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억수씨의 '연옥님이 보고계셔' 가 대단원의 막을 바로 어제, 내렸습니다.
제가 이 만화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작년 성선언니를 통해서입니다.
같은 과 선배인 우리 스시이모는 내가 만화 빠순이라는걸 알고나서
이 만화를 한번 보라고, 처음엔 엄청 처웃다가 나중에 갈수록 질질 짰다고. 하며 소개해주었고
저는 네이버의 목요웹툰 코너에서 '연옥님이 보고계셔' 그림을 클릭했습니다.
평소에 만화를 어지간히 좋아하는 탓에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여러 웹툰,
워니의 골방환상곡, 서나래씨의 낢이 사는 이야기, 정글고등학교, 마음의 소리, 보톡스, 노블레스, 나이스진타임 등등 정말 지금도 웹툰 다 하나하나 챙겨보고 있는데요-
제가 처음 연옥님이 보고계셔를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타이틀 샷이 변하지 않았지만
그때는 솔직히, 웬지 촌스러워보이고 제목도 이상하다 싶었을 뿐이여서 관심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첫회보기를 누르고, 1화, 2화, 3화 보는데 그림체가 이렇게 귀여울수가 없는겁니다.
주인공 '정수' 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러니까 정수의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 결혼하는지부터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작고 동글동글하고, 사투리를 만만찮게 구사하는 참새같은 그림들이 너무너무 귀여웠습니다.
(정수가 자라고 난 뒤부터는 그림체도 같이 진지해지긴 했지만요.)
그렇게 저는 작년 봄 즈음에 정주행을 시작해서 오늘에서야 마지막회를 만나게 되었네요.
제가 이 글 바로 전에 포스팅해둔 118화는 마지막회의 바로 전 회인 118회입니다.
이 만화를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혹시 모르셨던 분들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옥님이 보고계셔' 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연옥님이 보고계셔, 115화 中)
어릴적 소설이나 재미있게 읽던 만화책을 읽고 또 읽고 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완결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엄청나게 완결을 기다립니다. 얼른 결말을 알고싶어서,
주인공들은 도대체 어떤 운명을 갖게 되는거지? 아우 미치겠네 궁금궁금해!! 하면서 말이죠.
그러다가 이야기가 정말로 끝나버리면, 가슴 한 켠, 정확히 말하자면 횡경막 부근이 저는 그렇게 아리곤 했습니다.
으으.... 다시는 애네들을 만나지 못한다니!! 완결 너머로 살고있을 그들을 만날 방법이 정녕 없다니!!
하면서 말이죠.
특히 이야기가 슬프게 끝날 경우 그 아픔은 더해갔습니다. 아우... 말도 못했어요
혹시 파이널 판타지 아세요? 외국에서 건너온 3D에니메이션이였는데 (절대 게임 아닙니다)
먼 미래를 바탕으로 그려지는 공상과학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맨 마지막 장면이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과 인류를 위해서 죽는 것이였습니다!!!!!!!
가족끼리 다같이 나가서 아직도 기억합니다. 대전 은행동 아카데미극장!! 대전극장 갈까 아카데미극장갈까 하다가 아카데미극장을 갔었더랬죠. 그리고 혹성탈출을 볼까 파이널 판타지를 볼까 하다가 이걸 봤었어요.
얼마나 인상깊었으면 그 어릴때 일을 이렇게 생생히 기억하고있을까요?
아무튼 이게 중요한게 아니고, 결과는 슬픔의 도가니탕이였습니다.
영화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 차 안에서 저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집에 돌아와 엄마가 저녁상을 차리는 동안 혼자 제 방 침대에 새우마냥 누워서 한참을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정말 남자주인공을 굳이 죽였어야 했을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정말 없던거야?"
(연옥님이 보고계셔 79화 中)
만화 속 정수는 90년대 후반의 평범한 대학생입니다.
정말 티없이 맑은 정수의 어린시절은, 어릴 적부터 어렵던 집안 사정이 점점 더 기울면서 밝음을 잃어갔습니다.
어둡고, 밝아졌다가, 고민하고, 가뿐해 하다가, 우울하고, 다시 기뻐하고
이렇게 한없이 평범한 정수의 집은 다른 집보다 조금 더 어려웠습니다.
정수의 가족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아빠, 엄마, 오빠, 여동생의 구조였고
정말 많은 드라마에서 다뤘던 주제, I.M.F.
