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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짤라버리겠어 |2010.07.06 11:02
조회 2,294 |추천 8

2010년 7월5일 밤 10시 30분 경.
헬스와 살사의 고된 강행군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순식간이었다.
우리집 앞은 대학가 주변으로 한밤중까지도 술집과 상가가 많고 인적이 빈번하며
가로등이 아주 밝은 지역이다.
내가 우리집을 선택할 때 가장 고려했던 '안전'한 구역이었던 것이다.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불과 1-2m 상간, 5-7초 사이의 아주 짧은 순간에.


나 역시도 그렇게 느꼈지만 당시 나와 통화 중이던 친구의 진술에 따르면
정말 계속 떠들다가 단 몇 초 간의 정적이 흐른 후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현관을 지나 계단을 반쯤 올라간 내가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 순간,
짐승 한 마리가 달려왔다. 저항을 하거나 피할 새도 없었다.
다음 순간 나는 완력에 의해 벽에 밀쳐졌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온 몸으로 저항하는 나를 내리 누르기 위해 상반신을 밀어 부쳤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정도의 최소한의 도움을 요청하는 단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어둠을 가르는 비명 뿐이었다. 목이 터질만큼 비명을 질러댔고
그와 일행으로 추정되는 다른 남자 하나가 달려와 그를 떼어냈다.

평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거시기를 있는 힘껏 갈겨 주겠어'따위의 다짐은 밀고 들어올 틈조차 없었다.


그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 남자가 나를 밀어 붙이고 그 후 그를 떼어낸 남자가 오기까지 불과 1분도 채 걸리지 않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순간 느낀 공포는 실로 참혹했다. 옛날 메콩강 물에 빠져 죽기 직전의 생존본능과는 다른 혼돈의 공포였다.

짐승이 그 짧은 순간 할 수 있었던 짓 역시 많지 않았다.


내 가슴과 성기에는 손도 댈 수 없었고 피하기 위해 내가 옆으로 쓰러졌고 그 사이
나는 구출되었기 때문에 짐승이 한 짓이라고는 내 허벅지와 어깨를 밀친 정도였다.
하지만 그 사이 내가 느낀 공포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나는 대학시절 관련 기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체계적으로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철저히 교육받은 사람이었고 다양한 케이스를 알았으며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해 본 사람이었다. 머릿 속이 백짓장 같은 와중에도 나는 인상착의를 기억하기 위해 티셔츠와 보이지 않는 바지, 키와 얼굴생김을 끊임없이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고 절박하게 비명을 질렀다. 있는 힘껏.

 

그 남자가 나를 떼어내자 짐승은 달아났고 일행으로 추정되는 그 남자는 내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술이 너무 취했어요."
이렇게 말하는 그 남자 역시 술통에 들어갔다 나온 듯 술에 쩔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세상의 정의는 침묵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그 사람이 누구냐부터 물었다.
횡설수설이다. 아는 사람이랬다가, 모르는 사람이랬다가.
육감 상 분명 아는 사람이다. 데리고 대로변으로 나갔다.
마침 1층 인테리어 사모님이 일찌감치 가게를 닫았는데 뭘 두고 가셨는지 오셨나보다.
자긴 그 비명소리가 장난치는 건줄 알았단다.

아무도 그 비명소리에 달려오지 않았다. 우리집 건물에 사는 사람도, 근처 술집에 있던 사람도, 길거리에 지나가던 사람도.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경찰을 부르고 짐승의 연락처를 요구했다. 모른단다.
일단 이 남자 신분증과 명함을 받았다.


갑자기 내 시선이 들어오는 10m쯤 전방에 빨간 단가라 폴로 셔츠를 입은 새끼가 어디선가 튀어나와 뛰어갔다.
"야 이 새끼 너 거기 안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아시겠지만 웬만한 남자보다 더 깡다구가 있고 간땡이가 부은 여자다.
하지만 그 공포는 .. 난 여전히 두통과 어지러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있었다.
게다가 힐을 신고 뛰어갈 수도 없었다. 나의 악다구니에 누가 쳐다보는지는 상관없다.
나는 피해자다.

