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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지기전에...슬픔이 가라앉기전에...영화 '봄날은 간다'

이상목 |2010.04.07 14:03
조회 664 |추천 0

 

봄날은 간다. (One Fine Spring Day, 2001)

 

감독 허진호

주연  이영애(은수), 유지태(상우)

 

 

줄거리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봄날은 간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 분)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백성희 분)와 젊은 시절 상처한 한 아버지(박인환 분), 고모(신신애 분)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겨울 그는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 은수(이영애 분)를 만난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은수는 상우와 녹음 여행을 떠난다. 자연스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은 어느 날, 은수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진 두 사람... 상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빨려든다.

 그러나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삐걱거린다. 이혼 경험이 있는 은수는 상우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다며 부담스러운 표정을 내비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묻는 상우에게 은수는 그저 "헤어져"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우는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은수를 잊지 못하는 상우는 미련과 집착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서울과 강릉을 오간다.

 

 

 

 

목목이의 내맘대로 영화이야기

 

한때는 상우처럼, 지금은 은수처럼

 

노희경 작가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에세이에서 나온 글귀 한모퉁이.

유난히 현실적인 에세이어서 공감에 푹빠져있던 나에게 가슴이 송곳에찔린 것처럼 찌릿해졌던 부분이었다.

 

10여년전 애인보다는 여자친구에 목말라 있었을 18살 '봄날은 간다'를 처음 맞이했다.

그땐 상우를 이해하는 것도, 은수를 이해하는 것도 아닌 단지 영화를 이해하기에만도 충분히 급급했었다.

상우와 은수의 사랑을 시작하는 모습에 함께 설레였지만, 왜 라면을 먹자고하는지, 왜 자고가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잘지내던 둘사이에 갑자기 틀어지는듯한 모습들을 보며  밥차려줬는데 뜬금없이 왜 짜증을 내는건지,  갑자기 다른남자는 왜 나타난건지, 상우는 왜 은수에게 저렇게 까지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해불가는 물론 관객을 놀리는 건가하는 생각까지했었다.

그렇게 사랑을 알기보다 여자를 알기에도 가슴벅찬 나이였다.

 

그리고 참 말도안되는 세월이 흐르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같았던 작품 '봄날은 간다'를 다시 만났다.

영화를 본 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감독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게으름으로 영화를 포기하듯 보지않은 자신을 마냥 원망할 뿐이었다.

 

이제 사랑을 조금 안다싶은 나이에 접한 '봄날은 간다'는 마냥 슬픔으로 얼룩진 영화였다.

(이것또한 어쩌면 필자의 미성숙을 자랑하듯 떠벌리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지만...)

타이틀시퀀스에서 상우가 할머니보고 자꾸 가자고 재촉하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않았다. 사람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정말인걸까? 상우는 순수하면서 아이같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생각하지않고 굳이 앉아 계시겠다는 할머니를 데리고 기차역을 떠난다. 그렇게 떠나지 않았으면 더욱 더 성숙해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상처는 받지 않았을텐데...그리고 봄날은 오지도 가지도 않았을텐데 말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와인같은 또는 물같은 진하디 연한 연애를 한다.

누군가에겐 그 사랑이 처음이라는 설레임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겐 그 사랑은 지친방황의 안정을 위한 처방전같은거 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 '상우'와 '은수'가 있다. 굳이 마실꺼에 빗대자면 상우는 물이고, 은수는 와인이다.

(노희경작가도 말했듯이) 상우는 연애있어서 아니 은수와의 사랑에 있어서 참 맹목적인 인물이다. 그걸 사랑의 전부라고 믿었고, 자신이 무슨맛으로, 어떤색깔로 변해가는지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자신이 해주는 모든 것이 잘하고 있는 짓이라고만 믿는 참 순수한 연애이기주의자였다. 그와 반대로 은수는 참 늙은나무같은 사랑을 했다. 물은 주든, 거름을 주든, 화를 내든, 발로 차든 참 묵묵히 자기살길을 찾아가는 잘 숙성되지않으면 찾는사람도 없는 참 맛있는 사랑...바람에 나무결은 흔들리지만 애초에 자리잡아버린 뿌리는 아무리해도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상우에게 사랑은 인생이었고, 은수에게 사랑은 일상이었다.

