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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그 해 여름

일포스티노 |2010.08.19 11:37
조회 306 |추천 0

 

내 삶의 첫 해외봉사지인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그 떨림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리고 도심에서 3시간여 떨어져 있는 작은 소수민족 마을인 묘족마을. 그 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생겼다. 시멘트 포장길을 벗어나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비로소 지나서야 나타나는 작은 산골의 부족마을. 도심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일 뿐인데 이곳은 변화무쌍하게 바뀌어 가고 있는 화려한 현대판 중국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 속에서 그들만의 생활방식을 지키고 그들끼리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교회가 그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오면서 전통을 버리고 신앙심 하나로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 그들에게는 교회가 삶의 전부이며 마지막 자존심인 것이다. 신앙의 힘으로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극복해 온 그들의 삶을 그들과 함께하며 조금은 이해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묘족마을에 처음 들어서며 잠시 되뇌었던 생각들이었다.

 

 

 

묘족마을에 처음 도착하던 순간 두 줄로 길게 늘어서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던 그들의 아름다웠던 눈망울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비록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투박하고 거친 손을 잡았을 때 피부 속까지 느껴졌던 따스함, 외지에서 온 손님인 우리를 조금이라도 더 정성껏 맞이하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정성이 느껴져서 뭉클했던 그 첫 만남이 떠오른다.

 

낯선 이국땅에서 마주한 내 자신. 인간은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낯섦이 금방 익숙함으로 바뀐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갈구하며 일상을 탈출하고자 미지의 세계로 떠나지만 그 곳도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고 그들도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 그래서 또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 떠남의 이유가 아닐까한다. 진정한 삶의 여유를 찾고자하여 떠나온 곳이었다. 생활환경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하여, 편한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 우리라고 하여 나와 다른 그들의 문화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난 그들과 함께 자고, 일하고 일상을 함께 호흡하면서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고자 했고,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전해주고자 했었다. 준비해 간 프로그램에 맞춰 그들에게 뭔가 보여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들과 생활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일방적인 전달로는 결코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나를 맡기고 그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소통하고 생활하는 것만이야말로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묘족마을에서 생활하면서 하나씩 깨달아 갈 수 있었다. 난 묘족마을에서 그들의 체취에 동화되었고, 쏟아질듯한 별밤의 향기에 취했고, 그들의 아름다운 미소에 녹았으며, 그들의 맑고 투명한 눈빛에 그들과 오롯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저 먼 곳에서 손을 흔들면 길을 가다가도 멈춰서 한동안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던 그들, 시멘트 가루 마셔가면서 작업하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일하느라 고생하는 우리를 보고 오히려 괜찮다며 쉬라고 권유하던 그들, 밤에 추울까봐 이불을 하나 더 챙겨주고 밥과 반찬도 가장 좋은 것으로 내놓고 우리 입맛에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그들,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던 그들을 통해 함께하는 삶이란 이런 것이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비록 불편한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긴 했지만 그들의 친절함과 배려심에 감동받아 한 순간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들은 우리가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어려워하지는 않을까를 오히려 걱정해주고 있었다.

 

 

 

 

낮 동안의 고된 일을 마치고 휴식을 원하는 그들에게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 우리의 어떤 행동에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맞아준다는 것, 그들과 헤어질 때 난 울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우리의 눈물을 보여주면 우리가 떠나고 나서 그들의 가슴엔 더 큰 상처가 될까봐. 하지만 난 그들과 손을 잡고 포옹을 하면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정말 행복해서 울어볼 수 있었다. 소리 내어 흐느끼는 내게 그들은 괜찮다면서 오히려 나를 부둥켜안고 잠시 머물고 갈 이방인을 오히려 걱정해 주었다.

 

 

  

언어는 비록 통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을 향하여 밝게 웃어주는 미소 안에서 그들과 나는 이미 하나가 되어 있었다.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우리는 서로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내게 전해준 것은 순박함과 따뜻함이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자기들만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방식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느껴보고 싶었던 가치였으니 말이다. 개발붐 속에서도 티 없이 맑은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 시간이 멈추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잊고 온전히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10박 12일. 그래서 어쩌면 더 소중한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맑은 마음이라는 것. 이 복잡하고 어지럽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있을까. 남보다 나를 더 중시하는 요즘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이곳 묘족마을에서 그간 잊고 있었던 내 안에 가치들을 수정할 수 있었다.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던 시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잊지 못할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묘조커 워너비, 팀명처럼 묘족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과 동화되어 진정한 묘조커가 되고자 노력했고 그것을 이룰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온 일상은 전과 같이 하루하루가 정신없는 나날들이다. 하지만 가끔은 내 기억 속에서 흘러나온 한 줄기 물감이 묘족마을에서의 추억들을 아름답게 색칠해 주리라 믿는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길 한가운데에서 가축의 여물을 지게에 담아 힘겹게 걷고 있던 한 아낙네, 그리고 초록빛과 흙빛의 조화와 하늘의 아름다움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뜨거웠던 모습, 묘족마을을 떠나며 내가 기억하는, 그 해 여름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그 곳의 마지막 이미지였다. 묘족마을의 향기, 그들의 따뜻함, 정말이지 오랜 시간 묘족마을을 향한 향수병에 빠져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만 같다.

 

거대한 대륙의 한가운데서 솟아올랐던 내 안의 뜨거운 열정. 언제 또 다시 이곳을 찾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내 책장에 놓여있는 묘족 전통 의상을 입은 인형 두 개를 통해서 난 가끔씩 그 때의 뜨거웠던 여름날을 추억하리라.

 

 

 

 

처음에 떠나올 때는 설렘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아쉬움이었다. 그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줄걸, 그들에게 더 많이 내 것을 줄 걸, 그들에게 더 다가갈걸.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난 정말이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순수함, 따뜻함, 배려심, 감사함. 가끔 힘들 때 그 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할 수 있는 내가 되길. 그리고 나를 보며 웃어주었던 그들의 백만불짜리 미소처럼 힘겨워도 늘 웃을 수 있는 그들이 되기를, 그들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곳에서 느꼈던 여유, 아름다움, 편안했던 느낌들을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가끔 힘들 때 그 해 여름을 추억하며 내게도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난 오늘도 묘족마을에서의 별밤을 추억한다.

 

 

 

묘조커 짜요! 10박 12일간 정말 행복했습니다 :)

 

 

written by G마켓 해외봉사단 13기 중국(묘조커 워너비) 성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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