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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드립니다. 조금 오래걸리더라고 읽어보시고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안녕하세요. 현재 22살인 평범한 학생입니다. 저는 이제 갓 20살이 된 여동생과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식과 가족들의 행복하고 편안히 살 권리와 미래를 짓밟은 제 친아버지와 그 옆에서 그러한 행동을 옹호해주는 한 여자의 행태에 대해 고발하고자 해서입니다.

09년 수능이 있기 5일 전 저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사는 것은 내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고 너무나 중요한 시기인지라 등교시간을 이유로 지옥 같은 아버지의 곁에서 빠져나와 동생과 함께 집을 나왔습니다.

그 날 아침의 상황은 이렀습니다. 아마 고등학교를 다니셨고 수능뿐만이 아니라 모든 수험생이시라면 다들 공감하시겠지만 수험생은 정말 피곤하죠. 동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날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잠이 부족했던 동생은 평소보다 약 5분가량 늦게 일어났고 그게 그 날 사건의 꼬투리가 되었죠. 전날 큰아버지라는 사람과 집안에서 밤새 술을 마신 아버지는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동생이 조금 늦게 일어난 상황에 극도로 흥분해 부엌에 있던 식탁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부수었고 심지어 직접적으로 저희를 향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식칼을 뽑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왜 어머니가 말리지 못 하셨냐고요? 어머니는 08년 7월 8일 아버지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이 사건의 원인도 역시 아버지였죠. 제 기억으로는 08년 5월 쯤 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회사 직원 분들과 회식 중이셨고 아버지 역시 그날 회식을 하셨습니다. 두 분이 연락을 하시던 중 서로 근처에서 회식 중인걸 아셨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회식 하고 계시던 곳으로 간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 술집은 라이브카페였고 다들 아시다시피 손님들이 직접 노래도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셨던 아버지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하셨고 한 곡이 끝나 다른 손님들의 순서가 되었습니다. 근데 아버지는 계속 하겠다며 실랑이를 하였고 마침 그날 어머니의 가계를 도와 일을 하던 아들 분의 얼굴을 가격했고 코뼈가 부러지는 해를 입혔습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날 저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급히 그 장소로 갔고 경찰도 도착해 있더군요. 저는 같이 지구대에 따라갔습니다. 아버지는 아니라고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고 우겼고 어머니는 제가 보는 앞에서 그 폭행을 당한 아들 분께 봐달라며 비셨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언제나 사고는 아버지라는 사람이 치고 어머니는 처리만 하셨습니다. 이 일로 재정적 어려움이 커져갔습니다. 그 당시 저는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고 변변치 않은 살림에 공과 대학을 가서 등록금은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은 비쌌죠. 상황은 벌어진 것이고 조금이나마 해를 줄여보고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화에 계신 이모 댁을 찾아갔습니다. 어떤 사건인지 또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선 대충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더 힘들어하실까봐 모른 척 했습니다. 또 당시에 항상 제가 아버지 차로 어머니와 자율학습을 하고 늦게 돌아오는 여동생을 데리러 가곤 했는데 어머니는 항상 자기도 면허가 있어 운전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저는 친구와 함께 어머니를 학원에 등록시켜드리기 위해 방학을 이용해 돈을 벌고 있는 중이였습니다. 7월 1일 어머니 생신이셨고 어머니는 힘든 상황이고 저도 학생으로서 넉넉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난생 처음 스스로 돈을 번다는 생각과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집에 가는 길에 작은 화장품 하나를 사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제 생일이었고 어머니는 아침 일찍 나가는 저를 붙잡으시곤 오늘 생일이니 놀다오라며 어제 선물은 고마웠다며 저에게 5만원을 쥐어주셨습니다. 변변치 않은 생일 선물이 마음에 걸렸는데 세상이 참 무심한 게 그게 제가 어머니에게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 되었더군요. 08년 7월 5일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일을 가지 않는 날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이모 댁에 다녀오신다며 길을 나서셨죠.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게 다녀오시라는 짧은 말만 건넸고 그 짧은 인사가 우리 모자가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월요일 날 오신다던 어머니는 제가 일을 나갈 때 까지도 오시지 않았고 아버지는 저에게 어머니가 차에서 내려 그냥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다음날이 되고 또 다음날이 되도 어머니 소식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전 어머니를 믿었기에 깜짝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냉정하다는 가족들의 비난에도 낮엔 일을 하고 밤이면 어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나선 한 이틀 후였습니다. 