 

 은수에게 상우와의 만남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첫만남에서 "쫌 늦으셧네요."라는 말고 시작된 그들의 만남에서 "라면먹을래요?" "자고갈래요?"처럼 은수에게 상우는 그냥 먹고,자는 일상의 부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다만 기약없이 갑자기 찾아온 봄날에 잠시 당황할 뿐, 그 역시 겨울 후에 찾아오는 일년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런 은수에게 결혼은 연극일 뿐이었다. 하지만 상우에게 은수와의  인생은 사랑의 전부였다. 그녀가 하고싶은 것은 다 해주고 싶었고, 보고싶으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싶었고, 누구에게든 자랑하고 싶어했다. 아직 같이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죽어서 같은자리에 함께 묻히자는 말에도 행복해하는 상우의 사랑은 참 열정적이었다. 그렇게 일상이라는 그릇에 사랑만 담기에는 가져가야할 물건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변하지 않았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다. 

 

상우는 묻는다. "너나 사랑하니? 어떻게 사랑이...변하니? 헤어지자..."

은수는 헤어지자는 말 이외에는 표정도 대꾸도 없다.

 

점점 어리석어지는 사랑앞에서 상우는 사랑도 이별도 현재진행형으로 말한다. 하지만 은수의 마음은 순수를 헤치고있다는 부담이 찾아왔을 때부터 정리가 시작되었으리라. 상우의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버스랑 여자는 떠나면 잡는게 아니라고... 참 가슴에 와닿는 대사이다. 문득, 누군가 필자에게 했던 충고가 생각난다. 남자는 헤어지고 싶을때 헤어지자고 말하지만, 여자는 모든걸 정리한 다음에 이별을 말한다고...그래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자의 마음은 절대 돌이킬 수 없다고...나또한 그말에 동감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정으로 묻고싶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그 여자의 마음을 정녕 돌이킬수없냐고...

 

 

 

 

다 자란나무엔 물을 더 줄 필요는 없다. 

 

그렇게 영원하지않을 것 같던 사랑은 결국 그렇게 헤어진다.

상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숙이라는 과정을 거쳤고, 은수는 여전히 그 지겨운 일상속에 서 있다.

또 누군가는 어쩌면 은수를 만나 그 지겨운 일상 또한 죽음의 과정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철없다고 말하는 시절 아픔만 가득했던 순수한 사랑이나, 흩날리는 벗꽃을 보며 다시돌아올 봄날만을 기다리는 사랑이나,

더 이상 내뱉을 향기가 없어 향수에 의존하는 조화같은 사랑이나, 목이 마르다고 누군가 물을 떠줄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지않겠는가...

 

 

 

 

봄날은 간다.

 

만연한 벗꽃만큼이나 상우와 은수의 이별은 아름답도록 슬펐다.

상우가 손을 흔들고 뒤를 돌아볼때까지 은수는 마지막까지 어른스러웠고, 현명했으며 냉정했다.

"우리..같이 있을까?"라고 말하는 은수의 천연덕스러운 행동은 이해보다는 반복에 지친 진심에 가까웠다.

상처란게 그렇다. 처음엔 익숙지않음에 마냥 두렵고 아프기만하고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꺼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상처가 아물어 갈때쯤

우리는 또 다른 상처에 직면하게된다. 하지만 그 때 상처와 대면하는 자신은 참 낯설다. 죽지않고 살고있는 자신을 보게된다. 그렇게 군데군데 나 있던 상처들은 아물고 굳은 살이 되어 무뎌진다. 그냥 일상이 된다. 은수처럼...

 

사랑을 함에 있어서 가장 슬픈건 아픔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첫 설레임만을 간직한다면 우린 사랑을 할 수 없다. 첫 아픔이 공존하기에

우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으로만 사랑을 하고 인생을 살기에는 너무 벅차다는 건  이미 너무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그 사실을 모른다면 글을 읽는 당신은 덜 설레여본것이고 덜 아파본 것이다.

 

가시에 찔리지 않으면 장미를 꺾을 순 없다. 장미를 꺾는다면 장미는 말라갈 것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자니 너무 아름답다.

사랑이 딱 그렇다. 바라만보든, 옆에 두고있든, 멀리놓아주든 무엇이든 설레임과 아픔은 공존할 것이고 사랑은 또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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