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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진실|빈곤과 인권

김성훈 |2010.04.26 09:05
조회 1,231 |추천 1

세계의 10억은 하루 1.25$ 이하로 살아간다.

이 사람들을 극빈곤층이라 한다.

세계의 또다른 20억은 하루 2$ 이하로 살아간다.

이 사람들을 빈곤층이라 한다.

 

빈곤은 무엇의 문제인가?

 

 

 

 

 너무 쉬운 물음일지도 모른다.

위의 정의는 자연스럽게 빈곤을 '경제의 문제'로 결론짓게 만든다. 나아가 이러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득 수준을 높여야 하고, 따라서 원조의 도움을 받아 상당항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물론 이러한 문제인식과 해결방안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빈곤층은 이름 그대로 돈이 없기 때문에 빈곤층인 것이고 따라서 이들이 돈을 손에 쥘 수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위와 같은 경제적 분석이 빈곤의 전체적 모습을 포착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해법만으로는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경제적 문제 이상의 것들, 즉 "박탈과 불안, 차별과 무기력한 침묵"을 바라보아야 하고 이 문제들의 본질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관점으로 볼 때, 삶의 불행과 악조건은 단순히 물질적인 가난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좀 더 복합적이며 복잡하게 얽힌 문제이다. 이로 인해 행동과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다는 무력감이 발생하고 지속된다. ... 가난의 결과로 빚어지는 개별적인 문제들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결국 헤어나올 수 없는 강력한 굴레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굴레가 무력감과 박탈감을 더 깊게 영속시킨다.

                          - 세계은행 보고서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

                                                              (본 책에서 재인용)

 

 

 빈곤은 인간으로 하여금 경제적 곤란, 의식주의 불안에 노출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빈곤은 힘없는 사회적 편견에 노출시켜 차별받고 소외당하게 한다. 가난한 이들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좌절하게 한다. 경찰에게 슬럼의 주민은 잠정적범죄자로 비칠 뿐이며 이러한 이들이 사법적, 행정적 보호조치, 복지제도와 지방자치, 교육을 받을 권리, 참정권 등 모든 시민들이 누려야 할 권리로부터 이들은 너무나 쉽게 배제된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물론 이러한 권리를 제공할 국가의 능력이 부족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이들에 대한 차별과 이로 인한 무시이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은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인권이 '박탈'된 존재이자 차별받는 존재이며 이러한 배척, 차별은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이러한 차별과 강요된 침묵은 가난한이들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무기력한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다시 이 무기력한 침묵은 그들을 가난과 위험, 불안정, 또다시 가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잇는다.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은 대부분 지역사회 주변의 소수파에 속해있다. 그들은 성적, 인종적, 종교적, 계급적인 면에서 배척당하고 있다. 부유한 국가에서도 빈곤은 차별과 배척이라는 렌즈를 통해 확연히 다가온다. 미국에서는 수만 명의 노숙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유럽의 집시사회를 생각해보자. ... 행정당국들이 집시 아동들을 학교로 받아주지 않거난 형편없는 학교에 묶어두는 정책에 동조하고 있다. 또한 경찰과 법원에 의해 자행되는 배척과 인종차별에 눈을 감아준다. 

                                 -  아이린 칸,『들리지 않는 진실』 27쪽.

 

 

 

 

 이렇게 배척당하고 차별받는 이들은 결국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한 노력과 희망마저 위협당한다. 잠정적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당국이 치안을 포기한 슬럼지역에서 성장한 청소년들 중 몇이나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 중 몇이나 계층의 상승을 경험할 수 있을까.

 

 

 

 따라서 빈곤의 문제는 마땅히 인권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이 시민으로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되찾아주어야 하며 그들의 자존감을 되찾아주어야 한다.(이는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겠다. 인문학을 통해 자존감을 되찾은 노숙자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빈곤을 인권의 문제에서 바라보는 것은 빈곤에서 벗어나있는 대중으로 하여금 책임감을 갖고 그동안의 빈곤에 대한 차별적 시각과 선입견에 대면하도록 유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는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맞서 싸울 존엄을 되찾아주어 무기력과 빈곤의 악순환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준다.

 

 

 빈곤의 극복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조건 속에 살 때 자유를 박탈당하고, 이는 상황을 개선할 기회와 선택의 상실로 이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제 목소리를 낼'수 있을 때, 그들이 스스로 뭉쳐 의견을 내고 자신의 삶과 생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을 때, 오직 그때만이 비로소 그들이 직면한 차별과 소외, 불안정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 아이린 칸, 위의 책, 45~46쪽.

 

 

 

 

 물론 경제적 지원, 원조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인권의 견지에서 접근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그들의 생존을 지지할 경제적 성장이 없다면 빈곤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경제적 지원과 세계시장으로의 편입에 의존한 빈곤의 해결책은 시장이라는 변수에 의존하기 때문에 위험할 수 밖에 없다. 경제성장을 통해 최하층의 빈곤을 극복하는 것은 Trickle down(쉽게 말해서 경제성장에 따른 상류층->중산층->서민->빈곤층 순서의 콩고물 주워먹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즉 빈곤층은 경제성장의 막차를 타게 됨으로써 가장 더디게 성장의 소득을 분배받고, 경기후퇴시에는 바로 직격탄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경제적 원조를 늘린다 하더라도 수혜국 정부의 무능력, 부패로 인해 빈곤 퇴치에 한계효용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이 부분은 후에 다른 책 리뷰에서 다시 서술하겠음) 빈곤층의 목소리내기, 참여를 지원함으로써 이와 같은 상황을 크게 개선하고 원조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실제로 라자스탄의 농부-노동자연합인 MKSS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 정부를 압박함으로써 식량원조를 횡령한 부패를 고발하고 상황을 개선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빈곤층의 참여권과 말할 자유를 회복하는 것은 빈곤국의 정부가 이들의 목소리에 책임감을 갖고 행정을 펼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정부의 의무 인식과 책임감 회복은 빈곤 극복의 중요한 과제이다.

 

 결국 빈곤은 단지 돈만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빈곤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 스스로 상황을 바꾸는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가난한 이들은 뭉쳐야 한다. 그리고 이는 가난한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으로써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빈곤이 인권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절대적 빈곤의 극복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상대적 빈곤의 해결을 위해서도 이는 시사점이 많다.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가난한 이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당장 굶어죽어가는 이들을 위해서 기부를 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동정심이나 시혜의식에서 머물지 않고 진정한 인류애와 책임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덕분에 굶주린 아프리카의 어린이를 나와 똑같은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그러나 쉽게 잊어버렸던 진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원조,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원조단체에 대한 후원이나 기부 등에 있어, 또한 빈곤문제를 바라봄에 있어, 부유한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갖는 시혜의식과 동정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로하여금 시혜의식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게 한다. 빈곤의 고통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박탈당한 그들의 인권회복을 돕는 일은, 동등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의무라는 중요한 진실을 깨닫게 한다. 빈곤의 해결은 잘사는 이들의 베풂, 선행이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사상은 한낱 헛소리에 불과한 것일 따름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도 시혜의식에 빠져있었겠지.

 

 인간으로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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