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젊음과 목표로 나를 디자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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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30살에 취직하고 32살에 결혼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안 할 거예요. 그냥 제가 원하는 걸 향해 열심히 가보고 싶어요. 음악도 계속 해보고 싶고요. 회사를 키워 상장에 성공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디자이너들의 놀이터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거액을 들여서 인정받는 디자이너를 스카우트하기보다 감각 있는 사람들을 키워서 같이 가보고 싶거든요.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79년생. 현재 연세대 의상학과 재학중. 프로필을 보는 순간 늦깎이 대학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좀 더 좋은 ‘타이틀’을 위해 남들보다 오랜 시간 입시를 치러낸 것이 아닌가 하고. ‘반달앤컴퍼니 ( www.vandalist.co.kr ) 대표, 양희민’이란 설명과 함께 첨부돼있던, 그가 옷을 재단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확인하고 나서 또 생각했다. ‘유학파인가?’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 나이 스물아홉이면 느려도, 어려운 취업난을 몸소 체험하며 ‘오늘도 열심히’ 취업준비에 한창인 나이일 테고, 빨라도 직장에 입사해 ‘내일도 열심히’ 터를 닦을 나이다. 그런데 ‘의상학도’와 ‘반달앤컴퍼니 대표’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쥐고 있는 그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느려도 한참 느리고, 빨라도 한참 빠른 길을 동시에 걸어가고 있다. 무언가 특별한 사정이 숨어 있을 듯해 조심스레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씩 웃으며 대답한다. “제가 돌아서 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고집쟁이, 세상을 알아가다.
양희민연세대학교
의상학과 98
그는 유학파가 아니다. ‘타이틀’을 위해 늦깎이 대학생이 된 건 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가 대학입학을 미뤘던 것은 그 ‘타이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지만 굳이 디자인 공부를 하러 대학에 진학해야 할 것 같진 않았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집과 학교만 오가던 평범한 학생에게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였던 셈. 그의 부모는 그런 그를 믿고 지켜봤다.
그때부터 독립을 선언한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서빙, 오후에는 페인트칠, 저녁에는 호프집 아르바이트로 이어지는 생활은 그의 몸을 고달프게 했지만, 힘든 만큼 훗날의 도약을 위한 단단한 토대가 됐다. 대학 진학은 하지 않았지만, 대학에 입학해 술과 함께 한해를 어영부영 보내버린 친구들보다 많이 배웠고, 얻었다고 자신한다. 그 시기에 만났던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홍대에서 음악을 하는 옆집 친구를 만나 밴드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1년 반을 지내다보니 스스로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서 이만큼 배운 게 있으니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또 있겠지’ 싶었다. 남들은 세상이 ‘정석’이라 정해놓은 길로 직진해 들어갔지만 그는 항상 질문을 던져 그 스스로가 해답을 찾고, 납득을 한 후에야 빙 돌아서 갔다.
“사서 고생하는 타입이죠, 뭐. 결국엔 사람들이 가는 길이 맞더라고요. 그래도 한 번 왜? 물어보고, 안된다고 해도 ‘왜 안 돼?’ 하고 직접 가봐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지금도 그는 늘 돌아서 가는 걸 즐긴다. 그리고 그 돌아서 가는 길이 지름길이었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는 중이다.
돌아서 가는 길은 언제나 두근대는 법이다. 신발 끈도 제대로 묶고, 숨도 깊게 한번 들이쉬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는 여유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숨어드는 위선이나 가식은 던져 버리고 있는 그대로 솔직히, 그리고 천천히 알아간다. 그가 돌아서 온 길이 사실은 지름길이었다고 깨달을 수 있었던 건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 덕분이다. 돌아온 길은 그가 가고자 했던 ‘패션 디자인’의 꿈을 좀 더 가깝게,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 그는 방황하던 시기에 PC통신의 ‘패션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꾸준히 패션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공유했다. 그리고 결국 그들과 함께 남성 전문 의류업체인 ‘반달앤컴퍼니’를 세우게 됐다.
“나를 믿고 함께 가보자는 한마디에 모두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뛰어들어줬어요. 각기 디자인관련 회사에서 꽤 입지를 굳혔던 사람들인데 모두들 너무 고맙죠.”
7년을 알아온 사람들이었기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으로 세운 회사가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굉장히 추진력 있게 진행돼요. 이거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괜찮아? 묻고 오케이 하면 바로 가는 거죠.”
홍대클럽에서 음악 하던 경력도 회사를 경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은 음악이나 디자인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또 일찍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사업수완들도 빛을 발휘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의류홍보 촬영도 지인을 통해 잘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을 만날 때 오랜 기간동안 만나는 타입이에요. 몇 번 만난 사람과는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잘 치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장 큰 재산’을 확보한 덕에 요즘 그는 일에 푹 빠져있다.
“저보고 결벽증이라고까지 말하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어깨선 5mm의 오차도 안 넘어가는 스타일이거든요. 마음에 드는 제품이 나올 때까지 계속 붙잡고 있게 되죠.”
신제품을 준비할 때는 너무 바빠 9일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하며 지내기도 했다. 더위와 싸우며 며칠 밤을 지새웠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힘든 줄도 몰랐다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디자인 생각을 했어요. 이게 낫나, 이게 더 좋을까. 어떻게 하면 더 괜찮은 디자인이 나올까 하고요. 밥을 먹든 누구를 만나든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죠.”
아직까지 조언을 해줄만한 처지가 아니라며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정성껏 이야기를 하는 그에게서 사람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젊음의 특권이라 말할 수 있는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겸허함까지 갖추고 있는 그는 분명 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