그날도 일을 했죠. 그런데 갑자기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수화기에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누가 장난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가보니 어머니가 나갈 때 입고 가셨던 옷이 증거자료로 있더군요. 어머니의 시신을 차마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강화 부근 화학발전소 근처에 있는 한 회사에 그물에 걸려 발견되셨습니다. 그 해 여름은 폭염으로 찌는 듯한 더위였고 전 볼 수 없었지만 신원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시신이 부패되어있었다고 하더군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의문스러웠습니다. 헌데 역시나 아버지란 사람과 술이 문제였더군요. 이모 댁에서 그 전날 술을 마시고선 새벽에 나오는 길에 음주에 걸렸다고 하더군요. 이 사건도 어머니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계셨는데 또 큰 사건이 하나 닥치니 새벽에 몽롱한 정신에 안개까지 끼어있어 순간적인 충동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음주 재측정을 하시던 도중 차에서 내리셨다고 합니다. 그리곤 몇 일 뒤 그렇게 발견된 것이지요. 폭행 사건과 어머니 사망 그 중간에서도 또 한 번 큰일이 있었죠. 그 날도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는 시험을 앞두고 있는 저에게 저녁 11시 경에 다 같이 시흥에 가자며 운전을 하라고 하셨죠. 갔습니다. 어머니 여동생 모두 그 밤에 시흥에 있는 한 식당에 갔죠. 어머니는 입맛이 없으신지 드시질 않으셨고 그게 또 빌미가 되었죠. 돌아오는 길에 보조석에 타고 계시던 아버지는 뒷자리에 계신 어머니에서 입에 담지 못할 말들과 친정에 대한 욕을 했고 심지어 제가 운전을 하고 있는 도중에 뒤로 돌아 주먹질 까지 하였습니다. 집에 거의 도착해가던 중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 차에서 내리셨고 저는 그대로 집에 도착해 가까스로 아버지를 재우고 어머니에게 집에 들어오시라고 연락했습니다. 다행에 어머니는 멀리 가지 않으셨고 곧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었는데 그 날 어머니가 동생에게 전화를 하셨다고 하더군요. 너무 힘들다고 지금 터미널이라고 미안하다고 또 이모도 말씀해주시더군요. 그 날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셨다고.. 어머니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어머니 영정사진 앞에서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곳에서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딱 한 가지 생각만 들었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평소 몸이 좋지 않으셨던 외할아버지가 어머니 49제가 있던 날 돌아가셨습니다. 여러 병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소리만 들을 수 있으셨던 할아버지셨는데 이상하게도 저희가 찾아갔을 땐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손을 잡아드리니 꽉 잡으시기까지 하시고. 아마 할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셨고 힘내라고 제 손을 꽉 잡아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추석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실 어릴 적부터 저는 명절이 싫었습니다. 가족들을 만나는 건 좋았지만 술이 한잔 두잔 들어가면 언성이 높아지고 항상 화풀이의 대상은 우리였으니까요. 코뼈를 부러트린 사건 판결에 결과가 그 즈음해서 나왔습니다. 이것 또한 역시 저희를 괴롭힐 빌미를 잡은 것 이였죠. 당시 음주까지 걸려있어 법원까지 이동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저에게 또 운전을 시켰죠. 사실 버스로도 한번만 갈아타면 가는 곳을 항상 옆엔 비서처럼 사람이 있어야 했죠. 그 대상이 어머니였다가 이젠 제가 된 셈 이였죠. 판결이 나고 벌금을 선고받고 집에 오던 길 이번엔 제 서툰 운전 실력이 빌미가 되었죠. 이런 상황에 무뎌진 저는 상황을 피해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곤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할머니를 모시고 장을 보러 나갔죠. 그 당시 저는 제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와 장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오더군요. 왜 오지 않냐며 그래서 필요한 것들을 빠르게 사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또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항상 술 이였습니다. 어머니를 술 때문에 보내고 저희와 약속을 했었죠. 술을 끊겠다고. 사실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곤 그날 밤까지 술을 계속 마셨고 그날 자정 쯤 저에게 전화를 하더군요. 저는 할머니 댁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미리 와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곤 갑자기 강화에 가자고 할아버지 산소에 가자고 하더군요. 사실 무서웠습니다. 