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pac Shakur
a.k.a
2 Pac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랩스타이다
출신은 서부
Westside
Westcoast Real Nigga
그의 활동시기는 1990년대 초중반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 여파는 강렬하다
Black Panther 라는 흑인 인권단체의
여성 수장이였던 Afani Shakur의 아들
그의 어머니는 2 pac을 잉태한 당시 감옥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변호사선임없이 스스로의 언변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2 pac이 태어났다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난 태어날 때 부터 감옥에 있었던 거야'
Tupac Amaru는 과거 잉카제국의 왕 이름이라고 한다
그의 험란했던 소년시절은 두말할 필요 없다
뉴욕에서 볼티모어, 그리고 L.A까지 가난에 쫓겨 살았다
그의 성장 중 존경하던 어머니가 마약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또한 가난에서 몸부림쳤다
볼티모어 예술학교에서 끼를 다졌지만 이어갈 수 없었다
가난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길거리로 나섰다
Drug Dealer 그 길을 택했다
Digital Underground라는 곳에 입성한 그는
Shock G 와 Same Song을 불러 데뷔를 하게 된다
Shock G의 투어에서 로드매니저로서 인맥을 쌓아가다
대형 메이저 음반사의 사장이 그를 발탁한다
이유는 사장의 딸이 투팍의 팬이기 때문
그의 데뷔앨범은 그야말로 파장의 연속이었다
흑인들의 가난, 여성비하, 폭력성, 미혼모들의 실상 등
거침없는 fuck 단어와 nigga의 선택은 너무나 거칠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각종 인권단체 혹은 정치단체에서는 2pac 앨범의 반대운동을
벌이고 그는 위기에 몰리게 된다
biatch, slut이라는 단어선택이 문제였다
투팍은 게의치 않았지만 의외의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길을 건너던 투팍은 백인 경찰에게 이유없이 폭행을 당한것이다
뉴스를 타고 고소를 하고 투팍은 경찰에게 4만달러를 받아낸다
하지만 그 이후 이 사건으로 모든이의 표적이 되고 만다
음반 이외에 Juice라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연기를 한다
볼티모어 예술학교에서 배운 끼를 활용해 도전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극찬을 멈추지 못한다
또한 자넷 잭슨과 찍은 영화(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한 히트를 친다
Thug Life
그는 이 구호 하나로 흑인들을 뭉치려 했다
감옥에서 있는 real gangster 들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난 마치 이 나라를 다 가진 것 같았어.'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모두에게 알렸다
마약거래, 강도, 유괴 등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유명세와 스캔들로 투팍은 어렵게 된다
바로 미성년 팬과의 sex scandal
그녀가 원해서 관계를 맺었지만 rape이라며 고소하였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시달리던 그는 마지막 최종변론을 마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동료라 생각했던 흑인들에게 총을 맞고 만다
머리에 두방, 팔에 두방 그리고 허벅지에 한방
그는 병원에서 하루만에 퇴원하여 집에서 두문불출하였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어.... 내가 동지라 생각했던 이들이
나에게 총을 쏘다니... 단지 강도사건이 아니야 나에게는'
총상을 입은 사건 당시 그 건물에는 Notorious B.I.G와 P.Diddy가
있었다고 한다
투팍은 그들이 자신이 총을 맞고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
어리둥절하며 딴청만 피우고 아무것도 안해줬다고 주장하지만
비기와 디디는 자신들이 구급차를 불렀으며 구해줬다고 주장한다
힙합 전문 잡지인 Vibe에서 서로의 인터뷰를 통해
극명한 의견차이를 보인 투팍과 비기는 이후 사이가 좋지 않아진다
바로 West vs East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위의 강간사건 재판은 결국 투팍의 피소로 끝나고 만다
강간의 흔적은 없었지만 성추행 등의 몇건의 사실은 유죄판결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가사를 쓰지는 않았다
'모두가 나에 대해 말하겠지. 저 녀석 엄청난 가사를 들고 나올거야.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감옥은 사람의 영혼을 빼앗아
가는 곳이기 때문이야. 대신 난 책을 많이 읽었어. 하루에 1권 내지 2권정도.'
감옥에 있는 동안 투팍의 앨범인 Me Against The World는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기염을 토한다
9개월 정도 복역중이던 투팍은 보석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바로 Death Row Records의 사장인 Suge Knight가 도와줬기
때문이다
바로 투팍은 데쓰로우와 계약을 체결하고 자신의 집인
L.A로 돌아가게 된다
투팍이 Death Row에 들어간 이유는 딱 하나라고 한다
'그곳에는 대단한 녀석들이 있거든. Dr.Dre & Snoop Dogg.'
