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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 잃어버린 10년 - part 1

미카엘 |2010.07.09 17:27
조회 562 |추천 0

 


 


 


 


 


 


 


 


 


 
















- 2000년 2월 중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반복 되는 학창 시절로부터 비로소 자유를 얻었다.


  내 생에 최초의 자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년 동안이나 꿈꿔왔던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졸업식 다음날 성진이형과 함께 20만 원 가량의 현금과 옷 여벌을 챙긴 뒤 그렇게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형과 나는 4살 때 처음 만나 여태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내고 있다.


  우리 둘의 어린 시절은 암울 그 자체였었고, 가정환경 또한 매우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며 추억을 쌓아 갔었다.


  몇 번인지도 모를 새어머니, 할머니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 우리 둘은 공통점이 너무나 많았었다. 학창시절에 알게 된 다른 11명의 친구들 또한 비슷한 가정사를 겪고 있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이처럼 어울릴 수도 있을까.’


 


  같은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지향하는 것도 서로 같았나보다.


  1999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형에게 농담 삼아 상경의 꿈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형도 우스 겟 소리로 “그래 한 번 도전해보자” 라는 식으로 대답했었다.


  그 말 한마디가 우리의 인생 10년을 바꾸어 놓았다.


 


- 내 고향 울산.


 


  울산은 알다시피 전국 제일의 부자 동내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에 남아있는 것이 내게는 더 나았을지도 몰랐다.


  하나, 더 이상 부모님의 녹을 받아먹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신조 중 하나가 자식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뒷바라지 해주면 나머지는 본인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자식이 될 녀석에게도 적용이 될 것이다.


 


  어미 여우가 다자란 새끼 여우를 내 쫓아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듯, 인간이라는 포유류는 19세가 넘으면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길러야 한다.


  즉, 사회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본다.


 


  각설하고 우리 둘은 그렇게 고향땅을 떠나게 되었다.


 


  서울이 그렇게 춥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강남터미널에 내린 우리는 간단히 배를 채우고 신기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하상가를 누비고 다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헤매었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처음 타보는 지하철, 처음 끊어보는 지하철 티켓, 처음 보는 노선표, 모든 게 새롭기만 했다.


 


  몇 호 선인지,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는 체 지하철에 올랐다.


 


  - 그리고 도착한 곳.


  - 영원히 잊지 못할 신설동과 제기동.


 


  전봇대에 붙어 있는 월세 방 홍보물. 


  - 보증금 없이 월 15만원.


 


  당장 전화해서 찾아가 보았다.


  ‘다 쓰러져가는 쓰레트 집. 식빵······.’


  시간도 늦었고 해서 그냥 그곳에 머물기로 결정을 했다.


  장롱 하나에 거울 하나 화장대 하나만이 놓여 있고 네 명 정도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방이다.


  햇볕 한 점 들지 않고 창문도 막혀 있으며 습한 구들장에서는 퀘퀘한 냄새가 올라온다.


  보일러가 돌아가는지도 의문이다.


 


  일단 짐을 풀고 일기를 적으며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었다.


  만약 그날 저녁 미래의 누군가가 내 꿈속에 등장하여 내가 겪게 될 고생들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나는 아마 다음날 첫차로 울산에 내려갔을 것이다.


 


- 다음날


 


  일자리가 시급했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


  동내에 있는 교차로를 모조리 챙겨왔다.


  그리고 걸면 걸리는 걸리버 폴더 휴대폰을 연 뒤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박진희가 참 섹시했었는데······.’


 


- 다음날 우리는 한겨울에 물탱크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만 두었다.


 


  다시 교차로를 뒤졌다.


  그리고 또 통화버튼을 눌렀다.


 


- 다음날 나는 종로 3가에서 악세사리를 팔고 있었다.


 


  내성적인 내게는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하여 바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또 교차로를 뒤졌다.


 


- 이번에는 주유소.


 


  역시나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웬만하면 참아 내려고 했건만 젖 같은 새끼 몇몇이 들들 볶아대는 바람에 집어 던지고 나오게 되었다.


