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있는 군인입니다.
굳건한 의지로 복무를 하고있는데
제게 너무 큰 시련들이, 어찌보면 잠깐일뿐일 그런 시련들로 하여금
이렇게 판에 글을 남기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이혼하신 부모님과 누나가 있습니다.
어릴적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셨지만 저만 모르고
지방으로 내려와 조부모님과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사춘기시절에 그 사실을 알게되어서 그때부터
소위말하는 정신병을 갖게 되었습니다(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어릴적부터 들려오던 환청과 환영이 더 잦아지고
감정이 매마르고 척박해져 감정표현도 거칠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땐 그게 모두가 그런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글을 쓰는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어릴적엔 일기를 쓰는것부터 시작하여
커갈수록 조금더 어렵고 복잡한 글, 남들이 알아봐주길 원하지만 결코 알아들을수 없는
그런 어려운글을 써내려가는것이 몇안되는 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폐쇄적인 성격이되어가고
성인이된 이후론 하루가멀다하고 술에 의지하고
자취방안에서 혼자 폭력적인 괴물이 되곤 했습니다.
어떨땐 실어증에 걸린것처럼 몇일씩 아무말도 안하거나
어떨땐 미친듯이 물건을 집어던지고 자해를 하거나 발작을 일으키곤 했습니다.
분명 저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가 조금 다른것일거라고, 잠깐 다르게 어긋나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정말 정신병이라면 얼마안남은 주변사람들마저도 떠나갈것만 같아서
그래서 그냥 조치를 취할생각도 하지않고
도망치듯이 입대해 버렸습니다.
훈련병기간을 거치고 중대로 배치받을때까지
여러 머릿속에 위험이 오긴했지만 조금만더 버텨보자 조금만더 하면서
꿋꿋히 버텨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중대에선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더이상 소소한 얘기나마 할수있는 동기들도, 정신을 추스릴만한 개인적인 시간마저도
존재치 않았습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훈련 일절 열외없이 참여했습니다.
막내가 해야할 일들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결국 터져버렸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려 밤샘근무를 서고 돌아와 얻게 된 피로를 뚫고 자꾸만 무언가가
솟아 올랐습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혼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손톱으로 살을 짓이기며 참아오던것의
한계를 드러낸것입니다.
밤만되면 경련을 일으키고,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단지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결국 지휘관과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입대전부터 이러이러했고 검사한번만 받게해달라고.
그랬더니 지휘관에게선 이런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너같은 XX들 많이 봤다. 그렇게 징징거릴거면 군대를 왜왔냐,
부모님께 당장 전화걸어봐서 그런점 없었다그러면 넌 영창갈줄 알아라.'
그리고 욕설과 함께 저희 어머님과 통화를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도 밤늦게 전화와서 너무많이 놀라셨지만 제 사회있을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조금이나마 알고계시기에 제가 원하는대로 검사한번만 받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선뜻 진단을 못내리셨습니다.
조울증에 비슷하지만 뭔가 다르고 정확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겠다고.
당장 입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입원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곤 폐쇄병동에서 보름정도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안에서의 생활은 너무 단순일과들이고 약기운에 몽롱하게 지내왔기에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리고 보름정도후에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치료된건지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퇴원결정이 내려지고
다시 중대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눈들이 달라졌습니다.
지휘관들은 저를 단지 정신병자행세하는 XXX라고 생각했고
선임대원들은 저와 대화하길꺼려하고 피했습니다.
그래서 전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훈련도 역시 일절 열외없이 참여하였고, 막내가 해야할일들을 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불면증에 시달려 괴롭긴 했지만 다시 버텼습니다.
그러다가 한통의 전화를 받게되었습니다.
다른 특수한 곳으로 발영을 받게되었다는 전화였습니다.
제가 교육생 시절에 열심히 하여 추천서를 썼던터라 발영을 받게 된것입니다.
그리하여 며칠후 떠날 채비를 하고 마지막으로 선임대원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런이런곳으로 발영을 받게되었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라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너무도 절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연기하느라 고생했다고,
아주 연기대상받을만 하다고,
너같은 XX나가줘서 고맙다고.
다른 중대로 가기전 본부에 가게되었습니다.
인사 담당자가 그러더군요.
거기 가서도 XX짓 하면 영창보내버린다고,
새로 가는곳 지휘관들은 아직 니 입원했던 사실 모르니까 징징거릴생각 말라고,
너희 샾 가면 꼭 50% D.C해달라는 말도 빼놓지 않더군요
(아버지께서 해외에서 관광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끝끝내 하는 말은 이런것들 이었습니다.
그래도 전 참았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새로운곳에 오게되어
기록카드를 지휘관들이 보게 되었고
제 입원경력을 할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습니다. 아니 다른줄 알았습니다.
지휘관분들께서 언제든 힘들면 얘기하라며
원한다면 병원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내서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약을 먹고 먹어도 경련, 우울증세, 환청 환시 등은 멎질 않았습니다.
병원진료 횟수도 늘어나고 약의 양도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민간병원에서 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어머니와 함께 민간 병원에서 검사를 했습니다.
역시 또 강제 입원이었습니다.
민간 병원이라 조금은 달랐습니다.
제가 회복 되고 있구나 하는게 느껴졌고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는듯 했습니다.
한달정도 입원했을까
부대에서 병가(군인이 질병으로인해 일시적으로 복무이탈하는것) 기간이 끝나간다는
이유로 강제 퇴원을 시켰습니다.
그일로 한순간에 이제까지 추스려온 정신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복귀한후로 경련증세는 더욱 심해지며 발작을 일으켰고
몇시간씩 울다지쳐 기절하듯이 잠들곤 했습니다.
그러길 며칠
결국 지휘관이 절 불러서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만좀 징징거리라고,
지겨워 죽겠다고,
이런걸로 의과사(질병으로인한 전역)할 생각이면 꿈깨라고.
며칠씩 발작을 일으키면서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라곤
'살고싶다' 였습니다.
'죽고싶다'를 넘어서 난 조만간 죽을 것이다 라고 인식하게 되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떤 조언도 귀에들어 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나는 죽는 다는것 뿐.
그리고 며칠뒤 진단서가 부대로 전해졌습니다.
진단명은 '적응장애' 였습니다.
그밖에도 몇몇 명칭이 있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내용은 간략하게 표현해서, 자살할것같으니 막아라 이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모든 움직임도 선임대원과 함께해야했고
옥상 및 창가쪽은 문을 잠궈놓고 접근하지 못하게하였습니다.
제 유일한 비상구였던 글마저 쓰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머릿속엔 계속해서 제가 죽어있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죽은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길 며칠..
이렇게 야간당직을 서며
글을 쓰고있는 제 자신을 볼수있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이렇게쓰면 누가 읽어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글을 쓸수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이젠 다 인정했습니다.
나는 정신병자이고
적응장애를 겪고있습니다.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