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사형제도에 관한 제 생각.

사형제도, 폐지되어서는 안된다.

 

 

최근 추석을 맞아 집에 다녀왔다. 갖가지 음식들을 준비하느라 꽉 찬 음식물 쓰레기통을 버리러 다녀오려는 누나에게 어머니께선 내일 아침에 다녀오라고, 음식물쓰레기통 버리는 곳이 너무 어둡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나도 저녁에는 왠만하면 가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들으니 새삼 느껴졌다. “우리나라, 참 살기 힘들어 졌구나”. 우리나라는 예부터 집을 둘러싸기 위한 담이 없었다. 사람을 믿고, 이웃을 믿고, 모두가 다 같이 모여 잔치하고 놀기 좋아했던 조상들의 사람에 대한 믿음. 그것이 우리 내 조상들의 삶의 버팀목이며 기쁨이며 행복이었다. 하지만 현대시대에선 그러한 옛 조상들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이웃에 대한 믿음과 정이 넘치는 나라가 아닌 남에 대한 불신과 불안으로 떨며 사는 나라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는 사형제도 폐지 등 처벌에 대한 제도가 너무나 관대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범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통계적으로 단순한 범죄율 증가가 아니다. 바로 아동 성폭행이나 혼자 사는 여성들에 대한 성폭행 같은 끔찍한 범죄의 증가이다. 하나의 예로 김수철 사건이 있다. 김수철은 과거 가정집에 침입하여 남편을 묶어놓고 그 앞에서 부인을 성폭행 하는 비인륜적인 범죄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일삼다 결국 경찰의 수배망에 꼬리를 잡혀 체포되었다. 하지만 그는 15년형을 선고받고 다시 출소를 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8살 어린아이를 커터 칼로 위협한 후 자기 집으로 끌고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애초부터 확실한 조치를 취했다면 최소한으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했었더라면 운동장에서 놀고 있던 8살 아이는 남들과 똑같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대학에 가서 연애도 해보고 좋은 사람도 만나 건강한 아이도 낳는 행복하고도 남들과 똑같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아직도 그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극도의 우울함과 정서불안을 겪으며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다. 또한 제2의 김수철 사건으로 불리는 나영이 사건, 등굣길을 가던 나영이는 술 취해있던 50대(조두순)에게 납치되었다. 그 후 나영이는 인근 화장실로 끌려가 갖은 구타와 고문으로 인해 기절하였고 수차례 강간을 당하여 결국엔 내장파열로 인해 평생 동안 소변주머니를 달고 살아야하는 비참한 인생에 놓여졌다. 하지만 이를 행한 가해자 조두순은 12년형을 받았을 뿐이다. 평생 동안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들과 다른 불편한 몸으로 살아야 하는 나영이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단 이유로 12년형이라는 다소 솜방망이 형을 받은 조두순. 12년 후면 조두순은 다시 나온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그뿐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 실태다. 이렇듯 관대한 우리나라의 법제도로 인하여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가고 있다. 또한 어떻게 보면 최후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사형제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살펴보자면 우리나라는 최근 10년동안 단 한 번도 사형집행을 하지 않은 사실상의 사형 폐지 국가이다. 10년 동안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은 많았지만 사형대기자 20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현재 사형제도는 세계적으로 폐지되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영국에서는 1965년에 사형제도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그 뒤 아일랜드 내분을 비롯한 강력범죄와 테러 등의 급격한 증가로 사형제도의 부활을 둘러싸고 찬반론이 비등하였다. 하지만 결국 영국 하원은 사형 부활안을 368대 223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부결시켰다. 또한 미국 역시 1973년 사형에 대한 위헌결정이 내려졌었다. 하지만 급격한 강력범죄 증가로 인해 1976년 다시 합헌이 선언되어 1977년부터 사형제도가 부활되었다. 이렇듯 사형제도는 역사적으로도 범죄감소의 요인으로 증명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예부터 현재까지 사형제도 폐지 찬반에 대한 토론이 아직도 뜨겁다. 사형제도 폐지찬성에 관한 글 중 1764년 체자레베카리아가 쓴 ‘범죄와 형벌’에는 이러한 말이 있다. “누가 자신의 생명을 뺏을 권리를 타인에게 위임하기를 원하는가? 인간은 수정이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사형은 그러한 수정 가능성을 배제한다.” 어떠한 시각에서 보면 옳은 말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마가 있고, 그 살인자는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자신의 탐욕을 위해 일고의 망설임도 없이 살인 한다고 하자. 위 글에서 그렇듯 인간은 스스로의 수정이 필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목숨은 살인자에 의해 수정이 됐고, 그 순간 살인자는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즉 모순이다.

  하지만 세상엔 완전한 정답이 없듯, 사형제도가 최고의 해결책은 아닐 수도 있다. 오판의 가능성과, 억울한 누명으로 인해 억울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확률은 세상의 발전과 첨단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하여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사형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김수철 사건과 같은 제 2차 사건의 일어나는 확률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요즘 뉴스엔 강력범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판결이 많이 나온다. 이렇듯 너무나 관대한 우리나라의 처벌제도에서 사형제도마저 꼬리를 감춘다면, 그것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가는 올바른 방향 일까. 사형제도의 존재의의는 범죄자를 죽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형제도가 있음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또한 처벌제도 강화에도 밑거름이 되는 것, 그것이 사형제도의 존재의 의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