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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야기 1

이구아나 |2007.11.18 04:33
조회 361 |추천 0

떠남.

 

이제 곧 JFK공항이다.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던 꿈 같은 도시 뉴욕.. 나는 이제 곧 뉴욕의 땅을 밟을 것이다. 28의 새로운 시작.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던가?

사람들은 365일 동안 자신의 나이를 인지하고 살아가기에 그들의 나이에 익숙해 질 수 있다고 하지만 28살로 살아온 지 벌써 반년이 된 나는 아직도 나의 나이가 징그럽다. 그래도 27이란 숫자에서는 무언가 젊은 느낌이 묻어났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몰라도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28이란 숫자에서는 도무지 젊은 느낌을 찾을 수가 없다. 20대의 진정한 후반이 시작되는 느낌. 29이 되면 지금의 심정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역시나 28은 징그럽다.

언제부터 나이 먹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던가? 미용실 언니들이 더 이상 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군인아저씨들이 막내 동생처럼 느껴질 때? TV의 인기스타들이 더 이상 오빠, 언니들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때? 결코 적지 않은 28의 나.. 지금껏 나는 내 인생을 장식할 어떤 성과를 이루어왔던가? 젠장..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어쩌면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기에 현재의 나를 과감히 떠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28의 새로운 시작. 지금의 떠남이 나의 인생에 어떤 축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나는 사실.. 두렵다.

 

대학의 문턱에서 두 번의 낙방.. 삼수를 하는 동안 내가 이루어낸 유일한 성과는 잘 노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했다는 것이다. 재수학원을 등록하던 날.. 나는 우울한 심정을 달래려 죽순이로 소문난 오나리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클럽이라는 곳을 찾았다. 오나리는 클럽에 들어서자마자 남자의 몸에 자석처럼 들러붙어 온몸으로 육덕진 웨이브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오나리의 모습은 순진한 내게 천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지만 신기한 것은 그와 동시에 닮고 싶은 관능적 매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한 남자의 이끌림에 따르고 있었는데 그의 춤은 꽤 수준급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움직임에 온몸을 맡긴 채 환각의 분위기에 흠뻑 빠져버렸고 오나리가 나를 끌어낼 때까지 나는 그의 몸에 잔뜩 들러붙어있었다. 나에게 또 다른 정체성을 알려준 마력의 세계.. 나는 매일 남자들의 끊임없는 손길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락 없는 환락의 세계로 끝도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대학을 들어왔는지도 의문일 정도로 나는 매일을 그렇게 클럽과 노래방 호프집 또는 바를 전전하며 보냈다. 그 덕에 노는 것 하나는 남부럽지 않았던 나.. 나는 어디서나 퀸카로 통했다. 클럽에서는 오나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끈적이는 웨이브로 수많은 킹카들을 사로잡았고 노래방에서는 소파와 테이블을 넘나드는 화려한 무대매너로 분위기를 장악했으며 웬만해서는 술로 나를 이길 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년간의 삼수생활은 나의 수학능력에 다분한 학습효과를 자아냈던가 보다. 나는 기적적으로 소위 명문대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의 경영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합격의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사라진 느낌은 이루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입학의 순간부터 나는 물 만난 고기마냥 더욱 노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우리과에 날라리가 날아들어왔다며 경악했고 나는 피래미들에게 노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랴 데이트하랴 정신이 없었다. 나의 폰에는 전화 한 통이면 뛰어나올 수많은 남자들의 번호가 있었기에 외로울 틈도 없이 남자친구를 수없이 갈아치우며 다양한 데이트를 즐겼다. 나는 어디서나 퀸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을 나는 천국의 생활을 누리고 즐겼다. 하지만 잘 노는 것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노느라 바쁜 대학생활에도 한계가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영특하고 파릇파릇한 신입생들을 보고 있자니 더럭 겁이 나는 순간이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들어갔던 경제학 시간이었다. 그 배불뚝이 교수는 굳이 구석에 자리잡은 나를 지명해 우리나라 경제상황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어..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해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서 거시적으로 안정화 정책이 시급하며...”

 

나는 최대한 경제학 용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하며 뜬 구름잡는 대답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교수는 뭔가 못마땅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앞쪽에 자리잡은 후배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졌다. 최한나.. 그 후배는 나보다 일년후배.. 나이로는 3살이나 어린 탱탱한 피부의 동생이었다. 얼굴도 이쁜데다 몸매며 패션감각도 뛰어나 나에게 어느 정도의 위기감을 자아냈지만 워낙 싹싹하고 나를 잘 따랐기에 미워할 수 없는 동생이었더랬다.

