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막내다.
왜 이 말을 하는고 하니,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 부터 귀하게 컸다.
물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할머니가 엄격하게 키우긴 했지만,
오빠와의 나이 차이가 20살 가까이 나고, 바로 위의 언니와 9살 차이가 나니
어느정도 막내대접을 받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장남인 우리 아버지와 결혼해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온갖 설움을 겪으며 시집살이를 감당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 엄마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요리였던 것 같다.
물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국은 늘 싱겁거나 짰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은 어느정도 교정되었지만,
오늘 아침에 먹은 라면도 상당히 싱거웠던 것을 보면,
요리스킬이 그리 쉽게 하루아침에 향상되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더 잘하는 요리들이 많으니 말이다.
우리 엄마라고 해서 나의 날카로운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난 반찬투정은 하지 않지만 밥상 앞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미각으로 평을 하는 밉살스런 아들이다.
맛없는 음식만을 얘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맛있는 것은 정직하게 맛있다고 얘기하니 말이다.
하지만 맛없는 것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맛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얼마나 밉상인가?
하지만 근래들어 우리 엄마의 요리 솜씨에 장족의 발전이 있는 것 같다.
자주는 못하지만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믿기지 않을만큼 맛있는 음식들이 나온다.
그것이 아주 특별한 손님대접용 요리는 아니다.
오늘의 믿기지 않을만큼 맛있는 요리는 평범한 비빔만두와 나물무침이었다.
강한 향이 나는 음식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미나리가 반갑지 않다.
그런데 미나리 무침이 어찌나 맛이있는지 그 자리에서 엄청난 양을 먹었다.
아니 섭취했다라는 표현이 더욱 맞을지 모르겠다.
이런 일이 근래들어 자주 일어난다.
정확하게 간이 딱딱 맞고, 한 번 한 요리에는 큰 변함이 없다.
다음에도 그 요리는 그 맛을 낸다.
이전에는 요리나 간이 들쭉날쭉했었다.
이런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요리학원에 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엄마는 두 달 정도 요리학원에 다녔다.
물론 너무 세심한 채썰기와 크기맞추기, 그리고 까다로운 요리순서가 엄마를 좌절시켰지만,
그 가운데서 얻은 수많은 교훈들이 우리 엄마의 요리를 발전시켰다.
오늘도 적절하게 다진 마늘, 과도하지 않은 설탕과 식초, 꼬시한 참기름이 배합은 환상이었다.
그래서 요새는 밥상에서 호평이 대부분이다. 물론 오늘처럼 싱거운 라면도 가끔있긴 하지만.
배움은 이처럼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며 그것이 채워질 때 사람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의 행복은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달 간 배운 요리 하나로 이토록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기에,
엄마가 왜 진작 요리를 배우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마저 드는 요즘이다.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들이다.
자신을 계발하지 않고 배우지 않는 사람들은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가난을 끊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싶다면,
그런 가난을 끊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저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다.
능동적으로 가난을 이겨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로부터 책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환경 때문에 대부분 배우는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게으른 습관들로 인해 그들의 삶을 더욱더 처절한 가난으로 몰아간다.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바가 있다.
애석하지만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몸에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게으름이 강하게 묻어난다.
자신의 가난한 환경 때문이라고 늘 핑계를 댄다.
정작 자신이 갖고 있는 책들은 읽지도 않은채 말이다.
늘 비교의식으로 더 나은 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부러워하기만 하고 정작 스스로는 배우려하지 않는다.
지금은 얼마나 좋은 시대인가? 대학을 가지않고서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교육방송도 있고, 인터넷도 있고, 책도 있고,
꼭 고액과외를 받아야지만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아이들은 늘 핑계를 대고 바쁘다고만 말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핑계거리를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배우는 자들은 풍요로움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한다.
그들은 삶에 대해 핑계대지 않는다.
삶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자신의 시간을 컨트롤 하며 과감하게 배우는 것에 투자한다.
자신의 돈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배우는 것에 투자하여,
결국 자신에게 묻어져 있는 게으름들을 과감하게 떨쳐버린다.
그리고 결국 풍요로움을 쟁취하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2개월 동안 정말 열심히 요리를 배웠다.
집에서 늘 노트를 들고 달달 위우면서 요리학원을 다녔다.
비록 자격증을 취득하지는 못한채 엄마의 소박한 꿈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대신 엄마는 가정에 풍요로움을 쟁취했다.
음식하나로 가정을 평정했다.
밥상이 점점더 풍요로워지고, 그로 인해 우리 가족에게는 더욱더 큰 활력이 생겼다.
나도 끊임없이 배우기를 소망한다.
나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재정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로움들이 벌써 나를 조금씩 찾아오고 있다.
걱정을 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시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많은 지식으로 인해 근심이 늘어날 수 있지만, 그 근심을 제거하는 법 또한 많은 책들이 가르쳐 준다.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배웠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큐티를 통해 늘 배우고 있다.
배워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이것이 가난한 자들의 또 좋은 핑계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배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지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배운다는 것은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이지,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대로 배운 사람들 중에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사회가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시켜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배워서 남주는 사람들로 세상은 넘쳐나고 있다.
배움을 멈추는 것은 풍요로운 삶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제대로 배우는 사람들은 배움의 즐거움과 함께 행복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배우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이 풍요로움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배움을 멈춰서는 안된다. 배움을 멈추는 순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꿈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 때부터 생각의 가난이 시작된다. 그 가난은 머지않아 현실적인 가난으로 다가온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끊임없이 배워서 넘쳐나는 풍요로움으로 타인을 도와야 한다.
내것이 넘치게 느낄 수 있는 자가 타인을 도울 수 있다.
스스로를 가난하다 여기는 자들은 억만금이 있어도 타인을 돕지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풍요로운 사람들은 천원이 있어도 남을 도울 수 있다.
배우는 사람들이 많이 질수록 사회는 더욱더 풍요로워진다.
개인의 풍요로움이 사회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난한 자들이 도움받고 그들이 다시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사회 전체의 풍토로 이어질 때 사회의 가난은 조금씩 해결되어 갈 것이다.
배움을 포기하지 마라. 자신 스스로를 위해서. 그리고 세상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