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pann.nate.com/b202531293
위의 글로, 처음으로 써본 네이트 판에서 톡에 가게 되었었습니다.
조회수도 관심도 별로 없는 글 이었는데도, 톡에 뽑아주신 운영자분 감사드립니다.
물론, 다른 글들에 비해 관심 밖 영역의 글 이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분들이 언더 록음악에 대한 관심을 표출해주셔서 너무도 감사하였습니다.
몇 편에 걸쳐서 (좀 길어요..) 제가 겪어온 록 밴드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즉 톡에 갔던 글이 이 글의 요약본 입니다..)
4~5년전 디시인사이드 악기갤러리에서 한 달 정도에 걸쳐서 싸내던 글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재구성하고, 현재까지의 일을 적어볼까 합니다.
아직 자서전 같은걸 쓸 나이도 아니고, 위인도 능력도 전혀 아닙니다.
사실 제목도 저렇게 하면서, 손발이 없어지는거 같지만
마땅한 제목이 떠오르질 않아서 그냥 씁니다.
그냥 네이트 판에서 편하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보고, 록 밴드에 관심이 있는
분들과의 교류 및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글을 써봅니다.
총 5부작 입니다.
밑에 한번에 모두 이어 놓겠습니다.
많이 길어요.. ㅇ_ㅇ.. 5편 나누어쓰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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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 Rock과 Guitar에 대한 입문기 중고딩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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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중딩 1학년 때 였습니다.
이때까지는 좋아하는 가수나 음악으로는, 여타 다른 중딩들과 같이
댄스, 발라드 등의 각종 가요와 백스트릿보이즈, 브리트니 등의 유명한
팝가수 들이 전부였습니다.
기타란 악기는 그저 외삼촌 집에서 본 커다란 클래식 기타가 전부였고,
전혀 알지를 못하는 미지의 세계의 물품이었습니다.
MTV에 말랑말랑한 팝음악을 들으려고 키면, 가끔가다 나오는 메탈, 하드록 음악들이
그저 시끄럽기만 하고, 악기들은 '아 그냥 비싸보이네' 정도의 무지의 중딩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밴드악기를 실제로 보게 된 것은 중딩 1년때의
학교 축제 였습니다. 그전까지는 학교에 밴드부가 존재하는줄도 몰랐는데,
축제때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요.
헐... 실제로 눈 앞에서 일렉기타와 드럼이 연주되는 것을 보니, 충격이었습니다.
와.. 그냥 듣던 노래의 반주가 실제로도 연주가 되다니! 라는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충격은 곧 다시 기억 먼 저편으로 뭍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중딩 2학년 겨울방학.
서울대 영문과에 재학중인 사촌형이, 군입대를 앞두고 멍청한 동생
사람을 만들어 주겠다고 무료 과외를 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고모의 강압 같습니다.)
근 3년만에 처음보는 사촌형의 모습.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머리가 긴 장발의 모습으로 집에 나타났습니다.
그땐 그냥 왜저러고 다닐까 싶었습니다.
3번째 과외 수업을 받던 날. 매일 책가방만 들고오던 사촌형이 이번에는
이상한 번개모양의 기타가방을 들고 왔습니다.
오! 이런 모양의 기타도 있었나? 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수업을 하기 싫었기때문에 이것저것 캐물었습니다.
그저 학교에서 음악동아리일 줄 알았던 사촌형이 말로만 듣던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생각은, 뭔가 영화나 만화 속에서만 보듯
술과 담배 마약 등 각종 나쁜 행위도 곁들여지면서 음악을 하는 ....
그런 모습으로 중딩 2학년의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생인 사촌형도 그러는걸 보니 뭔가 내가 생각하던게 아니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역시 또 이것저것 캐물었습니다.
무슨 음악을 하냐고 묻자, Queen의 음악을 오디오에 걸고서 들려주었습니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저런 모양의 기타로 Queen 카피밴드를 한게 좀 -_-..)
꽤나 말랑말랑하며, 드던 팝과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그닥 흥미를 이끌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Rock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게 신기한건지, 이후 쉬는 시간마다
여러가지 Rock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전보다는 조금 다르게 들렸지만, 그저 시끄럽다는 느낌이 훨씬 강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듣게 된 것이 Yngwie malmsteen 이었습니다.
아.. 뭔가 기타로 바이올린을 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섬세한 멜로디와 웅장한 분위기.
보컬이 없는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곡 분위기.
기타란 악기에 처음으로 큰 관심이 쏠리게 되었습니다.
이 후 수업시간 동안은, 그저 멍때리고만 있다가 형이 떠난 후에야
유니텔을 (당시엔 인터넷 그런거 보다 이런 PC통신 시대였습니다.)
