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하십니까? 부족하고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나름 횟수로 밀어부치며
음악을 하고 살아가는 전직(뮤지션) 현직(군인)입니다.
세상에는 참많은 음악가들이 존재하고 각 분야마다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음악을 한다고 하며 세월이 1년 2년 지나갔던것이 10년이 넘었네요
어릴때 아버지는 은행에 어머니께서는 가게를 하셨는데
어머니도 예전엔 은행원 이셨고 나름대로도 공부를 턱없이 못한것도 아니었고
하니 어릴때 저를 은행원으로 키우시려 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년 12살때 시대에 맞지 않게 팝을 즐겨듣던 누나가 들려준
NOW3(당시 팝음악 명곡 모음)에 있던 HANSONE의 MMMBob을들은후로
어린나이에 나도 가요 라는 것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누나의 힘에 입어 당시 박진영씨의 노래에 흠뻑빠졌는데
한창 HOT가 나오고 젝키가 나오고할때 박진영씨 엘범을 들으며
혼자 즐겁게 웃고있던 초등학생은 저 밖에 없었을겁니다.
가장 좋아했던곡이 아마 ' 십년이 지나도' 일거에요.
나름 초등학교때부터 좋아했던 여학생 때문에 이노래를 좋아했을수도 있겠네요.(웃음)
여하튼 이리하여 제 음악인생은 시작되었고. 아무것도 할줄모르면서 렙을 하고 노래를
하기 시작했죠 ^^ 지금은 피씨방이라서 어떻게 예전에 부르던 파일을 올릴수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번 올려보도록 할게요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파일을 말하자면 여러분들 벌써일년이라는 곡 렙으로 부른 버젼
아실거라고 생각해요. 그 버젼과 완전 똑같은 버젼은 아니더라도 중학교 1학년때 즈음
제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그노래로 렙을 시도해서 녹음 해본것 같네요 (웃음)
중학교를 올라가서는 작곡이란것을 해보고싶어서 앞서말한 벌써일년 MR이나
미디엄템포의 노래들로 렙을 자작해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샘플링을 하고 다니면서 작곡을 했다고 했었죠.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하루에 있었던 일을 시로 쓰고 그때 한창 유행했던
'세이클럽'에 있는 클럽에다가 게시해놓고 했었어요.
지금읽어보면 대부분이 그 초등학교때부터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말하는
내용이에요 이것들때문에 최근에도 작사가 안되기 시작하면
세이클럽으로 들어가서 예전 동심의 마음으로 썼던 글귀를 보며 작사를 하기도 해요
작은 창문에서 너를 바라보는 나는 가까이 있지만 멀리있는것같아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부끄러운맘에 두근 거리는 심장을 잡아
바보같지 내맘을 모르는 너에게 혼자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내가
오늘은 네게 말할꺼라 또 다짐하지만 어느새 너만보면 내맘 숨기는 내 모습
어떻게 보면 이것들이 제 재산들중 하나이죠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면 한창 이렇게 가사를 쓰고 할때
몇년동안 기다리던 그 여학생과 사귀었어요 너무 기쁘고했지만 막상
사귀게 되면 뭐 아나요? 맨날 만나고 싶어도 심장이 두근대니 만나기도 그렇고
잘 못만나고 하다보니 어느샌가 헤어지게 되더라구요
그때 어린마음에 너무 힘들어서 방황을 하다가 기타 하나를 장만했어요
그때 한창 누나가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할 당시인데 누나 친구 2명이 한국에 놀러왔었는데
( 이탈리아사람 한명은 이제 매형 ^-^ ) 기타를 끙끙앓고있으니 당시 매형친구가
기타를 칠줄알아서 코드 몇가지를 배웠습니다. 그때 배웠던 코드가 G-D-Am G-D-C
즉 'knocking on heaven's door'였습니다.
한때 여친소의 OST로도 유명했었죠. 보통 기타를 처음 치는 사람이 연주하는 곡으로도
유명한곡입니다. 여하튼 3개월정도 죽어라고!! 죽어라고 쳐서 겨우 칠때쯤 됬을때
여느 대부분의 기타 초짜생들처럼 기타를 장농에 모셔두었죠 ㅎㅎ
한동안 그렇게 기타를 던져놓고 'JY'(가명)이라는 친구와함께 나름 J3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습니다. 나름 인기도 있었고 했지만 아무래도
실력이였겠죠 당시 친구는 렙을 잘했었고 저 나름대로도 잘한다고 생각하고
했었지만 문제는 제가 노래에 너무 욕심이 났던겁니다.