 


  생활비가 다 떨어졌다.


 


  그간 형이 갖고 온 돈과 며칠 일했던 수당으로 최소한의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나무젓가락도 씻어서 썼으며 나중에는 깎아서도 써봤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무젓가락에 라면국물이 베이고 베이다 보면 더 이상 안 씻긴다는 것을. 


 


  한번은 주인집 퐁퐁 으로 설거지를 하고 실수로 행굼을 덜 한 상태에서 라면을 끓였는데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그냥 먹었던 적이 있다.


  라면국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무지개 빛깔 거품을 보며 젓가락질을 해 본 적이 있는가······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상황이지만 그 당시에는 살기 위해 먹었었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먹자. 라고 하며 한숨을 쉬던 형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퐁퐁까지 소화했었던 젊은 날에 나의 ‘내장’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며칠 뒤 옆방으로 누군가가 이사를 왔다.


  마당에서 마주치자 그가 인사를 건 낸다.


  이제 갓 중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나이로 보인다.


  그런데 한둘이 아니다. 방안을 살펴보니 남자애 두 명과 여자애 한 명이 더 보인다.


 


  그렇다. 가출한 녀석들이다. 그것도 강원도에서······.


  몇날며칠을 그 녀석들과 소주파티를 벌였다. 돈이 어디서 났냐고??


  가출할 당시 부모님 지갑을 털었다고 한다. 나쁜 색히들······.


    


  한 번은 집에서 교차로를 뒤져 보고 있는데 옆방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옆방이라고 해봤자 판자 하나로 막혀 있을 뿐 원래는 한 칸짜리 방이었던 것 같다.


  꽤나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애였었는데 그 녀석들 중 리더로 보이는 놈과 그 짓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매일매일······. 부러우면 지는 것이리라.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외우며 마음을 다스렸다.


 


  며칠 후 그 녀석들이 떠난단다. 돈이 떨어져서 강원도로 돌아가겠단다.


  그래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보낸 추억이 있어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나름 재미있었던 추억을 만들어 준 그 녀석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둘만 남게 되었다.


 


  돈은 없는데 배가 고파온다.


  수돗물로 때우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마당을 살펴보니 장독대가 몇 개 보인다. 


  열어 보았다. 된장, 고추장, 간장, 그리고 김치······.


  ‘땡잡았다.’


  새벽을 틈타 김치 한 덩어리를 훔쳐내었다. 


  정말 맛있었다. 눈물 나도록······.


 


  그리고 형이 말했다.


  - 우리 우유 훔쳐 먹을까?


  - 어떻게??


  - 새벽에 우유 배달부가 보이면 뒤 따라 가면서 훔치면 될 것 같은데······.


  - 도둑질인데 괜찮을까??


  - 설마 먹는 것 같고 뭐라고 하겠냐?


  - 그래. 굶어 죽게 생겼는데 뭔들 못하겠나······. 내가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행동에 옮겼다.


  저 멀리 우유 배달부가 보인다.


  숨죽인 체 미행했다.


  그리고 곧 우리는 좌절감을 맛보았다.


  망할 배달부 녀석이 우유를 작은 가방에 넣은 뒤 대문 안쪽으로 넘겨 버린다.


  꺼낼 수가 없다. 젠장.


  그날 아침, 우리는 담백한 우유 대신 허탈함에 극을 맛보았다.


 


  - 울산에서는 그냥 문 앞에다가 놓고 가던데······.형이 중얼거린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옆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앞에 멈춰 선다.


  형이 들어간다. 그리고 라면 몇 개와 빵 몇 개와 우유 몇 개를 싸들고 나온다.


 


  - 훔쳤어?? 내가 물었다.


  - 아니, 아저씨한테 우리 사정을 말했더니 그냥 주시더라고······.형이 대답했다.


 


  나는 당장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아저씨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수 십 번도 더 한듯하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언젠가는 그 은혜를 보답하리라. 나의 뇌에 각인을 시켜 놓았다. 


 


그리고 며칠 뒤 교차로의 구인구직란에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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