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프리즘 2010-06-29]
잉글랜드 축구가 침몰했다. 패인은 단순했다. 그들보다 독일이 훨씬 더 잘했을 뿐이다. 루니는 화만 냈고, 램파드는 슛만 했고, 제라드는 울상만 짓다가 그냥 그렇게 끝나버렸다. 대회 전까지 44년 만의 월드컵 우승을 외쳤던 탓에 16강 성적표가 더욱 초라하게 보인다.
선수단의 퀄리티, 감독의 능력, 준비상황 등, 어느 쪽으로 보나 잉글랜드의 실패는 '당연한 결과'보다는 '충격'에 가깝다. FIFA 선정 '올해의 선수'를 노리는 웨인 루니를 비롯해 프랭크 램퍼드, 스티븐 제라드 등의 스타플레이어와 함께 선수들보다 더 큰 존재감을 자랑하는 파비오 카펠로가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었다. 잉글랜드는 유럽 지역예선 10경기를 9승1패(34득/6실)라는 압도적 실력차로 통과했고, 월드컵에서도 2002, 2006년 2연속 8강 진출의 기록도 남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는 남아공에서 처절하게 실패했다. 4경기에서 3골밖에 넣지 못했고, 겨우 1승을 거뒀을 뿐이다. 그들이 '축구 변방'이라고 일컫는 한국도 같은 수의 경기에서 그들보다 두 배나 많은 골을 터트렸는데 말이다. 팀의 주포 루니는 2006년과 마찬가지로 득점 제로로 끝나버렸고, 램파드는 월드컵 사상 득점 대비 최다 슈팅 기록을 갈아치웠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실패였다.
잉글랜드인들은 프리미어리그를 이야기할 때 흔히 '세계 최고',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등의 수식어를 동원한다. 리그의 매출 규모와 전세계적 인지도라는 관점에서는 그 수식어들은 자화자찬의 미사어구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리그는 상업적 관점에서 '최고'를 점할 뿐, 퀄리티 면에서는 주장이 엇갈린다.
'상업적 관점'이라고 말한 이유는 프리미어리그가 전세계 축구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베스트 셀링' 리그이기 때문이다.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상품이란 그 상품의 인지도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졌음을 의미한다. 즉, 프리미어리그는 가장 '유명한' 리그인 것이다. 소비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베스트 셀러의 품질이 가장 좋다고 믿어버린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상품의 품질과 가격은 공급수요 곡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베스트 셀러의 품질은 시장 수요에 최적화될 뿐이다. 따라서 프리미어리그 경기와 선수들의 품질은 전세계 축구 팬들의 공통 입맛에 가장 최적화되었을 뿐, 실력적으로 반드시 '최고'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또한,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실력은 팬들에 의해 재가공되고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짙다. 팬들은 주로 스타플레이어가 가장 잘했던 장면만 기억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루니가 지난 시즌 보였던 엄청난 득점력만 기억하고, 그가 유로2004 이후 메이저 대회에서 골을 넣은 적이 없다는 사실은 애써 망각한다. 알다시피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의 무득점 징크스는 깨지지 않았다.
'우승 청부사' 카펠로의 전술 자체에 대해서도 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실제로 대다수의 잉글랜드 팬들은 대표팀의 성공 예상 근거로 "감독이 카펠로니까"라고 믿었다. 하지만, 카펠로는 잉글랜드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는 전통적 4-4-2시스템을 고수하면서도 그 전술의 기본인 윙어를 갖지 못했다. 제라드는 가레스 배리에 밀려 보직변경한 윙어였고 제임스 밀너 역시 윙어로서 갖춰야 할 스피드와 테크닉이 결여된 스타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남아공 월드컵에 나섰던 잉글랜드의 베스트XI은 효용성보다는 이름값으로 채워졌다. 카펠로 본인조차 스타플레이어들의 '유명세'에 현혹된 셈이다.
현재 잉글랜드는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유소년 시스템 선진화, 자국 출신 선수들의 보호, 자국 출신 감독으로의 교체 등, 갖가지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 쏘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 옳은 이야기들이지만, 아쉽게도 이런 현상은 메이저 대회가 끝날 때마다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었다. 많은 발전방안들이 지금까지 특별한 효과를 얻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문제 파악이 잘못된 탓일 것이다.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아무리 좋은 두통약을 투여해도 복통은 사그라지지 않는 법이다.
〈사커프리즘 홍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