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
존 : 각을 좋아하지만 각의 여친때문에 자꾸 감정을 억누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각을 더 좋아함.
각 : 존을 좋아하는 숙소의 최연장자.
승윤 : 존을 좋아하는 은비를 좋아하는 어린아이.
은비 : 처음부터 존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밝혔으나 각만을 바라보는 존의 태도에 화가나 승윤이 점점 좋아지려고 함.
재인 : 앤드류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그가 탈락하는 바람에 갈 곳 잃은 정처없는 마음을 추스를 길이 없어진 최고 실력자.
지수 : 제일 미스테리한 인물, 외모와는 다르게 결벽증있음.
<이 소설은 실제 인물 및 지명과 전혀 상관없는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야, 강승윤. 너 바닥 닦았어, 안닦았어?”
“형, 오늘같은 날, 꼭 그런 얘길 해야겠어요?”
“아니, 그럼 안할거야? 안할거냐고?”
“그럼 형은 남자 빨래 하셨어요? 형도 안하셨으면서 왜 맨날 나한테 뭐라고 하시냐구요!”
오늘도 각과 승윤은 말싸움을 시작했다. 지난주도 그랬지만 금요일 생방송이 끝난 후 숙소에 돌아온 새벽엔 유독 서로 날이 서있다. 각은 각대로 떨어진 아이들과 떨어진다는 아쉬움 때문에, 그리고 그 아이들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잘 채워서 숙소가 잘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때문에 날카로워져 있었다. 승윤은 그런 각의 마음을 늘 이해못하고 어린 자기만 구박한다고 생각하며 불만을 가졌다. 그림이와 큰보람, 소정이가 떨어진 저번주 금요일에도 승윤은 각에게 자기가 동네북이냐고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크게 화를 냈다.
“형, 오늘은 일단 씻고 자자. 다들 피곤하잖아. 에이, 왜 그래.”
큰보람이 숙소를 떠난 후로 숙소의 큰엄마 역할을 맡게 된 존이 각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렸다. 오늘도 모두들 울음바다가 된 생방송 무대에서 승윤과 함께 유일하게 울지 않던 존이었다. 이미 이런 상황을 여러번 겪었던 경험 탓일까, 미국에서 홀로 오래 지낸 탓일까. 존은 무척이나 침착했다.
“후. 그래. 미안. 미안해. 얘들아. 다들 오늘 수고했어!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단 자자.”
각은 존의 말림에 억지로 수긍한다는 태도를 보이며 어깨를 붙잡은 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사실 각이 승윤이에게 화를 낸 건 불안한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는 의도 또한 조금은 들어있었다. 1주일에 세명, 두명씩이나 떨어지다니. 서바이벌이라는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겪고나니 너무나 불안했다. 지난주 아팠을 때가 특히 불안했다. 예선과 슈퍼위크때 그렇게 돌풍을 불러일으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높여놓고 제일 처음으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불안의 연속이었다. 이번주에도 솔직히 슈퍼세이브로 제일 먼저 합격 소식을 들었지만 무대에 오르기전엔 불안했다.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퍼포먼스 무대였다. 춤과 노래를 같이 한다는 건 일생에 오늘이 처음이었다. 오늘 흘렸던 눈물에는 아이들이 떨어진 것에 대한 슬픔도 있었으나, 긴장이 풀려서 흘린 눈물이 더 많았다.
