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고 있던 그녀의 자궁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 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그 안에는 이미 기회를 잃은 작은 생명이 말라있을 것이다.
카얀은 의식이 멀어질 만큼의 분노로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빨 사이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꽉 다문 입도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스파키가 그의 두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지크라고 했나? 왜 날 보자고 했지?"
"오, 이제야 관심을 끌었군."
"날 보고자 했다면 직접 올 것이지 왜 이런 짓을 저질렀나?"
"당신의 힘이 어떨 때 나타나는지 알고 싶어서."
"넌 누구냐?"
"우선 널 꼼짝 못하게 한 다음 천천히 얘기를 해 보기로 하지."
지크가 손을 올리며 힘껏 밑으로 내리자 공터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키루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형태는 사람처럼 두 다리로 서 있고 두 팔이 있었지만 손 끝에는 손가락 대신 커다란 발톱이 달려 있었다.
발 끝에도 작은 발톱이 보였고 입에는 입술 대신 가시처럼 돗은 이빨들이 삐져나와 있었다.
스파키는 카얀의 팔을 놓으며 말했다.
"넌 시신을 챙겨서 바이크가 있는 쪽으로 뛰어라. 아마 놈들이 쫒아가겠지만 그건 네가 알아서 해라. 난 저 놈과 얘기를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저 놈은 내가 죽이겠습니다."
카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 놈은 내가 잡아서 네 앞에 놓겠다. 그때 네 마음대로 해라. 우선 여자의 시신을 챙겨라. 어차피 죽었으니 무덤이라도 만들어라."
"꼭 복수를....."
스파키가 카얀의 팔을 놓자 카얀은 얼른 허리를 숙여 아내의 가벼워진 몸을 끌어안고는 그들이 온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쪽에 있던 키루 몇 놈이 그를 쫓아갔고 스파키는 나머지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힘을 썼다.
그가 팔을 양쪽으로 뻗자 그의 손 끝에서 전기가 뻗어나가며 공터를 반으로 가르듯 밝은 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전류에 닿은 나무에 불이 붙으며 사방이 더욱 밝아졌다.
"우리 얘기 좀 더 해볼까?"
스파키가 팔을 내리며 지크쪽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지크는 뒤로 물러서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런, 화가 나면 나오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군. 마음대로 할 수 있나?"
"직접 확인 해 봐."
지크가 한 발 더 뒤로 물러서자 키루들이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현재 이 숲에 얼마나 많은 수의 키루들이 있을지 모르다는 생각이 든 스파키는 힘을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우선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 쪽으로 몸을 날린 그는 놈이 뻗은 팔을 오른손으로 잡아 더욱 끌어당기면서 왼팔을 뻗어 가슴에 대고 전력을 쏘았다.
하얀 불꽃이 튀며 놈이 비명을 지르면서 날아갔고 다시 몸을 숙여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면서 그는 등에 맨 칼을 뽑았다.
칼을 뽑는 것과 동시에 그대로 앞으로 달려가며 밑으로 휘두르자 피할 틈도 없이 한 놈이 쪼개지는 머리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사방에 피를 뿌렸다.
두 놈을 순식간에 처리한 그는 다시 방향을 틀어 뒤에서 달려오는 놈에게 칼을 꽂았다.
하지만 녀석이 그대로 팔을 휘두르려고 하자 그는 칼을 쥔 손에 전력을 모았다.
전력이 그의 칼을 타고 그대로 놈의 몸 속에서 작렬하자 녀석의 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이쯤 하면 놈들이 주춤할텐데 이것들은 계속 달려들었다.
한 놈이 몸을 낮추며 빠르게 바닥으로 기어오더니 그의 허벅지를 노렸다.
피하기는 했지만 손톱에 살짝 할퀴면서 금새 피가 베어나왔다.
그때 지크가 활짝 웃는 것이 보이자 스파키는 그 놈의 머리에 칼을 꽂았다.
이번엔 전력을 조금만 흘렸다.
그러자 놈의 뇌에 도달한 전력이 놈의 몸을 심하게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 상태로 칼을 뽑았지만 녀석은 이미 죽었으면서도 스파키의 옆을 지나 계속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마구 휘두르더니 모닥불 위에 쓰러졌다.
그리고 스파키도 활짝 웃으면서 지크에게 답례했다.
하지만 지크는 인상을 팍 구기고서는 소리를 질렀다.
"이 멍청이들. 어서 잡앗!"
이번엔 다섯 놈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스파키는 앞으로 달려가며 눈 앞의 놈이 팔을 휘두를 때를 노려 살짝 피하고는 놈의 눈을 옆으로 그어버렸다.
괴로움의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치켜들자 그는 다시 놈의 목을 그대로 절단해 버렸다.
그때 나머지 네 놈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낀 그는 일부러 등쪽으로 몸을 날렸다.
당황한 키루들이 미처 공격할 생각을 못하고 그와 몸이 닿았다.
