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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품을 만든 체코슬로바키아 보혜미아의 유리 꽃병

김중묵 |2010.08.13 10:18
조회 1,096 |추천 0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리와 크리스털 제품을 만들었다는 구 공산권 시절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만든 보헤미아의 유리 꽃병 입니다.

 

장인들의 혼과 기술로 빚어낸 기품 있는 이 유리 꽃병은 유리에 아름다운 색깔을 넣고 24K 순금을 덧씌워 입힌 후 또 그 위에 천연 재료를 부쳐서 일일이 수공으로 만든 보헤미아 명장들의 공예작품 입니다.

 

저는 해외 근무시절 1980년경에 아프리카 가봉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 파리의  명품거리인 개선문 앞의 조지쌩크 골동품 가게에서 처음으로 보헤미아의 유리제품과 크리스털제품을 접하고는 그 아름다움에 취한 적이 있었는데,

 

 그 후 1983년 초에 저가 마지막으로 근무 하였던  나라 부르나이왕국(당시는 영국식민지였고 1983년 말에 독립하였음) 의수도 반다르쎄리 베가완의  한 번화가 골동품 상회에서 보헤미아 제품을 발견 하고  크리스털 제품인 재떨이 소품 한 점과 이것을  구입 하였답니다.

 

그 후 애지중지 보관해 오던 중 오늘 우리 님들께 자랑삼아서 이 아름다움을 같이 공유 하려고 올렸습니다.  크리스털 제품은 다음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체코의 명품 보헤미아 을 우리 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찿어 보았더니  예전에 문화관광부, 서울특별시, 주한 체코대사관이 후원하고 (주)혜럴드미디어와 네이버에서 주관하여 예술의 전당 한가람 홀에서 국립 프라하 예술박물관 소장품 140점(14세기부터 현대), 현대 작가 작품 43점 (아트 페어 진행)을  2004년 6월 25일(금)~9월 5일(일) 까지 전시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보헤미아가 아래와 같이 소개 되어 있었습니다.

 

보헤미아는 어디인가?

보헤미아는 모라비아와 슐레지엔 지방과 함께 체코 공화국의 국토를 이루고 있는 한 지방이다. 불어로 ‘보엠(Boem)’이라고 불리던 것이 그 어원이며 울창한 자연 삼림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지방이다. 모라비아 지방은 대부분 얕은 구릉과 평원으로 이루어져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고, 슐레지엔 지방은 계속된 失政으로 주변국에 거의 빼앗겨 실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보헤미아 지방은 원래 바다 속에 잠겨있던 것이 융기하여 육지가 된 지역으로 사암과 함께 기름진 퇴적층의 토질로 이루어져 있다.

 

보헤미아의 유리는 왜 발달했나?

1) 보헤미아 지방은 중세시대 산업 발달에 필요한 3가지 자원이 풍부하였다. 유리산업의 원재료인 규석광산이 풍부히 산재했고 울창한 삼림에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었던 연료, 그리고 잘 발달한 삼림덕택에 풍성했던 물이 공업용수로 사용되어 일단 생산요소의 삼박자를 풍부히 갖추고 있었다.

 

2) 왕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총각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출신의 보헤미아 왕이었던 루돌프2세(1576~1612 재위)는 수학자와 지리학자, 연금술사와 유리 공예가를 유달리 총애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유리 공예가들에게 부역의 면제권을 주었고, 왕의 국토에 생산과 유통을 위한 私有道路를 건설할 권리를 주었으며, 도축한 육류의 제국내 유통권을 허락하는 등의 특혜를 주었다. 정사에 관심이 없이 개인적인 학문탐구에만 열정적이었던 관계로 부왕 막시밀리안 2세로부터 동생의 섭정을 지시 받는 등, 실정을 많이 하였으나 연금술을 통한 많은 화학적 발견들의 토대와 기초과학의 기반을 이룩했고, 특히 유리 공예가들에게는 큰 기술적 부흥을 가져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 주었다.

 

3) 보석에 견주는 부의 상징이었던 유리제품은 재력과 권력을 갖춘 귀족계층이 주로 소비했다. 당시 보헤미아 왕국은 두 가지를 모두 갖춘 합스부르크가의 오스트리아로부터 통치를 받아 제작품을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었고, 심지어 일부 오스트리아의 귀족들은 보헤미아 전국에 산재한 유리 공방을 직접 소유하며 생산품을 소비함으로써 유리공예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보헤미아 유리는 이탈리아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보헤미안들은 일찍이 유리를 준 보석으로 취급하여 보석세공의 기술을 유리에 적용하였다. 지금도 핸드커팅을 고집하는 수많은 공방들은 장인을 중심으로 하는 길드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기계를 이용한 커팅을 매우 저급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짙다. 그 결과 보헤미안인 다니엘 스와롭스키는 기계커팅의 기술을 개발하고도 고국을 떠나 오스트리아에서 ‘스와롭스키’사를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헤미안들은 제품을 대하는 진지함에 있어 이탈리아 인들의 라틴문화와 많이 다르다. 이탈리아인들도 손재주가 좋지만 그들의 개방적인 융합문화의 특성은 그들로 하여금 외부의 많은 것을 흡수케 하고 응용케 하였으며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한 무역의 발달로 화려한 상업적 가치를 중시하게 하였다. 그러나 보헤미아는 오랜 외세의 통치를 견디어 온 나라의 문화가 그렇듯이 혈통을 섞는 것에 지극히 폐쇄적이다. 아직도 상업적 목적아래 그들의 오랜 전통을 변형시키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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