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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민진 |2010.01.19 17:01
조회 453 |추천 0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I've Loved You So Long, Il Y A Longtemps Que Je T'aime, 2008

 

 

 

 

  토요일 저녁 9시 3분 서울극장. 종로3가역을 황급히 나온 나는 붉은 서울극장을 향해 열심히 뛰었다. 늦었다 젠장. 9시 정각에 하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라는 낯선 영화의 상영시간을 놓친 것이다. 약속 펑크 나고 열심히 뛰었는데도 오늘은 되는 일이 하나 없다. 표를 끊으면서 점원에게 ‘벌써 시작했겠죠?’라 묻자 ‘아니에요 죄송하지만 관객이 고객님 한 분 뿐이시네요’라 무미건조하게 답한다. 텅 빈 영화관을 들어서자마자 영사기를 돌리시는 할아버지가 ‘정말 이 영화를 봐야하냐’고 묻는다. 나 아니었다면 일찍 퇴근해서 손자 재롱이라도 보고 주무실텐데 생각을 하니 잠시 망설였지만, 이 영화를 위해 멀리서 왔다. 서울 2개관 전국 4개관 밖에 안 되는 이 영화는 몇 일후면 소리 소문 없이 스크린에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죄송하지만 보면 안될까요?’

 

서울극장하면 뭐니뭐니해도 저 쥐포튀김이다. 아쉽게도 이번엔 못먹었지만,,

예전 서울극장의 모습이 더 좋긴 하지만, 휘황 찬란한게 무슨 브로드웨이 뮤지컬 극장 같다.

좌석이 좀 좁다는 단점은 있지만, 티켓점원은 무지 이쁘다.ㅎㅎ

 

  공항이다. 포스터에서 봤던 한 여인이 담배 하나를 처량 맞게 피면서 앉아있다. 이 무미건조한 표정이란 가히 보고 있자면 내 마음까지 회안에 젖을 정도다. 그녀에게 한 생기 있는 여인이 온다. 말라가는 나무에 찬물을 퍼붓듯 두 사람이 재회를 하지만, 어색한 공기는 지워지지 않는다. 자신의 6살 난 아들을 죽였다는 죄목으로 15년을 감옥에서 살고 나온 언니 줄리엣과 기억에서 힘겹게 언니를 지워내고 잘 살고 있었던 동생 레아의 재회다.

 

 

  이 영화는 한 배우의 표정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 한다.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세상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여인 줄리엣은 그저 담배를 한 모금 물고 깊게 내쉴 뿐이다. 레아의 남편 뤽은 그녀의 죄목으로 인해 불편해하고, 그녀는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그 어떤 시련에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 줄리엣은 레아의 동료 미셸과 마음을 공유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해동시킨다.

 

 

  그녀의 행적과 그녀의 과거가 감춰지면서 미스터리 구조로 시작된 영화는 점차 비밀이 풀리면서 가족시네마로 전향된다. 후반부는 점차 가족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전개로 이 영화를 보편적으로 만들어 버려 더러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는 이유는 15년 동안 줄리엣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들에 있다. 철저하게 그녀의 표정에서 해답을 찾는 이 영화는 매우 느리고, 쓸쓸한 음악으로 답답함과 지루함을 줄 수 있을 영화지만, 크리스틴 스컷 토마스의 표정 그 자체에서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생각 속 공란을 제공한다. 줄리엣이 걷는 쓸쓸한 공원의 풍경이 당신의 상처를 기억나게 한다. 줄리엣이 방안에서 창밖을 바라 볼 때도 당신의 마음에 비수처럼 날아들던 그 말들이 생각날 것이다. 고개를 저으며 다시 영화에 집중하려 하지만, 영화에선 그녀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할 뿐이다. 마치 당신의 생각이 다 끝이 나길 기다려주는 것처럼.

 

 

 

 

  프랑스 영화의 매력은 치장이 없다는 데 있다. <당신을...>의 매력도 침묵과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출과 배우의 표정 하나에 극의 감정을 맡길 수 있는 신뢰에 있다. 빗방울 하나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침묵할 수 있는 빈 공간은 이 영화의 모든 것과 같다.

 

 

  잉글리쉬 페이션트 이후 헐리웃에서나 유럽에서나 눈에 띄는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는 회색영혼으로 유명한 펠리페 크라우델의 영화데뷔작에서 자신의 존재를 세계의 관객에게 각인시키며 2008년 유러피안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배우가 헐리웃이 아닌 유럽 본국에서 자신의 필모그라피를 진중하게 쌓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헐리웃에서 활동하기에는 지나치게 기름기가 없는 것이 첫째 이유요 헐리웃에서 튀김이 되기에는 그녀의 주름살이 너무나 근사하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단백한영화인가.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라는 제목은 이 영화에서 두 자매가 부르는 노래다. 이 영화에서 가장 행복한 장면인데 줄리엣이 환한 미소를 짓는 거의 유일한 장면이다.  자신이 만든 감옥 안에서 서서히 걸어 나올 때 그녀는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나 여기 있어요.’  줄리엣의 얼굴엔 언덕배기를 힘겹게 넘어서야만 볼 수 있는 위안이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얼굴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난 내가 가진 응어리를 모두 풀고 저런 멋진 주름을 가질 수 있을까. 영사기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아저씨의 웃음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눈부터 입꼬리까지 살짝 구겨진 가장의 주름.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가 내 하루를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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