앨범 제작에 앞서 그는 새로운 일을 저지른다
바로 비기와 디디에게 복수를 시작한 것이다
그의 팀인 Outlaw와 함께 Eastcoast를 철저히 밟는
Hit Em Up 이라는 곡을 발표한다
" 비기 넌 바르사체를 입지. 내 스타일을 카피하며. 총알 다섯방도
날 죽이지 못했어. 오히려 난 웃음을 짓지. 내가 널 내 쇼파에서 재워주던 것도 기억하지 못하나? 또한 난 창녀들에게 너와 자게 부탁까지 했었는데. 우리 서부사나이들이 달리지 못하게 해. 넌 죽으니까."
하지만 투팍 역시 고민하게 된다
자신의 노래가 너무 과격한게 아닐까 하는 의문 때문에
그는 말한다
"내가 말하는 biatch나 slut들은 일반적인 여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말하는 biatch는 스스로에게 가격을 매겨서 사달라고 하는 골빈애들이지. 여자들끼리도 욕하는 그런 애들 있잖아.난 여성을 사랑해. 그래서 Keep ya head up 같은 노래를 만든거야. 나에게 이중인격자라고 말하지 마. 난 적어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니까."
또한 자신의 노래의 과격성 때문에 흑인 청소년들에게 끼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고민하기도 한다
All Eyez on me
투팍의 마지막 앨범이 되어버린 2cd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1000만장이 넘게 팔린 정도로 명반이다
snoop dogg과 함께 한 2 of amerikanz most wanted
자신의 사후세계를 예상한 뮤비가 인상적인 i ain't mad at cha
dr.dre와 대박을 터트린 클럽송인 california love
유언처럼 남아버린 life goes on
고뇌가 담긴 all eyez on me
k-ci & jojo의 피쳐링이 인상적인 Hw Do You Want it
자부심이 담긴 ambition az a ridah
등등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명곡들이 꽉 들어찬 앨범이다
자신과 비기의 싸움이 번져서 서부 대 동부의 싸움으로 번져가자
투팍은 이를 중재하고자 나서기도 한다
"이건 단지 개인적인 문제야. 나와 비기의 싸움이지. 언론들은 자신들이 돈을 벌기 위해 서부와 동부의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오해하지 말아줘. 나의 싸움때문에 사람까지 죽었다니 믿기지가 않아."
the house of blues
라는 L.A의 한 클럽에서 투팍은 라이브 공연을 한다
현재 라이브 앨범으로도 나와 있는 이 공연은
투팍의 죽음 전 마지막 공연으로 기록된다
죽음 당시 보다 2달전이기 때문에
이 공연에서 그는 모든것을 쏟아 붇는다
dogg pound와의 합작공연이었지만 주인공은 그 였다
역시 공연에서는 비기를 욕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september, 1996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마이크 타이슨의 권투경기를
Suge Knight와 관람한 후 카지노에서 나오던 그는
그곳의 현지 갱과 주먹다짐을 벌인다
그리고 숙소로 복귀하던 중
갱의 동료들이 Tupac을 쫓아 살해한다
그렇게 그는 죽었다
이 점에서 왜 비기의 사주가 있었냐 마느냐 하는 이유는
디디와 비기가 베가스의 갱들을 이용하여
시비를 붙여서 일부러 죽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투팍의 죽음이 있고 몇달 후
비기는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그러던 와중 자신의 차에 의문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명의 전설이 모두 하늘로 갔다
투팍은 자신이 죽기 몇달 전
미친듯이 녹음을 하기 시작한다
"그냥 드럼만 깔아놔. 비트는 나중에 붙여도 돼. 적당히 내 랩중에 괜찮다 싶은 곳을 짤라서 후렴으로 쓰면 되잖아. 랩퍼는 나중에 구해. 그냥 녹음만 계속해!"
그의 죽음을 마치 예견이나 한 듯이...
그리하여 그의 죽음 이후에도 10장이 넘는 앨범이 발매되고 있다
이상은 투팍의 자서전 영화인
The Resurrection 을 보고 쓴 감상문과도 같은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Westside를 상당히 좋아하고
Tupac의 가사에 감명받고 있기에 이렇게 몇자 적어본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살았고, 그의 음악이 어떻게 나왔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Auto-tune과 club 노래들만 난무하는 현 시점의 힙합 세대 속에서
Tupac의 노래들은 참 향수병을 일게 한다
거침없고 진실만 말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솔직했던 그
그 만큼 라임은 물론이고 플로우 또한 완벽한 랩퍼는
아직까지 나오고 있지 않다
Post-Tupac 이라고 여러명이 떠벌리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위치를 대체하는 이는 나오지 않고 있다
Tupac Amaru Shakur
그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