키고서, 이것저것을 찾아 보았습니다.
엄청난 정보가 많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그동안 이런 사람을 한번도
못 들어봤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량의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간은 완전히 Yngwie에게 매료되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기타란건 전혀 모르던 중딩이, 펜더라는 기타 메이커도 알 게 되고, 기타줄이 6개인 것도
그때 처음 알 게 되고, 초크로만 알고있던 삼각형 플라스틱이 피크란 것도 알았습니다.
처음으로 레코드점에서 내돈 주고 시디도 사게 되었습니다.
그 일주일간, 기타가 마치 이전부터 나의 인생이었다고 착각될 정도로 빠져살았고,
이에 힘 입어 엄마한테도 기타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만에 예전부터 꿈은 기타였다는 듯.. 중2병이 한참 물 오를 때였습니다.)
엄마는 S대생인 사촌형에게 물어보고 사라고 하였고, 스스로는 당연히
사촌형이 이것저것 도와주며, 기타의 세계로 이끌어주리란 자뻑에 도취하여
처음으로 과외선생인 사촌형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림끝에 온 사촌형의 대답은 '중딩은 기타치면 안되요' 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주적 1순위로 사촌형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전만해도 기타는 모르던 좁밥이, 갑자기 기타는 나의 인생이었는데
당신때문에 내가 꿈을 접어야 한다는 투로 불평만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때부터 엄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중2의 신분에 맞는 최선의 반항을 하기 시작했고
(끽해야 학원안가기 -_-.. 학교에서 뻘짓하기 등이었죠. 이게 큰줄 알았습니다 ㄲㄲㄲ)
이 싸움은 1년이 지속됩니다.
지치다 못한 엄마는, 중3 제 생일 선물로 결국 기타를 사주게 됩니다.
(하도 반항을 해대니, 학교에서 당시 담임선생님이 엄마께 직접 편지도 쓰셨었습니다.)
중2병 환타지의 승리로, 결국 기타를 얻게 되고 이미 마음은 Rock스타 였습니다.
싸우는 기간동안 (즉 기타가 없는동안)은 만족감을 달래기 위해,
열악한 PC통신으로 수많은 Rock음악을 찾아 해매기 시작했습니다.
Megadeth, 메탈리카, Mr.Big, Def leppard, Bon jovi 등등..
이 1년간 하루에 쉼없이 3~4시간씩 락음악만 쳐들어서 인지, 또래 애들에 비해
락음악이란 장르에 대해 좀 더 알고 있는 중딩이었습니다.
기타를 사게 되면 바로 위의 음악을 칠 수 있을것 같았으나...
악기란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여, 동네 기타 학원에
등록도 하였지만, 언제나 기타학원은 다른 중요 과목 학원에 밀려서
시험이 있거나, 숙제가 많거나 하는 날은 가지를 못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냥 게을렀음.)
결국에는 독학으로 아주 잘못된 자세와 방법으로 기타를 익혀갔고,
늘지 않는 실력에 좌절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학교 스쿨밴드도 너무도 하고 싶었으나, 이는 절대 금기사항이었기 때문에
근처에도 가지를 못하였습니다. 이때는 학교에 기타를 매고 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그져 기타를 매고 밖으로 나갈때는, 시험이 끝난 후에 낙원악기상가에
줄이나 피크를 사러갈 때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아주 노말한 일상으로 시간이 흘러가서, 고2가 되었습니다.
이젠 왠만한 밴드이름은 다 알정도로 음악에 대한 지식이 넓어졌습니다.
그에 동반하여, 마음 속에선 언제나 밴드를 하고 싶다는 욕구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중 고2의 축제 일주일전. (고3들 수능날 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회장을 하던 동네친구가 학생회 까페에서 밴드공연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해왔습니다. 연습이고 뭐고 생각도 안하고 바로 OK를 한 후,
일주일간 밴드연습에 돌입하였습니다.
학생회장인 그 친구가 베이스+보컬을 했고, 저는 기타, 스쿨밴드 드러머에게 부탁해서
멤버를 결성한 후 일주일간 정말 열심히 연습을 하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학교에 기타매고 가기도 일상이 되었고, 마치 록스타가 된 양,
행동하고 다니는 철없는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연습만 하고 있었고, 공연 경험은 커녕 남 앞에서 기타를 많이 연주해
보지도 못한 터라 첫 공연은 개판을 칩니다. 늘상 마음속에서 연습해던
그 멋진 모션들은 다 없어지고, 덜덜덜 떨어대며 첫 무대를 끝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후..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꺼면 제대로 하고, 하지 못할거면 아예 건들지를 말자.
