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한지 이제 10년째입니다. 아직 애기는 없습니다.
24살,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을 했습니다. 신랑은 저보다 7살 많습니다.
시댁은 교욱자 집안이라 그렇게 잘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른들께서 워낙 검소하셔서 저희 결혼할 때도 작은 평수지만 서울 시내에 조그만 아파트 하나 정도는 마련해주셨고, 제가 어머니가 없는 관계로 예단이나 예물은 모두 생략하고 간소하게 식을 치렀습니다. 그점은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시댁에 매주 일요일마다 찾아뵙고 점심 같이 식사하고(밖에서 사먹고 시댁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나름 잘 해드렸다고 생각합니다.
신랑은 4남매 중 장남인데 나머지 시누이 2명이랑 도련님도 모두 착한 분이어서 저보다 다들 나이도 많으신데 제게 꼭 존대하고 잘 해줬습니다(당연히 저두 존대했구요).
제가 회사 그만두고 공부한다고 할 때도 시어른분들이 모두 교육자들이셔서 그런지 반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실 정도였고, 어린 며느리라고 다들 조심조심해주셨지요.
그런데 2년 전 도련님이 결혼을 하면서 저는 참 기묘한 기분이 듭니다.
저희 신랑도 대기업 다니는데, 막내 도련님은 의사입니다. 도련님은 34살까지 집에 여자를 데려온 적이 없을 정도여서 아버님께서 대체 넌 뭘하는 애냐고 올해 장가 안가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펄펄 뛰실정도였습니다. 하여튼 막내 아들 장가보낸다고 압박이 장난 아닐 때 도련님도 못이기는 것인지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친구가 여우인지 어쩐지, 저희 둘째 시누이가 이혼하고 애기를 데리고 시댁에 와있는데 그렇게 애기들을 데리고 같이 놀러를 다니더라고요. 도련님이랑 같이 데이트 할 때도 데리고 다니고, 등산도 가고, 공원도 가고...결혼 전인데도 가끔 시댁에 놀러가는 것 같은데 가보면 저희가 차 준비하는데도 거들어 주는 법도 없이 앉아서 다 먹고 마시고, 애기들(시조카들)이랑만 노느라고 정신이 없더군요. 시조카들도 자주 데리고 나가니까 동서라면 좋아서 죽습니다.
둘째 시누는 자기 애들이라면 물고 빨고 하니깐 그 여자친구가 그렇게 이뻐 보였나 봅니다. 둘째 시누는 인물도 좋고, 사람도 괜찮은데 정말 남자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인지, 개망나니랑 결혼했다가 이혼한지 3년이라 저희 신랑도 그렇고 첫째 시누도 그렇고, 막내 도련님도 그렇고 다 안쓰러워 합니다. 그것때문에 시조카들이라면 다들 벌벌 떨구요. 애들이 극성이라 저는 좀 엄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여튼 애들이 부모는 이혼했는지 몰라도 하도 외가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애지중지 싸고 키워서 구김살도 없이 팔팔은 합니다.
여하튼 그래서 시댁 식구들이 다들 좋게 보고 있는 상태에서 동서는 정말 대대적인 환영 속에 시집을 왔습니다. 동서도 전문직이라서 바쁘긴 한데 시집와서도 시조카들은 엄청 이뻐라 하더군요. 결혼하고서도 가끔 데리고 놀러다니고, 명절때는 계속 끼고 있습디다.
도련님도 시조카들을 아빠도 없이 엄마가 혼자 기른다고 애지중지하는데, 동서가 애들을 좋아하니까 가끔 같이 놀러댕기고 하니까, 동서가 가끔 성질 부리고 그래도 다 좋게 보는 것 같더라고요. 시조카들은 저희들이랑 놀아주니까 당연히 좋아하는 것 같고....
동서 말로는 자기는 원래 싫으면 절대 안하는데 얘네들이랑 놀면 잼있어서 논다면서 애들 데리고 니들이 나 잼있게 안 해주면 안 논다 요러면서 약도 올리는데도 좋다고 같이 놉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동서가 아주 좋은 사람 같네요... 사실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런데 동서가 전문직이고, 도련님보다 나이도 어리고 그래서 그런지 시댁 어른들도 동서라면 좀 더 한 수 접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동서는 좋게 말해서 부유하게 자라서 그런지 구김살이 없긴 하지만 공부를 잘한거랑은 달리 철도 별로 없고살림도 잘 하지는 못하고요. 과일도 부들부들 떨면서 깎습니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제사 차릴 때도 혼자 우왕좌왕하면서 땀만 뻘뻘 흘려대니까(이건 대체 결혼한지 2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것이 없음. 도련님도 결혼한 뒤 동서가 요리하면 말린다고 함. 나름 뭔가 하는데 영 별로임. 공부는 어떻게 했는지 의문임), 둘째 시누가 보다 못해 자네는 애들이나 봐주라고 하면 좋다고 냉큼 가서 애들 공부도 봐주고 공원 데리고 가서 노는 것 같더군요.