각은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흔들리고 히스테릭해지고 있었다. 각 본인을 비롯하여 숙소의 모든 사람들도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지난주 생방송 이후로 각은 점점 히스테릭해져갔다. 누군가가 탈락하여 비게된 자리를 가장 연장자인 자신이 홀로 채워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을 갖기 시작했다. 승윤이에게 뿐만 아니라 앤드류가 반장을 잡았을 때도 각은 자주 나서서 반장처럼 일을 처리했고 앤드류의 의견을 묵살시켰다. 작은보람과 은비방에 쌓인 빨래를 왜 하지 않느냐며 재인을 닦달하기도 했고,(그때 재인은 난 2층에 있으니까 당연히 1층 애들 빨래를 잘 못 보죠. 라며 받아쳤다.) 몰래 담배를 핀 지수에게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각을 붙잡아 준 건 존이었다. 각이 히스테릭해지는걸 눈치채는 것과 마찬가지로 숙소의 모든 사람들은 존과 각의 야릇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바보가 아니고서는 모를수가 없었다. 방송에서도, 인터넷에도 존과 각은 이미 공식커플처럼 되어버렸으니까. 각이 히스테리를 부릴때마다 숙소의 사람들은 존을 찾았다. 이상하게도 각은 존이 나타나서 그를 말릴때마다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행동했다.
모두 각자의 방에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각은 높은 곳에 있는 자신의 옷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지수에게 꺼내달라고 하려는데 이미 그는 앤드류와 함께 옷을 챙겨서 샤워하러 들어가 버렸다. 각은 또 짜증이 났다. 침대에 벌렁누워서 존을 찾았다.
“아오! 존!!!”
각은 기분이 안 좋을 때마다 존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존은 각 앞에 나타났다.
“응?”
부지런하게 잠옷으로 갈아입은 존이 각의 방문을 열고 어김없이 나타났다.
“일단 일루와. 여기 누워봐.”
“이 형이 오늘 왜이래.”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존은 각의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존은 각이 자신을 무척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것은 단순한 친구 이상의 호감이었다. 슈퍼위크때 각은 같은 팀으로 존을 찍었다. 존 역시 각과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다. 두달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서로 울고 웃고,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서로 떨어져 있을까봐 전전긍긍했던 둘이었다. 슈퍼위크 팀미션 당시 존이 떨어졌을 때 각은 철렁했다. 라이벌 미션 당시 각이 떨어졌을 때 존 역시 철렁했다. 방송이 끝나면 곱창에 소주까지 한잔하기로 약속까지 한 각별한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작가들은 둘을 롤러코스터에 태워 오르락내리락 놀려먹었다. 하지만 그런 기구했던 사건들을 거치며 존도 각이 좋아졌다. 자신과 반대인 성격인 그와 있으면 무척이나 편했다. 말없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성격도 각과 만난 이후로 꽤 많이 변했다.
존은 성격도 음색도 자신과 다르지만 비슷한 각이 참 좋았다. 각보다 좋아하는 티를 덜 내긴 했지만 존은 분명히 각을 좋아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슈퍼위크때부터 둘은 운명적으로 서로에게 끌리고 있었다. 반대로 돌려놔도 팽그르르 돌아 붙어버리는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둘은 급속도로 붙게 되었다.
“나 여자친구랑 헤어질까봐.”
“뭐???!”
존이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각을 바라봤다. 각은 그렇게 나올거라고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존을 보며 웃었다.
“너도 원하던 거잖아.”