기간도, 딱 고3이 되기 한달 전이다 보니, 슬슬 현실감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빼어난 음악에 대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예인들 처럼 잘 생긴것도 아니고..
집이 부자거나, 안정적이여서 나하나 막나가도 괜찮은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태어나고 몇 일 안되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집에 남자라곤 저밖에 없었죠.)
잠시 멍청한 생각을 접고, 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바라던, 밴드생활을 하려면 학교도 좋은 곳을 가야 편하게 할 수 있겠다.
라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수많은 라이브 클럽들이 신촌, 홍대, 이대 지역에 밀집해 있지요.)
이전부터 이런 마음이 없던 것은 아니였지만, 진심으로 느낀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다음날, 기타를 가방에 싸매서 장농안에 봉인을 하고, 1년만 참기로 하였습니다.
꼭 좋은대학 가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마음껏 음악을 해야지.
란 마음으로 가득차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중고딩 시절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2편에서 이어서 하겠습니다. ㅇㅇ..
손발이 오그라드는 길고 재미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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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대학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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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 되기전, 맘먹은대로라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내야 될 것 같았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ㄲㄲㄲ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란 개뻘글에 넘어가서, 공부에 올인하면 다 잘되겠지
란 생각은, 역시 인천의 한 머저리 고딩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내신이 수능보다 좋았기에, 이곳 저곳 수시원서를 마구마구 집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모두 붙어가는데 혼자서만 이곳 저곳 다 떨어지기 시작했지요.
대망의 수능날은, 완전히 망쳐버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점수는 과탐 선택과목을 매기지 않은 듯한 점수와 1년동안 공부를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점수가 나와버렸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재수를 하라고 했고, 머릿속에는 또 음악을 못하고 참아야 되 라는
생각이 가득하여,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주인공이 되어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수시원서 두 곳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은게 없었습니다.
이 남은 수시 모집에 모든걸 걸고는, 음악을 내년안에 꼭 해보겠다는 생각하에
몇일 밤을 새가며, 면접 준비를 하였습니다.
목표 대학 대망의 면접날... 덜덜 떨며, 교수님들 앞에서 말도 안되는 뻘소리들을
한트럭 해대고 끝냈습니다. 생각했던 것을 다 못말하여 떨어질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후 발표날.. 다른 학교 시험장으로 가던 도중에,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합격 되었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아직 태어나서 한번도 남들이 보는 앞에선 안울어봤던 제가, 부평역에서부터
질질대며 크헝헝 거리며 학교로 뛰어갔습니다.
머릿속에는 역시 드디어 음악을 해볼수 있겠다 란 생각뿐이었습니다.
수시 합격 다음날.. 곧바로, 그동안 인터넷에서만 동경의 대상이었던
바로크 록밴드 지하드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신 선생님께 레슨을 받기
위하여 찾아갔습니다.
(고3이었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수능이 끝나면 뭘할까를 순위 매기곤 하잖아요 ㅇㅇ.
그때 1순위가 저에겐 이 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가본, 기타레슨.. 충격에 충격이었습니다.
제대로된 교육이 중요성이 이토록 중요하단걸 알았고, (그간 해온 짓은 다 뻘짓..)
저보다 어린나이에도 너무나도 기타를 잘치는 사람들이
그 좁은공간에 밀집되어 있는것을 보고, 자존심도 상하면서 학구열에 불타올랐습니다.
(뒤에 다시 나오겠지만, 여기서 만난 한 친구하고 같이 밴드를 하게 됩니다.)
남들은 대학 신입생 준비를 위해, 운동과 아르바이트 등에 심취하였을 고3겨울방학.
저는 오로지 기타 연주에만 심취하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레슨이 없는날도, 연습실에 찾아가 기타 연습에 몰입하였고, 눈을 감으나 뜨나
항상 기타 연습만이 1순위 였습니다.
무식하게 연습만 한 탓인지, 방학이 끝날때 쯤엔 Deep purple의
Smoke on the water를 완주 하게 되었습니다.
(원곡 버젼은 아니고, 라이브 버젼입니다.)
첫 대학 OT를 가게된 2월... 이런 자리를 몹시도 싫어하지만, 안가면
수강신청을 못하게 되므로 -0-.. 어거지로 참여하였습니다.
과별로 OT를 하지 않았고, 이 학교는 공학1반 이런식으로 OT를 합니다.
1조에 배정되어서, 처음가본 대학 강의실 안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앉자있었습니다.
