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들어와 상식적인 인사를 하고 자리를 잡는다. 이 둥지에 앉으면 아무것도 두려운것도 슬픈것도 없다. 태옆을 푼 장난감처럼 찌익~ 거리며 여기저기 정리한다.
하루는 이렇다. 아침 출근, 간단한 지침전달, 제품확인, 커피, 고객상대, 커피, 서류확인, 커피 점심 커피, 서류결제, 커피, 안내확인, 커피.
갈수록 튀어나오는 오른손 핏줄의 색깔이 진홍색을 띄지 않고 청녹색을 띄는 까닭은 아마 커피 때문일꺼다. 2003년 스타벅스라는 데서 4000원짜리 커피가 나왔다고 해서 세상이 떠들썩하고 지금도 비싼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보고 답답해하는 마흔을 넘긴 동료들이 있는데. 사실 난 이해간다. 커피가 주식이고 밥이 간식 아닌가? 오히려 잠깐 먹는 간식이 더 비쌀때가 이상하다.
역시나 생각하지 않으면 일은 빨리 끝난다. 그리고 오늘은 적절한 접대자리가 나를 반겨준다. 오늘은 제약업에서 복제약 심사를 맡기 전 접대자리에 초대 받았다. 사실 임상실험도 깨끗하고 효과도 괜찮고 생산라인에 문제도 없어 시중에 팔아도 문제가 될건 없다. 그런데 제약업이 거만하면 안된다며 우린 앙탈을 부린다. 그러면서 이런자리에서 장난을 쳐본다.
그런데 오늘 자린 좀 조촐하다. 나름 분당안에선 간부라는 사람들이 모여 꽤 큰 자릴 기대했었다. 이 정도면 바닷가재 1.5kg 한마리씩 잡아주더니 오늘은 그냥 술집에서 편의점에서 파는 양주 몇개, 집앞에 있는 슈퍼마켓에서나 파는 과일, 술들이 3열종대로 서있다. 부장님도 좀 무겁게 천천히 가운데로 탁자를 붙잡고 탁탁치며 가는걸 보면 썩 내키지 않는가보다. 다행히? 직원은 눈치를 챈듯하다. 그리고 우리가 자리를 잡을때 몇번 나갔다오더니 제품 설명을 시작한다.
"최근 유행성 독감이 심각해지고 있고, 세계적으로 퍼지는데 비해 자체적인 기술이 부족해서 우리 회사에서 FTA비준에 맞춰 복제약을 생산하기위해....."
주절주절.. 사실 설명서는 다 읽었고 나름대로 우리 회사자채에서도 확인한 내용이다. 그런데 약간 불쌍해보인다. 멀 그렇게 꾸며대려 할까? 무슨 허경영처럼... 그런데 허경영과 다른점이 딱 하나 있다. 괴벨스가 말한 것처럼 허경영은 100%의 거짓말을 하지만 이 제품설명은 1%의 진실 안에서 99%의 거짓을 꺼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사실 허경영의 말이 100% 거짓이 아니고 단 1%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머지 99%도 다 진실이 되어버릴 수 있다. 쩝...
그러던 도중 여자들이 들어왔다. 적당히 옷차림새를 보니 접대를 배운 여자들인 듯하다. 갑자기 "으핫" 하며 부장님이 어깨를 펴고 의자위에 양팔을 걸친다. 일종의 자기가 보스라는 사인이다. 그러면 부장님 양쪽에 두명의 여자가 가게 되고 나머지 우리 옆엔 한명씩 앉게 된다. 제품소개해오는 직원에겐 붙지 않는것을 보니 완벽하다. 이렇게 하면 나머지 99%의 거짓이 100%의 진실이 되는거다. 이것이 도시의 산술방식이다.
내 옆에 앉은 앤 꽤 나이가 앳되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날 보며 몇번 실실 웃는다. 이 웃음이 애써 지우고 싶었던 어제의 일들을 떠올렸고, 가득 따라주는 양주를 한 번에 넘겼다. 부장님이 핀잔을 준다.
"어, 먼저 그렇게 혼자 좋은 기분 내면 되나. 자 오늘 좋은 날인데 한잔 하고 갑시다."
머가 좋은날이지
"한 잔씩 따르고"
우린 그냥 술잔을 거둘뿐
"적당히 마시다가"
적당히란 말이 제일 무섭다
"말 없이 빠지지 말고"
자기나 더럽게 빠지고 다시와서 안 빠진척 하지말지
"자~ 위하여"
자위?
"위하여"
...
..
.
그동안 이런 자릴 도망만 다녔었다. 그런데 오늘은 도망갈 곳이 없다. 난 가출했기 때문에. 그럼 현실을 즐기면 된다. 눈 뜨고
아마 다음부터는 언더월드에 올려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