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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창시제 교주 루터가 가톨릭경전에 딴지건 내용

김현갑 |2007.11.17 19:20
조회 362 |추천 0

히브리서, 야고보서, 유다서, 계시록

루터는 이 네권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야고보서는 실제로 뺏다가 다시 집어넣었고

이 네권을 신약의 맨 마지막에

찝찝한 마음으로 넣었군요.

 

그리고 빼버렷던 가톨릭 제2정경중

마카베오는 다시 집어넣으려다가 못햇고..

 

 

 

 

에라스무스(Erasmus)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 후서, 요한2,3서, 유다서, 계시록 등이 옛날부터 계속 의심을 받아왔다고 지적하였으나 그는 충성된 로마 카톨릭교회 교인으로서 자기 주장을 고집하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하며, 루터는 에라스무스가 상기시킨 7권의 이의서(異議書) 중에서 넷만을 문제 삼았다.

히브리서에 대해서는 배교자(背敎者)들에게 두 번째 사죄를 허락지 않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야고보서에 대해서는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것보다 행위를 더 고조하는 것같이 보인다고 비난하였고, 유다서는 베드로 후서에서부터 생겨난 것으로 보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확실한 증언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였으며, 계시록은 애매하여 그리스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들을 자기의 번역에서 신약성서의 맨 끝에 두었다. 먼저 그가 완전히 수락한 23권을 열거하고 그 번호를 적어 넣었으며, 다음에 약간 여백을 남겨 놓았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 오는 책들은 질적으로 낮은 수준의 것임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그 열등함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번호도 붙여놓지 않았으니 결국 일군(一群)의 신약 외경과도 같은 취급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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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뒫받침 하는 글을 올려 드립니다. 이글은 우리나라 새벽 기도 창시자이신 길선주 목사님의 외손이 교회 일치를 위해 그에게 신앙을 심어준 할머니에게 고백한 자전적 체험기로서 현재는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의 일부 입니다.

 

[펌]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교보문고, 동대문 만나 서적 성 바오로(딸)서원)

 

성경을 마음대로 떼어 버려도 좋은가?

할머니 저는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들으면서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 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Ⅱ디모 3,16)” 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책은 구약39권 신약27권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교부들의 신앙” 이란 책을 읽는 도중 성서는 66권만이 아니라 정경은 73권이며 가톨릭에는 성경뿐만 아니라 성전(聖傳)이란 것도 있으며 “‘성경과 성전’ 은 하느님 말씀의 거룩한 단일 위탁물로서 이 위탁물은 교회에 맡겨져 있다” 라는 것을 발견하고 너무나도 놀랐었습니다.

물론 이때 저는 이것을 “마귀의 장난” 으로 단정하고 “사탄아 물러가라” 를 외치며 그 책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의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지침서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오로지 성경밖에 없다고 믿어왔던 저이기에 문제는 더욱더 심각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성경이 73권이라는 말이 믿어지지도 않았으나 더욱 큰 문제는 73권이 옳은 것인지 66권이 옳은지는 성경에서도 기도 속에서도 또는 그 큰 학교 도서관의 어떤 문헌에서도 그 대답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심정으로서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73권이 거짓이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음은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성경 읽고 각종 종교서적 탐독과 고민 때문에 거의 학교 도서관에서만 지내던 어느 날 저는 외국대학의 종교학 책자에서 다만 7권의 외경(위경:APOCRYPHA)이 있다는 사실만 확인하였으나 그에 관한 궁금증은 더해만 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었습니다.