그 순간 스파키와 키루들의 몸 전체에서 전류가 흐르면서 키루들이 비명을 질렀고 그 때를 노려 그의 칼이 전류를 뿌리며 한바퀴 돌았다.
그러자 나머지 키루 네 놈이 목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녀석들의 공격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칼을 휘두르며 땅바닥에 웅크린 그에게 열 놈이 넘는 키루들이 한꺼번에 덤비자 미처 피하지 못한 그는 꼼짝 없이 그대로 놈들의 밑에 깔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를 덮은 놈들의 몸 사이사이에서 엄청난 전력이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전력은 그 강도가 이제까지 보인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짧은 순간 사방을 환하게 밝히며 마치 폭발하듯이 터진 전력은 바로 사그라들면서 다시 주위를 어둡게 했다.
모닥불 위로 쓰러진 놈의 몸이 타면서 이상한 냄새와 연기를 잔뜩 뿌려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는 움직임이 없었다.
지크는 그제서야 다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하하하하. 정말 대단하군. 굳이 그런 힘이 없어도 말이야."
지크는 가까이 다가가서는 스파키를 덮은 키루들에게 머릿속으로 명려을 내렸다.
'이제 비켜라.'
하지만 키루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지크는 다시 한번 강한 뇌파를 내쏘았다.
'이 멍청한 것들. 비키라니까'
그제서야 키루들이 들써거리더니 움직였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는 것 같던 키루들은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그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
지크가 놀라며 얼른 뒤로 몸을 뺐지만 그의 손이 더 빨랐다.
스파키는 지크의 머리채를 잡자 마자 그대로 면상에 주먹을 꽂았다.
"크억!"
"왜? 아프냐? 이 빌어먹을 자식."
"자, 잠깐!"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스파키가 손을 놓지 않는 바람에 목이 덜컥 했다.
그런 그에게 스파키가 다시 주먹을 날렸다.
"프헉!"
이빨이 부러지면서 안으로 튀겼는지 피를 쏟으며 쿨럭거리던 그는 머리채가 한 웅큼 뽑히며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스파키는 다시 그의 머리채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다시 달려드는 키루들 때문에 손을 멈추고 방어태세를 취했다.
바닥에 떨어뜨린 칼을 쥔 그는 허리춤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그 상자를 칼 손잡이 부분에 부착시켰다.
그리곤 칼을 바닥에 박으며 기합을 넣었다.
"끼얍!"
곧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면서 그를 중심으로 밝은 빛이 커지더니 그 빛들은 다시 가는 전류줄기로 변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 전류줄기는 다시 새끼를 치듯 여러갈래로 갈라지며 퍼져나갔다.
단 3초
그 짧은 시간동안 사방으로 뻗어나간 전류에 의해 주면 나무들이 전부 순식간에 재가 되었고 그 사이사이에 숨어있던 놈들도 입을 쩍 벌린 채 그대로 시커먼 재가 되었다.
아직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직 숨을 헐떡이고 있는 지크라는 녀석 뿐이었다.
스파키도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처리해야 할 만큼 적들의 수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카얀이 여자를 데리고 나가는 시간을 벌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놈들을 최대한 자신 가까이에 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두머리가 불러야만 한다는 것을 눈치 챈 그가 세운 작전이었다.
만일 살아남은 놈이 있다 하더라도 멀리 있을 것이고 한동안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 지크라는 놈과 궁금한 것을 풀 시간은 충분한 것이다.
스파키는 녀석의 머리채를 잡고 주먹을 날릴 때, 녀석의 몸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물체들을 보았다.
그 물체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주변의 정전기를 끌어당기는 대기충전 장치였다.
자신이 방출하는 전력을 전부 흡수하기엔 덩치가 작았지만 잘 하면 지크라는 자가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망설임 없이 바로 힘을 쓴 것이다.
예상대로 목숨을 건진 모양이지만 순간적으로 공간을 채워버린 그의 전력을 견디느라 머리털이 전부 타 버렸고 피부도 심한 화상을 입었다.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얼마 가지 않아 죽을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숨은 붙어 있으므로 그에게 다가갔다.
"어디 또 불러보시지."
"너..... 처음부터......."
"그래. 녀석들이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 졌군...... 죽여라."
스파키는 아직 남은 전력 때문에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는 지크의 몸에 붙은 잡스런 것들을 떼어냈다.
옷은 타버렸지만 금속성의 물체들은 타지 않고 계속 그의 몸에 전력의 찌꺼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파키는 아직 물어볼 것이 많았다.
"정말 대단하군. 당신의 그 힘."
지크가 이 말을 하며 뒤로 풀썩 쓰러졌다.
스파키가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너도 네 힘을 잘 써보지 그랬나. 괴물들을 맘대로 부리던데."
"난 그저 돌연변이일 뿐이야. 길트에 감염되었지...... 우리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날 이 숲에 버렸다."