제 옆에는, 나만큼 뭔가 사회성이 결여되어 보이는 이상한 남자애 한명이 앉자있었고,
다른 조원들도 비슷비슷하여, 아무말도 없이 앉자만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가장 오기 싫었던 이유인 장기자랑... 을 선배들이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장기자랑은 조별로 이루어졌고, 오자마자 그 서먹함을 깨기 위한 의도인지,
그냥 웃을려고 하는건지 (이게 맞는거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ㄲㄲ)
조별 장기자랑을 20분 이내로 준비하라는 명이 떨어졌습니다.
사회성이 결여되어 보이는 조 답게, 모두들 한마디도 안하고 누군가
빨리 해결책을 내줬으면 좋겠다는 모습으로만 앉자있었습니다.
마침 강의실 구석에는 1, 2번줄이 끊어진 통기타가 한대 있었습니다.
뭔가를 해야되었기에.. 조원들에게 건의했습니다.
'나 기타를 조금 칠 줄 아니까, 그냥 노래나 하자..'
모두들 불만이 있는 얼굴로 승낙을 하였고, 곡은 Radio head의 Creep으로 정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조원들의 상태와 곡 이름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군요 ㄲㄲㄲ
곡을 연습할 시간은 10분이 채 안되었습니다. 다들 가사 익히기에 바빴고,
저는 악보를 외우기에 바빴습니다. 제대로 맞춰보지도 못한채 장기자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위의 곡을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곡의 후반부로 가면 고음으로 보컬이 노래를 합니다.
아무리 조원들을 봐도, 노래를 그닥 잘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없었기에...
저부분이 시작될 쯔음, 기타 코드 진행을 멈추고 끝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까 내옆에 앉자있던 이상한 그 인간이, 혼자서 샤우팅을 합니다.
기타 코드는 멈춰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물쩍거리며 있고..
혼자서 큰 강의실에 샤우팅을 해대고... -_-..
선배들은 좋아서 난리가 났습니다. 웃겨 죽지요.
뒤늦게 코드를 따라가고, 의도치 않은 개그간지를 뿜으며 장기자랑을 끝냈습니다.
장기자랑이 끝난후,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저와 모습이 많이 비슷했습니다.
비주류인 록메탈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부르는걸 좋아하고.
친해질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개강을 하게되고, 개강 하자마자 머릿속엔 온통 밴드동아리 뿐이었습니다.
3월 첫 수업들은 온통 자체휴강을 하면서, 교내 밴드 동아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대학에서는 음악을 진지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많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다녔습니다.
대학 동아리에 대한 모욕은 아니지만.. 당시의 저는 상당한 자만감에 부풀어 오른
멍청이 였습니다. 음악 동아리면, 오직 음악만 해야된다는 이상한 개똥철학으로
무장을 하고, 조금이라도 친목이 우선인 동아리라고 생각되면,
이런 곳에서는 나의 꿈을 펼칠수 없다란 뻘생각으로 사람들 심기만 건드리고 다녔습니다.
(이때 동아리도 하면서, 후에 밴드생활을 했다면 대학생활이 더 윤택했을것 입니다.;)
결국 실력도 충분치 않으면서, 언더그라운드밴드를 결성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멤버 모집에만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3편에서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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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 멤버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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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울줄 알았던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하지만 지금도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밴드 멤버 모집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주변에서 우선 찾자란 생각에, OT때 노래를 했던 그 친구에게 밴드를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요청을 했습니다. 얘도 하고 싶던건지 흔쾌히 수락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일상은 똑같았습니다. 수업을 듣고, 함께 밴드모집을 위하여 오만가지
행동을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근처 학교에 포스터도 붙여보고, 클럽이란 클럽은
모두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돌리고, 구인 사이트에 글을 올려보고..
하려는 음악이 ME-TA httpl이다 보니, 록에서도 비주류인지라 정말 씨가 말랐더군요.
2004년 대학 신입생을 그렇게 허탈하게 아무것도 못하며 보내기만 하였습니다.
몇 번, 멤버가 약간 갖춰져서 진행을 해보려고 했지만, 모두들 개인사정 때문에
(군대에, 학업에, 정말로 다양했습니다.)
한두번 맞춰보고는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보컬과 저는 2004년을 그렇게 보내며, 군대를 가야되는건가..
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애써 아쉬운 마음을, 근처 언더그라운드밴드 공연을 보러다니며 식혔습니다.
항상 뭔가 저는 막바지에 약간씩 풀리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일이 살짝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기타 레슨 갔을때 만난 친구가 소개시켜준 베이스주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와 함께 밴드를 했던 아이었습니다. 구하기 힘든 리듬파트를 한 명 구하게
되어 너무도 힘이 솟았습니다.
이어서 인터넷 구인을 통해 드러머도 구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4년 한해간 해온 뻘짓이, 단 일주일만에 모든게 해결되었습니다.