 

경찰이 왔다. 정리를 해서 남자를 보내고 경찰차에 탄 다음 도망간 그 새끼를 잡기위해
동네를 돌았다. 나의 육감은 다시 한번 적중했다.
"아저씨 여기까지 도망왔을리가 없어요. 저 길로 가주세요."
골목을 5m쯤 들어갔을까? 길바닥에 쓰러져 쳐자빠져 자고 있는 그 새끼가 보였다.

"확실해요. 이 놈이에요. 아까 그 사람 불러서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경찰서로 갔다.
단단히 들어라. 대한민국 경찰들아.
나보다 허술한 병신들아.

 

1. 성폭행과 추행의 차이, 이후의 처벌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
의도? 이 새끼 의도가 추행인지 폭행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테고 강간 미수라면
입증을 해야할 텐데 지금 장난빠니? 내가 이 새끼 강간의도를 증명하기 위해 당해줬어야 하니?

 

2. 좋다. 벌금형에 처하자. 나는 상해를 입지도 않았고 강간을 당하지도 않았으니.
(아시나요? 강간이 되려면 성기가 삽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병신같죠?
이런 사전 지식이 있는 저도 경찰서 가니 버벅거려지던데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나
어린 아이들은 정말 울다가 쓰러질 겁니다.)


자, 그 벌금 내가 갖니? 나라 주지 .. 제가 피해보상 받으려면 민사를 걸어야 하고
이 또한 입증해야 되니 어느 미친 여자가 이 짓을 하겠습니까?

 

"(위의 것을 간단히 설명하며) 아저씨, 제 의도는 저 미친 새끼들이 술 쳐먹고 다시
이런 짓을 못하게 하는 것이며 저 이외의 제 삼자가 피해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신변노출과 귀찮음을 무릅쓰고 여기 온 겁니다. 제가 원하는 처벌은 아저씨들이 눈 감아주고 데리고 나가서 힐로 몇번 찍어 주는 거구요, 거시기 한번 세게 갈겨 주는 건데
그렇게 좀 해 주실랍니까?"

 

'이런 황당한 여자를 봤나?'는 눈빛과 몇 초간의 정적.

 

"아가씨, 그건 안 되죠. 폭행죄가 됩니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모른 척 해달라구요."

 

3. 그래서 신고/고소 하실 겁니까? 자세히 진술을 해 주세요.
그러니까 아가씨가 걸어들어가는데 blah ~ blah ~

 

"아저씨, 이리 나와 보세요. 아저씨가 대역 하세요.
그러니까 저 새끼가요. 제가 올라가는데 달려와서는 이렇게 밀쳐버리고 .."

 

오른손으로 경찰 아저씨 어깨를 밀치고 왼손으로 허벅지 뒷쪽에 손을 갖다 댄 다음,
정확하게 재현해 줬다. 도대체 얼마나 수치스럽게 할 건가?

 

"네 성기와 가슴은 만지지 않았습니다. 엉덩이도요. 그리고 전 정신이 없어서
설사 스쳐갔다 해도 기억이 나지 않거나 못 느꼈을지도 몰라요."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 훈련받은 나조차 이러한 진술을 하는 것은 부끄럽고 불쾌했다.
이 세상 유아 성폭력에 대한 증오심이 가슴 깊이 불타올랐다.
그 아이들은 평생을 정신적 공황 속에 살아갈 것이다.
2차 피해는 바로 검경에서 하는 짓이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결코 완전히는 치유될 수 없으며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짐승새끼는 경찰서 와서까지 소파에서 쳐자빠져 자다가 정신이 들었는지
세수를 하고는 무릎 꿇고 빌기 시작한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술이 취해서요.

"아니 술취하면 그래도 되냐? 이 병신 새끼야. 어이가 없다."

