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notes 4 - 1 jours

namikko |2010.01.24 21:38
조회 484 |추천 0

*

 

31 Décembre 2009

 

 

노트북과 비디오카메라, 소중한 cannon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빨간색이 유난히도 눈에 띄어 어릴 때는 싫어했지만 지금은 이것 없

이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뇌와 눈으로 기억되는 광경보다

그의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이 더욱 로맨틱하다. 새록새록 기억이

데워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카메라가 빨간색인지도 모르겠다. 아까

먹은 저녁이 공복감마저 먹어버렸는지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자려

고 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결국 우리는 라면 하나를 끓여 보드

카 반 잔과 사과 하나를 놓고 원샷했다. 혹시나 일어나지 못할까봐

알람도 여러 번 맞춰놓고 잠이 들었다.

고요한 밤. 새벽이 채 오지도 않은 밤에 일어났다. 아무도 걷지 않는

거리를 지나 달랑 우리만 태운 버스를 타고 Gare l'est에 내렸다. 반

짝반짝. 기차가 빛나고 있었다. 가자!

 

유레일 패스는 사용하고자 하는 날짜에 개시하여 그 날 하루동안은

마음껏 기차를 탈 수 있는 패스이다. 우리는 2달 동안 5일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을 youth / 2éme class 로 끊었다.(234유로) TGV가 보통

편도에 150유로라고 하면 굉장히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유

럽에서는 티켓을 끊을 때 발권료도 지불해야 한다.(8-10유로 정도)

*유레일패스발권료+패스가격+티켓발권료를 지불해야하니 주의!!

 

슈투트가르트 역에서 뮌헨으로 가는 열차를 바꿔타야했다. 강수진

때문에 한국사람들도 많이 알게 된 발레단이 있는 곳이다. 대학교에

서 발레전공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물어본다. '발끝으로 설 수 있

어요?' '강수진 처럼 발이 그렇게 짓물렀나요?' 발끝으로 설 수 있는

건 토슈즈가 있기 때문이고 발이 짓무르는 건 단단한 슈즈를 신고

쉬지않고 연습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쳐다보기 전에 조금은 생각

을 하고 물어봤으면 한다. 가만히 있는데 발이 그렇게 될까. 지나오

는 풍경을 보며 생각한다. 평야, 평지, 하늘, 구름, 나무, 나무, 나무,

나무.. 외계인이 좋아할 풍경. 건더기만 쏙 빼놓은 맑은 우동국물 처

럼 탁하지도 맹맹하지도 않은 광경이 줄을 이어간다. 국경을 넘어섰

는지 코가 큰 파란 외국인들이 하나 둘씩 타기 시작한다. 턱턱 목에

걸리는 발음들이 새삼스레 독일임을 느끼게 한다. 읽기도 어려운 문

자들이 줄줄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다 영어가 나오니 안도한다. 뮌

헨으로 가는 열차가 30분정도 딜레이되었다. 제대로 탔는지 의심스

러울 정도로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뮌헨이라고 써 있으니까

가겠지. 좌석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예쁜 꼬마애가 앞에서 쉴

새 없이 떠든다. 초콜릿 색 피부를 가진 남자애가 옆에 와서 계속 장

난을 건다. '불어 할 줄 아니?' 모르는지 아는지 쳐다보기만 하다 엄

마를 찾아간다. 그렇게 아이들과 놀다보니 세시간이 지났다. 뮌헨.

스테판이 데릴러 나왔다. 4년전 보다 키가 컸나보다. 얼굴도 조금

나이를 먹었다. 이렇게 만나니 신기하기도 하고 꿈만 같기도 하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독일은, 참 뭐가 뭔지 잘 모르겠는 나라다.

 

사실은 클럽 NB에서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같은 학교 학생이라

더욱 친해지긴 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이렇게 인연이 될 줄이라고

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여러가지 추억이 많다. 그는 날짜까지 세

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강남역, 호프 브로이 하우스, 밤새도록 놀

았던 도미토리. 스테판 덕분에 교환학생들과 모두 친해지게 되었다.

친절하고 유쾌하고 즐거운 친구다. 스스럼이나 부끄럼없이 기분대

로 하는 사람이라 가끔씩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말도 많아서 오

랫동안 같이 있으면 지치긴 해도 착하다. 자기는 자전거를 타고 갈

테니 트램을 타고 '****'에서 내리라고 했다. 오. 너무 어려워! 독일

어 하나도 모르겠어. 라고 하니 트램을 쫓아 자전거를 타고 갈테니

걱정말란다. 아시안 걸 두명이 오리지널 독일인의 집으로 향했다.

 

깨끗하고 정결한 풍경이다. 파리와는 사뭇 다르다. 12월 마지막 날

이라 그런지 가게들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일찍 집으로 돌아간다.

반듯하게 뻗은 도로 위에는 쓰레기 한 점 없다. 건물 벽에는 낙서 하

나 없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살풍경하다. 차갑고 시린 숨.

'****'에 가까워 지자 스테판이 밖에서 손을 흔든다. 조금만 더 걸어

가면 아파트란다. 이 주변은 학생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고, nice

한 장소들이 많으며, 이 아파트를 얻기 위해 고생을 했고.. 현관에

도착했다. hey Mihyunni! 스테판은 언제나 나를 '미혀니'라 부른다.

뮌헨과도 발음이 엇비슷한 미혀니가 뮌헨에 왔다며 그는 좋아한다.

못 볼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만나니 나도 조금은 우습다.

 

아파트에 도착했다. 완전좋다. 욕조가 있다. 짐을 내려놓고 오늘 무

엇을 할 건지 설명을 들었다. 너넨 이쪽에서 자고, 나는 여기서 자

고, 친구 한명이 또 오는데 걔는 여기서 자고. 몇시에 밥을 먹고 몇

시에 나가서 어디로 가며..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느라 들리지 않았다.

중국의 4계를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 중국에서 샀어?'

'응, 베이징에서. 홍콩에 있을 때 베이징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림이 예뻤다. 배고프지 않냐며 요리를 해주겠단다. 좋아 좋아! 맛있

는 음식이라면 언제든 오케이. 맥주도 많이 사다놨으니 오늘 다 먹

잔다. 캬하. 신난다. 12월31일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식사를 끝낼 무렵, 무스티가 도착했다. 연세 어학당에서 1년

정도 공부를 했고 지금은 오스트리아 근처에 산다고 한다. 한번 쯤

한국에서 만나긴 했을 텐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오

늘은 2009년 마지막 날이니 내년부터 기억하면 되니까. 보드카와 오

렌지 쥬스를 섞어서 마음껏 마셨다. 울라울라 춤도 추고 얘기도 하

며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폭죽 소리가 미친 듯이 울린다. 조용하

던 거리에 일제히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샴페인 두병을 허리춤에

차고 흥분과 설레임을 안고 광장으로 나섰다. 팡 팡 팡 팡 팡팡팡팡!

하늘 위에, 땅위에, 사람들 사이로 폭죽이 하염없이 연기를 토한다.

아름답다. 모든 사람들이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샴페인을 병째로 건

배했다. 아하하하하. 멋진 12월 31일이다. 멋진 2010년이 다가왔다.

방주로 가는 번호표를 잃은 사람처럼 꽉꽉 찬 클럽을 몇개나 지나쳤

다. 겨우 비집고 들어간 클럽 안은 흥분의 도가니 였다. 화장실을 가

기 위해 30분이나 기다리고 디딜틈이 없어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즐겁다. 나도, 외계인도, 스테판도, 무스티도 모두 즐겁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