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학문적 글쓰기 수업의 대중적 글쓰기 과제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읽어보시고 의견을 나누어주세요. 안락사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들입니다. 가능하시다면 첨부한 진짜 소논문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0년 1월 10일 호흡기 제거 후 201만에 끝내 별세하신 김 할머니는 많은 매체들을 통해 대서특필되었고 유족과 병원 측의 법정공방 등을 비롯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었지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법원 판결 하에 존엄사가 시행된 것입니다. 존엄사란 소생할 가망도 없이 장기간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환자에 대해 생명 유지 장치 따위에 의한 연명(延命)을 중지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을 뜻합니다. 김 할머니는 호흡기만을 제거했으므로 존엄사에 속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존엄사는 안락사와 무엇이 다른 걸까요?
안락사는 크게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뉩니다.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와 같은 개념으로 치료 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뜻합니다. 적극적 안락사는 인위적으로 중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거나 고통 없는 즉사를 위해 약물을 투여하는 것입니다. 흔히 안락사라고 말하면 적극적 안락사를 뜻하는 경우가 많고 소극적 안락사는 존엄사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M 스캇 펙 박사는 자신의 저서 ‘영혼의 부정‘에서 진정한 안락사란 비교적 말기 단계의 현존하는 치명적 질병으로 육체적 죽음에 처한 경우, 그 고유한 생존적·정신적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받지 않고 행하는 자살 행위를 의미한다고 정의했습니다.
안락사에 반대하는 분들은 흔히 안락사는 생명의 질과 가치를 비교하여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행위로 삶에 대한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확실히 1939년 나치는 정신분열증 환자와 노망이 난 노인들을 죽이는 학살조치를 불쌍한 자들을 자비롭게 죽여주었다는 명분으로 작전명을 안락사 계획(Euthanasia program)이라고 붙인 일도 있습니다. 또한 소생이 힘들다는 의사의 진단만 있다면 치료비를 지출하지 않으려는 가족들의 일방적인 안락사 요청이 일어나는 등 생명경시와 세속주의에 물든 행태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의사들의 진단과 달리 치료가 가능했거나 환자가 소생하는 경우도 있으며 안락사의 허용이 자칫 조력자살과 자살을 모두 인정해주는 사회풍토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필자는 안락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안락사는 공식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항상 존재해왔습니다.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만약 어떤 사람이 치료할 수 없거나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병에 걸리면, 사제와 공직의 관리들은 그에게 병이 더 깊어지도록 두지 말고 죽음을 택해 자신을 괴롭히는 병에서 벗어나라고 권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만약 안락사가 없어도 되는 것이라면 수세기 전 사라졌어야 맞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안락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필요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중환자들의 생명의 질을 다른 일반인보다 낮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기몸살에 걸리거나 배탈이 나더라도 그 고통은 우리를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괴롭게 만듭니다. 하물며 몇 년을 병상에서 링거와 영양공급으로 연명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일반인이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되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때, 중환자에게 그 고통을 끊을지 이어갈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의 권리를 주는 것만큼은 도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으며 그 필요성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또한 2005년 기준 암환자 1인당 암의 평균 의료비는 평균 2974만 8천원이라고 합니다. 간병인은 자신의 시간까지 잃게 됩니다. 암환자가 이정도이니 희귀병이나 불치병 환자들을 몇 년씩 간병하는 것은 일반가정에서 도맡아 하기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환자 가족들의 소득수준에 따른 필수 간병기간 기준을 정하는 식의 법을 정해서 악용되는 것을 막고 진정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가려야 할 것입니다.
최근에는 시한부이거나 임종이 정해진 환자들을 보살피고 위안을 주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호스피스가 안락사 논쟁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호스피스는 분명 훌륭한 일이나 현재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주관하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사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지방에 따라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고 자원봉사에만 너무 의존하고 있어서 장래가 밝지 못합니다. 보험회사나 의사들은 비과학적이고 값이 되지 않는 호스피스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안락사의 실시여부를 논하기 전에 호스피스를 받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순히 제 견해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며 건설적인 비판과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