외경은 무엇이며 위경은 또 무엇인가? 그 판정 기준은 무엇이며 판정은 누가 내리는가? 하느님이 직접 내리시는가 아니면 이를 오랫동안 보관해온 유다교회가 내리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소위 종교개혁 이전 천주를 믿는다는 그 가톨릭이 내리는가? 그리고 그들이 내린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등

계속되는 질문만 되풀이하던 중 고맙게도 개신교의 유명한 신학자「R.BARCLAIUS」의 책에서 「CANON 즉, 정경은 몇 권의 책으로 된 것으로서 그 보다 더 많지도 더 적지도 않다는 것은 성경 자체로는 증명되지 않으므로 여기에 대하여는 성령의 사적 감도나 그렇지 않으면 로마 가톨릭을 신임할 수밖에 없다」라는 그의 양심적인 결론에 공감하고 그 해답을 가톨릭에서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답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성경은 구약46권 신약27권 도합73권으로서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24,35 ; 마르코(마가) 13,31; 루가(누가) 21,33) 라는 확답과 확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구약)은 기원전 150년경 정경으로 인정된 이래 신약시대에서도 예수님과 사도시대를 거쳐 약1500년간 정경으로 사용해 왔으나 소위 종교개혁 이후 일부 개신교 종파에서는 구약39권 신약27권을 정경으로 하고 또 어떤 종파는 성루가(누가)와 성 마르코(마가)는 사도가 아니라 하여 그가 쓴 것을 진짜 복음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마르틴루터는 성 야고보서를 “허수아비의 편지” 라고 불러 모욕하였으나 다행이 한국 성서공회의 성경 전서에는 루터가 없애 버린 야고보서가 들어 있음도 재삼 확인하였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 주님과 “진리의 성령(요한14,15)” 께서는 7권의 성경을 떼어버려도 좋다고 허락하신 바도 없으시며 그렇게 떼어버린 것이 정당하다고 뒷받침 하시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종교 개혁자라는 사람들이 소위 면죄부(사실은 대사 논쟁)문제나 그 당시 일부 성직자들의 타락과 부패가 있었다면 스스로 이를 방지하는 소금이 되거나 아니면 종교적 해이만을 개혁할 일이지 감히 죄 많은 인간이 주님의 말씀을 훼손한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구약이라 할지라도 용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노아의 자손들이 무엄하게도 높은 탑을 쌓아 하늘에 이르려는 교만과 같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구약은 어감 상 ‘묵은’ ‘낡은’ ‘오래된’ 것과 같은 형용사가 붙어있어 이 책을 읽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또는 심정적으로 가볍게 취급하려는 경향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유다이즘의 입장과는 달리 우리는 구약을 예수님의 신비를 예언한 말씀으로 굳게 믿고있으며 또 믿어야만 합니다.

교회는 구약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계시의 책이라는 사실을 기회 있을 때마다 선언하였으며 2세기경 구약성서를 얕잡아 보던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으로 파문하였고 또 교회는 히브리 10장1절의 말씀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너무나 오랫동안 사도 바오로(바울)의 율법 거부에 심취한 나머지 구약성서 전체를 거부함으로서 많은 악영향을 끼친 마르치온(160년)을 단호히 이단으로 배격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아직도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은 “가톨릭은 구약을 믿는 종교”라고 하는 터무니없는 모략과 악의에 찬 중상을 하고 있으나 주님을 반대하는 유다인의 히브리경전 만을 그대로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헌금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신약에는 없고 구약에만 있는 십일조 정신을 내세우면서 기복신앙에 호소하는 개신교야말로 헌금에 관한 한 어찌보면 유다교의 한 교파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대성당을 짖기 위한 소위 면죄부(대사논쟁)문제로 교회를 개혁한다고 갈라져나간 형제들이 지금에 와서는 교회를 통째로 그것도 “프리미엄” 을 붙여서 사고 팔고 하는 끔찍한 짓을 하면서도 “전도와 선교를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위한 것” 이라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다시는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한2,15-16)고 하신 주님의 채찍에 맞길 수 밖에요

이 손자는 똑똑히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당시 가톨릭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믿지 말고 멀리하라고도 배웠습니다.

우리는 삼성냉장고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대우전자에 가서 알아보려 하지 않고 LG전자 상품의 정보를 얻기 위해 현대전자에 가지 않습니다.