저희 신랑이 대기업 다니는 것은 맞지만 어디 의사 부부랑 수입이 같나요. 아무래도 도련님이 대소사엔 눈치껏 돈을 더 내는 편인데, 도련님 말로는 동서는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안쓴다 합니다. 동서도 어디 같이 놀러가면 자기가 밥도 사고, 저한테 소소하게 립스틱이라던지 선물도 하고요.
그런데 뭐랄까. 저희가 당연히 윗사람이고, 아랫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데, 그리고 제가 어려서 시집오긴 했지만, 다들 저를 윗사람 대접 해줬고요.
그런데 동서는 자기들이 더 벌고 더 공부도 잘하고 그랬으니까, 자기들이 은전(?)을 베푼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희들이야 외벌이지만 자기들은 맞벌이거든요. 제가 보기엔 둘째 시누 애들 데리고 다니는 것도 꼭 사회 봉사하는 것 같구요. 애들이 아빠(이놈은 진짜 나쁜 놈임)가 없다보니 자기들 둘이 데리고 다니는게 모양새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솔직히 시조카들도 어려서부터 본 저보다는 재밌게 놀아주는 동서를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같이 노는 것 보면 동서도 낄낄대는 것이 좀 애 같기도 하고..
암튼 뭐랄까. 저도 친정에 어른들이 안계셔서 주로 시댁 행사를 했고, 시댁이 북적이는 것도 좋아하고 나름 맏며느리로서 10년간 식구들도 신경써 왔는데요...
동서가 들어온 다음부터 동서는 그렇게 일을 많이 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저보다도 어린 동서가 맏며느리 역할 (특히 금전적으로)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가 않습니다. 제가 윗사람인데도요. 뭔가 제 자리를 뺏긴 것 같아요.
둘째 시누는 거의 주말마다 자기애들 데리고 놀러다니니까, 동서를 확실히 좋아하는 것 같고요(근데 솔직히 동서는 자기가 피곤하면 절대 안 감. 그냥 자기가 컨대션 좋고 이럴 때면 조카들 데리고 놀러다님. 스스로도 피곤하면 안 데리고 다니고, 데리고 놀고 싶을 때만 데리고 다닌다고 대놓고 말함).
시어른들은 모두 교육자시라 동서가 전문직에 최고명문대 출신이라 공부 잘하는 것에 후한 점수를 주시는 것 같고(저 시집왔을 때보다 자랑도 장난 아님), 도련님이야 자기 아내니까 좋아라 하고. 저희 신랑은 그냥 동서가 이쁜 것 같습니다. 큰 시누는 뭐 둘째 시누가 동서 좋아하니깐 가끔 쟤는 사과도 이쁘게 못깎는다고 흉은 봐도 앞에선 잘 해줍니다.
나름 객관적으로 적었는데, 솔직히 전 동서가 좋지 않습니다. 가끔 얄밉습니다. 세상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단순한 얼굴을 보면 복장 터집니다. 좀 둔한 것 같기도 하고. 나름 저한테 잘하려고 하는걸 알기에 참지만, 내심 너무 잘난 동서도 문제입니다.
제가 속이 꼬여서 그런지 동서가 돈을 더 내거나, 선물을 하거나 하면 왜 이리 마음이 가난해지는지... 돈 더 내면 좋은 것이긴 한데.... 휴....
동서가 시댁에 저보다 잘(?)해서 더 화가 나는 경우도 있을까요? 동서가 잘난데 오는 제 열등감 때문일까요?
제가 좀 그런 건요. 가끔씩 시댁 식구들 식사하실 때나 그럴 때 그렇게 비싼 거 아니라서 저희가 충분히 낼 수도 있는데, 저희가 외벌이인데다가 제가 공부하니까 으레 돈이 없겠거니 하고 자기들이 돈 낼때 전 뭔가 굴욕감이 느껴져요 저희가 거지도 아니고, 충분히 그 정도 식사비는 낼 수 있거든요. 그런 것 자기가 계산한 다음 나 잘했지라는 표정으로 자기 신랑을 보는데, 너무 얄밉더라구요. 도련님은 굉장히 온화한 성격이라서 그런 거 보면 자기 부인 예쁘게 생각하는 것 같고, 특히 둘째 시누는 뭐라도 더 챙겨주려고 안달이고...
동서가 들어온 다음에 제 입장이 너무 달라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