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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자운영 |2007.10.31 12:17
조회 273 |추천 0

99 년 2 월이었습니다.

제가 사는곳이 부산이라 해운대를 자주 놀러가곤했죠.

2월 초..

그날도 친구들과 간단한..?(저랑 제친구들 모두 술 별로 못함)..

술자리를 파한후 저녁 10시경 전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서 바람좀 쐬고 들어갈 생각으로 해변을 거닐었습니다.

거기서 한 인연을 만났죠.

챙모자를 눌러쓰고 두꺼운 외투를 걸친 그녀는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첫눈에 제 호감을 사게 되었고 많은 망설임끝에 얘기를 걸었죠.

의외로 잘 받아주더군요.

자리를 옮겨 조그만 커피숍에 자리잡은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

.

그렇게 만나면서 사랑을 나눈지 3 개월쯤 우린 결혼을 약속했고

종교의 차이로 반대하시는 그녀쪽 부모님들 설득하느라 전쟁아닌 전쟁을 치르면서 다시

4 개월의 시간을 둘이서 몰래 만나기도하고 강제적 이별을 겪기도 하면서

둘의 사이를 힘겹게 이어왔습니다.

결국.. 부모님 께선 저희를 허락하셨고 우린 조그만 빌라에서 우리의 첫

결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집도 늘려 나가고 살기도 나아지는데 아이가 안생기더군요.

그러다 한참만인 2003 년 6월 ...우리의 첫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 입니까.. 우리 부부의 큰 기대와 희망을 안고 태어난 아이는

염색체 이상증..즉 다운증후군에 걸려있더군요.

염색체이상검사후 그 소견서를 들고 저에게 설명하는 의사의 말은

다운증후군의 아이는 50%가 2세를 넘기기 힘들고 넘긴다 하드라도

40 세 정도 까지의 삶까지 살수없다더군요.

물론 그동안의 교육문제등등.. 많은 노력이 따라야 하구요.

그래도 우린 우리의 첫 사랑의 결실인지라 소중히 키우려고 애썼습니다.

조그만 질병에도 쉽게 면역이 떨어지는 아이라 나갈때도 완전무장? 은 필수구요,,

그렇게 힘들지만 조금씩 이나마 우리의 작은 기쁨으로 자리잡으면서

그아이는 잘 커주더군요.

 

2004년 5월 3일 ..제가 출장을 가있는동안 집사람으로 부터 전화가 오더군요.

밤 11 시가 훌쩍넘은 시간이라 왠일이지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전화를 받는데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ㅇㅇ이가 하늘나라로 갔어요..."

순간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간밤에 약한 감기증상이 있었는데 그게 순식간에 폐렴증상으로 발전한 모양이었습니다.

감기로 병원에 있다는 연락은 그전에 받은터라 내내 걱정이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고 말더군요,.

 

다음날 5월4일... 우린 그 작은 아이를 화장 했습니다.

내일이 어린이 날인데.. 다가오는 생애 첫 어린이날 선물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먼저 세상을 떠나는 그애몸은 너무도 작고 차가웠습니다.

우린 평소에 그애가 잘 가지고 놀던 작은 인형 하나만을 그애의 가슴에

얹어주고는 그렇게 하늘로 떠나보냈습니다.

유아는 화장을 하면 뼈조차도 남지 않는다더군요..

결국 우리는 뿌릴수있는 그애의 유골 조차도 없이 우리의 가슴속에

그애를 묻어야만 했습니다.

 

그후 애기 엄마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전 직장은 신경도 못쓰고 그녀의 곁에서 지내다시피 하며 간호하고

신경을 쓴 결과 조금씩 나아지고 있더군요.

 

애를 먼저 보내고 2 개월후..

장보러 다녀온다며 전화를 하고 나간 그녀는 결국 순간적 운전 부주의로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워낙 부상이 깊어 무려 1 개월을 넘게 중환자실에서 고통과 싸우던 그녀또한

결국 산소호흡기를 떼고 이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2004 년 ..한꺼번에 두명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전 직장도 때려 치우고

1년간을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기껏해야 소주두잔이 제 주량인데.. 밤마다 소주 4 병은 기본으로 비우고

뻗어있는게 일상이었고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고

매일같이 텅빈 방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는게 일과였죠.

이듬해 2005년 12월이었습니다.

평소 등산을 좋아하던 전 지리산을 찾았었고 등산일정 마지막날

천왕봉표지석옆에 웅크리고 있던제게 눈부신 광경이 펼쳐 지더군요.

천왕봉 일출 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장관인지요.

그렇게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전 다시금 희망을 얻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는 용기도 얻었구요.

 

그렇게 두 가족을 떠나보낸지 3 년이 지난 오늘 10월 마지막날 이른아침..

전 제 사랑이 누워있는 영락공원 을 찾았습니다.

비록 아이의 유골은 없지만 언제나  엄마와 함께 할거라 믿고

그녀의 빈소를 찾은겁니다

어제 작은 결심을 했었고 그걸 얘기하거 간거죠.

지금은 불러도..,애원해봐도 오지않을 그녀였지만

영정앞의 사진속 그녀는 언제나 환한 미소로 절 반겨주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대하는 순간  차마 제 결심을 얘기할 입이 떨어지질 않더군요.

한참을 사진만 어루만지며 고개를 떨구고 있던 전

힘겹게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한 일이지만.. 정말 당신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다시금 사랑을 시작해도 되겠느냐구요.

당신아닌 딴 여자와의 사랑을 당신이 이해해줄수 있겠느냐구요.

물론 지금 내 옆에 누군가가 있는건 아니지만 언제가 될른지 모를 어느날

내게 사랑이란게 다시 찾아온다면.. 그래서 그 사람과의 사랑이

때로 예전에 당신에게 보여주었던 사랑보다 더 깊을지라도 당신은

그걸 이해하고 용서해 줄수 있느냐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될것이고

물론 내 딸 또한 만나게 되겠지만 내 남은 인생을 허송하며

살다가진 않았다고 얘기해주고 싶고

다른 사랑이 생긴다 하더라도 비록 하나뿐인 심장이지만

그 심장 한켠엔 언제나 당신과 내 딸의 조그만 미소가 자리하고 있을거라구요.

 

 

 

 

제가 잘못한걸까요?

사랑하는 인연을 떠나보내고 불과 3 년밖에 흐르지 않은 지금

그 인연에게 다른 사랑의 이해를 구하는게 정말 잘못된걸까요?

 

들어올때는 차갑기 그지없던 날씨가 건물을 나서는순간 따스한 햇살이

내리 쬐더군요..

전 순간 ..그녀의 따듯한 품과 그 마음을 느낀듯 했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제 눈엔 저도 모를 눈물이 흘러 나오더군요.

 

 

 

그냥 얘기할데도 없고해서 넋두리 해 봤습니다.

재미도 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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