이 손자는 너무나 오랫동안 국내 및 국외 정보를 수집, 분석, 판단하는 분야에 파견되어 일해 왔기에 “경쟁자에게서 얻는 정보란 언제나 편견 투성이 이며 무엇을 아주 빼 버리거나 과장하지 않은 정보를 얻기란 매우 드물다" 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산으로 가지말고 바다로 가야 하듯이 저는 진리를 따라 가톨릭 교회에 들어와야 했으며 들어와서야 옛날의 모든 것이 거짓 또는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하나가 되어야할 때입니다. 이런 것으로 논쟁을 삼을 때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바오로사도의 신약과 구약의 백성을 엄격하게 구별하면서도 신약의 백성에게 흔히 잊혀지기 쉬운 다음의 말씀을 명심토록 해야 합니다. 즉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로마 11,18) 라는 고백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원뿌리에서 갈라져나간 개신교의 현주소라고도 저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구약에 관하여는 언젠가 우리 주님께서 “너희는 성서 속에서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 하고 있다”(요한 5,39)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은 그 당시 신약성서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시기였고 다만 율법 스승 바리사이파(그 당시 평민들 중 열성파)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꾸짖는 말씀으로 여기의 성서는 당연히 구약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볼 때에 소위 종교 개혁자들은 결과적으로 개혁이란 미명 아래 “주님을 증언” 하는 계시의 말씀을 떼어버린 것이 됩니다. 이것은 확실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라는 소위 종교 개혁자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구약의 ‘마카베오 상하권’ 과 ‘신약의 야고보서’ 를 빼어 버렸습니다.

구약의 ‘마카베오서’는 “연옥교리” 가 실려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야고보서’ 의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야고보 2,26) 라는 핵심 구절로 된 것으로서 파문된 신부의 소위 의화 체험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로마서 3장28절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관계없이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라는 말씀을 “오직 신앙으로 말미암아”라고 하며 ‘오직 신앙’ 만으로 구원되는 것으로 여기도록 위작(僞作)하였습니다.

또, 고린토 전서 4장20절 “하느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으니 말입니다” 를 “---능력에 있지 않고 말에 있다”라고 뒤집어 놓았습니다. 우리 나라 개신교 성경전서에는 제대로 번역된 것이 퍽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마태오 19장29절에서 “아내”라는 말을 빼었고 루가 2장48절 성모마리아께서 예수더러 “아들아”라고 하신 것을 “아이야”로 고쳐 놓았습니다(EnversⅢ 323). 당시 엠써(Emser)라는 사람은 “루터는 그리스도 교회가 옛적부터 신뢰해오던 원문의 여러 곳을 혼란하게 하고 어리석게 만들었고 비뚤어지게 만들어 교회에 불리하도록 하였다. 또, 이단적인 주해와 서문으로 교회에 해독을 끼쳤다. 그는 신앙과 선행을 다루는 성구에 이르러서는 횡포하게도 거의 전부 손을 대었다” 라고 증언하는 동시에 1400여 군데의 부정확함을 지적하였습니다(Jansen History of German People, ⅪⅤ p425)

이것은 결코 루터의 무지로 돌릴 수 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나 똑똑하였습니다.

할머니! 사실이 이러한데도 이 손자가 주 하느님의 말씀마저 자기 마음대로 떼어버리는 이들에게 계속하여 저의 영혼을 맡길 수 있었겠습니까? 결코 안 되는 일이지요

당시 저는 이런 사람들을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렸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루가 11,52)” “나더러 주여 주여만 하는 자”(마태 7,21)라고 혼자 분개도 해보았으나 지금은 우리 주님께서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을 미리 아시고 성서 제일 마지막 장에 요한 사도를 시켜 하신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 둡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벌하실 때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도 덧붙여서 주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버리실 것입니다” 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켜 드릴 따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의 손에 의해 훼손된 이래

사랑은 이기심과 증오로

믿음은 교만과 의심으로

희망은 어두움과 절망으로

정직은 기만과 사기로

선은 사악과 완고한 마음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에는 증오와 억제할 줄 모르는 이기심이 한층 더 위험한 양태로 도처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악령은 어디에나 분열을 일으킵니다. 가정, 사회, 교회 그 어느 곳이든지 예외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끼리 서로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더욱이 교회간의 이해와 상호 일치는 그저 구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간직하고,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를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하며 함께 기도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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