옆에서 이제는 아는 사람으로 증명된 그 남자가 한 마디 더 거든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격이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요. 좋아서 그랬나봐요."

"아 이 병신아. 날 언제 봤다고 좋아해? 넌 길거리 걸어가는 여자랑 다 사랑에 빠지냐?
술 같은 소리하구 자빠졌네."

 

경찰 아저씨한테 가해자 이름과 폰번호를 달라고 하니 정보 공개는 안 된단다.
그럼 내가 직접 받겠다고 했다.

"신분증 내놔. 지갑 없어?"

다 사무실에 두고 나왔단다. 이 웃긴 새끼들은 울집 옆 대학에서 멀쩡히 근무하는 새끼들이다. 내일 너네 학교 대자보에 붙이겠다고 했다.

"야 너 티셔츠던 바지던 벗어서 내놔. 대자보 붙이면서 증거품으로 같이 붙이게."

"그리고 이름이랑 전화번호 불러."

 

이 정신없이 술 덜 깬 새끼가 지 여친한테 전화를 걸어서 나를 바꿔준다. 어이없다.
어쨌거나 친절하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이 새끼 이름, 81년생, 번호를 받아냈다.
이 여자도 좀 황당했는지 고분고분 말하더니 갑자기 경찰서 전화로 전화를 달란다.

그래서 내가 벌떡 일어서서 경찰서 데스크로 가서 전화를 집어들었다.


경찰 아저씨 한명이 말한다.

 

"왜 그걸로 하세요? 아가씨 폰으로 해요."

 

"아니 아저씨! 아저씨 경찰 맞아요? 지금 가해자들한테 제 번호를 주라는 겁니까?
어떻게 경찰이 나보다 더 허술해요?"

 

아차 싶었는지 허허허 거린다.

 

그래, 니들 눈에는 별 것도 아닌 걸로 슬쩍 한번 더듬은 걸로 난리치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지? 귀찮게 해서 짜장, 짬뽕 다 났지?

 

그 와중에도 일행인 그 남자는 갑자기 나한테 왜 반말이냐며 짜증을 낸다.
아니 그럼 내가 지금 짐승들한테 존칭 붙여주게 생겼냐?
말귀를 못 알아 먹고 계속 시비걸길래 속사포 영어로 미친듯이 욕을 했다.
속이 아주아주 조금 코딱지만큼 후련해졌다. 한국어로 이에 상응하는 욕을 했으면 경찰이 조신함과 수치스러움, 울고 있음이 미덕인 성추행 피해자에게 일말의 동정도 가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까지 쓰다 보니 정말 화가 난다. 

 

그 새끼가 티셔츠를 벗었다. -_- ;
신문지에 쌌다. 증거품이 필요했다. 내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는 있는대로 다 수집하고
경찰 아저씨들 이름까지 받았다. 번호는 못 준단다. 얼른 폰을 들고 사진까지 찍었다.
경찰 아저씨들이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저지했다. 어쨋거나 사진은 이미 저장되었다.
이쯤되니 내가 피해잔지 가해잔지 웃긴 상황이 되었다.

 

"아저씨들, 오늘은 제가 그냥 넘어가지만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아저씨들까지 고소할 겁니다. 정말 별거 아닌데 귀찮게 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이 정도 였으니 다행이지 저 사람들이 흉기라도 가지고 있었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습니다.
우발적이고 술에 취했다고 용서받을 성범죄는 없어요."

 

이쯤하고 그만 하기로 정리가 되었다.
아저씨 설득에 그냥 티셔츠도 돌려 주었다 쩝..

 

근데 나를 정말 열받게 하는 상황이 다시 한 번 터진다.

 

불과 3-400미터 정도 되는 아무리 멀지않은 길이라고는 하나 우리집에서 피해를 당했고
내가 아무리 똑부러지게 행동했어도 나는 여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냥 가라고? 이젠 정말 11:30이 넘 은 늦은 시각인데?

