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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고 나체쇼를 하든지 말든지!

하얀손 |2010.03.11 01:11
조회 688 |추천 0

술을 먹고 나체쇼를 하든지 말든지!


  나는 혼자서 하루 종일 책이나 영화를 마음껏 보고,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여성과 채팅으로 음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그것도 싫증나면 술을 잔뜩 마시고 나체로 마음껏 뒹굴어도 좋은 자유의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퇴근하고 집안에 혼자 있으면서도, 회사에 출근했던 정장차림 그대로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교양인으로 살라고, 누군가 권한다면, 단호히 나는 그런 위선적 삶은 거부할 것이다.


  저녁 9시쯤, 나는 녹색선 2호선 대림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승강장에서 책을 읽고 있는 한 명의 젊은 여자와 반대편 철로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젊은 남자를 보았다. 마치 도화지에 물감을 찍어 바르고 나서 접었다 편 데칼코마니처럼, 기막힌 우연의 대칭이 아닐 수 없었다. 대부분의 퇴근시간대에 승객들은 피곤한 얼굴로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거나 술에 취해 얼굴이 붉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말짱한 얼굴로 지하철을 기다리며 책을 읽는 사람이 단 두 명씩이나 있다니!


  나는 슬쩍 여자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하철이 도착하고 출입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가는 틈에 끼어, 최대한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충 그녀가 읽고 읽는 책은 소설이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 더 이상 다가서기 어려웠다. 지하철 안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사람들의 공통분모를 찾아보았다. 대부분 핸드폰을 들고 있다. 그들은 DMB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의 사각화면을 통해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거나, 오락게임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주 낯익은 풍경이었다.


  그녀는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서도 계속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 야간자율인지, 야간타율인지 학습을 마친 여고생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직장 동료로 보이는 두 명의 젊은 남자가 사무용가방을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젊은 남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남자에게 선배님 말씀이 옳습니다, 라고 자꾸만 존댓말을 쓰는 것이 어색해 보인다. 직장과 나이를 무시하고, 두 사람에게 주먹 싸움을 붙이면, 존댓말을 쓰는 남자가 상대를 바닥에 때려눕힐 수 있을 것이다.


  소설책을 읽고 있던 그녀, 수다를 떨던 여고생, 반말과 존댓말을 주고받던 젊은 직장 동료, 그리고 핸드폰의 화면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사람들의 공통점을 다시 찾는다. 모두들 나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나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두 다리를 쭉 펴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다시 밤에 일터를 향해 가고, 누군가를 만나서 웃고 울어야 되는가? 친구 녀석이 불 쇼를 볼 수 있다던, 나이트클럽의 대형 간판이 눈앞에 들어온다.


  갑자기 나는 지하철을 멈추고 내리고 싶었다. 나이트클럽에 가서 볼 쇼도 구경하고, 술을 잔뜩 마시고 옷을 홀랑 벗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러나 지하철은 멈추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목적지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소설책과 교복 그리고 사무용가방과 핸드폰들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혹시, 그 나이트클럽에 우우 몰려가 불 쇼를 구경하고, 옷을 홀랑 벗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만 혼자 남겨 놓고........ 나만 혼자 남겨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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