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리그 두 번째 경기 상대 요르단을 대파하며 한 숨 돌린 홍명보사단이다. 첫 경기 북한전서 패하며 자칫 흔들릴 수 있던 팀 분위기를 다잡았다. 다가오는 토요일 오후 5시에 열리는 팔레스타인전을 승리하면 16강 직행 티켓을 쥔다. 팔레스타인이 요르단과 비겼고 북한에 0-3으로 크게 진 약체라 한국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진다.
요르단 전에서 회심의 슈팅을 날리고 있는 박주영 (사진제공=연합뉴스)
요르단전 대승의 의미가 분위기 전환에만 있는 건 아니다. 4골과 완승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경기 내용과 전술운용, 심적 자신감에 있어서도 긍정 효과와 그 기대를 끌어올린 요르단전이었다.
요르단전의 승리는 먼저 선수단에 긍정의 기억 DNA를 되살렸다. 현 아시안게임대표 멤버의 주축은 지난해 이집트에서 열린 FIFA U-20월드컵 8강 주역들이다. 1983년 멕시코 대회 4강 신화에 견줘지는 돌풍을 일으킨 이집트 대회의 결과였지만 출발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 U-20 대표팀은 조별리그 첫 경기 카메룬전에서 0-2로 완패했다. 같은 조에 독일과 미국이 묶여 있어 한국의 16강 토너먼트 진출은 힘겨워보였다. 이집트 현지에서 함께 취재하던 기자단의 일부는 서둘러 귀국 일정을 챙기기까지 했다.
지난 2009년 U-20월드컵 예선에서 카메룬에 2-0으로 진 후 홍명보 감독 (사진제공=연합뉴스)
하지만 주위의 우려와 어둔 전망이 섣불렀다는 것이 증명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홍명보사단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독일을 시종 몰아붙이며 무승부를 끌어낸데 이어 조별리그 최종전서 미국을 꺾으며 극적인 16강 진출을 이뤘다. 기세가 오른 홍명보사단은 16강전서 난적 파라과이를 3-0으로 완파하면서 83년 멕시코 대회 이후 최고의 성적을 일궈냈다. 참가팀 수가 적어 조별리그를 통과하면 바로 8강에 오른 83년의 대회 방식을 감안하면 지난해 이집트 대회의 8강은 역대 최고 성적과 어깨를 나란히 한 기록이었다. 시작은 힘겨웠지만 끝은 역사적 성취로 남았다. 이번 광저우에서도 조별리그 첫 경기 북한전서 패했지만 우승을 향한 자신감에 흔들림이 없고 선수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일종의 학습 효과가 여기에 있다. 시련을 극복하는 법에 익숙한 홍명보사단이다.
>>> 시련을 극복하는 기억의 DNA
요르단전 의미의 또 하나는 전력 밸런스의 완성도가 회복됐다는 점이다. 전력의 밸런스는 공격과 수비, 공간과 사람, 오른쪽과 왼쪽 터치라인 플레이의 균형을 포함한 전술의 완성도를 뜻하는데 홍명보 감독이 가장 강조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력 밸런스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이 요구되는데 선수들의 소속팀 일정 등으로 1주일 여 밖에 팀워크를 다질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 홍명보사단이었다. 때문에 홍명보 감독은 실전, 즉 조별리그를 통해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16강전 이후 베스트 전력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을 세웠는데 상대 전력 등을 감안하더라도 요르단전의 한국팀 플레이는 북한전과 비교하면 가벼웠고 유기적이었다. 실전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다는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홍명보 감독의 구상대로 팀이 움직이고 있는 건 분명 긍정의 메시지다.
로테이션 시스템의 안착과 경쟁력이 요르단전에서 확인한 또 하나의 홍명보사단의 힘이다. 북한전과 요르단전의 선발라인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최전방 공격수로 박희성 대신 지동원이 포함됐고 처진 공격 위치엔 김민우가 빠지고 서정진이 배치됐다. 오른쪽 수비수 자리엔 오재석 대신 신광훈이 선발로 나섰고 중앙 수비엔 장석원을 대신해 홍정호가 투입됐다.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 10명의 절반에 가까운 멤버의 교체였다.
북한전에 부진했던 선수들의 교체로 볼 수 있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포인트는 체력 안배와 지속적 경쟁의 유도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축구 일정은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들만큼 빡빡하게 짜여 있다. 조별리그가 6일 동안 3경기를 치르도록 짜여 있는 등 2,3일 간격으로 계속해서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특정 선수가 연이어 경기를 소화하기에는, 동일한 선발라인업으로 경기를 치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일정이다. 결승에 오른 팀은 모두 7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우승을 목표하는 한국팀의 최대 리스크 관리 중 하나가 선수들의 체력 안배와 그에 따른 집중력 유지다.
>>> 박주영의 등장과 로테이션 시스템
요르단 전에서 후반 22분 교체 투입되고 있는 박주영,
이날 경기에서 박주영은 환상적인 힐킥 어시스트로 클래스를 증명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또 경고 누적 등에 따른 출장 정지 등의 징계도 고려해야 한다. 구자철이 북한전과 요르단전에서 연이어 경고를 받아 팔레스타인전에 나설 수 없다. 대체 선수가 마땅치 않다면 심히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구자철의 공백은 윤빛가람 등이 메울 수 있다. 이렇듯 포지션별로 복수의 선수 자원을 확보하고 로테이션 시스템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전력의 불안 요소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선발라인업의 절반 가까이를 교체한 요르단전의 선전이 던진 긍정 전망의 또 하나의 근거다.
박주영의 안정적 가세도 한국팀에 적지 않은 힘이다. 프랑스리그 주말 경기를 소화한 뒤 곧장 광저우로 날아와 체력 부담과 시차 적응의 어려움 등이 있었지만 요르단전 후반 교체 투입 돼 30분여를 뛰며 새로운 팀에 빠르게 녹아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한국팀이 요르단전에서 만든 최고의 골 장면이라 할 수 있는 4번째 득점 장면에서 보여준 기막힌 백 힐 기술은 박주영에 대한 기대를 한층 끌어올렸다.
박주영을 향한 기대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골 결정력에 어려움은 겪은 최전방 공격라인의 파괴력을 더하는 기대고, 또 하나는 실패를 거듭한 한국축구의 와일드카드 도전사에 새로운 출발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미 검증받은 골 결정력에 있어서는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와일드카드로서 성공하기 위해선 기존 팀원들과의 허심 없는 대화와 낮은 자세가 중요한데 이를 잘 알고 있는 박주영은 요르단전에서 동료들의 물병을 직접 챙기는 등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요르단전은 시작일 뿐이다. 가야할 길이 멀고 또 쉽지 않은 도전이다.
박주영이 새로이 가세한 한국팀에게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