 

“네,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외환위기 이후 매년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불안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한나는 현재 경제불안에 대해 내수부진과 기업투자감소를 어떠한 방법으로 해결할 것인지 그리고 그와 연동하여 정부의 통화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다른 나라의 정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비교 분석 및 향후 경제 전망까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의 일목요연한 설명을 듣고 있자니 이건 무슨 경제전문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등허리에 식은땀이 쭉 하고 흘렀다.  배신자들.. 피래미들로만 보이던 모두가 실상 나보다 한 수위였다는 것을 느꼈던 그 반전의 순간.. 나는 온몸을 떨었다. 내가 노는 동안 다른 이들은 모두들 자기계발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퀸이고 싶었다. 나는 절대 지고는 못산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취직을 못해 빌빌대는 선배들의 모습이 나의 미래를 비추는 듯 해서 두려워졌다. 정신을 차려야겠구나.. 나는 무턱대고 갖가지 시덥잖은 자격증을 따댔다. 매일매일 경제신문과 잡지를 읽어댔다. 몇몇 사람들과 토익시험을 위한 그룹스터디를 하기도 하고 빵구난 학점을 매우기 위해 방학은 계절학기를 듣느라 바빴다. 하지만 삼수의 그림자는 늘 나를 괴롭혔다. 나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간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남보다 나이가 두 살이나 많았고 그 흔한 해외연수경험도 없었다. 나는 잠을 줄여가며 영어공부와 수많은 기업의 정보를 취합하여 이력서를 작성하기에 바빴다. 수십 장의 면접족보를 외우고 인상적인 자기소개서를 위해 수백명의 성공한 자기소개서를 참고했다. 조바심으로 하루하루 잠을 이루는 것도 고통이었다. 하지만 노력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 그렇게 바쁘게 보낸 마지막 일년 끝에 나는 한 대기업의 재무팀에 취직할 수 있었다. 대학입학 이후 내가 이루어낸 쾌거였다. 기뻤다. 나의 마지막 문턱인 취업문턱을 넘었으니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불러 부어라 마셔라 성공의 축배를 들었다.

 

그 때 내 나이 26.. 인생의 가장 큰 고비를 넘겼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직장생활

 

인생의 새로운 막이 시작되는 무대.. 직장이라는 곳. 대학시절에 써빙이나 캐셔 등 몇 번의 아르바이트의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이건 벌이에서부터 판이 다른 게임이다. 내 삶을 내 힘으로 꾸려나가는 원동력을 마련해줄 수 있는 곳. 내 자존심과 사회적 위치를 대변할 수 있는 곳. 직장은 인생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진정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직장의 문화를 내 인생의 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수많은 장벽을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곳.. 나는 불행히도 늘 장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내가 속한 팀은 특히나 보수적인 집단으로서 모든 여자들은 당연히 남자들을 위해 커피와 차를 대령해야 하고 갖가지 잡다한 행사 및 하다못해 빼빼로데이에 깜짝 이벤트까지 도맡아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건 남자들은 물론 여자 상사들이 그것을 무척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회식 때 여사원들은 부장의 양 옆에 앉아 온갖 아양을 떨며 술을 따라야 하며 노래방에서는 대리나 차장들의 이끌림에 부루스를 춰대야 하는 곳… 노는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였지만 나는 그런 생활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본색을 감추며 늘 몸을 사렸다. 하지만 신입사원들은 늘 회식의 안주거리이자 꼭두각시가 되어 재롱을 떨어야 했다.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즐기며 마시는 술이 아닌 의무가 된 술자리는 차라리 지옥이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커피를 나를 때면 의자에 기대어 앉아 인터넷을 하고 있는 동료 남자사원을 보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그 눈빛…

 

노종학.. 34이 되도록 만년 대리이며 데이트할 여자친구도 없는 서글픈 노총각. 이름이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대한 역할을 하는지 이 노총각 대리를 보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담배와 술에 찌들란 옷을 몇 일이고 연달아 입었으며 매일을 사무실에 밤늦도록 앉아있었다. 게다가 주말도 없이 사무실에 죽어라 앉아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일은 업무시간에 헤치우고 퇴근시간과 주말을 칼같이 지켰다. 회사외의 시간은 내게 오아시스와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행동은 어느새 그 집단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한 작용을 하고 있었던가 보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소외되어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어느 금요일..

 

“재경씨 오늘 뭐하나?”