사실 그랬다. 존이 각을 좋아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바로 각의 여자친구였다. 여친이 있는 각과 자꾸 엮이는 것이 서로 일면식도 없는 각의 여친에게 폐가 될까봐 불안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존은 각을 밀어냈다. 첫 생방송 이후 비게된 2층 방에 가겠다고 자원한 것도 존이었다. 둘은 그동안 너무 붙어있었다. 붙어있으면 없던 마음도 생긴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존은 결심했다. 아주 조금만 각에게서 떨어져보기로. 그리고 그것이 각의 여친에게 존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막상 방을 따로 쓰게 되자 존은 더 많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일단 같은 방을 쓰게 된 승윤에게 자꾸 눈치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승윤이 좋아하는 은비는 존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승윤이 존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어린놈이 무섭다더니 정말 승윤은 무섭게 룸메이트인 존을 몰아붙였다. 왜 혼자 야식을 먹냐고 매니저님한테 이를거라고 으름장을 놓는건 물론이고, 유치하게 방안에 선을 긋고 여기부터는 자기영역이니 넘어오지 말라고 선포했다. 승윤은 방 안에서는 물론이고 보컬 연습실에서도 존의 연습실에 자주 찾아와 훼방을 놨다. 자기 곡도 아니면서 존의 방에서 피아노를 치며 특유의 큰 목소리를 방안에 쩌렁쩌렁 울려대며 존을 괴롭혔다. 그럴때마다 승윤은 선주 트레이너에게 혼났지만 특유의 싹싹함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승윤은 숙소에 와서도 연습을 한답시고 밤늦게까지 방문을 닫고 소리를 지르며 자려는 존을 괴롭혔다. 존은 그런 승윤에게 뭐라고 하자니 자기자신도 유치해지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렇게 매일매일을 승윤에게 당하고 나니 존은 각이 그리워졌다. 각과 함께 방을 쓸 때 승윤의 유일한 적수는 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따로 방을 쓰고나니 승윤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그런 승윤의 심술을 다 받아주다 지친 존은 각이 더 간절해졌다. 매일밤 각의 방에서 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도 불쑥 첫생방때 봤던 각의 여친 얼굴이 생각나 미안해졌다. 그러면서 새로 받은 미션곡을 생각하며 각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접었다.
그런데 각이 여친과 헤어진다니? 이거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존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무렵,
“읍”
존은 각 입술의 습격을 받았다.
<2>
“아오, 열받아.”
승윤은 아직까지도 흥분한 상태로 거실의 소파에 누워있었다. 각이 자꾸 자기한테 성질부리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 각이 좋아하는 존을 괴롭히는 걸지도 몰랐다. 아니, 그것보다 은비가 존을 좋아한다는 것도 싫었다. 존도 싫고, 각도 싫고 종신이형도 싫고 다 싫었다. 특히 오늘은 유독 승윤의 편이 없는 것 같아서 더 싫었다. 세상에 혼자된 기분이었다. 작은 보람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넌 붙어서 좋겠네.”
라고 던진 말 한마디가 자꾸 귀에 밟혔다. 솔직히 승윤은 오늘 떨어질 줄 알았다. 계산을 해보니 오늘 심사위원의 점수가 제일 낮았으니까. 지난주에도 그랬다. 점수가 제일 낮았던 승윤은 계속 살아남았다. 숙소 사람들끼리 서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지만 모두들 승윤을 못마땅해했다. 숙소생활 초반에 자기 팬까페가 있다는 얘기를 너무 섣불리 한 것 같았다. “야, 그럼 승윤이는 어느정도 팬이 있으니까 첫방으론 안 떨어지겠네.”라고 장난으로 말했던 각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숙소사람 모두들 장난으로 했던 그 말이 현실이 되버리고나니 승윤을 점점 더 미워하기 시작했다.
“안 자고 뭐해?”
소파에 누워있는 승윤에게 은비가 다가오며 말했다.
“어? 응, 생각 좀 하느라. 하하, 티비나 볼까? 아, 참 안 나오지..”
승윤은 은비가 자꾸 자기한테 잘해준다는 것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오늘도 대기실에서 은비는 밥도 떠먹여주고 승윤의 허리도 만지는 등 자꾸 호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꾸 신경쓰여 승윤은 은비의 눈을 딱 한번 똑바로 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날 좋아하는 눈빛인가 아닌가 하고.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존을 아직도 좋아하는건지, 그래서 질투심을 유발하려고 나한테 자꾸 붙는건지, 아니면 존을 포기한건지. 아무것도 알수 없었다. 은비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그녀의 눈을 쳐다봤던게 되려 부끄러워져 얼굴이 빨개졌던 승윤이었다. 그리고 그런 승윤을 좋다고 놀려대던 은비였고.
“바보, 오늘도 수고했어.”
“응? 으응.”
