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 캘거리 올림픽부터 2006 토리노 올림픽 까지는 직접 TV 생중계로, 1984 올림픽은 하이라이트 방송으로 즐긴 동계 올림픽에서의 피겨 경기는 많은 명작들을 배출했습니다. 피겨 팬이라도 각자 자신이 피겨를 접했던 시기가 다르면 '불후의 명작' 3개 꼽으라 하면 상당히 의견이 갈릴 만큼 올림픽에서 시행된 역사만 102년이되는 피겨 스케이팅의 명작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주관이 개입됩니다. 피겨 4 종목의 명작을 올림픽에서 피겨 경기가 거행되는 순서에 따라 종목별로 1개 씩만 꼽아 봅니다.
1. 페어 : 1994년 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고르디바/그린코프의 "Moonlight"
1994 올림픽의 G&G(위키피디아)
올림픽 피겨는 항상 페어 종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페어 경기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라서 남녀 선수 간의 호흡의 일치(케미스트리)가 중요하고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들어올리거나(lift:리프트)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던지면 여자 선수가 회전하며 착지하는 기술(throw:쓰로우), 두 선수가 동시에 같은 점프를 하는 것(사이드 바이 사이드), 남자 선수를 중심으로 여자 선수가 원심력을 이용 손을 잡은 채로 몸을 낮춰 빙빙 도는 기술(death spiral) 등의 독특한 기술 체계가 있습니다.
에카테리나 "카티아" 고르디바 그리고 세르게이 그린코프를 일컬어 천상의 페어 조라고 저는 이야기합니다. 이미 1988년 올림픽에서 이들은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서로가 어릴 때여서 (20세와 16세) 기술적으로 완벽한 동작을 보여주었던 수준이었지만 1994년 돌아온 이들은 예술적 페어 경기의 경지가 어디인가를 보여줍니다.
이 고르디바/그린코프(G & G) 의 월광 소나타는 한 마디로 아름답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남자인 그린코프가 약간의 실수를 하지만 두 사람이 해석해 연기하는 이 베토벤의 클래식 소나타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여서 더욱 명작입니다.
두 사람은 1981년 고르디바가 11세 그린코프가 15세일 때 한 조가 되어 오누이처럼 지내다가 사랑에 빠져 1991년에 결혼합니다. 이 영상을 보면 처음에 고난도 점프 동작 세 개를 한 뒤 두 사람은 첫 만남의 설레임과 서로를 알아 가는 어린 시절의 풋풋한 사랑을 연기합니다. 이 순간은 세르게이 그린코프가 든든한 보호자 같습니다. 그러다가 음악의 곡조가 강하게 바뀌며 두 사람은 동등한 위치에 섭니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며 완벽한 호흡으로 '따로 또 같이'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해설자가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라고 소개할 만큼 로맨틱하죠. 기술적으로도 이들이 처음 펼치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더블 악셀은 도약부터 랜딩까지 어찌나 그림같이 똑 같은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는지 놀랄 뿐입니다. 이들의 의상 역시 화제였지요.
이 경기의 채점은 9명의 심판 중 8명이 G&G를 1위로 두었습니다. 6.0 만점을 예술성에서 1개 받았고 5.8을 기술성에서 3개 받앗을 뿐 나머지는 모두 5.9. 아직도 페어 부분 최고의 올림픽 연기로 불리는 데 손색이 없습니다.
더구나 이 G&G는 그들의 한결같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와 1995년 갑작스런 심장마비에 의해 그린코프가 사망하면서 전 세계의 팬을 애도하도록 만든 것으로도 기억할 만 하지요. 세르게이 그린코프의 사망 100일을 맞아 "삶의 찬미(The Celebration of Life)라는 기념 공연을 가졌을 때는 모든 관중이 눈물의 기립박수를 보냈던 전설의 페어 조의 전설의 작품입니다. 세르게이 그린코프가 사망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의 팬 사이트가 전세계에 10여 개나 있다니까요. 이들의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많아 간략히 소개드리기도 어렵지만 제 블로그에 오시면 4개의 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뒤에는 페어 경기의 재미를 잃었다 할 만큼 불후의 명작을 남긴 천상의 페어 조 였습니다.
* G&G를 더 알고 싶다면 http://blog.daum.net/sadprince57/260 과 http://blog.daum.net/sadprince57/261 을 찾으십시오.