 

노총각대리가 뜬금없이 내게 술 한잔 할 것을 권유했다. 아니 거의 반 명령이었다. 군기잡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노대리.. 분명 내게 직장생활에 대한 충고를 할 작정인 것이었다. 도저히 거부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노총각 대리와 나.. 우리는 그렇게 허름한 고깃집에서 마주앉아 삼겹살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역시나 직장생활에 대한 장문의 연설을 늘어놓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술고래.. 그는 웬만해선 취하지 않는 나의 주량에 흥미를 느낀 듯,

 

"요것봐라"

 

며 끊임없이 나의 술잔에 술을 가득가득 따라대며 원샷을 명령했다. 죽어봐라.. 나는 어느새 나의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며 같이 죽자며 부어라 마셔라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까지 난 직장이란 사회에서 진정한 술고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퀴퀴한 냄새가 감도는 좁은 여관방. 모텔이라지만 그런 방은 여관이란 이름이 제격인 곳이었다. 순간 순간 떠오르는 추잡스러운 기억이 잔인하게 남아있었다. 노총각의 손에 힘없이 이끌려오던 기억.. 술과 담배로 찌든 노총각의 찝찝한 타액.. 침대 밑으로 던져진 나의 속옷들.. 노총각의 거친 숨소리와 나의 신음소리..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술을 마셔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꿈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노총각이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죽고 싶은 심정이란 게 이런 것일 거였다. 나는 순식간에 옷을 걸치고 그 방을 빠져 나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원나잇으로 내 순결을 잃었던 날.. 피 묻은 시트를 보며 절망했던 그 때보다 더욱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나마 그때는 쌔끈한 영계였단 말이다. 눈물이 솟았다. 그냥 그렇게 사라지고 싶었다.

 

그 다음 월요일 출근은 지옥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나는 더욱 괴로웠다. 문을 열자 저 쪽에 앉아있는 노총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웬일인지 못 보던 새 셔츠를 걸치고 앉아있었다. 언뜻 보니 이발까지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가 나를 의식하고 있음을 느꼈다는 것... 그 순간부터 찝찝한 심정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직 그를 피하는 대만 주력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는 나와 다른 파트에 있어서 그렇게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순간순간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하루하루의 끝에 다가온 금요일, 나는 드디어 지옥에서 탈출하는 기분으로 퇴근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모니터에 뜬 그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다시 기분이 엉망으로 구겨져버렸다. ‘술 한잔?’ 나는 ‘바쁩니다’ 라는 답과 함께 사무실을 달아나듯 나섰다. 하지만 밤이 늦도록 그에게서 몇 번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전화번호가 뜰 때마다 몸서리 치던 나는 결국 정신차리라는 차가운 문자를 보냈다. 어찌되었든 더 이상 그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지만 다음 출근 일부터 그의 저주가 시작되었다. 그는 과장은 물론 차장도 조심해야 할 만큼 자존심이 무척이나 센 타입이었는데 내가 그의 자존심에 일격을 날린 것이었다. 노총각은 사사건건 내게 시비를 걸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에 글자 포인트부터 컬러까지 걸고 넘어지는가 하면 회식이라도 하면 신입이 너무 뻣뻣하다느니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 아니냐는 등 사람들이 그만하라며 말릴 때까지 잔인하게 나를 씹어댔다. 하지만 만류하는 그 주변의 일파들 또한 은근히 나에 대한 비난을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었다.

 

성차별과 비난, 세력다툼과 아부가 난무하는 곳.. 비효율적인 규칙으로 자유를 앗아가는 곳.. 이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나는 웃음을 잃어갔다. 그 즈음 우울증세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늘 우울했다. 나는 가끔씩 나리를 만나 함께 신세한탄을 하곤 했다. 나리는 공무원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버릇처럼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라는 선언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나리는 늘 돈을 버는 나를 부러워하며 합격만하면 한턱 크게 쏠 거라며 큰소리를 쳤고 나는 알겠다며 늘 계산대에서 카드를 그었다. 역시 돈을 번다는 것 하나는 좋은 것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거나하게 술에 취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남자이야기와 어디를 성형하면 좋을지에 대한 토론으로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늘 결론은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는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얼굴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술을 기울이던 어느 순간 나는 눈물이 흘렀다. 나리는 무슨 일이냐며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아들였다. 나는 노총각의 이야기를 꺼냈다.

 

“똥밟았구만..”

 

나리는 고개를 저으며 내게 술을 따라주었다. 나는 떠나고 싶다고 흐느꼈다. 새로운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며 술을 털어넣었다. 나리는 재털이에 담뱃재를 털어내며

 

"가고 싶으면 가면 되잖아.."

 

라고 짧게 내뱉었다.

 

그렇다. 죽어라 앉아서 신세한탄으로 세월을 낭비하느니 할 수 있을 때 진정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살아있는 삶일 것이다. 내가 늘 꿈꿔왔던 새로운 세계로의 떠남. 무엇이 그렇게 나를 막고 있었던가? 가고 싶으면 가면 되는 것을…

 

마치 운명처럼 골머리를 앓아온 어려운 문제가 뻥하고 풀리는 느낌이 있었다. 가고 깊으면 가면 되잖아. 나는 뭘 망설이고 있었던가?

 

27의 어느 날.. 그렇게 나는 탈출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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