“힘들었지. 아까 각이 오빠가 뭐라고 해서. 그 오빠는 왜 생방송 끝날때마다 너한테 지랄하는거야? 속상해. 짜증나. 가끔보면 오빠지만 애처럼 말도 안되는거 가지고 짜증낼때마다 정말 이해가 안가는거 있지. 근데 그런 짜증도 다 너한테만 하는거잖아. 존이나 지수오빠 이런 사람들 앞에선 막 착한척 하면서. 웃겨. 정말.”
“조용히 말해. 여기서 말하면 이층까지 다 들리잖아.”
“됐어. 또 뭐 존이랑 각오빠랑 둘이 쿵짝 어쩌고 하고 있겠지. 안 봐도 다 알아. 둘은 왜 그래? 대체? 넌 이해가?”
“응? 뭐가?”
“아니, 왜 남자들끼리 저러냐고? 아오. 저 오빠들 때문에 숙소 분위기도 이상해. 그거 알아? 매니저님이 일부러 저 둘 떨어뜨린거?”
“그랬어?”
“응. 둘이 맨날 붙어다니고 지수오빠 바닥에 재우고 침대까지 같이 쓴다고 매니저님이 떨어뜨려놨대. 보람이가 그랬어. 존은 대체 각오빠 어디가 좋은 거야? 가만보면 존 은근 바람둥이 스타일이야. 내가 존한테 그렇게 좋다고 매달리면 또 잘해준다? 막 착각하게 만들어. 그러면서 또 그때 연극할땐 재인언니보는 눈빛봤지? 아오. 나랑 그렇게 연극 잘해놓고 딴여자랑 바람을펴? 존은 사람을 자꾸 들었다놨다해.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너 존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는거 지금 말하면 열다섯번짼거 알아? 존 얘기는 좀 그만해.”
“왜? 질투하냐? ㅋㅋㅋ 아니, 뭐 그렇다구. 이~~~~상한 사람 존.”
이~~~~라는 단어를 유독 길게 늘어뜨리며 기지개를 키면서 소파에 벌렁 누웠다.
“존은 참 이상해. 연예인같애. 모든 사람의 연예인 뭐 그런거 있잖아? 내가 좋아하긴 하지만 그 사람은 분명히 날 안 좋아할거야. 난 그냥 팬일뿐인 뭐 그런거. 그래서 난 존이 쫌 별로긴 해. 난 욕심이 많아서 나만 좋아해주는 사람이 좋거든. 승윤이 너처럼.”
소파에 후드를 푹 눌러쓰고 누운 은비가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승윤을 가리키며 웃었다.
“뭐, 뭐야.”
갑자기 은비가 당황해하는 승윤을 향해 벌떡 일어나며 그의 손을 잡았다.
“왜, 왜이래!”
은비는 승윤의 얼굴에 점점 자신의 얼굴을 갖다댔다. 승윤은 그럴수록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일단 여긴 거실이었고 매니저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이러고 있는걸 걸리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싶은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그보다 더 먼저 앞선 두려움은 은비가 언제고 자신을 차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은비는 처음부터 존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승윤 역시 처음부터 은비를 좋아한다고 존이 라이벌이라고 말했다.
승윤이 어찌보면 가장 불리한 입장에 서 있었다. 가장 유리한 입장은 존이었다. 존은 모든 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함에도 모자라 각이형의 사랑까지도 독차지한 무서운 존재였다. 존에게는 선택권이 있었고, 승윤에게는 선택권조차도 없었다. 그러던 승윤에게 갑자기 유독 관심을 보이던 은비였다. 좋아하던 사람의 마음이 돌아선 것은 좋았으나 막상 그것이 현실이 되고나니 무서워졌다. 도망치고 싶어졌다. 은비가 이러다가 갑자기 뽀뽀라도 하면 난 그 후로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설레발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쿵!”
은비가 승윤의 머리에 박치기를 했다.
“악! 뭐야!”
“아오. 야, 강승윤. 너 은근 돌머리다? ㅋㅋㅋㅋ 아오 아파.”
“왜 이래? 갑자기!”
“너야말로 내 얘기 들었어?”
“응? 무슨 얘기?”