어린 나이였고 모든 방패는 어머니였는데 지금은 혼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 그래서 가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 때문인지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할아버지 산소를 파려고 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죄책감 때문인지 어머니의 죽음의 이유를 다른 사람들로 돌리려고 하더군요. 아침이 되었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으로 간 저와 동생 할머니 고모에게 문을 열자마자 집 안에 있던 돌을 던지려 하더군요. 모두 피했습니다. 다급히 나갔고 다른 곳으로 몸을 숨겼죠. 당시엔 고모 댁에 있었고 이틀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니 또 연기를 시작하더군요.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같이 찜질방에 가자더군요. 동생과 저는 같이 갔고 다시 또 고통이 시작된 것이었죠. 역시 술을 마신 상태였고 운전을 제 몫 이였죠. 가던 길부터 추궁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있었는지 등등.. 한번은 항상 제 말을 믿고 따르던 동생이 그러더군요. 너무 힘들면 난 오빠랑만 있으면 되니깐 어디든 가자고 아니면 엄마를 따라가자고.. 그런 생각은 해선 안 되는 것이었지만 사실 술에 취해 운전을 하라고 할 때 그냥 나 하나 희생해서 같이 바다에 빠져버릴까 하는 생각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이런 상황들을 어찌어찌 잘 넘겨가며 지내던 와중에 어느 날부터 갑작스레 친절해지더군요. 무슨 꿍꿍이가 있어 이러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웃고 잘 지내더군요. 좋았습니다. 그저 고통 받지 않으며 지낸다는 사실이 헌데 이게 또 다른 갈등과 고통의 시작이더군요. 갑자기 사람이 변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자를 만나고 있더군요. 너무 큰 충격이어서인지 아무 느낌도 없더군요. 그게 불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3~4개월 후에 일이거든요. 어느 날은 저와 동생을 부르더니 얘기하더군요. 이 여자가 얘기하면 자긴 담배도 술도 다 끊을 수 있다고. 황당하더군요. 평소 그렇게 우릴 괴롭혔고 어머니를 죽음까지 몰고 간 술을 끊겠다고 저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여자가 원한다면.. 향수도 사더군요. 페로몬 이였나? 그게 여자들이 좋아하는 거라고 하며 주문하더군요. 이 여자는 금방 끝이 났습니다. 그리곤 어머니를 만날 당시에 알던 여자를 만나더군요. 이 여자는 가정도 있죠. 근데 행동이 참 봐줄 수 없더군요. 새벽이면 밖엘 나갔습니다. 일주일에 2~3번은 새벽같이 나가 곧장 회사에 간다던가 출근 시간 즈음 집에 들렸다가 나가더군요. 대충 알았죠. 새벽에 남녀가 나가서 밥을 먹을리도 없고 그렇다고 그 시간에 주변 상가들이 문을 연 것도 아니고. 역시나 제 예상이 맞았습니다. 카드내역을 보니 참 자주도 다녔더군요. 그래도 둘이 돌아다니며 저와 동생을 지금까지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고 전 다시 수험생이 되었습니다. 동생과 같이 수능준비를 하게 된 것이죠. 당시까지만 해도 꿈이 있었죠. 그래서 공부를 또 한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대로 군대를 가버리기엔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 동생을 홀로 둘 수 없었고 사실 학비를 내고 복학을 하기에도 불가능 했었죠. 어쨌든 그렇게 힘든 한 해가 지났습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학원에 다녀가며 공부했지만 저는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보며 성적도 곧잘 나왔죠. 헌데 한 3월 달 즈음 아버지 영수증 중에 학원 영수증이 있는데 120만 원 가량의 금액이 찍혀있더군요. 학원 위치는 안산이었고 그 곳은 그 여자가 사는 곳이죠. 그 여자는 제 동생과 동갑인 딸과 좀 더 어린 아들이 있는데 그 딸의 학원비 목적으로 카드를 쓴 것이더군요. 황당했죠. 아들은 한 푼도 아까워하며 어렵게 공부하고 있는데.. 언젠가는 그런 말도 했습니다. 그 여자의 딸이 인천 소재의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며 학교에 다니라고. 항상 저희 의견 따윈 없었습니다. 말을 해보라곤 하죠. 그리고 말을 해서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 싶으면 더 나은 선택일지라도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죠. 6월 달 정도까지는 다행히 이런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저와 동생은 사실 아버지란 생각은 없었기에 저희에게 피해만 안주면 그만이었죠. 이런 상태가 서로에게 나쁘지 않았고 5분 거리에 사시는 친할머니께서는 이틀에 한 번씩 저희 집에 오셔서 반찬을 해주셨고 저는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청소를 도와드리며 제가 할 일들을 해왔습니다. 그리고선 한 7월 달쯤 되었을까요? 다시 시작되더군요. 사실 그 전까지는 평화로웠다고 표현했지만 간간히 그 여자와 다투었거나 술을 먹고 저에게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 데리러 오라거나 타 지역으로 오라고 해서 데리러 간일은 너무 많고요. 그리고 집에 오면 매번 그렇듯 어머니 얘기부터 시작해서 외갓집 험담과 자기의 행동에 대한 얘기를 하죠. 그러다보면 아침이 되고 전 동생을 깨워 학교를 보내고 조금 뒤 아버지를 깨워 밥을 차려주고 회사에 가게하고 청소를 하고 그 시간 이후부터가 제가 공부를 한다거나 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이었죠. 어쨌든 7월부터 그 끔찍한 나날들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갑자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여자와 만남이 줄어들기 시작하더군요. 그 당시 이미 회사와는 문제가 많아 집에서만 있는 상태였고 아무래도 경제적인 것과 그 여자와의 관계가 다시 저희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다시 그런 생활은 지속되었고 9월 이었을 겁니다. 