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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나기 - 일본영화

새벽강가 |2010.09.22 16:31
조회 578 |추천 0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

한 인간의 고뇌와 타인과의 정신적, 영혼적 교류에 관해서 이 영화는 보는 이마다 다른 결론과 생각을 심어준다.

사랑하기에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 그리고 그 이후에 사랑에 대한 절대적 배척.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에 그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 마음은 때론 이성과 상반되게 움직인다. 혹은 감성은 예측이 가능한 결말도 무시하게 만든다.

 

내게 이 영화는 두어가지 의문을 남긴다.

 

첫째, 왜 사랑에 대해서 인간은 너그러울 수 없는 것일까?

이 영화의 중반에 나왔던 남자주인공의 말에는 '사랑했기에 용서할 수가 없었다'라고 한다.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사랑하는 아내는 외도를 한다. 외도를 하게 된 이유를 대략 추측해 본다면, 남편으로서는 채워지지 않는 성적 욕구이다. 모두가 이야기하고, 영화에서도 본다면 남자는 성적불구자였다고 봐야 될 것이다. 그런 일련의 상황들이 남자에게 용서될 수 없는 일도 받아들여지고, 누구 보낸지도-혹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상같은-편지 한 통에 그 불륜현장에 들이닥쳐 아내를 난자하며 살해한다. 그리고 피로 범범이 된 옷 그대로 경찰서로 가서 자수를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이러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감독이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으로 봐야할 것인가?

내게 이 영화의 시작장면은 사랑에 대한 잔인성으로 다가왔다. 제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상대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해도, 또 그 이상의 사랑을 흠모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그 사랑에 대한 잔인성을 감독이 혹여 관객에게 표현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여기에서 가장 원초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남녀과 한 데 뒤엉켜 몸을 섞는 것만이 사랑의 표현인가? 욕망적 사랑과 플라토닉 사랑 둘 중 어느 것이 더 한 단계 높은 사랑일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일률적 평균치로 내어지지 않는 문제이다. 사람마다 다를것이고, 같은 대답을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이유도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다.

리뷰에서 주관적 견해를 남기는 것은 크나큰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 여기는 개인 블로그임에 과감히 그에 대한 말을 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사랑이라는 것은 두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욕심이 부르는 소유의식이 빚어낸 결과물이라는 측면이다. 너를 갖고 싶기에 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미모에 관련된 부분이든 성격, 환경, 쾌락이 되었든 그러한 한 부분에 이끌려 상대로 하여금 나를 보아달라고 하는 제스처인 것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이것은 욕망적 사랑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어느 정도 내 수중에 상대를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되어 지면, 수그들어간다. 마음이든 육체이든 말이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이러한 사랑을 무시해서도 되지 않는다. 육체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랑은 어쩌면 시작이 어려울수도 있다. 외향적 이끌림이 없다면 시작은 되지 않는 법이다. 그 외향적 기준은 제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 다른 하나의 측면은 위에서도 언급한 플라토닉 사랑이다. 정신적, 영혼적 교감은 사랑에 있어서는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다.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외향적, 욕망성에서 비롯되어 진다면, 이 플라토닉적 교류는 사랑을 지속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육체적 사랑은 언젠가는 지지부진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는 사랑이 머물지 않는 것이다. 그 이후 찾아오는 교류가 바로 우리네들이 흔히 얘기하는 '정'이다. 마음을 떼놓고 볼 수 없는 서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으로 봤을 때, 사랑이라는 것은 이 두가지를 모두 충족되어 질 때, 오랫동안 지속되어 지고, 흔들림 없는 과정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본다면, 남편과 아내의 사랑은 서로가 어느 한쪽이 결함이 있는 상태였고, 아내는 그 빈 부분을 채워야만 했고, 남편은 그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에서 관객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측면만을 바라보고 도적적, 윤리적 잣대만을 갖다대서는 안되는 것이다. 불륜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 영화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려 하는 메시지를 각자 관객 개인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의문으로 돌아가자. 왜 인간은 사랑에 대해서 너그러울 수 없는 것인가?

그 모든 것을 충족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결혼이라는 결말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족한 한 부분에 대해서 그들 -혹은 우리네들-은 그렇게 냉소적이고, 쿨하지 못한 것인가. 갈수록 높아지는 이혼률과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나는 연애는 계속해서 그 기간이 줄어들어 가고, 쉽게 되어지는 것인가.

그 모든 이들에게 나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사랑에 대한 책임감이 현저하게 낮다거나, 지나치게 여유로운 시각이 부족하지는 않는 지에 대해서 우리들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두번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디까지 용서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져보았다.

지난 과거의 문제가 현재의 내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과거때문에 현재를 포기하는 것은 더욱더 이치에 맞이 않는 말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은 각각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남자는 지극히 당연해야 할 사랑에 대해서 배신감으로 똘똘 뭉쳐있고, 여자는 쾌락만을 추구하다고도 볼 수 있는 해서는 안될 사랑을 했다. 그 결과로 남자는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배척으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려 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마감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모든 연민을 털어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이 둘은 서로 만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가 가진 상처를 차츰 알게되고, 그러한 과거도 용납하려 한다.

이렇듯 남자는 이전의 사건에서 비롯된 대인기피증이나 혹은 세상에 대한 절망에서 차츰 여자를 받아들여가고, 여자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남자에게서 조금씩 끊어버리려 햇던 연민을 복구해 나가려 한다. 그 과정에서 비롯되어진 것이 사랑이라는 측면이 되어지고, 서로가 가진 과거를 서로가 채워주려 한다. 이전의 과거 일 따윈 그들에게 문제가 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과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세상은 그들에게 그릇된 사랑임을 자꾸만 일깨워주려 한다. 그들에게 사랑을 해서는 안된다고 자꾸만 억압하려 한다.

이 세상 모든 만남에는 이러한 룰이 적용될 수 밖에 없다. 모든 만남에는 단지 둘만의 만남으로 귀결되어지지 않는다. 만남에는 주변의 시선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시선은 객관성이라는 것으로 변모되어져 버린다. 그리고 그것은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서로가 제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인정해 주지 않는 다면 과거는 청산되어지지도 않으며, 용서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서 두 사람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도피가 되는 것이다. 도피란 무엇인가?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변으로부터 나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그 분리됨으로 인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보지만 대개 본다면 꼭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사랑이다. 사랑이는 것의 위대성은 거기에서 비롯되어 지는 것이다. 알면서도 할 수 밖에 없는 것, 힘들걸 알면서도 도전할 수 밖에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이 가진 가장 큰 위대성일수도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들이 하는 사랑이란 얼마나 큰 것일까? 주변의 모든 것으로 부터 상대를 보호할 수 있을만큼 우리들은 상대를 사랑하고 있을까? 어쩌면 이러한 중대한 결함이 아니더라도 몇가지의 문제가 계속해서 닥쳐온다면 우리들은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단지 나는 그러한 사랑을 꿈꾼다. 내 모든 생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내 평생 하루뿐이라 하더라도 그저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하고 싶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결말은 헤피앤딩이었으면 했다.

그들이 가진 감정이 사랑이든, 연민이든, 책임감이든지 간에 그들의 사랑에 행복이 곁들여졌으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결말이 나쁜 결말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그들의 사랑에는 그 결과가 반영되어져 있으니 말이다.

사랑에 관해서 이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잔인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비가 오는 추석날. 영화가 무척 당기는 날이다.

이번 연휴 맘껏 영화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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