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맘이 심란해서 일은 잠시 손 놓고,
멍하니 판만 들여다보고 있네요.
글이 좀 길어질 듯 해서... 스크롤 압박이 심하실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맘이 불안해서 뭔가 좋은 조언이라도 들을까 해서 글 남기는거니,
악플은 조금만 자제 부탁드릴께요.
저는 1년 넘게 만난 남친과 올 말에 결혼 앞두고 있구요.
사랑하는 사람이라 어느 정도 감수할 마음으로 결혼 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날짜가 다가오면서 가슴 속 두려움이 계속 커지고 있네요.
일단, 저에 대해 말씀 드리자면...
저는 30대 중반의 과한 나이에 11년차 미디어분야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굳이 연봉이라고 말하긴 뭐한 프리랜서 전문직으로 1년에 8천 정도 벌고 있네요.
부모님은 60대시고, 아버진 고위공무원이셨다가 명예퇴직하고 일반 회사 간부로...
얼굴 마담 비슷하게 일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갖고 계신 건물 임대업 하시면서
한우전문점 같이 하고 계십니다.
남자형제만 둘이 있는데, 하나는 일반 회사 다니고, 하나는 전문직으로 일하고 있구요.
겉으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고 유복해 보이지만, 일단 나이가 꽉 차다 못해, 넘쳐흐르는...
30대 중반이란 점.
이게 이렇게 가슴이 답답할 줄은 몰랐네요.
연소득이 8천 이상이지만, 엄하게 큰 돈 지출이 나가서 모아둔 돈은 2억이 좀 안됩니다.
과거 남자를 사귄건 3명이구요.
한 사람은 20대초에 만나 서른 먹을 때까지 9년을 사겼고,
또 한 사람은 2년 사겼고, 마지막 사람은 6개월을 사겼네요.
9년 사귄 사람과 정말 끝까지 갈거라고 믿었고,
집에서도 서로 알고 당연히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사람 사업한다고 했을 때, 자금도 보태주고 사업 휘청거릴 때...
빚까지 내서 도와줬지만, 결혼날짜까지 잡고 엄마가 그 사실을 알게 된 바람에...
결국 우리 집에서 엄청난 반대로 엄마 쓰러지는 거 보고...
울면서 헤어졌네요.
그 덕에 한 2년 그 빚 갚느라 밤 잠 못 자면서 일에 매달렸죠.
그 후 2년 만난 사람은 경제력도 있고, 굉장히 남자답고 잘 해주긴 했지만...
마초적 성향과 지나치게 간섭하고, 한번 화 내면 사람 잡아먹을 것처럼
무서운 성격에 도망치듯 피하고 피하다 헤어졌구요.
마지막 사람은 종교도 다르고(그쪽 기독교, 저는 불교), 궁합이 안 좋은데다,
4대 독자에...지나치게 마마보이라 질려서 헤어졌습니다.
아무래도 9년을 만난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그 9년 만난 사람과 헤어질 때는 심장이 반으로 쪼개진 것처럼 아프더니...
그 후에 사귄 사람들하고 헤어지고 나서는, 덤덤하고 아프지도 않더라구요.
마음을 많이 못 줘서 그랬는지...
이미 9년 사귄 사람과 끝났을 때부터 결혼에 대한 자신도 없고,
꼭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종종 남는 시간에 데이트 하는 건 나름 즐거운 생각이 들긴 해도...
결혼에 대해 좀 부정적인 성향을 갖게 된 거 같아요.
그리고, 작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업무차 자료 요청때문에 연락하게 된 인연으로 지금까지 온 게 지금의 남친입니다.
나이도 동갑에 잘 생기고 키도 185에 잘 웃고 외모가 너무 훈남형이라...
처음엔 당연히 결혼을 했거나, 애인이 있겠지 생각하고 별 뜻 없이
식사만 하고 헤어졌는데...
그 후로 하루에 문자를 수십통 보내고 전화를 계속 하면서,
조금씩 친해지게 됐죠.
자기는 들이대는 여자도 싫고, 말 안 통하는 여자도 싫고,
남자 조건 따지는 여자가 싫어서 아직 장가 안 갔다면서 만나보자고 하길래...
첨엔 딱 한 달만 만나보기로 했었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상하고, 바람끼도 없고, 어디 가면 어디간다 전화하고 문자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전화하고, 밤에 자기 전에 전화하고...
이런 모습들에 신뢰감이 가기 시작하더군요.
뭐 여전히 이런 모습은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문제는, 우리 부모님께 소개시켜주고부터인데요.
엄마가 상당히 맘에 들어 하셨어요.
싹싹하고, 인물 좋고, 사람 착실하다고...
게다가 궁합까지도 이런 사람 못 만난다고 했다고...
적극 밀어붙이시더라구요.
올 봄에 결혼할까 했었는데, 제가 일도 많고 겁이 나서...좀 미루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올 여름에 결혼 얘기 나오고나서, 뭔가 사람이 이상하게 불안해 보이더니...
일주일 전쯤 이 사람 갑자기 무릎을 꿇고는 고백할게 있다는 겁니다.
무슨 얘긴고 하니...
5년 전에 이혼을 했다는 겁니다.
아이는 없고, 6개월 정도 살았는데 성격차이로 이혼을 했다네요.
사랑하면 이해할 수도 있지 않냐...하실 수도 있지만...