근처에 사시는 큰 아버지란 분은 혼자 사시는데 언제부턴가 그 분을 집으로 불러와 술을 마시더군요. 가끔은 그 여자도 집에 왔고요. 할머니가 계시는 데도 오는 걸 보곤 많이 놀랐습니다. 계속 이런 날들의 연속이었고 저와 동생이 수능을 한 20일 쯤 남기고 부터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행동까지도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맞아서 손가락이 부러지고 갈비뼈에 금도 간 적도 있곤 했지만 그 정도의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살기라는 게 느껴졌고 결국 수능이 5일 쯤 남았을 때 집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집을 나오고 나서도 공포는 계속되었습니다. 항상 협박문자와 밤새 계속되는 전화 등등.. 고모가 네 분 계시는데 자기 생각엔 고모들이 저희를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고모들에게도 협박하고 심지어 찾아가기까지 했더군요. 사실 고모들에게 찾아가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항상 긴장된 상태로 한두 달쯤 지내왔습니다. 올해 1월 새벽에 친할머니 댁에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그냥 온 게 아닙니다. 그 시간에 정장을 입고 가죽장갑을 끼고 칼을 들고 왔다고.. 그리곤 우리가 어디 있는지 말하라며 얼굴에 칼을 들이대고 집에 있는 가구나 물건들을 부수었다고 합니다. 겨우 그 상황을 넘겼지만 얼마 뒤 다시 찾아와 할머니에게 폭행을 가했고 할머니께서는 외상과 우울증 등의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셨었습니다. 얼마 뒤 큰 고모부를 만난 자리에선 술을 마시다 자기 감정에 못 이겨 큰 고모부를 소주병으로 가격했고 그 장면을 보다 못한 가게 주인 분께서 119에 신고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처참해 그 장면을 신고한 119 측에선 사진으로 남겨놓았고 사건이 넘어가 고소를 하라고 하였지만 그냥 단순히 합의만 하고 그냥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곤 벌금이 나오자 고모부에게 돈을 내라며 협박 문자를 보냈더군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전문의는 제가 지금껏 모아온 자료들 주변사람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장기간의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셨고 할머니와 저는 입원에 동의하였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던 그 날 새벽에도 만취한 상태로 협박문자와 전화는 계속되었고 아침이 되어서 저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병원 관계자들과 찾아갔습니다. 문을 열고 병원에 가자고 했고 아무런 말없이 나오시더군요. 사실 그 전부터 자기도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것 같다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이상해진 것 같다고 누누이 말해왔고 가겠다고 약속까지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병원에 가서 담당의사분과 상담 후에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제 적금과 일을 하고 조금씩 끌어 모은 돈으로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학교등록도 하지 못했고 군대도 미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병원에 입원한지 한두 달쯤 되었고 병원에서도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어 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잘 지내왔습니다. 사실 고소도 할 수 있었고 영원히 안보며 지낼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이기에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정말 치료가 잘 되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극단적인 방법은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일전 큰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여자가 아버지의 입원이 부당하다며 사건을 의뢰했더군요. 그 의뢰한 곳이 사람도 찾아주고 하는 것 보니 그렇게 믿을 만한 곳도 아닌 듯한데 저한테 오늘 제안을 하더군요. 우리와 가족들을 다신 건드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쓸 테니 아버지를 퇴원조치 시켜달라고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이 저를 처벌하려하고 동생과 저를 위해 하루하루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인데 이런 일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로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여자는 의뢰할 때 자기 신분을 가족이라 속이고 의뢰했더군요. 병원에 와서 면회를 요청했을 때에도 큰 아버지라는 사람과 같이 와서 둘이 부부라고 속여서 면회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자식도 있는 사람이 아버지와 같은 휴대폰 커플요금제를 쓰고 멀티메일로는 차마 어머니란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의 사진까지 전송했더군요. 제가 어떠한 방법을 취해야할까요? 너무 억울하고 급하게 쓰다 보니 말 앞뒤가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런 점은 조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추천수14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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