하지만 무언가 모자라고 어린티가나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니
나는 즐겁더라도 다른사람들이 듣기엔 영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다가 JG(가명)이라는 친구에게 크게 발리고(?) 나서 정체성의 위기를
느꼈죠.. 여느 대부분의 초보 가수지망생들처럼 포기를 할까 까지 생각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친구만큼 잘할수없었고 그친구는 이미 그 나이에 너무
수준급이었습니다. 웃긴소리지만 (청소년 여러분들은 듣기만 하고 따라하지 마세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고 그냥 막 방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도
도저히 한국에 두면 안되겠다고 해서 고등학교 1학년때
이탈리아를 가게되었는데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됬었죠.
처음 가보는 이탈리아 낯설고 신기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습니다.
하루종일 언어공부를 하고 속상해서 울고 친구들이 보고싶고
남들은 부유한데 배부른 소리한다고 할수도있겠지만
그당시 집도 넘어가고 집안상황도 말이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도피성 유학인거겠죠. 돌아가고싶고 돌아간다고 때를쓰고
알바를해서라도 비행기표 구해서 한국에 돌아간다고 한들..
집이 없는데 어디서 잘수도없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었죠
여하튼 억지로 억지로 공부를하면서 당시 노트북에있던
플라워의 크라잉을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운이좋아서 학교를 입학하고 언어도 곧잘한다고 생각했을때
난관에 부딫혔습니다.... 여러분...겨우겨우 이제 한국어만 배운 외국학생이
경상도 고등학교에 오면 어떻게 될까요?
예 그렇습니다. 사투리의 난관에 크게 부딫히게 된거죠...
사투리때문에 혹은 이탈리아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선생이고 학우들이고 저를 보는 시선들 자체가 저능아를 보듯했습니다.
워낙에 민족성이 강한국가라 타 외국인들을 무지 싫어하는데다가
400년전통학교에 최초동양인으로 입학했으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자마자
"얘는 말도 잘못하는 바보네"소리들으며 학교를 다녔으니
그야말로 왕따X99999999999가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예술제가 다가왔죠
앞서 말하다시피 왕따여서 그날 축제인지도 몰랐어요 아무생각없이
노트북을 들고와서 있는데 축제라고 하더군요.
너무 속상하고 서운해서 그냥 돌아가려했는데
오기가 생기더군요. ' 이런식으로 계속 피하다간 정말 안되겠다 뭔가 보여줘야겠다 '
그래서 노트북을 뒤적거려 플라워의 크라잉이란 노래 MR을 들고 학생회 회장을
찾아가서 부탁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신청은 완료됬고 안된다고 극구 부인하길래
상받거나 그런거 상관없다 그냥 우리나라 노래 부르고 우리나라 문화 알리고싶다
라고 하면서 부탁했더니. 약간의 웃음을 보이고는 허락해주더군요
지금생각해보면 동양언어로 노래를 부르면 웃기고 이상할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해준것같아요. 그러나 저러나 어느샌가 제 차례가 다가왔고
저는 진짜 이국에서의 서러운 마음 고향의 그리운마음을 다 뱉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문론 잘부르는것 또한 아니었지만
어디서 이런말 들어보셨나요? 전세계에서 가장 평균적으로 노래 잘 부르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는것을? 그렇기에 학교 축제에서 노래를 부른것치고 기대치 이상으로
제가 잘부르고 멜로디 자체도 폭팔적이며 좋았습니다.
선생이고 학우들이고 입이 벌어졌고 저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사실상 대회 1등을 하고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후에 이야기지만 1년이 흐르고 그 자리에서 다시 무대에 서서
1등을했었답니다. 여하튼 그리고 난후에 몇명이 절 찾아오더군요
그룹을 결성할건데 보컬을 좀 해달라... 저는 너무 기뻐서 진짜 눈물이 났습니다.
일여년을 돼지우리에 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다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으로
그렇게 저를 인정해준다고 생각했을때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그맴버들과
수많은 공연을 하며 나중에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때는 수백명의 팬클럽을 보유한
그룹이 되기도했지요. 친구들도 많아졌고 많이 행복했습니다.
그때부터 다시 음악이 좋아졌고 생전 쳐보지도 않았던 피아노에 손을대고
혼자서 어떻게하면 선율이 나오고 어떻게 하면 음악이 나오는지
콩나물 대가리 하나 보지 않고 곡을 쓰기시작했습니다.
FL STUDIO라는 프로그램을 쓰며 곡을 써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곡을 하자는 취지로 자작곡을 하고
그러면서 화성악도 아무것도 모르고는 곡을 만들어갔습니다.
JaYTwO라는 가명을쓰며 그렇게 이탈리아에서의 활동은 접어들어갔습니다.