인근 모 대학의 합주실에서 첫 합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처음으로.. 진짜 하고싶던 음악을 모든 멤버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합주를 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합주곡은 유명한 멜로딕스피드메탈 밴드인 스트라토베리우스의 곡 이었습니다.
잘했었는지 못했었는지는 사실 기억도 안나지만.. 늘 이어폰으로만 듣던 음악을
실제로 연주하고 있다는데 너무 큰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금방이라도 이제 무대에 올라 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밴드의 최소 구성원이 모두 모였으니, 이름을 짓기로 하였습니다.
하는 음악 장르가 메탈 쪽이다 보니, 뭔가 강렬한 이름이 필요했습니다.
이럴때 잘 찾는게 보통, 외국 신화의 신들 이름이지요 -0-..
메탈의 강한 이미지, 이름만으로도 무슨 음악을 하는지 나타내야겠다는
생각에, 선택했던 것이 이프리트 라는 이름입니다.
불의 신의 뜻을 담고있는 이름이지요.
이렇게 2005년 1월경, 이프리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후 세컨기타도 구하게 되고, 밴드는 일주일 두번 정말 열심히 연습을 하였습니다.
4~5달 간의 연습결과.. 밴드에서 맞춰본 카피곡이 거의 10곡이 다되었습니다.
슬슬 다들 공연 욕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합의 끝에 2005년 7월을 첫 공연으로 잡게 되고, 신촌의 WASP라는 클럽을
(지금은 Sky high로 바뀌었습니다) 대관 하였습니다. (대관 = 클럽을 하루 빌리는 것)
인맥으로 홍대의 스쿨밴드를 섭외하여, 게스트를 세우고.. 베이스 동생의 다른 밴드를
섭외하여, 총 3팀이 함께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친구들을 공연 보러오라고 긁어모으고.. 표도 열심히 팔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뭔가 고2때의 그 엉망인 말도 안되는 공연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떨리기만 했습니다 -0-..
실제로 무대에서 처음 잡아보는 사운드... 많은 관중..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면서, 순식간에 공연이 끝났습니다.
엉망인 공연이었으나, 클럽 사장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그 공연 이후
WASP 클럽의 정규 팀이 되었습니다.
(정규 팀이 되게 되면, 클럽의 정기적인 공연에 참여하게 됩니다.)
첫공연의 아득함을 만회하기 위해, 더더욱 열심히 연습에만 몰입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또다른 문제는 생기게 되지요.
회사건 학교건 어떤 형태의 직장이건.. 무슨 일을 함께 하는 공동체가 생기면,
내부에서 작고 큰 문제가 쉼없이 동반되게 됩니다.
이젠 정말 잘될거만 같던, 밴드에서 내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베이스 동생이 학업 문제로, 팀을 잠시 쉬게되고..
이외에도 밴드내에서 불화와 다툼이 생기게 되면서... 정기 공연은 10번 채 해보지
못하고 밴드가 깨지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2005년 말 이었습니다.
아... 다시 원점 이었습니다. 이젠 뭔가 정말 될 줄 알았는데, 다시 처음이었습니다.
아득했습니다. 다시 또 모을수 있을까.. 1년간 삽질했던걸 또 다시 해야되는가..
공연 없이 몇달을 지내다가, 2화에서 나온.. 같은 선생님께 기타를 배운 친구가
프로젝트 밴드를 2달간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공연에 목말라 있던 저는 흔쾌히 수락을 하였고,
프로젝트 밴드로 몇번의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 활동무대는 ZOO라는 홍대앞 클럽이었습니다.
(라이브 까페 형식 입니다.)
프로젝트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친구가 군대를 가버리고,
다시 원래의 밴드인 이프리트로 돌아올 시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위기의 상황에 M&A를 하듯, 우리에게도 M&A가 있었습니다.
프로젝트 밴드의 드러머와 기타리스트를 모두 흡수하여,
다시 5인조의 밴드로 완성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모두 나이대도 비슷하고..마음도 통하여 이전보다는 잘 될 것 같았습니다.
-당시의 공연모습-
클럽 ZOO를 필두로, 주 1회의 규칙적인 공연을 시작하였습니다.
꿈만 같던 공연이 매주 있다고 생각되니.. 정말 꿈속에서 살았습니다.
학교에 기타를 매고와서, 수업을 듣고, 끝나고는 공연을 하러 갔습니다.
그렇게 3달을 넘게 공연을 한 후..
카피곡만 하다보니, 이젠 우리의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다소 엉성한 Midi실력으로 악보를 짜맞춰가며, 합주에 합주를 거듭하여
자작곡도 만들어 냈습니다.
곡 이름은 Into the light.. 첫 자작곡 이었습니다.
