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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의영화(GV), 우발성과 산발성이 홍상수 감독을 흐르거나, 발산되거나

깜마 |2010.09.26 01:17
조회 811 |추천 0

GV일기

 

2010년 9월 25일 토요일, 옥희의영화를 두번째 보았다. 다시 봐도 재밌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더 낄낄대면서 봤다. 혼자서 영화봐도 아무렇지 않던 나인데도, 혼자 영화보러 이대로 들어가는 건 뻘쭘했다. 아무렴 어때. 다시 한 번 쌍판을 갈았다. 아트하우스 모모는 왠지 아늑한 느낌이었다. 사실 반은 지브이 때문에 갔다. 홍상수 감독도 보고, 정유미 씨도 보고 싶었으나 정유미 씨는 참석하지 않았다.(슬펐던 건 사실) 그래도 홍 감독님을 만난 건, 일대다의 만남이더라도 좋은 만남이었다. 홍 감독님이 몰아대는 분위기와 몇몇 언행들이 그의 영화와 교차점을 발견해주길 바라는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홍 감독님과의 만남은 그를 느낄 수 있는 만남이었다.

 

나는 정유미 씨에게 던질 질문을 준비해갔는데, 아쉽게도 안 와서 홍 감독님께 주문을 외울 날에서 주문이 뭐냐고 물어봤다. 홍 감독님답게 대답했고, 나도 대충 예상은 했다. 지브이는 다소간 차분했고, 질문도 많이 나왔다. 물론 인터뷰어들이 이미 뽕을 빼놓고 글도 많이 매체에 실린 터라 신선한 질문은 많지 않았다. 홍 감독님한테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분 정도? 그것도 신선하다란 표현은 적절치 못할 것 같다. 암튼 생애 첫 지브이는 왠지 아늑하고 편하면서도 불편했던 것 같다.(원래 사람 많은 걸 불편해하는 터라)

 

영화 <옥희의 영화>

 ★★★★★

 

올해 이창동 감독의 <시> 이후로 두번째 별 다섯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다. 나는 옥희의 영화가 정말 좋다. 진짜 어떤 분 말처럼 이 영화에 약이라도 탄 것 같다. 완전 홍상수홀릭에, 정유미씨, 이선균씨, 문성근 아저씨의 앙상블이 끝내준다. 나는 이 영화를 괴이함과 똘끼, 그리고 쓸쓸함의 이상한 동거라고 부르기로 했다.

 

주제의식: 주제의식 없음

이 영화를 깔대기로 모을 생각을 하고 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충고해주고 싶다. 이 영화는 애초에 하나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영화가 아니라고 홍상수 감독은 말한다. 주제의식 없음이 굳이 주제의식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말이다. 괴이하게 보이는 이 제작과정은 홍상수 감독이 말하듯 상황과 인물, 그리고 내가 보기엔 글이라는 것으로 뭉개지면서 신기하게 생겨 먹은 홍상수작을 탄생시킨다. 이런 비일관성이 주는 괴이함은 기분나쁨이 아니라 오히려 구조적 예술성과 작품성을 살렸고, 이것은 사람들에게 꽤나 큰 이야깃거리들을 던져준다.

 

주제의식 없음이 파생시키는 비일관성의 인간

이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다. 그러나 이상한 고리가 있는 옴니버스 영화고, 한 편의 영화이면서도 괴이한 네 편을 가진 이상한 영화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상하게 반복되는 고리의 장면들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차이를 가지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이상한 심미적 봄을 실행하게 한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하나의 인간성이 있는데, 그것은 모순성이다. 인간은 전혀 일관적이지 않다. 영화 속 예로 진구는 정말 논리학 책을 좀 읽어야 한다. 그러나 실은 그 충고를 하는 송교수도 전혀 논리적 일관성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다. 물론 이런 인간상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라고 말해선 안 된다. 내가 말하는 건 주제의식 없음이 파생시킨 하나의 인간상을 그려볼 뿐이다. 이를테면 영화를 보고 그 영화를 언어화시킨다고나 할까?

 

비일관성의 인간이 파생시키는 사랑

먼저 나는 옥희의 영화를 구성하는 주문을 외울 날, 키스왕, 폭설 후, 옥희의 영화 전 편이 모두 좋다. 무엇 하나 싫은 부분이 없음을 밝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가장 많이 피식거린 건 키스왕일 거다. (영화를 본 사람은 아마 공감할껄?ㅋ) 젊은 남녀의 사랑이란 참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뭐 계산할 것이 없다. 다만 이선균표 찌질한 진구와 이상하고도 괴이함을 가진 정유미표 옥희는 피식절로코피퐈쌩쑈식(?) 어울림을 자아낸다. 물론 키스왕에서 묻어나는 사랑이 진구와 옥희로 그려지는 단순한 사랑은 아니다. 송 교수와 옥희의 암시같은 것이 있고, 물론 이것은 이상한 고리 중 하나다. 그렇게 그려지는 사랑이란 어떤 감정 하나를 준비시킨다.

 

사랑은 무언가를 파생시키기 전에

"사랑을 꼭 해야하나요?" "사랑하지마. 사랑 안 하려고 온갓 몸부림을 쳐봐, 아마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을 껄"(송 강사의 대사는 정확치 않음). 폭설 후의 마지막 수업 선문답 중 한 대목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내린 저주이자 축복이 맞다. 온갖 몸부림을 치면서 사랑 안하면 무언가를 애뜻하게도 사랑하고 있다. 참 이상하다.

 

그리고 사랑은 쓸쓸함을

혹은 그래서 사랑은 쓸쓸함을 파생시킨다. 결국 옥희가 그린 영화는 그 비슷함이란 한계로 그 느낌이 절감되었다. 결국 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계가 오늘 나에게 쓸쓸함을 절감하게 한다. 이상하게 반복되고 또 그 속에서 차이를 가지는 두 가지의 그림이 주는 인간 존재의 쓸쓸함이란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젊은 남자와 나이 든 남자는 진구와 송 교수가 아니고, 송 교수는 나이 든 남자와 송 강사, 그리고 안경을 송 교수가 아니다. 또 독립영화감독 진구와 찌질 진구, 송 강사의 제자 진구, 젊은 남다는 다르다. 이런 차이들은 반복되고 이상한 고리를 통해 이내 내 가슴 속에 큰 울림을 주는 것이다.

 

결국 내 볼 껀만 보고, 일관성을 거부한 홍 감독의 작품마저도 다소 일관적인 내 글로 환원되고 말았다. 그러나 아쉬워 할 것은 없다. 영화가 발산시키는 우발성과 산발성의 앙상블은 이런 내 글을 하나의 소감으로 일축시켜버린다. 이 가을 나는 감히 내 인생의 영화 중 하나가 될 옥희의 영화를 추천한다. 그리고 창조적인 예술가에게 박수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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