"왜 날 찾았나?"
"당신처럼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지크는 자신의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냈다.
"이건..... 나의 어머니가 날 버리면서 준 것이다. 하하...... 젖먹이가 이걸로 싸울 수 있을거라 생각한 모양이야......."
"........"
"당신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당신은 길트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간들의 마을에 마음대로 머무를 수 있더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도 모른다."
"하하하......... 그렇군..... 난 당신이 무슨 수를 써서 몸 안의 길트를 없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을 잡아 그 방법을 알아내려고 했지. 그러면 난 다시 인간들과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 이유는 모른다."
"하아...... 그래....... 괜히 모험을 했구만........ 근데 말야....."
"뭔가?"
지크는 이제 꺼져가는 생명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것과 바꾸고 있었다.
"엔젤타운의 지도자가.... 날..... 찾아왔었다. 어제......"
".........."
"당신을 잡으면 그 연구를 하게 해 달라고 했지...... 자기네 마을엔 의사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거래를 했다."
"거래?"
"여자를 죽여달라고 했다. 이미 길트에 감염되어 있다고 하더군. 자기 아들이 당신을 데려와도 여잘 살려보내지 말라고 했다. 그 대신 당신 몸을 연구한 결과로 내 몸의 길트를 없애주겠다고 했다."
"........."
"난 그 제의를 수락했지. 하지만 이젠 다 부질없는 짓이 되어 버렸구만...... 그 엔젤타운의 지도자를 조심해라. 난 알 수 있지..... 키루들을 조종한 것 처럼 말야....."
"뭘 조심하란 거지?"
"그냥 느낌이다. 그리고 그 자는 날 살려준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이 ...... 나는군."
"........."
"내가 어릴 때, 인간들이 이 숲을 차지하기 위해 쳐들어 왔었다. 그때 난 그자의 눈에 띄었지. 내가 키루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그자가 눈치챘다. 하지만....... 그는 날 .....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 자를 죽이라고 키루에게 명령했고...... 대신.... 다른 여자가 죽었다..... 그래도 그 자는.... 날 .... 그냥 두고 갔다...."
더 이상 말하기 힘든지 지크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이제 쉬고 싶다. 난 키루들을 ....... 지속적으로 ...... 조종하기 위해.....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 잠들면....... 날....... 죽일테니까...... 그래서 ......... 숨어서 ....... 자곤...... 했지......... 이젠....... 편히...... 자겠군...."
지크의 오르내리던 가슴이 내려앉더니 올라오지 않았다.
숨이 멎은 그는 군데 군데 화상을 입은 얼굴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키루들을 조종하면서도 한시도 편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겨우 자신의 힘에서 해방된 그는 잠이 들었다.
인간들 속에서 살고 싶은 희망은 이루지 못한 채......
스파키는 지크의 손에 들린 작은 단도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조용히 속삭였다.
"이 칼...... 전해주겠다."
스파키가 숲을 빠져나오자 카얀이 바이크 옆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다가가자 카얀이 힘 없는 소리로 물었다.
"놈은......."
카얀도 어둠속에서 하늘까지 환하게 밝히는 전력의 폭발을 보았다.
스파키가 자신이 피할 시간이 지난 다음에 주변을 전부 날려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크라는 자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마지막이 궁금해 물어 본 것이다.
"죽었다."
"그렇군요....."
"원수는 갚았다. 돌아가자."
"네. 고맙습니다. 이젠 제가 약속을 지킬 차례군요."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천으로 감싼 아내의 처참한 시신이 접혀 있었다.
뼈만 남은 팔이 조금 삐져나와 있었다.
스파키는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에 앉았다.
여자의 혼이 보고 있다면 피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키에르가 직접 트럭을 몰고 왔다.
모래에 빠지지 않기 위한 트럭의 바퀴는 상당히 넓었다.
하지만 힘은 좋은지 속도는 제대로 나는 것 같았다.
카얀은 아내의 무덤을 만든다며 바이크를 타고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고 스파키는 짐을 갖고 가겠다며 키에르의 트럭을 타고 메탈타운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에 키에르는 상황을 알고 싶어 궁금증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카얀의 아내로 보이는 시체를 본 탓에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운전에만 신경썼다.
가는 도중에 데저드로 보이는 것들이 모래 위로 촉수를 내밀었지만 트럭의 커다란 움직임에 겁을 먹었는지 덤비지는 않았다.
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때 여자 하나가 트럭쪽으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트럭이 속도를 늦추자 그 여자는 문을 열고 얼른 올라타더니 무언가를 꺼내서 스파키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
"피가..... 묻었어요."
"치워!"
스파키는 어이가 없어서 짜증을 내며 여자의 손을 이리저리 피하느라 얼굴을 돌려댔고 키에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캬하하하하. 이거 큰일이군...... 데리고 사시구려. 푸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