레지만 점방을 그냥 스치면서 땡감 몇 개를 참 한다고
주머니 안에 따 넣을 때 어머님이 야속했다
그러나 뙤약볕에 노동도 시어머니의 심술도 거칠은 먹거리도
얼그려진 대문사이로 달덩이 같은 그의 얼굴만 보이면 내 가슴에
화통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기쁨이 가득 차서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시어머니 눈치가 보여서 달려가서 반기지도 못하고
불때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죄 없는 부지깽이만 치고 있었어도
그의 얼굴만 보면 행복했다
첫딸을 낳고 시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손녀 라서 죄인 같았고
못마땅한 며느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 밖에 없었다
열심히 살았다 가난이 몸서리나게 싢어서 노력했고
주루루한 딸린 시동생 시누이를 우애 있게 잘 지내려 노력했고
착한 여자 좋은 여자 소릴 들기 위해서 새빠졌다(그래서 지금 말은 잘못하고 글만
번드리하게 쓴당)
잘생긴 손자를 낳아서 어머님께 안기고 부터는 대우가 바뀌고
그리고 입장이 바뀌어 졌다
대통을 이으받을 왕손을 생산한 몸이 된 것이다 ^^
내 노력의 결과도 나타나서 어디서 저런 잘난 며느리 출중한 며느리 얻었노 하는
찬사가 동네방네 와르르 나서리(- -;;).. (잘난 체 해서 쬐송)
잘난 며느리인 내가 서서히 집안의 핵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인제 주객이 완전이 전도 되었다
인제 거꾸로 어머님이 내 눈치를 본다
한때, 독한 맘을 먹은 적도 있다
'할마시 니 늙어면 두고 보자'
'당신은 안 아픈줄 아나 그때 내가 받은 만큼 꼭 그대로 갚아 줄끼다' 하고
이빨 간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쪼그라지고 그래서 기운 없어진 시엄니 내등에 엎혀서 병원가는 시엄니...
이제는 무서운 시엄니가 아닌 귀엽게(?) 구는 시엄니를 볼때마다
가슴에 사람의 인생에 대한 비애와 그리 잘나지도 않은 한 남자를 사랑한 두 여자가 보이는것이다
그래 나쁜 뜻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하고 단지 몰랐을 뿐이다 사랑을 배푸는 방식을
그래 몰랐을 뿐이다 다만 무지했을 뿐이다
첫 며느리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서툴었을 뿐이다
언제가 임신을 했을때 오일장에 가서
'다른 사람 안줘도 된다 니 다 먹어라 '
하시며 새빨간 에어치를 내 방에 던져 주고 간 시엄니를 기억한다
그래 생각해보니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틈틈이 같이 웃은 기억도 많다
농사를 땀흘려 지어서 그 수확에 같이 기뻐하던 때도 있었고
아들을 낳고는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소고기 두근 부터 사고
비싼 택시대절 시켜 손자를 안고 황홀하게 쳐다보면 시엄니도 있고
차츰 며느리인 내 역정을 들어서 아들을 같이 나무 래던 어머님도 있고 ^^;;
울신랑이 '그래 내하나 모잘라서 울엄마 까지 꼬셨나?'삐끼게 만든적도 있고
그렇게, 세월은 섭섭했고 무서웠던 시어매는 나긋나긋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태생은 어디 가겠는가?
아직도 주책 스러운 짖을 해서 내 화통을 돗구지만
이제는 속으로 담고 있지만 않고
섭섭하고 나쁜 일은 즉시 즉시 이야기한다
때론 화내기도 하면서 때론 달래기도 하면서^^
세월이 약 이라, 미운 정도 고운 정도 깊게 아로새겨 소중하게 품게 해준다
내일은 어른이 이모 님 오랜 병 수발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다
고기 집에 모시고 가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 해 드려야겠다
그러면 아이들처럼 좋아하시고 행복해 하신다
사랑하는 아들과 손자 손녀를 거느리고 고깃집에 들어가
턱 하니 맛난 음식을 시켜먹으면 이 세상 부러운 것이 없어 보이신다
나도 저렇게 늙어 가겠지 싶으면
가슴에 뜨거운 바람이 불고
작고 작아지는 시어머니가 내 육신의 한 부분 인냥 애잔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