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주위는 둘러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곤 했습니다...
내 입에서 '너를 좋아해'라는 말이 나온 이상 마치 그 말이 신비한 마법이라도 되는 것 처럼 제 자신을 멈출 수 없이 사랑을 향해 전진하곤 했습니다.
그 결과 사랑을 얻은 적도, 실패한 적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하거나 아쉬워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여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제 친구와 이미 친구이상 연인 이하의 미묘한 관계여서 저는 그저 같이 어울리는 한 명이었고,
결국 그 친구와 잘 되질않고 다른 남자와 연인이 되었을 때도 저는 그저 가끔씩 만나서 술 한 잔 하던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을 넘게 친구로 지내오면서 그녀와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힘들때, 외롭다고 느낄 때 저는 옆에서 같이 있어주며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었고, 어느새인가 제게 그녀는 너무나 소중하고 아껴주고 싶은 존재가 되어 제 마음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오는 동안 서로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녀도 남자친구가 있었고, 저 또한 여자친구가 있었기에 서로 가끔씩 만나는 친구 이상의 감정은 되도록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음 서로를 알게되고부터 때로는 즐겁게 웃으며 술 한잔 하고, 때로는 갑자기 느껴지는 답답한 감정에 연락을 일부러 안 하기도 해보고, 그러다 또 어쩌다 한 번 만나면 서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즐겁게 이야기하고...5년 간을 정말 친한 친구의 관계로 지내왔습니다.
그런 그녀가 오늘 전화가 왔습니다...
술이 약간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오빠 나 지금 XX인데 술 좀 취했어요" 라고 말하는 그녀가 걱정되어 서둘러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햄버거 가게안에서 햄버거 셋트 2개를 시켜놓고 기다리는 그녀를 만나서 같이 햄버거를 먹으며,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햄버거를 먹었습니다.
그녀가 약간 취한 듯 하여 햄버거를 다 먹고 서둘러 차에 태운뒤 그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녀가 너무 추워하는듯 하여 살며시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따라 그녀는 차가운 두 손으로 제 손을 꼭 잡고 아무말없이 앉아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녀의 집은 너무나 가깝습니다...집 근처에 다다라서 차에서 내려 그녀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다음달에 상견례 해요..."
이미 그녀에게 그녀의 남자친구 이야기도 자주 들었고 내년쯤 결혼을 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오빠 정말 좋아해요....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빠를 생각하면 오빠가 떠올라요..."
그녀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20살 즈음에 갑자기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그녀나 저나 둘 다 친척이 거의 없기에 오히려 한가한 명절에 같이 납골당에가서 저도 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면 안되는 거 알아요...우리 이러면 안되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참 좋아하면서도 때로는 타이밍이 안 맞아서, 때로는 우리들 주변의 복잡했던 상황들 속에서 우리들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꾹꾹 누르는데만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봅니다...
저는 그 때 할 수 있었던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에겐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고, 설사 말한다 해도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이리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항상 사랑에 있어서는 앞으로만 나아가던,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저도 정말 이번 만큼은 도저히 모든것을 제쳐두고 전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미 그럴 기회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그녀를 한 번 꼭 안아주고 집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냥 멍하니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그냥 나도 참 그녀를 좋아하긴 했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들었습니다.
방금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오빠..미안해요 한 번 속 시원히 말해보고 싶었어요^^잘지내요"
나도 정말 많이 좋아했는데...나는 아직 속 시원하게 말해주지 못 했는데...
그래서 답문을 보냈습니다.
"나도 너 정말 많이 좋아해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좋아했어...너무너무좋아해서 말못했어..."
생각만큼 속이 시원하지만은 않지만..그래도 안 한것 보다는 나은 것 같습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스케치북 고백을 했던 그 친구도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제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조언을 얻고자 하는 것도, 슬퍼서도, 미련이 남아서도 아닙니다...그저...쓰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그녀와의 즐거웠던 시간을 생각해보고 그저 잠시 추억에 젖어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혹시나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계신 분이 있다면...
기회가 있을 때, 타이밍을 잡았을 때...절대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저도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왠지 그녀는...너무 편하고 당연한 듯 해서 언젠가는 저와 함께하게 될 것 같다는 어리석고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은...참 어렵네요...
이만 자야겠습니다....모두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