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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관련 의혹과 논란에 관하여.

제가 지난번, 타블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글을 올리고, mbc에서 관련 방송을 만들어 방영한 뒤, 며칠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몇몇 분들께서 그런 제게 몇 가지 의견과 비판, 비난을 해주셨기 때문에 저 역시 그에 합당한 고민을 하여 어느 정도 결과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저와 모두를 위한 일이란 믿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성한 논란과 무관하게 타블로란 인물은 이제 한 명의 악당으로서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며, 이 일이 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유와 위대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하게된 좋은 사례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논란과 관련하여 제 글이나 이야기의 내용, 혹은 태도 때문에 상처를 받은 분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 진정으로 사과드립니다. 이 사과는 어떤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1.
제가 몸담고 있는 카페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와 절 포함한 타블로에게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먼저, '상식'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상식은 하나 혹은 여러 사회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믿거나 동의하는 지식이나 기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가 발생합니다. 상식의 정의는 일견 명석, 판명해보이지만 지나치게 애매하고 모호합니다. 그 이유는 '일반적'이란 말과 '지식'이란 말의 의미와 범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절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상식에 대해 일상적으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곤 하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은 법이나 다른 제도, 상호 간의 합의보다 '더욱 넓은 범위'에서 적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 잘못된 믿음입니다. 오히려 상식은 그 이야기하는 바가 앞의 것들보다 훨씬 적습니다. 즉, 상식은 최소한의 믿음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상식선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우리의 믿음보다 적습니다. 그 이유는 상식이 개별 사안의 특이성들과 개인들의 차이를 잘 드러내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상식과 더불어 개별 법안과 상호 간의 합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상식 자체의 중요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은 이런 개별적 상황들을 이해하는 좀 더 근본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이라 해서, 그 너비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루는 사안의 내용적 양은 적지만 다른 넓은 범주들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상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치 우리의 뇌에서 연수는 아주 작은 부분이고 많은 기능을 가지진 않지만, 우리의 생명 유지에 직접 연관되는 부위의 통제를 다루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기관이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저는 제가 지난번 글에서 사용했던 '상식적인 기준'이란 말이 조심성 없이 쓰였으며, 그에 대한 제 폭력적인 태도가 글을 읽는 분들께 불쾌감을 드렸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이 사안에서 제가 동의하는 상식이란, 대중의 사랑을 받은 누군가라면 꼭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 할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큰 의혹을 가지고 있다면 최대한 진지하게 질문자가 인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답변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며, 제가 이야기했던 소위 '검증 방식'은 제가 위에서 이야기한대로 상식이 아니라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 기준임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더불어 상식을 소재로 '상진세', '타진요' 등의 카페와 타블로의 팬들과 옹호자들, 타블로에 대한 넓은 의미의 비판자들, 비난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제 생각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자유와 위대함에 대하여.

오늘 새벽, 한 파워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게시한 글에서 반가운 표현을 보았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자신의 저서 <자유론(On liberty)>에서 이야기했던 표현의 자유와 자유에 대한 언급입니다. 스스로 '밀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제게 그것은 반갑기도 했지만 치명적인 자기 반성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밀이 이야기하는 자유는 흔히 오용, 남용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밀의 자유가 그 자체로 추구해야할 목적이 아니라 '어떤 다른 것'을 위한 도구적 가치라는 것을 간과하기 때문입니다. 자유는 도구일 뿐입니다. 자유는 인간의 복지-원어는 human well being입니다. 더 좋은 번역어를 찾지 못해 부득이하게 사용하였습니다.-를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렇다면 밀은 인간의 복지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느 정도 합의 가능한 내용은 그것이 인간이 자기 자신만의 의지로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계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것을 위한 수단으로써 자유를 인정하며, 그러한 목적에 어긋난 자유는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례로 돌아가서, 의혹을 제기하는 일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다시 돌아보는 '좋은(well)' 계기가 되었다면 그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에 대한 대리 만족을 얻는 행위'가 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지난번 글은 그런 의미에서 작성하였지만 그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지 못한 제 어리석음을 탓하며 이 문단을 적게 되었습니다.

이제, 위대함(greatness)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위대함이란 말이 갑자기 생뚱맞게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학력 이외에 '표절이나 병역'과 관련하여 타블로에게 비판 혹은 비난을 가하는 사람들과 그에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위대하다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은 '불변하는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영원히 드러내는 것'이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자어로 번역된 '위대'는 동양의 역사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여전히 번역어일 뿐입니다. 그들은 다양한 신들과 그들의 역사를 기록한 신화가 위대함의 사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위대해지려면 당연히 아주 엄격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인간이 지니지 못한 독창성, 다른 인간이 따를만한 모범성, 그리고 그 목적과 방법 모두 부정하지 않아야 하는 엄정함입니다. 이 모두는 자기 자신이 엄격하게 지켜야 할 기준입니다.

이런 위대함은 조금씩 변용되어, 지금은 정치, 도덕적 가치에서 학문적, 예술적 가치에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를 행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하는 행위가 추구해야 할 본성에 대하여 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그렇게 살고자 합니다. 물론 방금 이야기에는 어느 정도 논점 선취의 오류가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통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생각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타블로와 다른 분들, 그리고 제게 묻습니다. 학자로서, 혹은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은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이것은 논란을 떠나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이며, 이런 계기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3.
타블로의 인간성과 두 번째 사과.

편집 방향과 내용에 대한 논란은 다른 수많은 갑론을박들이 대신하고 있으므로 이 자리에선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mbc에서 지난 1일 방영한 mbc스페셜에서 저는 오히려 타블로의 놀라운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아직 그, 혹은 주변 사람이 저지른 몇 가지 잘못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부덕함'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한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가 과거에 어떤 과오를 저질렀고, 어떤 작은 실수가 모여 크게 오해를 받았으며, 지금 당장 얼마나 억울하고 분노하고 허탈한 것과 무관하게 훌륭한 모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어찌했건 간에 많은 이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고, 호감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제게 그의 진정성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설사 그것이 연기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어떤 긍정 없이 그 같은 말을 방송에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위대함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도, 한 명의 인간이 상처받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이의 잘못을 진지하게 지적하고 합당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과, 상처주는 일은 다른 일입니다. 그리고 시작이 어떠했던, 누군가를 상처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억지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제 지난 글이나 이야기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역시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그것에 어떤 법적 책임이 따른다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을 논의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음을 밝힙니다.

4.
결론

전 이 글을 최대한 제가 가입한 많은 곳에 올려 이 글이 타블로의 지인 혹은 본인에게 전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이유는 그가 받은 의혹과, 부족한 해명, 오해, 그리고 상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가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상 아주 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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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p://cafe.naver.com/inmacbook/330864 제가 지난번에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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