(지금 앨범에 실린 버젼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평화롭게만 지나갈 것 같았으나...
이번 3화가 제목이 멤버모집인 만큼.. 멤버 문제는 아직도 끝이 나질 않았습니다.
드럼을 치던 형과, 베이스 동생이 개개인의 사정에 의해 밴드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처음 멤버가 깨질때와는 달리, 좋은 분위기에서 해결된 일이라 괜찮았습니다.
추후 멤버도 이미 있던 상황이기에 ㅇㅇ.. 다시 연습만 하면 되었습니다.
다음 멤버로는, 기타 친구의 후배 베이스 한명과, 보컬의 동생의 친구!
복잡하지만 어쨌든 드럼이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복잡했던 멤버교체..
멤버모집 이후에, 함께 1집을 만든 멤버가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현재 검색 포탈에 이프리트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이어서 4편에는 1집 녹음에 대한걸 써보겠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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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 1집 앨범 God of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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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가 안정화된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활동을 하였습니다.
주 1~2회의 합주와 1~2회의 공연.
이제는 공연이 처음처럼 떨리지도 않았고,
밴드가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게 되었습니다.
멤버들과의 수없는 교정을 하면서, 자작곡의 수도 한둘 늘어가게 되었습니다.
공연 영상도 포탈들에 많이 올리면서, 소수의 사람들이 이프리트란
이름을 알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소수입니다. ㄲㄲ)
아무 걱정없이, 진심으로 원하는 밴드의 모습을 한 채 지낸 2006년..
멤버들이 모두 20대 초반이다 보니, 슬슬 군대의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곧 이어서 2008년에는 군대를 가야하는 상황에 치닫은 멤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게 되니, 다시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공연도 경험도 중요하지만.. 다시 멤버들이 군대로 인하여 흩어지게 되면
다시 멤버가 모인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여지껏 적게나마 이뤄왔던 것들을
잊혀지게 된다고 생각하니, 까마득 했습니다.
자작곡의 수도 어느정도 있었고..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뭔가를 남기자. 앨범을 만들어보자.
2007년 5월에 멤버들과 협의하여, 빡센 상황이지만.. 앨범을 만들어보자고 합의햇습니다.
허나 다들 별다른 직업도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 이었습니다.
있는 돈 없는 돈 긁어 모으고, 시간 시간 짬을 내어서 알바를 하였습니다.
2007년 8월 2일.
어느정도 자금이 모이게 되고, 클럽 ZOO 사장님의 소개로 알게된
Sonic-boom 스튜디오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스튜디오 처음 방문한 날.-
녹음에 대한 견해를 여쭙고, 계약을 하였습니다.
처음 예상은 방학인 두 달만에 녹음을 모두 끝내고,
2007년 말 안으로 발표하는게 목적 이었습니다.
또 하지만... 공연도 처음할때 그렇게 해맸는데, 녹음이라고 쉬울 리가 없었죠.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매번 갈때마다 발생했습니다.
(라이브로는 괜찮았는데, 녹음 할 때 이상하다던가.. 그날따라 기타 소리가
너무 이상하다던가.. 보컬이 목감기에 걸린다던가.. 사고가 난다던가 등등)
정말 쉬운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되는 적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도 밴드가 주변 사람 복이 있는지.. 스튜디오의 엔지니어 님께선,
한번도 짜증내시지 않고, 밴드의 입장을 생각하시며 차근차근 최선을 다하시며
레코딩에 임해주셨습니다.
예상했던 종료일이 점점 밀려나고.. 9월 10월 11월.. 계속해서 늦어지기만 했습니다.
학교의 개강도 함께 오면서 부터는, 신체적으로 몹시도 피곤하였습니다.
이제 학년도 고학년이다 보니.. 어려워진 전공과 빡세진 수업..많은 과제..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학교에서 살고, 저녁부터 새벽 막차시간까지는
스튜디오에서 지냈습니다. 인천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 바로 쓰러졌었죠.
뭐.. 몸은 정말 극심하게 힘들었으나,
하나하나 뭔가가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즐겁게 피곤했습니다.
지금도 누가 제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고 하면, 바로 이 시기입니다.
-1집 녹음 당시, 레코딩 장면들-
힘들게 녹음을 하여서, 결국 2008년 초에 녹음이 끝나게 됩니다.
후에 믹싱과 마스터링 작업을 거쳐서, 2008년 2월 27일.. 대망의 1집이 발매되게 됩니다.
-1집 앨범 God of fire-
앨범이 나오기 전까진 사실 실감도 안났으나...
직접 배달되어져 온 앨범 상자를 받고 나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15살 중딩때부터 바래왔던게, 이렇게 되었구나.