<밴드내에 남여관계로 해체가 되고 남은 맴버 3명이서 만든곡 한국어에요>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예고에 3학년으로 편입을 할수가 있었습니다.
화성악에 '화'자도 모르고 악보에 '악'자도 모르는 저였기때문에
부담감이 너무 큰것도있고 기분도 풀겸해서 어머니와 함께
싱가폴에가서 한달정도있었는데 그곳에서 우연치않게 키보드를 이용해서
코드 반주를 좀 배우기 시작했죠
업치락 뒷치락 노력만 있으면 될수있다는 생각에 저를 편입시켜줬고
저는 학교를 다녔지만 아무래도 3학년의 실기 실력과
저와는... 판이하게 틀렸고 실용음악이 아닌 클래식이었기에
도무지 감도 안잡히고 어려웠습니다.
처음으로 음악을 하면서 힘들구나.. 진짜 내가 모자라구나
하면서 후회를 하며 1년이 지나갔습니다.
지금 보면 그때 노래를 엄청 부른것같습니다. 작곡을 하고싶었는데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다 접어두고 노래만 주구장창 부르고
어느 순간되니까 화성악 시간을 빠지게 되더군요
뭔가 우리나라 교육의 단점..? 입시에만 미쳐서 그것만보는..
문론 제가 눈엣가시같은 낙하산 같은 존재여서 저에게 그렇게
질책하고 무시당한거일수도있지만.. 여튼그랬습니다.
<싱가폴있을 당시 만든 곡>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결국.. 음대에 진학을 못하게되었죠
문론 못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가지 아픈 사연이있어서 그건 숨겨두겠습니다.
그러다가 대구공업대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학교를 갔는데 밴드도 없고 밴드에 젖혀있던 저로써는 대학교의 로망이라고
생각하고 만들려고했을때 미소래라는 옛 그룹이있었다고 해서
그 그룹을 살리기로 합니다. 옛 선배들과 합세해서 인원을 모으고
어느샌가 공연을하게되고 문론 실력들은 많이 모자랐지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신이났던 공연을 했던것 같습니다.
많은 곡들을 만들었지만 제가 녹음한 것은 없군요
...중간에 그러다가 보컬을 넘기고 군대를 가버렸으니...
http://minihp.cyworld.com/45705084/3105022696
< 알콜송 자작곡 링크 걸었습니다 대박인곡 입니다 ㅎㅎ>
블러에 송투~
문론 지금은 실력이 굉장이 늘었지만 ㅎㅎ
여튼 군부대에서도 밴드를 하고있답니다.
신병교육대대 조교를 하고있는데 항상 무섭고 엄한 조교로써 임무를 수행하고
최대한의 노력으로써 교육을 하고 시범을 보입니다.
그리고는 부모님이 보고싶은 마음 친구가 그리운 마음 여자친구가 보고싶은 마음을
제 노래로 그들(훈련병)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문론 세계적인 음악가보다 제가 뛰어난것은 없을겁니다.
중간에 뛰엄뛰엄 빈것도 많고 무언가 써볼려고했는데 주저리만 늘었는것같아서 그렇지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 현재에는 제 곁을 스쳐가는
건장하고 씩씩한 20살 청년들이 외롭고 힘든 훈련병 시기를 거칠때
잠시나마 음악으로 하나되어 실컷울고 그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힘을 줄수있다면 2년동안 조교로 군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것은 없을것 같습니다.
정병육성... 아마 그말은... 총을 잘쏘고 체력이 좋은 것 보다
우리나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싶다는 마음을 가지고있는것을 보고 하는말
?....아닐까요...?
여튼 얼마전에 저 닉네임과 똑같은 가수가 데뷔를했더군요 응원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실력이 못하다는 말은 안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한없이 강해지는 남자처럼
저는 제 음악앞에서 오만이 아닌 당당함으로 그녀를 표현하겠습니다.
실력을 키우고 나라를 지키며 언젠가는 이탈리아에 고등학교에서
우리나라 대한민국 4글자를 알렸던 것처럼 좀더 스케일이 큰곳에서 하고싶군요
열심히 노력하고 힘내는 뮤지션이 될때까지 한없이 노력하겠습니다
기회가되면 최근에 만든 곡으로 올리겠습니다. (문론 댓글이 많으면 제가 올릴게요)
후회는 안하실겁니다 ~ 확연하게 틀릴테니까요 ㅎ
그럼 긴글 보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국민여러분 이 나라는 저와 저를 거치는 수많은 청년들이 지키겠습니다.
충성!
p.s : 만약 반응 좋으면 공개를 안했던 a급노래 공개하겠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