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가쁘게 생활해야 하는 wild한 세상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수많은 판단들을 재빠르게 해야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정보화시대 온라인 오프라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을
어찌면 다소 피상적으로 만나면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기에 부족한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가진 주관적인 생각이나 경험들,
심지어는 주위사람들의 의견들만을 바탕으로
그야말로 피상적인 것들에 근거하여 다른 사람들을 빛의 속도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기사들도 날마다 접하게 됩니다.
언론의 의미는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 공익을 위해 함께 생각해보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심지어는 편견을 강요하는 급한 판단을 포함한 기사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어느 정도의 실수를 할 수 있음에도,
앞뒤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누군가에 대해 판단하느라 바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을 그냥 순수하게 '그들 자체'로 인정하거나 기억하지 못 하고
우리도 모르게 그들을 우리 멋대로 판단하거나 단정적으로 말하고,
업무하듯 습관적으로 범주화하는 직업병의 양상마저 보이기도 합니다.
혹은
'나와 조금 다르다'싶으면 거부 반응...
아님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나 외모 등으로 기억하려고 하는 등등
성급한 판단들을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광케이블에 광속으로 정보가 전송되는
최첨단 IT시대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진정성을 의심케하는 수많은 사기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판단 역시 빛의 속도로 하는 것은 어쩔수없을 수도 있으나,
때론 이러한 생활 태도가
오히려 우리의 판단력을 더욱 흐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젊어도 보수적인 사람'
'나이가 있으셔도 개방적인 사람'
'힘들지만 긍정적인 사람'
'풍요속에서도 부정적인 사람'
'착한 외모에 착하지 못한 심성을 가진 사람'
'험악한 외모지만, 진정으로 착한 사람'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차가운 사람'
'차가운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따뜻한 사람'
'한결 같은 사람', '변덕스러운 사람' 등등
우리 곁에는 각자 개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한명 한명은 실은 위와 같은
단어 하나나 문장 하나로 설명될 수 없는
각각의 소중한 인격들입니다.
지나치게 단정적인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주관적으로 급하게
판단함을 경계하며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생각과 조금 다르기라도 하면
그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보지도 않고 비난하기에 바쁘기도 합니다.
편법, 공정하지 않은 일들이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고
이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또다른 편견과 불공정을 낳는데 우리도 모르게 일조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떤 직업에서 커리어를 쌓을수록, 사회생활을 할 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고, 우리는 각각의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눌 시간마저 부족해지게 되고, 사무적인 만남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사회생활에 바빠, 가정생활에 바빠 곁에 있던 친구들과도 다소 멀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간의 작은 오해로 인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께서 오랜친구 모임, 동창 모임에서 크나큰 감회를 갖게 되는 것도,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자꾸만 소원해져가기도 하는 인간관계에 아픔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는 무엇인가를 평가하지 않으며 생활할 수는 없는 처지에
너무도 자주 놓이게 되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들, 진정성을 갖춘 사람들한테 우리가 신뢰를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성품이든 사물의 특징이든 간에 이들은 다양하며
어느 정도 변할 수도 있는 것이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한두가지 상황을 보고 지나치게 단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데도,
이해할 수 없다며 쉽사리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학수업이라면은 '오개념'이 되는 것이고,
창의성 수업이라면, 기존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이나 다른 것에 대해서
착한 비평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부터 하고 보는 것이니
'창의성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나도 모를만큼,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함에도
급변하는 정보화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매우 복잡하고 급한 생각을 하며 생활해야 하는 우리들은 과연
진정으로 정보화시대의 풍요를 느끼고 있는가요?
'내가 남을 쉽게 평가하듯, 남이 나를 쉽게 평가하지 않도록'
혹은 쉽게 다른 사람에게 평가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야말로 '표준화(?)'되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만 지나치게 신경쓰고 있게 된 것은 아닌가요?
어떤 광고속의 장면처럼,
어떤 영화속의 장면처럼,
어떤 노래속의 가사처럼,
다양한 예술의 장르에서 의미심장하게 표현되는 것처럼...
'모두가 똑같이 되는 것'은 오히려 답답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말입니다.
모두가 짜장면 시킬때, 함부로 짬뽕을 시키다가는 욕설을 듣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남자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군복무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군복무는 나라를 지키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특수한 사회에서의 경험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며,
협동이나 규정과 같은 가치들이 매우 중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예비역이거나 여성, 어린이, 학생들입니다.
개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글로벌시대에
다문화가족, 다양한 문화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사람과 사물을 급하게 평가함으로써 범하게 되는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공정사회'는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이 존중받는 분위기,
비판이 아닌 비평이 인정받는 분위기,
비난하기보다는 충고하는 분위기,
소수의 의견에도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등의
성숙한 민주시민의식과 배려 등의 노력이 뒷받침될 때 이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할 때 보다 시너지를 갖게 되며,
당장은 오해로 인해 좋지 못한 평가를 받거나 오해받게 되는 일까지 있더라도
언젠가는 인정을 받게된다고 생각합니다.
높이뛰기에서 '배면뛰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뭐 저런 방법이 다 있어'했지만,
지금은 올림픽에서 우승하려면, '배면뛰기'를 해야만 우승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새로운 생각들은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창의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들 처음부터 인정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은 적어도 어떤 문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진정으로 걱정했으며,
사람들이 당장 알아주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노력하고 연구했다는 것입니다.
속도가 경쟁력인 시대에서도,
다소 느리게 느껴지지만 진정성을 갖추는 것에 대해서 가치를 부여하고 존중하였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필자는 한 때 '얼리어답터의 길'을 포기하고,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를 이루는 얼리어답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생활과 오프라인 생활이 괴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가 않아 고민입니다.ㅠ_ㅠ
공정사회는 항상 주관적이기 쉬운 우리가
어쩌다 보면 편향적이게까지 되는 우리가
객관적이고자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할 때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상당히 어렵지만 그럼에도 꼭 이룩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공정사회', '중용의 덕'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항상 부족하기만한 실천을 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중용의 덕은 '중간가자'는 말이 아니고,
'양쪽을 다 배려하고 고려하자'는 말이니 해당분야에 대한 관심, 소양,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갖춰야 실천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내공을 쌓으며, 보다 각오를 다지며
실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와 다른 사람', '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들'에 대해서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것부터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의 부족하고 주관적인 긴 글을 여기까지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