손바닥만한 시디케이스가 그토록 무겁고 알차게 느껴진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프리트가 첫 대뷔를 한, WASP의 도움으로 음반은 전국의 유통망에 고르게
배포가 되었습니다. 포탈에서 검색을 해봐도, 인물정보나 음반정보에
밴드의 이름과 멤버 이름이 뜨는걸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더더욱 감동이었던 것은, 학교 근처 시디점에 갔을때 뿌려진 우리 음반들을 볼 때와
인터넷에 검색을 했을때, 모르는 사람이 밴드에 대한 관심을 보일 때가
그간 작게나마 고생했던게 모두 보람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칭찬만이 가득한 관심은 아니었습니다. 불평 불만도 많았지만,
그런 관심까지 모두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적어도 무관심보다는 나으니까요 ㅇㅇ.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의 많은 도움들..로 생각했던 것 보다는 많은 수의
앨범이 팔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앨범에 투자했던 본전은 못거뒀지만요 ㅎㅎ.
그렇게 대뷔 이후 처음으로 앨범 발매 쇼케이스를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5월 11일. 석가탄신일 전날의 휴일 이었습니다. 날짜는 아주 좋았지요.
부처님은 학기 중에 오시는게 아주 마음에 듭니다.
-단독공연 포스터-
홍대의 Sapiens 7이란 클럽에서 이뤄졌습니다.
게스트로는 선생님 밴드인 지하드와, 존경하는 선배님 밴드인
원과 이슈타르가 무대에 서주셨습니다.
공연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 신촌과 홍대 이대 구석구석에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여지껏 공연중 가장 최고의 공연을 하고 싶다.. 가 목적이었습니다.
대망의 5월 11일.
100명 남짓이 올거라고 생각했던 공연에는, 클럽이 꽉 찰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거의 처음이었던거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보기 위해 왔던 공연은.
-수록곡중 Efreet-
-수록곡중 Into the light-
태어나서 가장 즐거운 공연을 한 후, 새벽녘까지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술을 잘 못먹지만, 이 날 만큼은 꽤나 많이 마셨습니다.
인천까지 가는 버스가 끊겨버려서, 첫차가 올때까지 기타를 매고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공연장인 홍대에서 양화대교-양평동을 지나 몇시간이고를
계속 걸어갔습니다.
우습겠지만, 그래도 밴드가 경험해왔던 일중에 가장 큰 일을 치루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간 모든 추억? 들을 되새기며 혼자서 삘삘대며
그 먼거리를 오바하며 걸어갔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역시 손발이 말려 듭니다.)
이후로는, 평소보다 공연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이리저리 홍보를 하기위해 주 3회 정도의 공연을 쉴세없이 다녔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5편에서는 밴드의 휴지기와 현재를 써보겠습니다.
-PS-
1집 수록 곡중 제가 작곡한 곡들의 모티브.
Into the light : 진심 좋아하는 것을 찾고 노력하면 잘될꺼라는 이야기.
Pygmalion :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 신화에서 따왔습니다.
진심으로 원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 (유일한 한글가사)
Out of the world : 현실 속에서만 나태하지 말자는 곡.
Chaos : 20대 초반의 혼란했던 마음을 담아놓은 곡.
Moon palace : 제가 태어난지 몇일 안되서 지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곡입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달의 궁전이라고
생각해서, 만든 곡입니다. (제목은 폴오스터의 소설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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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 밴드의 휴지기와 재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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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연이 끝난 이후, 어느때보다도 많이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을 불태우자는 신념으로 -0-...
앞서 말했던 대로, 2008년 말 에 베이스 동생이 먼저 군대를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군문제가 걸려 있었고, 저와 보컬은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에
학부 졸업과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두고 있었습니다.
(알다가도 모르겠는게, 처음에 대학올때는 오직 음악만을 위한 수단 이었다가
점차 공부를 하게 되면서, 이 일도 진심으로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학원 까지 오게 되었네요 -0-..)
활동을 접기 전.. 아쉬운 마음에 그동안 밴드가 자작곡 만큼이나 자주 커버하였던
아이언메이든의 노래 한곡을 기념비삼아 녹음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이언메이든 커버-
다시금 그 녹음때의 추억이 그리웠었지요.. ㅎㅎ
8월에 접어들면서는,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잠시 밴드의 휴지기를 가지기로
하였습니다. 군문제 및, 음악 이외의 일들에 조금 신경을 쓸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지막 공연을 아쉽게 끝낸 후.. 이제 멤버들은 제각각 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되면 함께 음악을 하기로 하면서요 ㅇㅇ..