정수의 아버지 역시 그것을 피해가지 못하셨구요
어머니는 정말 많은 드라마에서 다뤘던 것처럼 식당에서 힘들게 일을 하게 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듯 어머니는 한푼, 두푼 아껴가며 생활비를 마련하시고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술만 드시던 때도 있었습니다.
정수는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평범한 대학생이였구요
정수의 여동생 진수도 우리 모두가 예상하듯이 작고, 조그마한 그저 평범한 여고생일 뿐이였습니다.
정수는 아버지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정수의 아버지는 굉장히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셨는데,
알잖아요, 이제 또 어떤 뻔한 말을 할지.
생각만큼 세상이 뜻대로 굴러가는 곳은 아니였단 말입니다.
(연옥님이 보고계서 78화 中)
이 이야기가 그렇게 뻔하고 뻔한 대한민국의 1남 1녀 가정의 이야기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그렇게 오랜기간 그려지고, 제 곁에 1년이 넘는 시간동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의 끝이 나를 더 이상 어쩔 줄 모르게 만들지 않는것은
그리고, 나와 당신들을 울고 웃길 수 있던 이야기는
이 이야기가 우리를,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만 덩그라니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벼랑끝에 몰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데 날 자꾸 누가 간지럽히는 것 같다는 생각.
왜 쟤는 되는데, 나는 절대 안되는걸까? 하던 생각.
왜 하필 그게 우리집일까, 그게 내 일일까, 하던 생각들 -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지 몰랐거든요.
솔직히 나만 힘든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너무 별것 아닌걸로 앓는소리를 하고 있는건 아닌지,
나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는지,
근데 정말 억울한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건지? 하는 그런 생각이요.
그리고 그 얘기 다 해주려면 도대체 얼마를 더 거슬러가서부터 얘기해줘야해요?
이야기의 처음부터 이야기해주려면 3박 4일을 화장실도 안가고 말해줘야 할 정도잖아요.
그래서 많이 막막했을겁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저요? 아니요, 저도 맞지만, 나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모두가요.
많이 막막하고, 답답하고, 때로는 갈비뼈 안에 든게 아무것도 없어서 바람이 숭숭 통하는 느낌까지
어딜 가도 나는 티끌만도 못한 존재일까? 하는 그런 생각들이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사실은, 나만 그런게 아닌걸 아니까 남들한테도 징징대지 못하겠는거,
설사 얘기해주고 싶어도 -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너무 막연했다거나 했잖아요.
(연옥님이 보고계셔, 117화 中)
그리고 말이지요, 이 이야기는요,
제가 더 힘내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용기를 주었어요.
정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어요.
그런데 집도 어렵고, 정수는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는것도 아니였구요,
집도 어려운데 돈 안벌고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안될것같잖아요.
그래서 그냥 묻어두고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고, 학비를 보태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안타깝게도 반액 장학금을 받게 되어 닭집에서 알바를 한 적도 있었구요.)
이야기가 끝나갈 때 즈음인 117화, 저 위의 그림에서요
정수는 친구 고석이가 기타를 치며 악을 쓰고 '빨개!!!!!!!!!!!!!!!!' 라는 노래를 하는걸 보면서
그림을 그려야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자, 그럼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바로 이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억수씨는 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만화를 그리게 된 정확한 사연 또한 마지막회에 자세히 써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그 중 일부를 발췌한 것 ^^)
지금 우리, 나와 같은 대학생들이 생각하기에 26살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는건 정말 무모해보일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전문적으로 배운적도 없고, '좋아해' 라는 마음만으로 누군가가 무엇을 시작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향해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림과 글, 그리고 많은 여백으로 많은 걸 느끼게 해준 억수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고 싶은데, 나 정말 하고싶은데,
그것을 향해 확신과 자신감은 없어도, 나 생각만 해도 코끝이 파르르 하고 떨리는데
정말 하면 안되는거야?"
라고 말하는 순간까지도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또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을지, 그게 어떤 마음인지 -
그리고 이렇게 멋지게 해내주셔서,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참,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에게 드리고 싶었던 얘기는 -
P.S.
이 글 바로 전에 포스팅해둔 118화에서 말슴해주셨듯이
세뇌당하고 세뇌당해 이젠 이상해져버린 '꿈이 없다' 는 것은
생각보다 별 일이 아닌 거라고
허심탄회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괜찮다'고
나 더 이상 혼자 울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 아직은, 좀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아무튼, 살아가는건 그렇게 힘들게 생각할 필요도,
너무 겁을 낼 필요도 없다는걸
배움이 아니라, 따라하는게 아니라, 외우는것이 아니라
느꼈습니다.
당신에게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