"아저씨 저 혼자 못 가요. 태워주세요."

 

또 아저씨 깜빡한 듯한 멋적은 웃음. 아 정말 열불이 터졌다.
 
울면 지는 거다. 이건 내가 지금껏 살면서 바꿀 수 없는 내 성향이다.
또한 매스컴과 영화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처럼
성범죄의 피해자들이 지고지순하게 슬퍼하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지 마라.
내가 정상이다. 모든 여자들을 당당하게 교육시켜라.
본인이 피해자이며 이러한 일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상황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은 가해자의 비도덕성과 범죄성 때문이지
결코 피해자에게 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새벽 2-4시에 술 취해서 앞뒤로 푹푹 파인 미니드레스 입고도
멀쩡히 집에 무사귀가 해 왔다.
그런데 밤 10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에 회사갔다 오며
안경끼고 정장입고 사람많은 길을 지나오면서도 일어날 수 있는 범죄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섹시하냐 아니냐, 품행이 방정하냐는 결코 범죄의 원인과 결부될 수 없는 일이다.

 

집에 들어와서 집주인한테 전화를 걸어 번호키랑 센서 점검, 추가 전등 설치를 부탁하고는
가만히 침대에 누웠는데 열어둔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달그락 거리는 블라인드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다음 순간, 내가 생물학적 여자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비극으로 느껴졌고
우리집 근처에서 버젓이 일하고 있는 그 놈들과 언제 다시 마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놈들은 내가 어디 사는지를 알고 있다는 생각에 여지껏 3차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계획적으로 흉기를 준비해서 쳐들어올지 어느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벌써부터 밤에 집에 돌아갈 생각에 너무나 겁이 난다.

그 새끼들이 술도 안 처먹고 맨정신에 나랑 대면했다면 찍소리도 못했을 놈인걸 안다.
나는 아무나 범접할 수 있는 부류의 호락호락한 스타일은 아니며 타인의 의지대로 움직여지는 사람이 아니다. 자그마한 체구도 아니며 약해보이는 스타일도 아니다.
이러한 시뮬레이션을 수백번 교육받고 생각해 본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는 암흑 그 자체이며 이 세상이 내가 존재해 오던 세상과는 다른 카오스처럼 느껴졌으며 여전히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은 정상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이렇게 글로써 스스로를 치유 중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말 정신적으로 나보다 약한 사람, 특히 나이까지 어린 청소년, 아동, 유아라면?
나는 내가 실제로 상담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깊은 공감과 동정을 비로서 가슴깊이 절감하게 되었다. 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 심장을 울려 왔다. 신이 내게 천만다행으로 큰일없이 마무리 할 수 있게 해 준 것 역시 천운이다. 어떤 일도 이유없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세상만사는 인과응보니까. 이 사건 역시 분명히 내게 고통을 준 만큼 무언가 변화시켜나갈 동기가 되거나 자극이 되는 일이었을 것이며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더더욱 여자로서, 또한 인간으로서 더 큰 이해심과 공감에 동화되게 되었다.
내가 당했으면 다른 이에게는 더 쉽게, 아프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아, 술이 아니면 용기가 없는 억압된 정신세계를 탓하라.
다음에 한 번 더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내가 처음이라 너무 당황해서 이쯤에서 끝냈으나
다음엔 반드시 거시기를 있는 힘껏 차 줄테니 밤길 조심해라.
세상 모든 여자들이여, 심심한 위안과 함께
오늘은 하루 정도 호신용 물품을 쇼핑해 보길 권장하는 바이다.


허가를 받고서라도 가스총이든 전기충격기든 하나 장만할거다.
다음 달부터는 수영 대신 합기도를 배우러 다녀야할까도 진지하게 생각 중이다.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그 짧고 밝고 번잡한 길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스스로 정신을 치유할 수 있을 때까지 친구집에라도 가 있어야 할지 고민스럽다.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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