베이스 동생은 군대가기전 고향으로 내려갔고,
드럼 동생은 일을 하기 위해 해외로 갔습니다. (지금은 군에 있습니다.)
다른 기타를 치던 친구는, 선배님 밴드인 원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었습니다.
보컬과 저는 졸업 준비를 하며, 둘 다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 인턴도 하고 ㅇㅇ... 전공 기반 공부도 다시 하면서요.
뭔가 일상같던 일을 안하게 되니, 좀이 쑤셨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잠시간은 추스릴 시간이 꼭 필요했습니다.
2009년 보컬과 저 둘다 대학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대학원 입학원서에 기타활동란에 '2008년 2월 1집앨범 발표' 라고
써놓으니 입학처에서 전화가 오더군요 -0-... 잘못 지원한거 아니냐고 ㄲㄲㄲㄲ)
대학원 생활이 만만치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음악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다시 밴드를 모으러 돌아다닐 여유도 없고..
다시 처음부터 모아서 할 기운도 아직은 없었습니다.
평일에는 대학원 생활.. 주말에는 생활비를 벌기위한 기타레슨 아르바이트..
초반에는 정말 쉬는 시간이 극 없을 정도로 피곤했습니다.
차츰 적응이 되면서는, 퇴근하고 돌아와 다시 곡작업에 열중하게 되었지만요.
2009년은 정말 너무도 빨리 지나갔습니다.
대학원 올 준비하고, 연구실 들어와서 정신차리니 2009년이 다 가버렸네요.
올해가 되자.. 정말 조금밖에 안지난거 같은데, 벌써 1집앨범을
발매한지가 2년이 다되었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앞에서 멤버 모으고 할때는 그 2달 3달이 그토록 길게 느껴지더니,
이 1년이 이렇게 빠른걸 왜 못 느끼고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보컬과 저.. 단 둘뿐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금 본격적으로 곡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물론 멤버모집도 하고 있구요.
다시 멤버를 모아서, 곡을 모두 맞춘후 앨범 준비를 하기에는..
이대로 1년 2년이 준비만 하다가 또 지나가버릴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소 도전적인 행동이었지만, 먼저 완성된 곡을 디지털싱글로 발매하자.
란 생각을 가지고, 4월경 녹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 곡이니 이건 정말 한달이면 충분히 끝내겠다 싶었는데..
대학원 생활이 만만치 않다보니 -0-... 녹음을 하러 가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안바쁘면 보컬이 바쁘고.. 보컬이 바쁘면 제가 안바쁘고..
이렇게 뭔가 잘 맞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냥 맘편히 곡 작업을 하며, 지내온 결과..
얼마전 8월에 2집을 내기전 첫 디지털싱글이 발매되었습니다.
-디지털싱글 Vendetta-
녹음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Sonic-boom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기타 녹음 모습. 손을 무자게 떨어대네요 -_- -
2집 제작을 위한 멤버는 아직 모두 모으지는 못 한 상황입니다.
그래도 3~4달간의 끊임없는 모집 끝에, 드러머는 새로 구인을 하였습니다.
드러머의 지인들을 통해서 새로운 멤버들도 알아보고 있는 중 이구요.
올해 안으로 멤버를 정비해서, 다시 이전처럼 공연에 뛰어들 생각입니다.
물론 이전만큼 활발하게는 힘들거 같습니다.
모두 직업이 있으니.. 그래도, 하고 싶은데 어쩔수 없이 해야지요.
2집은 내년안에 발매를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 초중반안에 내는게 직접적인 목표이긴 한데, 앞서 보았듯
수많은 문제가 또 생길거라는건 이제 예측이 가능합니다 ㄲㄲㄲㄲㄲ.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며 사는게 어렵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하다보면 어느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일을 해낸것도 아니고, 오히려 어찌보면
한참 좋은 직업이나, 자기개발 (영어나 각종 자격증 등 스펙)을 해야할 시기에
딴따라를 하며 놀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해볼 수 있다는 상황에 놓인게 참으로 즐겁습니다.
음악으로나 공부로나, 금전적인 성공을 목표에 두지는 않습니다.
더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직 둘 다 그러기엔 능력이 부족한게 정확합니다.
그냥 소박하게 원하는 것을 하면서
지금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앞으로를 지내고 싶습니다.
다시금 첫번째로 썼던 글이 톡에 가게되서,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던거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길고 서투른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원래는 앞서 말씀드린대로, 5편을 모두 나누어서 올렸습니다.
연구실에 출근하니, 톡톡란에 있길래.. 다 합쳐서 올려놓습니다.
길고 지루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편 : http://pann.nate.com/b202566868
2편 : http://pann.nate.com/b202567314
3편 : http://pann.nate.com/b202567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