“아오! 이 멍충아! 나 배고프다고! 빨리 햇반돌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말하는 것도 못듣고 지랄이야. ㅋㅋ 아오. 아파죽겠네. 야, 뭐해. 빨리 안 돌려?”
그제야 환상에서 깨어난 승윤은 주섬주섬 소파에 일어나 찬장에 햇반이랑 카레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아오. 야, 아직까지 아파. 넌 안 아파?”
“응, 난 괜찮은데.”
“그래? 그럼 나 아프게 했으니까 빨리 노래불러줘.”
“응? 밥은…?”
“빨리~ 빨리! 빨리!!! 아직 시간 있잖아! 이 멍충아!”
“아, 알았어. 무슨 노래?”
“사랑노래로.”
“나를 동생으로만, 그냥 그정도로만.”
“더 크게 불러.”
“귀엽다고 하지만 누난 내게 여자야.”
“더 감정을 실어서!”
은비는 작곡가 선생님과 트레이너 쌤이 자신들을 가르치는 걸 따라하며 승윤을 다그쳤다. 승윤은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은비가 하라는 대로 곧 잘 따랐다. 은비는 더 크게, 더 감정을 실어서! 라고 주문했고 결국 숙소가 울리도록 크게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지!”
“야! 강승윤!!! 너 조용히 안하냐!!!”
방에서 울다가 자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보람이 부엌으로 뛰쳐나와 성질을 부렸다.
“어? 근데 너네 뭐 먹어?”
“넌 언니한테 너네가 뭐야.”
“아, 뭐 그거나 그거나. 카레먹네? 흐흐. 나두 주라. 응?”
“안돼. 탈락한 사람은 이제 숙소사람 아니니까 못먹어.”
“야, 강승윤! 너 나 떨어뜨리고 붙더니 미쳤냐?”
승윤은 아까 차에서 자신에게 핀잔을 줬던 보람에게 나름 복수를 한다고 장난친 것이 건방지게 말한것처럼 되버렸다. 덕분에 또 열받은 보람은 승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 너 잘났다. 넌 팬까페 있어서 붙고 난 없어서 떨어졌다. 됐냐? 아, 열받아. 더러워서 안 먹어. 새꺄. 언닌 이런 새끼가 대체 뭐가 좋아? 나 같으면 차라리 존이랑 잘되보겠다. 어휴. 치사한 놈. 내가 나중에 너보다 성공하고 만다.”
승윤에게 성질낸 보람은 결국 제 방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고 말많았던 은비도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승윤은 자기 잘못인걸 알았다. 평소에도 자신의 이런 태도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었기 때문에 잘 알았다. 건방진 말투와 건방진 표정 때문에 시비가 붙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승윤은 그냥 평소처럼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자신에게 화를 냈다. 재수없다고, 잘난척, 거만한 척 좀 하지 말라고. 그런 상처를 잊어버리기 위해 시작한게 음악이었다. 덕분에 숙소 사람들이 욕하는 팬까페도 생겼고,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무려 여기까지 왔고 무척 행복했다. 그런데 또다시 자신의 건방져보이는 외모와 말투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줘버렸다. 옛날처럼 살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밥 먹을까?”
“됐어. 안 먹어. 너나 먹어. 그리고 너 이제부터 나한테 반말하지 말고 존댓말하고 누나라고 불러.”
은비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아, 또 왜그래애~ 아니, 나는 장난친다고 말한건데 보람이가 이상하게 받아들였잖아. 너도 알잖아. 내가 좀 재수없게 말하는거. 이쯤되면 익숙해졌을텐데 왜 저런대? 떨어져서 그러나?”
