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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시대의 섭리(攝理)

EAST-TIGER |2010.05.04 10:45
조회 1,920 |추천 0

 

몇 달전부터 이준익 감독의 신작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감에 차 있었다.

사극에 탁월한 감각을 가진 그가 어떤 소재와 내용을 가지고 

제작했을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40년만에 최악의 봄 날씨가 지나간 따뜻한 일요일 오후 12시40분에,

상암CGV 1관에서 그의 신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보았다.

상암CGV의 최고의 장점은 영화 외에 공원, 월드컵 경기장, 마켓 등 

볼거리가 많다는 점이다. 

주말이라서 극장 안과 밖은 사람들로 붐볐고,

상영관인 1관에도 많은 관객들이 있었지만 매너 있는 관객들이라 조용히 볼 수 있었다.

 

 

"이 나라의 왕도 서자야! 언제까지 그렇게 꿈도 없이 개처럼 살래?"

 

때는 조선왕조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동인(東人) 정여립과 황정학, 이몽학은 대동계를 조직하여 

평등사회 실현과 왜구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고자 뜻을 함께한다.   

그러나 갈수록 세력이 커져가는 대동계는 조정대신들의 견제를 받고,

결국 역모로 모함을 받아 정여립은 의문의 자살을 하고

선조는 그에게 부관참시를 명한다.

정여립이 죽은 후 대동계는 이몽학을 중심으로 세력을 재편하고,

정여립을 모함한 조정대신들을 숙청하며, 한양을 차지하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그러나 황정학은 대동계의 본래 취지와 어긋나는 이몽학의 행동에 불만을 갖는다.

 

 

"구름에 가렸다고 달이 없는게 아니여."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님은 먼 곳에>의 이준익 감독.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감독한 사극을 좋아하는데,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들을 선택하여

시대적 상황과 지금 시대적 상황을 연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연출력이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그가 정극보다는 사극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많이 제작했으면 좋겠다.

영화평을 보니 관객들이 이번 영화가 전작 <황산벌>, <왕의 남자>보다

공감하기 어렵다는 평이 있지만, 이준익 감독 특유의 사극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었다.

<세기말>, <신라의 달밤>의 차승원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차승원의 연기력에 놀라움을 느꼈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야망이 불발된 직후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다.

<바람난 가족>, <너는 내 운명>, <사생결단>의 황정민은 맹인연기를 보여줬는데,

인상적인 연기였고, 차승원과 더불어 극 분위기의 한 축으로

긴장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황정민은 어떤 역이든 100%, 그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라 생각한다.

주로 드라마에서 두각을 드러낸 한지혜는

이번 영화가 그의 연기경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 영화에서 백성현를 처음 보았는데 수준 높은 연기를 보여줬다.

명품 조연들이 대거 참여했고, 가수 김창완이 선조역을 맡았다.

 

 

"양반은 권력 뒤에 숨고, 광대는 탈 뒤에 숨고,

 칼잡이는 칼 뒤에 숨는다고 하는데, 난 그게 싫더라고!"

 

영화는 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세상을 바꾸려는 자와 만들어 가는 자가 대립한다.

이몽학은 대동계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꿈을 가지고 한양으로 진격한다.

황정학은 대동계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이상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견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몽학을 뒤쫓지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죽은 꿈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자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여 현실을 깨려하고,

세상을 만들어 가는 자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만

더 나은 현실을 위해 부조리를 수정하려 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에는 기존의 반대세력을 이기기가 만만치 않고,

세상을 이상사회로 만들어 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지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뜻도 못 펼친다. 

이는 항상 시대의 흐름 속에서 대세(大勢)라는 것이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대세를 반대하는사람들보다 인정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꿈이 있어도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꿈이 없어도 얼떨결에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시대의 섭리(攝理)라고 할 수 있다.  

 

 

"몽학이는 지는 해를 따라가는디, 그걸 쫓아가는 몽학이는 구름이냐?, 달이냐?"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 군주제의 백성들이

10년 이상 살기 좋았다고 기록 되었을까?

중국의 요,순 시절이나 우리나라의 세종대왕 때도 백성들의 고통과 고민은 늘 있었다.

그래서 토마스 모어의 말처럼 이상사회라는 것은 꿈 속에 꿈일 뿐,

직접 실현할 수 없다.

항상 찬성에는 1%의 반대가 있기 마련이고(100%찬성이 더 의심스럽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세상을 혁파하려던 세력들은 시대의 대세를 이길 수 없었고,

혁파는 조용한 섭리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때와 시간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존재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된 일들이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서의 혁파는 백성들이 의지만 갖는다면,

단 시간 내에 충분히 가능하다.

즉, 백성은 더이상 연약하고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존재로 변했다.

그들에게는 놀라운 생명 에네르기가 있고,

지금까지 이 나라와 이 땅을 스스로 지켜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였다고,

해와 달이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구름이 걷히면 해와 달은 다시 온 세상을 비추고,

구름보다 해와 달로 인해 얻는 이득이 더 많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수라 말 할 수 없고, 움직인다고 진보라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분수를 알고,

일어나야 할 때와 앉아 있어야 할 때를 감지하는 것만큼 뛰어난 지혜도 없다.

구름에 가렸다고 해와 달이 없는 것이 아니듯, 해와 달은 언제나 때를 알고 뜨고 진다.

스스로가 그 때를 바꾸려고 대세를 거스리는 순간,

대세는 여지 없이 그런 불순물을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불의하고 악독한 대세가 바뀌는 때와 시간은 반드시 올 것이고, 

그 주체자는 백성들이 될 것이다.

김수영의 <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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