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벨..
언제부턴가 우리는 받아야 할 전화와 받지 않아도 되는 전화,
받고 싶은 전화와 받기 싫은 전화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발신자 표시..
그러나,
휴대전화가 있기 전에는,
우리는 집의 전화벨이 울리면, 상대방이 누군지도 모르고 전화를 받았다.
벨이 울리는 것 자체가 받아야 하는 의무감으로 작용했으므로..
다들,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았을까?
전화벨이 울리고 미쳐 내가 받지 못한 후, 그 전화는 누구의 전화였을까?
궁금하고..
내가 어떤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온갖 답답한 상념은 계속되고..
그게...새벽의 전화라면..?
주인공 윤에게 전화는 그렇게 온다.
아빠에게서, 명서에게서, 단에게서, 미루에게서
그리고 전화를 매개로 해서 큰 사건들은 서로에게 감지되고, 전해진다.
신경숙 소설을 처음 읽는다.
수업을 위해 일부분을 읽은 것 외에는 올곧이 처음이다.
필체가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감정의 과잉으로 인해 신파적 장면이 나와 다소 거북스러운 부분이 있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소설가들은 찰나의 그 많은 사고의 영역을 모두 잡아내서 자세하고도 깊이있게 풀어낸다.
소설가들은 머릿속 뉴런의 숫자를 세고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나보다.
신경숙은 그 재주가 엄청나게 뛰어나단 생각을 했다.
주고받는 대사는 현실적이지 않고 드라마적이다. 가끔 소년챔프만화식의 대사필의 느낌도 받는다.
평론가들은 이런 대화체를 은유와 상징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윤교수이다.
4명의 주인공의 만남이 윤교수를 매개로 하고, 그의 죽음으로 다시 윤과 명서가 만나 과거와 화해하고 미래를 다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역시, 윤교수가 이야기한 '크리스토프'이야기를 통해서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 인생의 몫의 짐을 지며 인생을 살아가고,
또한 누군가에게 우리 힘을 빌려주고 그러므로 연대는 굳어지며 삶을 살아간다.
우리 각자는 크리스토프이니까.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면에서 맞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성장이 담겨있다. 갈등이나 시련을 이겨낸 자아는 내면의 성장을 하게 되니까.
결국 살아서 다시 만나게 된 윤과 명서가 두 사람의 죽음을 통해 성장한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성장 보다는 시대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아픔과 그 속에서 이뤄진 사랑을 이야기한다는게 더 맞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은 군사정부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작품에서 정확하게 언급되지는 않지만 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미루의 죽음과 단이의 죽음은 그 시대현실과 물려 있다.
그런데, 시대 현실은 사랑이라는 이름 속에 양념으로 들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7080세대를 겨냥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데모를 접하지 못한 세대는 시대 상황 자체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이 소설은 그냥 연애 소설이다. 그렇게 평가를 하게 된다.
캐릭터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는 미루다.
미루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너무 극단적이다. 작가 신경숙이 미루의 캐릭터를 왜 그렇게 극단으로 몰고 갔는지 모르겠다.
윤교수라는 인물이 그에게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죽음까지 선택해야할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독서모임의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윤의 캐릭터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윤의 캐릭터는 적당히 냉소적인 부분이 있고 상당히 개인적이다.
그럼에도 명서와 미루하고는 친밀감있는 교류가 이뤄진다. 그런 교류가 꼭, 명서와 미루와만이어야 하는게 조금은 이해가지 않았다.
명서와의 만남의 설정이나, 미루와의 만남의 설정이 운명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어차피 삶이 그런거라고 말해버리면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만남에 필연적 계기가 부여 되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작가의 작위성을 보게 되었고, 치밀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결국,
이 소설이 애시당초 연애소설이라고 표방했다면,
내가 이토록 혹평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니까..<사랑후에 오는 것들>이나 <탈콤한 나의 도시>는 처음부터 연애소설이었으니, 거기에 초점을 맞춰 읽어나가면 되는 거였지만 이 소설은 다른 것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꼭 그 때가 아니어도 이야기의 축은 변화가 없을 것이기에,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여 이야기를 전개한 것은 시장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파주>를 혹평할 때와 같은 느낌이다. 연애가 초점인지, 시대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초점인지.
미안하다. 너무 혹평을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