2. 남자 싱글 : 2002년 올림픽 프리 프로그램 야구딘의 Man in the Iron Mask
출처 : http://www.usfsa.org/Story.asp?id=708
2002년 올림픽은 이 남자 싱글 경기보다 먼저 거행되었던 페어 경기의 판정 논란으로 시끄러워집니다. 하지만 남자 싱글의 우승 후보는 모두 러시아 선수들입니다. 알렉세이 야구딘(1980년 생)과 이번 올림픽에도 출전하는 예브게니 플루쉔코(1982년 생). 피겨 팬들 사이에서는 로샤( 야구딘의 애칭), 제냐(플루쉔코의 애칭)로 부르는 이 라이벌은 평생동안 22번이나 격돌하여 15번을 야구딘이 이깁니다. 그런데 1998년 까지는 이들은 같은 코치(알렉세이 미쉰)의 선수였다가 1998년부터 야구딘이 현재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의 코치인 타라소바 씨에게로 가면서 경쟁이 본격화됩니다. 그 마지막 대결이 된 이 2002 올림픽 전까지 1998~2002 사이의 전적은 플루쉔코가 7승 5패로 우세한 가운데 그 22번째 대결이 온 것입니다. 요즘 김연아 선수에게는 라이벌이 없다고 하지요. 진정한 라이벌은 여자 부문에서는 미쉘 콴-이리나 슬루츠카야 (12년 간 23회 격돌 15-8로 콴 우세) 남자 부문에서는 이 두 사람(7년간 22회 격돌 15-7로 야구딘 우세) 입니다. 다만 그것 뿐 아니라 야구딘과 플루쉔코가 1998~2002 사이에 이들 선수 중 하나 이상이 출전한 경기에서 이들을 꺾고 우승한 선수가 없다는 것, 두 사람의 국제 무대 성적을 합치면 91회 출전에서 59회나 우승(야구딘 39회 출전 25회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이 올림픽의 쇼트 프로그램에서 야구딘은 1위, 플루쉔코는 4위를 합니다. 구채점제 시기라 간단히 말씀드리면 플루쉔코가 프리 경기에서 1위를 하더라도 야구딘이 2위라면 야구딘이 금메달, 야구딘이 3위를 해야 플루쉔코가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상황에서 마지막 경기가 벌어집니다. 프리 경기에서는 플루쉔코가 먼저 경기를 한 상태입니다. 야구딘은 3위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영상을 보시죠.
4회전-3회전-2회전으로 첫 점프를 , 4회전 토룹으로 두번 째 점프를 멋지게 성공합니다. 트리플 악셀을 포함한 5개의 트리플을 더 성공시키고 연기가 끝나자 얼음에 키스를 합니다. 키스 & 크라이 존에서 점수가 나오기 전부터 야구딘은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술점이 모두 5.9가 나오자 그냥 얼굴을 파묻고 울고 맙니다. 예술성 점수는 보지도 않은 채..야구딘은 경기 후 2003년 엉덩이 부상으로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만 이 올림픽 경기는 끝난 뒤 아예 점수 발표 전에 스스로 '후회없는 경기'를 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금메달이었지요.
기술성은 모두 5.9, 예술성 점수는 4개의 6.0 마크가 나옵니다. 올림픽 남자 싱글 사상 복수의 6.0이 나온 것이 처음이며 쇼트에 이어 프리에서도 전원의 심판이 1위로 판정한 것은 50년 만에 처음입니다.
Man in the Iron Mask는 1998년 3월에 개봉된 동명의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닉-글렌 스미스가 작곡했습니다. 알렉산드로 뒤마의 원작 소설(1848)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프랑스 루이 14세(디카프리오 분)의 쌍둥이 형제가 있었고 왕위 계승을 확실히 하기 위해 비밀리에 철가면을 씌운 채로 감옥에 갇혀 있다는 설정 속에서 폭군 루이 14세를 몰아내기 위해 이미 은퇴했던 3총사가 모여 이 철가면을 쓴 채 자신의 신분도 모르고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쌍둥이 형제를 구출하려 하는데 그 왕의 호위대장은 친구인 달타냥(가브리엘 바이른 분)이어서 우정과 충성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영화로 우리나라에도 1998년 4월에 개봉되었던 영화입니다.
이 작품에서 야구딘은 감옥 속의 철가면을 먼저 보여 주고 서정적인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사랑에 빠진 루이 14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뒤 스텝을 밟으며 전투 장면을 묘사합니다. 영화 음악을 여러 개 조합하여 음악의 톤이 바뀔 때 마다 영화의 장면을 홀로 연기하는 야구딘의 모습은 정말 때로는 중후하고 때로는 애절합니다. 예술성 점수 만점이 나올 수 있을만한 훌륭한 스토리 전달이 있었던 이 작품을 저는 다른 여러 훌륭한 남자 싱글 작품보다 더 좋아합니다.
3. 명작의 조건
왜 이 두 작품을 명작으로 꼽았을까요?
좋은 기술을 보여 준 작품은 피겨 역사 속에 이것 말고도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들 영상을 보시면 느낄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명칭을 다 몰라도 이 두 가지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첫째, 연기 끝날 때 까지 숨 죽이고 바라보다 그들에게 동화되어 버린다.
둘째, 프리 프로그램은 여자 4분 10초 남자 4분 40초인데 어느 새 끝나버렸다. 2~3분 밖에 안 지난 것 같다.
그렇습니다. 명작은 우승했다서가 아니라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겨 시계침마저 다르게 움직이게 만드는 교감의 마법을 지녔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우리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펼칠 두 작품, 007과 거쉬인 피아노 협주곡에서 여러분은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숨 죽이고 보다 보니 벌써 끝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박수치고 있다.
그게 바로 명작의 조건입니다.
아이스 댄스와 여자 싱글의 명작은 다음 회에 소개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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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바/그린코프 페어의 연기는 아직도 유명하죠...
슬픈 러브스토리로도 유명한 커플이기도 합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남편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죠... ㅠㅠ)
이제 김연아 선수의 밴쿠버 올림픽 연기도
이 전설 속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무지 설레이는 군요... ^^
원글 출처는 두근두근 Tomorrow 블로그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