“야! 넌 탈락한 보람이한테 그게 할 소리니? 뭐? 탈락한 사람은 숙소사람이 아니야? 너 다음주에 내가 떨어져도 그러겠다? 일단 다음주엔 내가 떨어질건 확실할테고. 나랑 뭐, 지수오빠나 각이오빠 만약에 둘이 떨어진다고 쳐. 너는 붙고. 그러면 너 그때도 나한테 이럴거니? 하. 진짜 무섭다. 남자들 다 똑같애… 존이고 너고 다 똑같애. 사람들이 어쩜 그렇게 냉정해? 너 오늘도 안 울더라? 니가 그렇게 잘났어? 잘났냐고? 뭐가 그렇게 잘나서 안 슬퍼? 웃기지도 않아. 꺼져… 재수없어. 저리가. 흑흑.”
그렇게 은비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궈버렸다. 승윤이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은비를 불렀지만 은비와 보람은 끝내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은비야. 아니, 은비누나. 그런거 아냐. 아후. 그런거 아니래두. 문 좀 열어봐. 일단 차분하게 다시 얘기해. 응? 누나~ 문 좀 열어줘봐~”
“뭐야? 너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닫힌 보람-은비 방문을 두드리며 처량하게 은비를 부르던 승윤의 뒤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 존박이었다.
<3>
재인은 방문을 꼭 잠그고 기타를 나지막히 튕기며 조니 미첼의 리버를 흥얼거렸다. 방송에 나가기전에 방송에서는 절대 울지 않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그동안 너무 울었던 날들이 많았다. 더 이상 못난 사람이 되기 싫었다.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떳떳하고 기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음악을 시작했고, 음악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검색어 1위라니. 어디서도 해본적이 없는 1등이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점점 그녀는 유명해졌다. 오늘 피디 중 한명이 자기 과거사진이 인터넷에 떴다고 했다. ‘내가 그 정도로 유명한가?’ 그녀는 자문했다. 일단은 아무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외부와 아무런 연락을 할수 없는 숙소생활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재인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대학생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거 하나만큼은 알았다. 지금 내 모습의 일거수 일투족을 많은 사람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학창시절 느꼈던 감각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먼발치에서 감시하고 내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체크하고 있는 타인의 시선들. 그때의 시선들은 무척이나 불편했고 폭력적이었다. 그녀는 그 시선을 모두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선은 그때와 정반대였다. 따뜻했고, 애정어린 시선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길은 더 자신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만 방송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동안 함께했던 보람이가 떨어지게 되다니.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나니 감당치 못한 슬픔으로 밀려왔다. 더 이상 보람이를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왈칵 눈물이 나왔다.
눈물에 담긴 의미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달여동안 함께 생활해오며 호감을 표했던 앤드류마저도 탈락했기 때문이었다. 유독 숙소생활하는 사람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마음주기를 망설이는 재인이었다. 그래서 독방을 쓰는 것이었고 남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너무 어색하기만 했다.
하지만 앤드류는 그런 재인을 잘 따랐다. 난생 처음 춰본 춤을 출때도 앤드류는 누나, 춤 정말 잘춰요 라며 환하게 웃어줬고, 메이크업을 할때도, 연극을 할때도 앤드류는 꽤나 수줍어했지만 재인을 좋아했고 잘 따랐다. 그리고 그런 앤드류에게 재인은 점점 마음을 열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이제 다시 앤드류를 못보게 되다니.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정들었던 사람들을 떠내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가 그녀를 짓눌렀다. 정을 주고 받는 것에 서투른 그녀는 처음 겪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숙소에 오자마자 문을 닫고 기타를 튕겼다. 애들을 볼 수 없었다. 한명한명 얼굴을 볼때마다 눈물이 또 왈칵 날 것 같았다. ‘이러면 안돼. 장재인. 씩씩해야지.’ 라며 재인은 자신을 다그쳤다. 익숙한 조니 미첼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상념에 젖다보니 마음도 꽤나 진정되어 그녀는 씻을 채비를 갖추고 방문을 나섰다.
