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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홍세화)-나는 나의 생각으로 살고 있는가?

산야신 |2010.08.07 02:46
조회 95 |추천 0

홍세화는 굉장히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궁극의 답은 인문학이고, 철학하는 인간이 답인 걸로 보인다.

철학하는 인간은,

나의 공공연한 주장이기도 했지만, 홍세화의 글을 읽으며 이론적으로 더욱 재무장하게 된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대답은 간명하다. '내 생각은 내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이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회의하고 학습하지 않은 인간은,

주어진 생각을 내 생각인양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서민이면서 조중동의 논리를 따르고,

학교에서 주입된 기득권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따르고,

경쟁 체제라는 기득권이 펼쳐놓은 틀 속에서 주체성이라는 걸 스스로 포기하고.

 

이번, 글에서도 홍세화의 주 비교 대상은 프랑스라는 사회이다.

분명, 프랑스가 이상 사회는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준거틀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프랑스라는 사회를 통해 우리의 속살을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글(빠리부터~악역슬픔까지)과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글은 이론적으로 더욱 정교해졌고, 좀 더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질문과 답을 우리에게 준다.

그러니까,

그의 글은 논리적으로는 더 치밀해졌고

정서적으로는 더 다듬어졌다. 그리고 사상적으로 더 풍부해졌다.

 

우리 사회가 가는 길이 궁금한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궁금한가?

내가 생각하는 판단의 기준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는지 궁금한가?

 

그렇다면,

'생각의 좌표'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해 보라.

놀랄만한, 그리고 부끄러울만한 자화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용글 하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는 곧 나를 억압하는 사회다.

개인은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ㅇ벗다.

사회가 어떻든 나만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런 자유는 지금의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 대해 '도대체 그 법이 있든 없든 아무런 불편이 없는데 왜 이소란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자유처럼 수상한 것이다.

자유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이거나 무언가를 하기 위한 것으로서만이 아니라, 자유 그 자체로서 이유가 되는 것이다.

 

 

홍세화는 국가보안법을 예로 들었지만, 그것 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나는 진정 자유로운가?에 대한 질문..그 답의 기준은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 사회와 다른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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