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은 1973년 7월 20일 32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이소룡은 사망 전부터 이미 뇌종양과 간질증세를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검시 결과도 뇌종양으로 자연사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뭔가 방아쇠같은 역할을 했다고 하죠.
이소룡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이소룡 팬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
1) 1973년 7월 20일 금요일 밤 10시 반경 구룡 (이소룡이 살던 지역명) 마두용도 구급센터에 전화가 걸려왔다. 팽덕삼 구호원의 구급차 A43호는 약 10분 후에 필가산도 67호의 맨션「벽화원」에 도착하여 A동 2층의 여배우 정패집으로부터 혼수상태에 빠진 한 젊은이를 업어내어 퀸 엘리자베드 병원으로 옮겼다.엘리자베드 병원 C병동 8층의 구급실 당직의사 말에 의하면,11시경 도착한 환자를 진찰한 결과 이미 맥박은 멎어있었고 동공도 열리고 사장직전에 있었기 때문에 강심제를 주사하는 것으로 처치를 끝냈고 잠시 11시 반경에 사망을 확인했다고 한다. 손을 쓸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이 젊은이는 중국인으로 본명 이진번, 예명 이소룡, 미국태생으로 영어명 브루스리라 부른다.그때 그의 나이 32세였다.
12시반이 지나서 홍콩 제 2명와사 가화전영 (하베스트) 사장 추문회 와 이소룡의 미망인 린다에 의해 그의 죽음은 매스컴에 발표됐다. 죽음이 전해졌을 때,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서 명복을 빌었다. 미국에서도 많은 팬들이 잘못된 보도라고 생각했다. 전세계의 문명국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은 공산권과 일본정도였다. 죽은 장소도 많은 의문점을 남겼다. 애인이라고 불리는 여배우의 침실이며 죽은 이유도 뇌출혈로 밖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린다와 초우가 의논하여 자택에서 쓰려졌다고 발표한 사실이 며칠 후 신문기자에 의해 정패의 집이라고 폭로되었기 때문에 죽음을 둘러싸고 의혹이 깊어질 따름이었다.
9월 초 "전만재판소" 제2법정에서 4일간 검시재판(린다, 초우, 정패를 비롯하여 관계한 의사 몇 명과 해부에 입회한 의사, 검시관이 증언하고 런던에서 법의학에 권위를 세우고 있는R.D데일박사가 출두했다. 재판의 중점은 의학적, 화학적 분석이다.)을 열었으며 그 결과는 "자살도 타살도 아닌 자연사(병사)이며 전부터 뇌종양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어떤 원인이 방아쇠가 되어 갑자기 죽은 것이다"라고 밝혀졌다.
그 원인은 성행위나 위 및 소장내에서 발견된 마리화나와는 관계가 없고 정패가 준 자기의 두통약 에콰제(아스피린과 브로바린을 배합한 평범한 약품)의 성분 중 그가 어느 쪽에 과민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추측이었다.
검시재판에서 일단의 결말이 날 때까지 홍콩에서는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소문과 억측이 어지럽게 퍼졌다.타살설이 수없이 조작되어 정패가 삼각관계의 갈등을 청산하기 위해 독살했다는 것에서부터 뇌종양 때문에 화를 잘 내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초우가 암살했다.이소룡의 스카우트를 노리고 있던 상대회사 「소씨형제공사」의 조종이다, 중국에 전해지는 한방비약을 섞었기 때문이라니, 나중엔 베트남의 기도사가 기도하여 죽었다. 일본 둔갑술사의 짓이라는 등 어이없는 것까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병사설에는 복상사가 압도적이었다.
-----------------------------------------------------
2) 사망하기 몇달 전부터 두통이 심해지고, 두통을 참기 위해 마리화타를 사용했던 이소룡은 LA에서 진단을 받기 위해 5월 하순에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 들러 [18세의 육체]라는 말을듣고 뛸듯이 기뻐했다 한다. 하지만, 이미 그의 뇌종양은 커져가고 있었고 앞으로 2∼3개월의 시한부를 선고받았던 것이다. 증세는 더 악화되어 가화의 선전부원에게 상처를 입혔고, 신문사 카메라맨의 카메라를 쳐서 떨어뜨리고, 6월 하순에는 시사실에서 나유감독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차를 부르는 소동도 있었다.그날 밤 TV 생방송 프로에서까지 폭력사태를 벌였다.
[중국민족의 영웅상]은 흔들리고 [미친 용]이라고까지 하며 비난은 빗발쳤다. 설상가상으로 <당상대형>의 성적은 예상보다 저조했고 공개 예정이었던 <정무문>이 평판이 좋지 않았다. 이러한 모든 것이 그를 불쾌하게 한 요소가 되었다.그런 어지러움 속에 운명의 밤을 맞이한 것이다. 혹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중국인이 미신을 좋아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사망유희>라는 불길한 제목을 붙인 점과 또, 정패말에 의하면 그는 브래드 스웨트 앤드 티어즈 (B.S.T)의 [앤드 호앤 아이 다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린다는 장례식장에 [앤드 호앤 아이 다이],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웨이], 톰존슨의 [임파시블 드림] 및 세르지오 먼데스의 [룩어라운드]를 틀 것을 지시했다. 묘지도 시애틀로 미리 정해져 있었고 사망 4개월 전에 백만달러 상당의 생명보험도 가입되어 있었다. 무언가 준비가 되어있던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버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