소정과 그림이 같이 2층을 쓸때만해도 남자들이 신경쓰이지 않았는데 여자는 자기 혼자 2층에 떨어지고나니 남자들이 자꾸 신경쓰이고 불편했다. 하지만 가끔 좋은 구경도 하곤 했다. 아주 늦은 새벽, 새벽잠이 없는 재인은 늦게까지 기타를 치다가 물을 마시러 나가려고 방문을 열었을 때 막 샤워를 마치고 수건만 두르고 있던 존의 벗은 몸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숙소생활 초기라 서로 어색해서 서로 못 본 척하고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갔지만, 재인은 한번 더 뒤돌아보며 존의 매끈한 등짝을 눈에 담았다.
그때부터 존이 신경쓰이긴 했다. 앤드류의 소심하지만 확실한 호감표현에 앤드류에게 마음이 기울긴 했지만 존이 좋은건 사실이었다. 존만큼 매너좋고 잘생기고 몸매좋고 목소리좋은 남자는 재인의 인생에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존은 완벽한 사람으로 재인에게 기억되었다. 그리고 상처받기 싫은 재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당연히 택하게 되었던거고.
여자화장실은 1층에 있었다. 2층 화장실은 2층에 몰려있는 남자들이 쓰게 되었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이 귀찮았지만 독방을 쓰는 값을 치룬다는 생각으로 재인은 기꺼이 귀찮음을 받아들였다. 1층의 계단을 가려면 각, 지수, 앤드류의 방을 지나가야했다. 그곳을 지날때마다 재인은 방을 아주 잠깐 훔쳐보는 습관이 생겼다. 남자들이 신경쓰이고 불편하긴 했지만, 그들이 뭘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남자들은 대체 방에서 뭘 할까, 나랑 다른 음악을 하는 아이들은 평소에 뭘하며 지낼까 하고.
대부분 남자들은 서로 장난치며 지냈다. 중학교때도 남자들은 그랬던거 같았다. 그들은 나이를 먹어도 서로 장난치며 쓸데없는 데에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릴땐 그게 너무 유치하고 싫었지만 지금에와서 보니 어떤 면에서 보면 일관된 점이 있어서 나쁘진 않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존도 다른 남자들과 똑같이 장난치는걸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유치하지 않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소와 다름없이 각의 방을 스치듯 훔쳐보며 지나치는데 재인은 충격적인 것을 보고야 말았다. 각과 존이 서로 키스를 하고 있는 장면을.
재인은 잽싸게 자기 방으로 다시 돌아와 문을 잠갔다.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다. 갑자기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에서 답을 찾지 못한채 부유하고 있었다. 얼굴까지 빨개지다못해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었다. 뭔가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본 것만 같았다. 학생때 일진 언니들이 억지로 보여준 게이 야동을 봤을때마냥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솔직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았다. 일진언니들이 억지로 보여줬던 게이 야동을 봤을때부터 재인은 일반적인 남자들이 끌리지 않게 되었다. 어쩐지 그냥 보통의 평범한 남자들은 심심했다. 그때부터 야오이를 챙겨봤고, 게이물을 보게 되었고, 게이가 나오는 드라마며 영화만 골라서 챙겨봤다. 게이가 아니면 끌리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앤드류가 좋았을때도 야오이에서 봤던 귀여운 게이 동생이 생각나서였다. 존이 좋았을때도 마찬가지로 곱상하고 게이스러운 외모탓에 끌렸다. 게다가 각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게이를 좋아하는 재인의 망상을 부추겨 존을 더욱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재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커플링들이었다. 이렇게 실제로 리얼하게 다가올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존과 각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건 그냥 방송의 재미를 위해 만든 이미지인줄만 알았는데.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재인에게는 오늘이 바로 견디기 힘든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왕따시절때보다도 더 복잡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그때는 몸이 아픈것만 견디면 되는 시간들이었다. 몸의 어디가 아픈지 생각하고, 음악만 생각하면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몸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아닐거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바로 오늘이었다. 계속 함께 할 것 같았던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게이 흉내를 내는줄로만 알았던 존이 실제로 게이인 것을 두눈으로 확인했다.
아무래도 재인에게 오늘 밤은 무척이나 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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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으면 추천~ 재미없음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