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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목적

휴리아 |2010.03.15 22:27
조회 756 |추천 0

신앙생활의 목적은 ‘성도의 행복과 유익’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을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을 위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면 그는 욕망의 늪에 빠진 것이며 소생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타 종교에서는 신자의 행복과 유익이 최우선 순위입니다. 바라는 만큼 적당히 알아서 신을 받들면 됩니다. 유익을 주지 못하는 신은 당연히 배척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자기 부인’에서 출발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며, 이미 자기를 온전히 포기한 사람이고, 자기의 전부를 하나님께 헌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유익을 위한 종교에서는 ‘적당히 헌신’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수양하며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전적인 헌신’을 요구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합니다. 너는 네 온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 <신명기 6장 5절>

1800년대 중반 자신의 욕망보다 주님의 인도를 따랐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스위스 출신의 크리스챤 실업가요, 명망 있는 은행가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너무나 강렬한 재물의 유혹을 받고 있었던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살아가던 당시의 세상에 가장 막강한 영향을 끼치던 사람은 나폴레온 대제였는데 이 은행가는 나폴레온을 만나 협상을 통해 불란서와 스위스의 경제협력을 이끌어 내어 거대한 부의 주인공이 되어보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리로 갔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온이 전쟁터로 방금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전쟁터로 갔다가 불란서와 오스트리아군의 치열한 전투를 구경하게 됩니다.

전투는 끝났고 나폴레온도 전쟁터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양군의 즐비한 시체와 부상자의 신음소리가 지옥의 참상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사람들과 힘을 합쳐 부상병들을 돌보는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일이 끝나갈 무렵 그는 다시 나폴레온을 만나러 갈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문득 기도할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에 기도하던 그의 마음속에는 나폴레온과의 협상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하려는 꿈 대신에 새로운 꿈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전쟁 중에 아군, 적군을 물론하고 부상당하는 모든 사람을 돌보고, 이 일을 통해 인류가 화해하는 평화의 꿈이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국제 적십자 운동이 탄생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헨리 듀난트 혹은 앙리 뒤낭으로 알리어 지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때야 말로 예수님의 꿈을 붙들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일 수 있습니다. 앙리 뒤낭의 교훈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레오 다르칸젤로는 교도소 감방을 왔다 갔다 거닐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열한 살의 소년으로 그는 복잡한 전차 속에서 한 부인의 핸드백을 소매치기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열여섯 살의 나이에 필라델피아의 백화점에서 처음으로 체포되었을 때 그는 오 년 동안 도둑질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석방된 직후 그는 마약을 조달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끊임없이 체포되는 과정을 되풀이하기 시작했습니다. 1954년 11월에는 마약 복용 및 소지혐의로, 1955년 1월에는 소매치기로, 그 직후 로스앤젤레스에서 레오는 월담 행위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감방을 들락거리면서 벽에 조악하게 몇 줄 긁어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당신이 갈 데까지 다 가서, 이 문제가 당신의 마음을 괴롭히고. 슬피 우는 일 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같이 보일 때 예수께 돌아오시오. 당신이 찾아야 할 분이 바로 예수이기 때문이오.”

이 글을 읽고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의 방황은 끝났다. 예수님,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나는 나의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내 방황의 끝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울어보아도 나의 과거는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으시면 제발 그렇게 해주십시오. 나의 내일이 달라지게 하옵소서.” 레오는 처음으로 절망이 아닌 그 무엇을 느꼈습니다.

1958년 감방에서 풀려난 후 레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웨스트 체스터 주립 대학의 대학원과 필라델피아의 개혁 장로교회 신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그는 현재 교도소 선교를 활발하게 펼치며 교회와 청년 모임에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필생의 사명을 단번에 아는 것은 아닙니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를 처음부터 일생의 작업으로 여기고 쓴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일이라 생각한 일을 했을 뿐인데, 조금씩 수정하다 보니 일생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양치는 일이 지도자 연단 과정인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매일 작은 일에 충성하는 가운데서 더 큰 일을 위해 준비되는 것이고, 그렇게 준비시키신 후에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두신 위대한 뜻을 막연히 찾기보다는, 현재 나를 인도해 오신 자리에서, 내게 주신 일에 대해, 내게 주신 작은 은사로 충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더 성숙해 나가야 합니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 날마다 목자를 따라 전진하고 있는 양의 내면은 고요하고 평화롭습니다. 푸른 초장에 집착하거나 미련을 두지 않으며, 하루의 꼴로도 지족하며 감사하는 심령을 가집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경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디모전서 6장 6절> 자기 분수를 알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날마다 열정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 앞에 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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