그쪽 여자분 입장을 들어보지 않은 이상, 무슨 일로 이혼했는지도 모르겠고...
제 편견일 수도 있지만, 둘만 사랑하고 연애하다 끝낸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친인척 다 모아놓고 영원을 맹세했는데 성격차이로 끝냈다는게...
그때부터 미치도록 맘에 걸립니다.
돈이야 둘이 사랑해서 다독이면서 서로 열심히 벌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고...
이 사람 연봉은 3천 조금 넘고, 모아둔 돈은 천만원도 안 되는 사람이고,
몸 아파서 일 쉬고 있는 형에 부모님도 다 놀고 계시고,
어머니는 새어머니인 사람이지만...그래도 사랑하니까...
이겨낼 수 있을거다, 돈이야 내가 더 열심히 벌면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으로...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결혼 생각했었는데......
하늘이 무너진 듯한 기분입니다.
우리 부모님 자식 못 이기는 부모님인데다, 제가 어릴 적부터 고집이 세서...
좋다는 거 다 해주시고, 작업 때문에 부모님이랑 같이 못 살겠다하니...
아파트 하나 얻어주실 정도로...자식이라면 끔찍이 생각하는 분이라...
그 사람 돈 없고 힘든 상태지만, 그냥 어느 정도 모아놨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대충 내 돈으로 서울 변두리에 전세라도 얻음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혼남과 결혼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가 좀만 어렸어도, 그만 두자고 말 할 거 같은데...
집에 결혼한 자식 하나 없다고 우울증 온다던 아버지 생각에...
곧 결혼할 줄 알고 미리부터 하나밖에 없는 딸 주겠다고 예쁜 식기며, 이불이며...
주방 조리기구며 사놓고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하니...
20대때 불효한 자식이 또 불효할까 싶어서 잠도 안 오고 힘드네요.
이 사람 참 마음 착한거 알고 있고...
내 생각 많이 해주는거 알지만,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듭니다.
너무 놀라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달라고 하긴 했는데...
어떻게 이런 것을 지금까지 속일 수가 있는지...
배신감이 너무나 큽니다.
아무한테도 말을 못하겠고, 남친 친구들이나 남친 부모, 형제 역시...
단 한번 어떤 뉘앙스도 풍기지 않고, 나를 대했단 생각을 하니...
우롱당한 기분까지 들고 가슴이 진정되지가 않네요.
이혼한 그 여성분한테 뭐 때문에 이혼했는지라도 물어봐야 할까요...?
그 여자분이 무조건 잘못해서 이혼한 것처럼 말하는데...
양쪽 입장을 다 듣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는 일이니...
이 나이에 또 헤어져서 부모님 가슴에 대못 박고...
또 남자도 믿지 못하고 살아갈 생각하니 앞이 깜깜하고...
제가 아기를 너무나 좋아해서...아기 갖으려면 나이도 너무 많고해서...
결혼을 결심한 부분도 큰지라...
지금 헤어지고나서 또 시간 어영부영 흐르고나면,
아기 갖기 힘들만큼 나이 먹진 않을까 걱정도 되구요.
너무 조건을 안 보고 사랑만 믿겠다고 호언장담하다가,
뒤통수 크게 맞았다는 생각도 들고...
이 남자 하는 말이 나같이 조건 좋은 여자 만난 적도 없고,
자길 이만큼 사랑해 준 사람도 없다고...
내가 자길 버리려고 해도, 죽어도 안 놔준다는 문자나 보내고...
지금은 자기가 없어서 아무 것도 못해주지만, 결혼해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게 해준다는 누구나 하는 말들 입버릇처럼 하고 있는데...
이제 왜 이 말도 믿어지지가 않을까요...
헤어지라고 말들 할 거로 짐작됩니다.
참 나이가 이렇게 나를 압박하고 짓누르는 묵직한 돌덩이가 될 줄이야...
20대때 그렇게 결혼하자고 졸라도...
하는 일이 너무 재밌고 좋아서, 더 성공하고 싶은 마음에...
미루고 미뤘던게 후회도 됩니다.
그냥 나도 한 번 갔다왔음 이렇게 억울하고 배신감은 안 느껴졌을까요?
제가 지독한 개인주의라 희생정신이 없는 걸까요...?
한 친구에게 전에 결혼 할까봐 했더니...
그 사람 집 구할 돈은 있냐 묻길래...그냥 내 돈으로 하지 뭐...
이 나이 먹어서 뭘 더 바라냐. 총각이면 됐지...이랬더니 하는 말이...
평강공주 병 났다 하면서 어이없어 하더군요.
만약 이 사람이 한번 갔다온 거 알면, 얼마나 뒤에서 비웃을까요?
참 나이 먹어서 결혼 뒤엎는게 쉬운 일도 아니고...
머리로는 이건 아닌데, 가슴으로는 아직 사랑하고 있는 것도...많이 아프네요.
제 가족, 제 친구, 직장동료들한테 전부 속이고 이 결혼을 강행해야 하는 건지...
단지 나이는 많이 먹고, 아이가 갖고 싶기 때문에...
아님, 뒤집어 엎어야 하는건지...답답합니다.
혹시라도 모든 걸 다 감수하고 결혼하려는데...이런 황당한 상황 겪어보신 분 계실까요?
너무 답답하니, 익명의 이곳에라도 글을 쓰게 되네요.
암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